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안쪽에서 세 번 울린 두드림은 생각보다 작은 소리였다.
두꺼운 철판을 통과하느라 둔탁해진 소리는, 지하 복도 끝에 서 있던 사람들의 숨소리에도 묻힐 것 같았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봉인실은 언제나 세 번의 확인을 거쳐 열리는 방이었다. 밖에서는 열쇠로, 안에서는 관리자의 의사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서로를 직접 확인하는 절차로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 먼저 소리를 내는 일은 정해진 비상 신호가 아니었다.
“관리관님, 들리십니까?” 유담이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다시 세 번, 이번에는 조금 빠른 두드림이 이어졌다.
하서린이 지하 복도를 돌아보았다. 화로 근처에는 낮은 나무 의자 두 개와 외투를 거는 갈고리가 있었다. 관리자가 일시적으로 밖에 나왔다면 외투가 걸려 있어야 했지만 갈고리는 비어 있었다. 바닥에는 먼지가 가늘게 쌓여 있었고, 문 바로 앞에만 미끄러운 자국이 남았다. 무거운 서류 수레가 지나간 흔적 같았다.
“문을 부수면 안 됩니까?” 카렌이 물었다.
“안쪽의 원부가 손상됩니다.” 유담이 답했다. “또 문을 열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가 증거를 훼손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라일이 철문 모서리를 살폈다. 그는 복도 끝의 가스등을 조금 가까이 옮겨 달라고 했다. 불빛이 기울어지자 도색이 벗겨진 경첩에 얇은 황동 가루가 보였다.
“여기만 방금 긁힌 모양인데요.”
“자물쇠를 훼손한 흔적입니까?”
“아니요. 경첩을 조절하려고 밀었다가 흘린 가루에 가깝습니다. 문을 잠그는 사람보다 문을 조용히 여는 사람이 남기는 흔적이에요.”
카렌은 짧게 물었다. “경험담?”
라일이 어깨를 으쓱했다. “교육적 설명입니다.”
진혁은 손바닥의 글자를 다시 읽었다. 입회 인원 수 불일치. 누군가 문을 연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이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었는데 실제로는 다른 누군가가 출입한 상태일 수 있었다. 그는 유담에게 내·외부 출입 장부가 따로 있는지 물었다.
“있습니다. 봉인실 바깥의 장부는 방문 목적과 허가를 남기고, 안쪽 장부는 실제로 본 자료의 일련번호를 기록하지요.”
“그럼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것은 문을 여는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서류를 넘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군요.”
하서린은 벽에 걸린 비상 호출 줄을 당겼다. 잠시 후 두 명의 경비병과 시설 관리자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관리자는 양동이와 긴 금속 막대를 들고 있었다. 그는 경첩의 흠집을 확인하자 얼굴을 찌푸렸다.
“문짝 자체는 멀쩡합니다. 안쪽 손잡이를 누르는 부품이 교체됐군요. 누군가 여닫는 소리를 밖에서 알아듣지 못하도록 완충재를 넣었습니다.”
“그럼 열 수 있습니까?”
“비상 환기구를 먼저 열겠습니다. 방에 사람이 쓰러져 있다면 통풍이 중요하니까요.”
환기구는 복도 천장 가까이에 있었다. 두 명의 기사가 낡은 격자를 분리하자 찬 공기와 함께 종이 타는 듯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진혁이 숨을 들이켰다가 기침했다. 실제 불길은 없었다. 경비병이 가느다란 거울을 넣어 안쪽을 비춰 보았지만, 어두운 책장 아래쪽만 보였다.
카렌이 통로를 막는 사람들의 위치를 조정했다. 뒤에서 떠드는 이들이 한꺼번에 문 앞으로 몰리면 지하 계단이 막힐 수 있었다. 그녀는 대피할 방향을 표시하고, 들어가기 전 사람 수를 확인했다.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 다치지 않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마침내 시설 관리자가 비상 장치를 돌렸다. 철문이 손바닥 하나만큼 벌어졌다. 문 틈에서 누렇게 마른 서류 한 장이 스르르 흘러나왔다. 종이 모서리에는 붉은 선이 세 개 그어져 있었다. 유담이 그것을 보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원부가 아니라 판독 교정지예요. 이게 왜 바닥에 있지?”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여섯 명이었다. 첫 번째는 조사 책임자 하서린, 그 뒤로 기록사 유담과 시설 관리자가 들어갔다. 카렌과 진혁이 뒤따랐고 라일은 마지막에 섰다. 세리아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사진 속 젊은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가 오래전 유나를 뒤따라 봉인실을 나온 것도 이 문과 같은 구조의 문이었을까.
지하 봉인실 안은 예상보다 넓었다. 천장은 낮았지만 책장이 방 세 개를 가로지르는 길이로 이어졌고, 각 책장 사이에는 두 사람이 겨우 비켜 지나갈 만한 공간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원부를 펼치는 넓은 석탁과 기록을 복사할 때 쓰는 유리판이 놓여 있었다. 전등은 거의 꺼져 있었고, 구석의 작은 난로만 푸른빛을 냈다.
관리자를 찾기 직전 진혁은 방 안의 온도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쪽 책장 가까이는 차가웠지만 가운데 석탁 부근에서는 따뜻한 공기가 솟아올랐다. 봉인실은 종이를 보존하기 위해 방마다 온도와 습도를 다르게 유지했다. 그런데 두 방의 경계가 흐트러져 있었다. 벽 안쪽 배관의 덮개에는 작은 녹물이 맺혔다.
“여기 바람이 위로 올라갑니다.” 진혁이 말했다.
시설 관리자가 철제 열쇠로 바닥의 배수 덮개를 건드렸다. 작은 물방울이 그 틈에서 솟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눌렀다.
“배관의 압력이 반대로 걸렸습니다. 누군가 냉각수를 역류시켰거나, 제어 밸브가 저절로 작동한 것 같습니다.”
“이런 사고는 흔합니까?” 카렌이 물었다.
“원래라면 감지 종이 울려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종까지 꺼져 있군요.”
유담은 종이 서류가 놓인 책장 쪽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는 곧장 책을 옮기려 했지만 하서린이 먼저 막았다. 젖은 종이를 서둘러 펼치면 표면의 잉크가 달라붙고, 원래 없던 손상까지 만들 수 있었다. 보존 담당자가 들어올 때까지 공기의 흐름만 조절하기로 했다.
라일은 책장을 잇는 통로 위에 작은 천을 덮어 물방울이 다른 서류에 튀지 않게 했다. 카렌은 뒤쪽에 모인 경비병 두 명을 위층으로 올려 보내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너무 많은 사람의 발걸음도 오래된 책을 흔들 수 있었다.
그들은 누가 이 일을 일으켰는지 아직 몰랐다. 다만 범인을 찾겠다는 생각 때문에 문서와 사람을 더 위험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진혁은 이 낡은 지하실에서야 비로소 기록을 지키는 일이 전투만큼 섬세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관리자는 석탁 아래에 쓰러져 있었다. 얼굴이 창백했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 경비병이 상태를 확인하고 들것을 준비했다. 바닥에는 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벽의 냉각관이 분리되면서 증기가 새고, 관리자가 그것을 막다가 어지러워진 듯했다. 다행히 외상은 크지 않았다.
“사람을 다치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못된 일인데.” 카렌이 낮게 말했다.
하서린은 곧바로 봉인실의 장부와 선반을 따로 기록하게 했다. 원본 문서를 열기 전, 누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부터 도면에 적었다. 진혁은 서두르고 싶었지만 그녀의 결정을 따랐다. 누군가 이미 조작한 현장에서 그들마저 성급히 움직이면 나중에 어떤 문장이 진실인지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유담이 안쪽 출입 장부를 펼쳤다. 오늘 오전 아홉 시 십육 분, 공식 출입자는 한 명으로 적혀 있었다. 관리관 강수목. 그러나 실제로 관리관은 아홉 시 전에 기록청 본관에서 약을 수령했다고 했다. 약국 영수증을 대조하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누가 그의 이름으로 문을 연 거죠?” 세리아가 물었다.
“확인해야 합니다.” 하서린이 말했다. “추측은 장부에 적지 마세요.”
진혁이 눈을 돌리자 석탁 위에 놓인 파란 덮개가 보였다. 가로로 길고 두꺼운 책이 덮개 아래 있었다. 표지 구석에는 ‘제998호’라는 숫자가 보였지만, 덮개 아래로 손을 넣는 것은 허가받지 못했다. 누군가 그 책을 이용해 사람의 권리를 거래하려 했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그의 손끝이 저렸다.
“최초의 거절 기록을 보러 왔죠.” 하서린이 말했다. “제998호 원부를 열기 전에 목록부터 확인합시다.”
유담이 선반 끝의 낡은 색인함을 꺼냈다. 색인에는 ‘거절 반송대장’이라는 제목이 있었다. 장부의 접수번호는 영번 감정대 복원 기록과 연결됐다. 그러나 중요한 날짜가 유리판 너머의 표본마다 달랐다. 어떤 사본에는 열두 해 전 겨울, 또 다른 사본에는 그보다 일 년 뒤의 봄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혁의 능력은 색인의 일부만 보여 주었다.
[대상: 거절 반송대장 색인표.]
[현재 표시: 사본 두 종이 서로 다른 접수일을 가짐.]
[확인 불가: 원본과의 일치 여부.]
그는 잠시 실망했다. 대단한 능력이라더니 지금 가장 알고 싶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색인표를 살펴보던 카렌이 뜻밖의 말을 했다.
“사본의 날짜가 바뀐 게 아닐 수도 있어요.”
“무슨 뜻이죠?”
“열두 해 전 기록을 열세 해 전 사건으로 만드는 대신, 열두 해 전 사건에 일 년 뒤의 서명을 붙였을 수도 있잖아요. 이건 사건 날짜와 서명 날짜를 구분해야 해요.”
유담이 돋보기를 건넸다. 두 날짜의 인쇄 방식은 같았으나 잉크의 마모 정도가 달랐다. 그 자체로 조작을 확정할 수는 없었다. 다만 두 종류의 원본이 존재할 가능성은 생겼다.
그때 라일이 책장 한쪽에 빈칸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원래 기록을 넣어 두던 나무 칸에는 먼지가 남아 있었지만, 특정 넓이의 직사각형 부분만 깨끗했다. 최근까지 물건이 놓여 있었던 자리였다.
“여기 뭐가 있었습니까?”
유담은 색인표의 보존번호를 대조했다. “제0호 감정인 입회용 보관함. 아홉 번째 증인의 인증물을 담아 두는 상자입니다.”
“그 상자는 지금 어디 있죠?”
“오늘 정기 점검 목록에 없습니다. 누가 옮긴 기록도 없고요.”
진혁은 석탁 아래 떨어진 교정지를 다시 떠올렸다. 경매장의 얇은 황색 영수증, 잘못된 사전 열람 신청, 그리고 없어진 인증물. 각각은 작은 이상이었지만 한 줄로 세워 놓자 방향이 보였다. 누군가는 원부 전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증언을 확인할 수 있는 물건을 먼저 가져갔다.
유담은 빈칸 아래 붙은 작은 명패를 읽었다.
‘제9입회 물증. 소유 주체: 증인 본인. 보관처 변경 시 반드시 반송할 것.’
하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물건까지 국가 것이 되는 건 아니죠.”
그때 관리관 강수목이 들것 위에서 눈을 떴다. 그는 입술을 겨우 움직여 한마디를 했다.
“상자는…… 훔쳐 간 게 아닙니다.”
모두가 그를 바라봤다.
“아침에 직접 가져가라고…… 그쪽에서 인수증을 보냈어요.”
“어디에서요?” 하서린이 물었다.
관리관이 가쁜 숨을 삼켰다.
“왕립 경매원. 오늘 저녁, 정리품 경매에 출품된다고 했습니다.”
진혁은 경매장이라는 단어를 듣자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법으로 보호받는 증인의 인증물을 물건 취급해 시장에 내놓으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단순히 낙찰받기만 해서는 안 됐다. 애초에 팔려서는 안 되는 물건인지부터 밝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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