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그친 왕도의 아침은 이상할 만큼 소란스러웠다.
왕립 경매원 앞 광장에서는 밤새 걸려 있던 붉은 행사 깃발이 내려갔다. 직원들이 긴 사다리에 올라 황금 술을 풀었고, 마차꾼들은 귀족들이 던져 놓고 간 담요와 식기 상자를 실었다. 겨울 경매의 첫날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은 하룻밤 새 여관과 시장을 돌았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법 기계가 폭발했다는 이도 있었고, 외지 감정사가 왕실의 보물을 훔쳤다는 이도 있었다.
서진혁은 그런 소문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수프를 먹고 있었다.
“제가 훔친 건 은화 오십 닢짜리 접속구뿐인데.”
“그건 샀잖아요.” 카렌이 숟가락을 놓았다.
“세상은 영수증을 읽기 전에 소문을 믿습니다.”
라일이 창밖을 보며 웃었다. “도둑의 직업을 감정사가 빼앗는 건 처음 듣네.”
세리아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앞에는 전날 밤 도착한 유리 건판 사진과 왕립 기록청의 출입 규정이 펼쳐져 있었다. 종이 구석에 녹색 실 한 가닥이 놓였다. 손끝으로 만지면 쉽게 끊어질 것처럼 마른 실이었다.
사진에는 열두 해 전의 세리아와 유나, 그리고 낯선 젊은 감정청 직원이 서 있었다. 남자의 제복 옷깃에는 붉은 별 단추가 두 개 달려 있었다. 세리아는 그가 분명히 장치를 멈추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그러나 이름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기억의 빈칸을 억지로 채우는 대신, 그녀는 사진 뒷면에 적힌 촬영소 번호부터 베껴 두었다.
“왕립 기록청 지하 봉인실은 일반 열람 대상이 아니야.” 세리아가 말했다. “지하에 있다는 사실조차 내부 규정에서만 확인할 수 있지.”
“그럼 허가받으면 되겠군요.”
“일반 감정사에게는 허가가 나오지 않아.”
진혁이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어제는 최종 감정사라고 적어 놓더니 오늘은 일반 감정사라니, 제 직급은 날씨 따라 바뀌는 모양입니다.”
그 말에 하서린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왕립감정청의 조사관인 그녀는 전날보다 더 피곤한 얼굴이었다. 짙은 회색 외투 소매에 마른 잉크가 묻어 있었고, 허리에는 두툼한 증거 봉투가 매달려 있었다.
“직급이 아니라 사건의 성격이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의자를 끌어 앉으며 조사 명령서를 내밀었다. 왕립 경매원의 강제 시연 중단 사건은 시설 안전 조사와 공문서 진위 조사로 갈라졌다. 시설은 경매원 관할이었지만, 옛 영번 감정대의 승인 기록은 왕립 기록청 관할이었다. 두 기관이 서로 남의 사건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자, 원본을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어졌다.
“그래서 제가 서류를 세 장 만들었습니다. 진혁 씨는 기술 참고인, 세리아 씨는 당시 관련 계약 당사자, 카렌 씨는 유품 소유자 유족 대표입니다. 라일 씨는…….”
“도둑 대표?”
“현장 물품 이송에 관한 참고인입니다.”
라일이 마음에 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정중한 별명이네요.”
하서린은 낙담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봉인실 안의 기록을 열람하려면 별도 입회인이 필요합니다. 옛날 기록을 수정하거나 훼손하지 않았다고 보증할 독립 기록사 말입니다.”
그녀가 내민 봉투의 맨 아래에 수기로 쓴 주소가 있었다. 왕립 기록청 북쪽 별관, 제3정리실. 입회 가능 시간은 오늘 오후 두 시부터 네 시까지 단 두 시간. 그 밖의 시간에는 봉인 관리 책임자가 자리를 비운다고 했다.
기록청으로 가는 길에 그들은 커다란 천막 앞을 지나갔다. 경매원으로 물품을 납품하던 상인들이 갑자기 보류된 물량을 돌려받기 위해 줄을 섰다. 한 여자가 가방에 든 모직 장갑을 꺼내 손님에게 보여 주고 있었지만, 경매가 멈췄다는 소문 탓에 누구도 선뜻 사지 않았다. 그녀의 뒤에는 두 아이가 납품 장부를 품에 안고 있었다.
“왕도가 멈춘 건 아니잖아요?” 진혁이 말했다.
여자는 그들을 쳐다봤다. “경매원에서 주문한 물건을 사흘 안에 받지 않으면 보관비가 붙는데, 이런 일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요. 다음 주문도 미정이라니, 겨울을 어떻게 나라는 건지.”
세리아는 거래 중단 공고를 꺼내 확인했다. 실제로 중단 대상은 영번 감정대 시연뿐이었다. 다른 일반 거래는 계속됐지만 경매원은 소문을 바로잡는 안내문을 내지 않았다. 상인의 손해는 거대한 계약 조작과 직접 관계가 없어 보였지만, 소문은 언제나 가장 약한 사람부터 건드렸다.
세리아는 여자의 납품서를 살펴보고 하서린에게 전달할 사본을 받아 갔다. 자신이 직접 보상하겠다고 약속하지는 않았다. 다만 경매원이 이미 인수하기로 한 물건의 계약 의무를 확인해 달라는 정식 질의를 넣을 수는 있었다. 여자는 그 말에 안도하면서도 장부를 꼭 움켜쥐었다.
카렌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빵을 한 개씩 건넸다. 라일이 속삭였다. “그건 아침에 제 몫이었는데요.”
“당신은 이미 세 개 먹었잖아요.”
“제가 세 개나 먹었다는 기억은 증빙이 필요합니다.”
진혁은 지갑에서 동화 몇 닢을 꺼내 상인에게 장갑 한 켤레를 샀다. 손등이 거칠어진 유담에게 줄 선물로 생각했지만, 실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지갑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그는 이상하게 아깝지 않았다. 그것도 경매장에서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일행은 길을 건너면서 서로 말없이 걸었다. 세리아는 경매장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이 단순히 무대 위의 망치만 챙길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렸다. 그 바깥에는 물건을 만들고 운반하고 기록하는 사람들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일행이 기록청에 도착했을 때 광장의 시계는 열두 번을 치고 있었다. 기록청은 화려한 경매원과 달랐다. 돌계단의 가장자리는 여러 세대의 발에 닳아 움푹 파였고, 창문에는 볕을 반사하는 장식 대신 얇은 철망이 설치돼 있었다. 낡은 서류와 젖은 가죽 냄새가 복도 곳곳에 배어 있었다. 마부들은 사람을 내려 주고 바로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오래 서 있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왕의 보석보다 먼저 옮겨야 하는 곳이에요.” 카렌이 말했다.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사람은 빼앗긴 돈을 다시 벌 수도 있지만, 태어난 기록을 잃으면 자기 이름을 다시 설명해야 한다고.”
그들은 계단을 내려가 별관 출입문에 섰다. 문 옆 안내판에는 ‘원부 보존실, 사본 교부실, 인장 회수실’이 적혀 있었다. 제3정리실은 복도 끝에 있었다. 작은 책상 뒤에 앉은 중년 남자가 방문자들의 손을 차례로 살펴봤다.
“기록사 유담입니다. 손부터 확인하는 건 직업병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그는 마른 체격에 코끝이 붉은 사람이었다. 열 손가락의 끝에는 잉크 자국과 오래된 작은 화상 흔적이 있었다. 진혁은 손을 펼쳤다가 자기 손바닥의 글자가 눈에 띌까 봐 황급히 뒤집었다.
유담은 방문 목적을 듣고 책상 아래에서 나무 상자를 꺼냈다. 상자에는 기록실에서 사용하는 다섯 종류의 봉인끈이 가지런히 놓였다.
“옛 봉인실은 흔히 생각하는 비밀 금고가 아닙니다. 습도와 화염, 도난을 막으려고 방을 겹겹이 만들었지요. 가장 위험한 건 도둑보다 읽은 사람이 잘못 기억하는 일입니다. 원본을 보고 나서 각자 다르게 적어 나가면 소송은 십 년을 갑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읽습니까?” 진혁이 물었다.
“첫째, 봉인 상태를 네 사람이 따로 적습니다. 둘째, 기록을 열기 전에 확인할 문구를 정합니다. 셋째, 열람 후에는 말로 설명하지 말고 원본이 말한 만큼만 기록합니다.”
“말이 적은 편이 유리하군요.”
“당신에게는 어려운 규칙처럼 보입니다.”
카렌이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유담은 그들에게 빈 용지와 돋보기를 나눠 주었다. 그리고 한 가지 뜻밖의 사실을 말했다. “지난밤 왕립 경매원 시연이 중단된 뒤, 누군가 먼저 봉인실 열람을 신청했습니다. 신청 사유는 영번 감정대 복원에 따른 기록 정정. 신청인은 감정청 소속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서린의 표정이 굳었다. “우리 기관은 오늘 아침에야 정식 조사 명령을 발부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젯밤 신청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유담이 신청서 사본을 내밀었다. 서명란에는 지워진 듯 희미한 이름이 있었고, 증명 인장에는 왕립감정청의 오래된 별 두 개가 찍혀 있었다. 진혁이 검은 테두리로 둘러싸인 결재 번호를 보자 손바닥에서 열이 올랐다.
[대상: 지하 봉인실 사전 열람 신청서.]
[기록 생성 시각: 어젯밤 열한 시 사십이 분.]
[숨겨진 속성: 서명은 사본에서 옮겨 찍음.]
[주의: 서명의 원 소유자는 현존 여부 미확인.]
진혁은 눈을 감았다 떴다. 자신의 능력이 보여 준 문장은 출발점일 뿐, 그 자체로 법정에서 통할 증거가 아니었다. 그는 종이를 직접 가리키며 유담에게 물었다.
“잉크가 이상합니다. 이름 부분만 눌린 자국이 없어요. 원본 서류는 어디 있습니까?”
“접수함에 있습니다. 다만 그것도 복제일 수 있겠군요.”
유담이 돋보기를 들어 보았다. 서명 잉크는 인장 아래로 번지지 않았고, 결재란의 종이 섬유도 눌리지 않았다. 인장만 찍고 다른 기록에서 이름을 가져온 흔적이었다.
“신청을 보류하겠습니다.” 유담이 말했다. “조사 명령이 나기 전에 조작 신청이 들어왔다면 저희 봉인실이 누군가에게 필요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들은 긴 복도를 지나 지하로 내려갔다. 계단은 아래로 갈수록 폭이 좁아졌고, 한 걸음마다 오래된 석재가 낮은 소리를 냈다. 벽의 통풍 구멍에서는 찬 공기가 흘러나왔다. 끝에 도착하자 자물쇠가 세 개 달린 철문이 나타났다. 문 윗부분에는 라일이 기억하는 아홉 홈의 고리와 비슷한 황동판이 박혀 있었다.
유담은 첫 번째 자물쇠에 열쇠를 넣었다. 두 번째는 하서린의 조사 문서 번호로 확인했다. 세 번째는 봉인실 내부 담당자가 밖으로 나와 직접 풀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종을 울려도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카렌이 문에 귀를 붙였다. 아주 낮은 종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 발소리가 아니라 서류를 한 장씩 뒤집는 것 같은 소리였다.
“안에 누가 있는 거 아닙니까?” 라일이 속삭였다.
유담은 고개를 저었다. “관리자는 한 사람입니다. 지금은 오후 교대 전이라 분명 안에 있어야 합니다.”
진혁은 철문의 모서리를 바라봤다. 문을 손으로 만지자 보이지 않던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봉인 상태: 외부 잠금 정상.]
[내부 잠금: 해제됨.]
[마지막 열림: 금일 오전 아홉 시 십육 분.]
[경고: 입회 인원 수 불일치.]
진혁은 그 문장을 모두에게 바로 읽어 주지 않았다. 대신 철문 아래에 끼인 종이 조각을 발견했다. 손을 넣어 당기자 흰 종이는 쉽게 빠졌다. 기록청에서 쓰는 두꺼운 결재 종이가 아니었다. 경매장에서 낙찰자에게 주는 얇은 황색 영수증이었다.
그 뒷면에 날짜 하나와 짧은 문장이 있었다.
‘아홉 번째 증인이 먼저 들어왔다.’
철문 안쪽에서, 누군가 조용히 세 번 문을 두드렸다.
제11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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