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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13화
PAYLUA ORIGINAL · 제113화

113화. 동화 열 닢짜리 침묵함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055자

오프라인 책장
왕립 경매원의 정리품 경매는 귀족들이 참석하는 겨울 경매와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화려한 돔 아래에서 금과 보석을 품평하던 사람들이 떠난 뒤, 본관 동쪽의 낮은 창고에는 가죽 앞치마를 두른 수리공과 중고 상인들이 모였다. 천장에는 난로에서 올라온 매연이 오래된 갈색 얼룩을 남겼고, 바닥의 번호선은 물품 운반 수레가 지나가며 군데군데 닳아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경매사의 멋진 말을 듣지 않았다. 실측 치수와 흠집, 운송비를 먼저 묻고 장부에 값을 적었다. 진혁은 이 소란스러운 분위기를 오히려 좋아했다. 물건은 무대 위에서 칭찬받을 때보다 바닥에서 굴러다닐 때 진짜 성질을 드러내는 법이었다. “여기서는 호화로운 잔을 판다면서 깨진 잔받침만 내놓는 일도 있나요?” “물론이지.” 세리아가 말했다. “그런데 깨진 잔받침이 귀족가의 진짜 문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더 비싸지는 곳이기도 해.” 그들은 오전 내내 정리품 목록을 확인했다. 출품 번호는 백에서 삼백 사이였고, 대부분 고장 난 자동문 부품, 봉인을 푼 서류함, 낡은 진열대였다. 제9입회 물증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대신 예상 가격이 동화 열 닢인 품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제217호. 손상된 침묵함. 기능 정지. 임시 보관 수수료 별도.’ 물품 사진에는 거무스름한 나무 상자가 찍혀 있었다. 문양은 없었지만 손잡이 아래에 황동이 덧대져 있었다. 라일은 사진 가장자리에 묻은 회색 가루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보세요. 손잡이 아래 홈이 아홉 개예요.” 유담이 지하 봉인실에서 적어 온 규격과 대조했다. 길이와 높이, 잠금부의 비율이 일치했다. 그럼에도 출품 문서에는 봉인실에서 이송됐다는 기록이 없었다. 대신 ‘왕립 경매원 장기 보관품 일괄 정리’라는 도장만 있었다. 하서린은 경매장 측의 출품 책임자인 오스카 벨턴을 만나러 갔다. 그는 며칠 전 영번 감정대 강제 시연을 추진하던 운영 책임자였다. 이번에는 검은 예복 대신 두꺼운 업무용 조끼를 입고 창고를 오가고 있었다. “침묵함은 정리품일 뿐입니다.” 오스카가 말했다. “작동하지 않는 물건을 보관할 예산은 없습니다.” “기록청에서 보관하는 제9입회 물증과 규격이 같습니다.” “비슷한 상자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래된 경매장에는 수백 개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송서류를 보여 주십시오.” 오스카는 잠깐 얼굴을 굳혔다. “출품 관리인의 담당입니다. 그쪽에서 확인하시죠.” 그가 몸을 돌리자 하서린은 더 밀어붙이지 않았다. 거부했다는 사실은 이미 두 사람의 대화록에 남았다. 그녀는 진혁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법적으로 보전 신청을 넣겠습니다. 다만 접수가 처리되기 전에 경매가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럼 낙찰받아도 되나요?” “개인적으로 사들인 뒤 임의로 열거나 이동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라면 가능합니다. 하지만 소유권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물건에 붙은 권리는 여전히 따로 조사해야 합니다.” 라일이 진혁의 어깨에 팔을 올렸다. “그런데 동화 열 닢이라면 마음 편하겠네.” 진혁은 경매 목록 뒷장을 들췄다. “보관 수수료, 긴급 출고비, 운송 보험, 세금. 다 합치면 금화 열 닢이 넘을 수도 있어.” “당신은 로맨스를 해도 비용부터 계산하겠군.” 카렌이 말했다. “로맨스 상대가 영수증을 내밀면 어떡하죠?” “검토할 시간을 주셔야죠.” 그 농담이 끝나기도 전에 출품 예고 종이 울렸다. 정리품 경매는 높은 단상 대신 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의 작은 무대에서 진행됐다. 경매사는 흰 수염을 가진 노인이었고, 손에 든 망치는 아주 짧았다. 이 무대에서는 누구도 망치가 울리는 순간을 길게 기다리지 않았다. 가격이 맞으면 곧바로 다음 물건으로 넘어갔다. 진혁은 침묵함이 나오기 전까지 싸구려 부품 몇 개를 살폈다. 부러진 가열봉은 실제로 가열 기능이 없었지만 내부에 재사용 가능한 은합금이 남아 있었다. 진혁은 목록을 적어 작은 상회에 되팔 계획을 세웠다. 지갑의 돈은 한정돼 있었고, 겨울 왕도의 숙박비는 마레온보다 훨씬 비쌌다. 경매가 시작되고 처음 나온 것은 깨진 유리 진열판 열두 장이었다. 대부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앞줄의 안경 쓴 상인이 조용히 한 묶음을 사들였다. 진혁은 어떤 값을 알아보고 샀을까 궁금해 자리를 옮겼다. 상인은 가장자리에 붙은 왕립 제작소의 옛 규격 표시를 가리켰다. 새 유리보다 얇지만 열에 견디는 성질이 뛰어나 난방기 창으로 잘라 쓰기 좋다는 설명이었다. “그럼 값이 더 비싸야 할 텐데요.”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은 잘라 쓸 도구가 없거든요. 물건의 값은 재질만으로 결정되지 않아요. 누가 가져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진혁은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역시 같은 원리로 값싼 접속구를 낙찰받았다. 다만 최근에는 사람의 기록을 지키는 일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경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즐거움을 잊고 있었다. 두 번째 묶음은 고장 난 이동식 난로였다. 진혁은 낙찰품의 지지대가 부러졌다는 설명을 듣고 회색 표면을 살폈다. 난로 자체는 고칠 가치가 없었지만, 아래의 가죽 바퀴 하나가 새것이었다. 다른 상품의 값과 운송비를 계산하자 이익이 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들지 않았다. 때로는 사지 않는 판단도 감정사의 능력이었다. 세리아는 그를 보며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저 바퀴 때문에 그냥 샀을 텐데.” “경험이 쌓였죠.” “아니, 숙박비가 다 떨어진 거야.” 라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카렌도 입가를 감췄다. 작은 농담이었지만 진혁에게는 긴장을 조금 내려놓을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경매의 진짜 목표가 침묵함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면, 조급하게 패들을 들지 않는 편이 더 중요했다. 침묵함은 예상보다 일찍 나왔다. 운반인이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고 수레를 기울여 놓자 상자 바닥이 마룻바닥을 거칠게 긁었다. 나무의 한쪽 모서리에서는 흰 가루가 떨어졌다. “기능 정지 보관함입니다! 외부 흠집 다수, 내용물 없음, 수리 보증 없음. 시작가 동화 열 닢!” 상인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나무 상자는 난로에 넣기에는 너무 작고, 부품을 빼내기에는 지나치게 오래된 물건이었다. 진혁은 패들 번호를 들기 전 손바닥을 상자 쪽으로 향했다. [대상: 제9입회 침묵함 외함.] [현재 상태: 잠금장치 분리.] [기능: 외부 문구를 보관하고, 내부의 거절 표식을 보호함.] [유의: 내용물이 없다는 출품 안내는 검증되지 않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능력은 이번에도 답을 모두 주지 않았다. 다만 출품 안내가 허술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는 경매사에게 물었다. “내용물 없음은 누가 확인했습니까?” “목록 작성자가 확인했습니다!” “함을 열지 않고 확인할 수 있나요?” 경매사가 운반인에게 눈짓했다. 운반인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자물쇠 부분을 분리한 뒤 흔들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진혁이 외쳤다. “그럼 빈 상자라는 말은 빼야 합니다. 흔들어도 소리가 안 나는 물건은 많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물건을 낙찰받으려는 사람과 얼른 일을 마치고 싶은 운반인의 서로 다른 계산이 섞여 있었다. 상인들 사이에서 웃음이 났다. 경매사는 귀찮다는 듯 목을 긁었지만 문구를 고쳤다. ‘내용물 미확인.’ 그가 망치를 들자 진혁은 동화 열 닢을 불렀다. 그때 맞은편에서 은화 한 닢이 올라왔다. 회색 외투를 입은 여자가 패들을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얇은 은색 가면이 있었다. 지난 겨울 경매에서 값비싼 화로를 낙찰받았던 여자였다. 라일이 조용히 말했다. “저 사람, 또 왔군요.” 카렌은 여자의 움직임을 살폈다. 가면 아래 시선은 진혁에게 머물지 않았다. 상자 오른쪽 밑바닥, 흰 가루가 떨어진 자리를 계속 보고 있었다. 진혁은 경매장 뒤편에 선 보존사를 살폈다. 보존사는 가격보다 무게를 재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상자 바닥의 금속 띠가 어디까지 연결됐는지 확인하려는 듯했고, 포장 천을 새로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고 안도했다. 적어도 누군가는 이 물건을 단순한 장작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값은 은화 다섯 닢, 열 닢, 스무 닢으로 올랐다. 진혁은 자신의 예산 한도를 적은 종이를 꺼내 확인했다. 동화 열 닢짜리 상자를 무턱대고 비싼 값에 사들일 수는 없었다. “은화 서른 닢!” 가면의 여자가 불렀다. 라일이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이쯤 되면 장작값 치고는 비싸군.” 진혁은 패들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 카렌이 그의 팔꿈치를 눌렀다. “저 사람이 돈이 많아서 부르는 거라면, 우리가 그 사람보다 더 써야 할 이유는 없어요. 그런데 저 사람이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지금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경매사의 손이 내려가기 전에 하서린을 향해 말했다. “증거 보전 신청이 처리됐는지 확인해 주시죠. 저는 입찰하지 않겠습니다.” 하서린은 창고 관리자에게 다가갔다. 관리자는 서류를 꺼내다가 이마를 찌푸렸다. 기록청이 보낸 가처분 통지가 창고 사무실에 도착한 것이었다. 도착 시각은 경매 시작 다섯 분 전. 담당자가 다른 서류 아래에 끼워 놓아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경매사는 망치를 내리려다가 손을 멈췄다. “제217호는 처분 중지 대상입니다. 입찰을 취소합니다.” 은색 가면의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손에 들었던 패들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녀는 진혁 일행이 아니라 출입문 뒤에 서 있는 남자를 한 번 바라봤다. 남자는 은색 장갑을 낀 중개인이었다. 진혁은 숨을 돌렸다. 값싸게 산 물건으로 대박을 내는 일보다, 비싸게라도 빼앗겨서는 안 되는 물건을 시장에서 빼내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하서린은 수사관과 증인 두 명 앞에서 침묵함을 봉인했다. 움직이거나 열 때에는 정식 입회가 필요했다. 진혁은 그 과정이 모두 끝날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나중에 운반인이 밑바닥의 가루를 쓸어 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 원래 바닥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는데…….” 진혁이 고개를 돌렸다. “어떤 종이였습니까?” “작은 출품표요. 누가 중간에 떼 갔어요.” 운반인은 쓰레기통에서 찢어진 종이의 반쪽을 찾아 왔다. 거기에는 번호 대신 물품 인수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서겸. 제0호 감정관 보조.’ 세리아는 이름을 소리 내어 읽었다가 입을 다물었다. 열두 해 전 사진 속 젊은 남자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 아래 적힌 날짜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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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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