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경매가 시작되는 날, 에르반에서는 눈이 내리지 않았다.
오히려 하늘이 맑아져 도시 전체가 유리처럼 차가웠다. 귀족들의 마차 바퀴가 돌바닥 위에서 명쾌한 소리를 냈고, 안내병들은 길 양옆의 얼음을 깨 관객이 미끄러지지 않게 했다. 경매원 중앙 분수에는 얼지 않은 물이 흘렀다. 분수 밑에서 따뜻한 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진혁은 이곳이 얼마나 비싼 건물인지 다시 생각했다.
본관에는 네 개의 출입문이 있었다. 귀족과 후원자는 붉은 문으로, 상인은 파란 문으로, 의뢰인은 회색 문으로 들어갔다. 감정사와 시설 직원은 작은 철문을 이용해야 했다. 진혁은 철문 앞에서 입장권을 내밀었다. 정식 감정사 자격증 위에 별도의 붉은 띠가 붙어 있었다.
‘최종 감정사.’
“보셨죠?” 진혁이 세리아를 바라봤다. “저는 최종이란 말이 싫습니다. 마지막이라는 뜻 같잖아요.”
세리아가 띠를 떼려 하자 출입 관리인이 손을 내저었다.
“총감독관 직인이 찍힌 것이라 임의로 떼시면 안 됩니다.”
“그럼 총감독관에게 이 직인이 허락 없이 찍혔다고 전해주세요.”
카렌은 관리인의 이름과 발급 시각을 기록했다. 하서린도 출입 명부에 정정을 요청했다. 띠 하나를 떼는 일에 십여 분이 걸렸다. 그동안 일반 관객들은 따뜻한 로비에서 장갑을 벗고 차를 마셨다.
“왕도는 참 공평하군요.” 진혁이 말했다. “누구나 절차를 밟을 수 있어요. 누구나 절차 때문에 얼어 죽을 수도 있고.”
첫 경매는 오전 열 시 정각에 열렸다. 중앙 무대에는 검은 사자 문장이 찍힌 커다란 망치가 놓였다. 망치가 한 번 내려칠 때마다 무대 아래에 설치된 증폭판이 낮은 금속음을 울렸다. 귀족석의 사람들은 작은 손부채나 입찰 팻말을 들고 있었다. 일반석은 먼 곳의 무대도 잘 보이도록 계단식으로 올라갔다.
진혁은 입찰자가 아니라 외부 참관 감정사 자격으로 앉았다. 그의 앞에는 물건의 설명서와 상태 보고가 펼쳐져 있었다. 평범한 잔여품 경매와 달리 정식 경매에는 호화로운 문장이 많았다. ‘왕실의 자랑’, ‘전설의 장인의 숨결’, ‘백 년에 한 번’. 하지만 그런 수식어가 아무리 많아도 손에 잡히는 기능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감정서를 넘길 때마다 종이에서 짙은 향이 났다. 왕도 경매원에서는 고급 종이에 꽃향을 더해 먼지를 막는다고 했다. 진혁은 그 냄새가 오히려 불필요한 장식처럼 느껴졌다. 유물의 실제 상태를 알려면 냄새와 온도, 표면의 손상을 제대로 맡고 보아야 했다. 사람들의 코를 향으로 가득 채우는 일이 과연 도움이 될까.
관객석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이 앉아 있었다. 무거운 목걸이를 한 후작 부인, 손에 기름때가 묻은 북부 공방의 장인, 왕도 상인 조합의 계산사, 그리고 웃음소리가 유난히 큰 외국 사절. 그들은 같은 물건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가격을 생각했다. 장인은 다시 제작할 수 있는지를 계산했고, 수집가는 남에게 자랑할 이야기를 샀다. 상인은 나중에 얼마에 되팔 수 있는지 속으로 가격표를 썼다.
“저기 오른쪽 셋째 줄 사람 보입니까?” 라일이 속삭였다.
카렌이 그가 가리킨 쪽을 봤다. 빈자리를 사이에 두고 두 남자가 같은 순간에 입찰 팻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왜요?”
“둘 다 같은 대리인에게서 돈을 받는 것 같습니다. 손짓이 비슷해요. 제가 어릴 때 시장에서 가격을 올리려고 쓰던 수법이죠.”
“그때 시장에서도 그런 걸 했어요?” 카렌이 물었다.
“저는 보기만 했습니다. 대개는요.”
카렌은 그들의 좌석번호를 적고 감독관에게 알렸다. 두 사람이 실제로 짜고 입찰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경쟁자가 많다는 분위기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었다.
진혁은 무대의 청동 화로보다 한쪽 벽에 걸린 통풍구를 보고 있었다. 난로의 연기처럼 얇은 흰 김이 공기 중에서 갈라졌다. 왕립 경매원의 환기 시설이 엄청나게 정교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진혁에게는 그 흐름이 어딘가 불규칙해 보였다. 그때는 그런 의심이 경매보다 중요한 일이 될 줄 몰랐다.
첫 번째 출품품은 북부 눈산에서 회수된 청동 화로였다. 깨진 손잡이와 불에 그을린 뚜껑, 잘려 나간 옆판 때문에 본래 모습조차 알아보기 어려웠다. 설명서에는 ‘귀족 산장의 의례용 화로, 일부 마력 반응 소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시작가는 금화 마흔 닢이었다.
“고철이 비싸네요.” 진혁이 중얼거렸다.
“의례용이라고 했잖아요.” 라일이 답했다.
“금박은 손잡이에만 조금 남았는데요?”
경매사가 망치를 들었다. “금화 사십. 사십오. 쉰!”
입찰이 빠르게 올라갔다. 북부 지주의 대리인과 마법 장치 수집가가 서로 팻말을 들었다. 진혁은 물건에 관한 설명서가 지나치게 비어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특별 경매라면 이전 소유자와 수리 기록이 정리돼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 화로에는 ‘의례용’이라는 말 외에 구체적 용도가 없었다.
그가 손바닥을 움직이자 문장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물건: 이중 바람길 조절화로.]
[외형: 의례용 화로와 유사.]
[실제 기능: 두 공간의 배기압 차를 일시적으로 완화.]
[손상: 측면 접속구 하나 누락.]
[주의: 연결구 없이는 원기능 발휘 불가.]
진혁은 움직임을 멈췄다. 마레온에서 싸게 구입한 온도차 회수관이 생각났다. 겨울철의 열회수 기술은 단순한 난방비 절약보다 훨씬 중요할 수 있었다. 압력 조절은 환기실과 밀폐된 지하 작업장을 안전하게 만드는 일에도 쓰였다.
입찰가는 금화 아흔까지 올라갔다. 진혁은 세리아에게 짧게 메모를 건넸다.
‘측면 접속구가 없으면 의례용 장식품과 비슷합니다. 원형 복원 가능. 다만 시연 금지 권고.’
세리아는 메모를 읽고 낮게 말했다. “우리 예산으로는 못 사.”
“저도 알고 있습니다.”
“표정은 전혀 안 그런데?”
“금화 열 닢만 더 있으면 사고 싶다는 표정입니다.”
진혁이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누군가 새로운 입찰을 했다. 무대 왼쪽의 은색 가면을 쓴 여자였다. 그녀는 숫자 대신 가느다란 은빛 망치 문양이 찍힌 팻말을 들어 올렸다.
경매사는 잠깐 당황했지만 곧 금액을 불렀다.
“금화 백스무 닢!”
다른 두 입찰자가 물러났다. 여자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진혁은 그 팻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마레온 제9창고 사건에서 도망친 은색 망치 여자를 떠올리기에는 모습이 너무 멀리 있었지만, 상징은 같았다.
“보셨습니까?” 그가 카렌에게 속삭였다.
“봤어요. 하지만 망치 문양만으로 동일인이라고 말할 순 없어요.”
카렌은 여자의 출입 번호를 적었다. 하서린에게 확인하면 정식 대리인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두 번째 출품품이 무대에 올랐다. 청동 화로에서 빠져나간 듯한 반달 모양 접속구였다. 의뢰서에는 ‘불명확한 산업 부품, 청소 과정 회수’라고 적혀 있었다. 금속 표면에 그을음이 남아 있었고, 안쪽에는 작은 황동 핀 두 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진혁은 몸을 앞으로 숙였다. 저 연결구가 첫 번째 화로의 측면과 정확히 맞물렸다.
시작가는 은화 서른 닢.
“이게 말이 됩니까?” 진혁이 속삭였다. “세트로 나온 걸 따로 팔면 기능이 없다고 싼값에 넘기고, 나중에 누군가 다시 합쳐서 비싸게 파는 겁니다.”
세리아가 물었다. “확신해?”
“치수 측정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외형상 같은 계열입니다.”
그는 하서린에게 공개적으로 재감정을 요청했다. 하서린은 첫 번째 경매가 이미 끝났음을 확인한 뒤, 두 번째 부품의 치수와 출품 기록을 비교했다. 결과는 이상했다. 두 물건의 접수 날짜와 소유자 계좌가 서로 달랐지만, 보존실 반입 시각은 정확히 같았다.
“원래 한 묶음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서린이 말했다.
경매사가 중단 여부를 물었다. 하서린은 안전 점검을 위한 일시 중단을 선언하고 두 물건의 결합 여부를 시험대에서 확인하게 했다. 그동안 관객석에서는 수군거림이 퍼졌다. 본관에 앉은 귀족들이 공평한 가격보다 거래 지연을 싫어한다는 사실이 표정에서 드러났다.
오스카 총감독관은 무대 뒤편에서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장치가 작동하는지 보여 줘야겠군.” 그가 말했다.
“아닙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그렇게 큰 장치는 안전한 환경에서 검사해야 합니다. 지금은 형상과 재질을 확인하는 걸로 충분해요.”
오스카는 잠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진혁은 일부러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최종 검사 후 하서린은 접수 과정의 분류 오류를 공지했다. 첫 낙찰자는 구형 장치 전체의 기능을 설명받지 못했으므로 계약 해제 또는 수정 감정을 요청할 수 있었다. 은색 가면의 여자는 그 권리를 포기하고 물건을 인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번째 부품은 공개 경매에 남았다. 진혁은 화로를 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접속구에 남은 작은 홈과 압인만큼은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작은 팻말을 들었다.
“은화 서른다섯.”
다른 상인 한 명이 사십을 불렀다. 진혁은 오십을 제시했다. 상대는 손가락으로 조합 가격을 계산하더니 포기했다.
은화 오십 닢. 수수료를 더해도 황금 화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금액이었다.
진혁은 부품을 곧바로 가져가지 않았다. 보존사의 검수표를 받아 복사하고, 소유권 이전 기록을 확인했다. 그리고 접속구 안쪽의 작은 홈에서 뜻밖의 문양을 보았다.
두 가닥 선 아래에 둥근 점 하나.
영번 감정대 모형에 남아 있던 것과 같았다.
그는 낙찰증을 접으며 생각했다.
라일은 금화 백스무 닢의 화로를 실어 가는 운반 행렬을 가리켰다. 네 명의 인부가 조심스럽게 상자를 들어 올렸고, 은색 가면의 여자는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고 있었다. 물건을 손에 넣은 사람이라기보다 어디까지 배송되는지 확인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진혁은 자신이 낙찰받은 작은 접속구가 그 행렬보다 빨리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낙찰 물품 인수대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은화 오십 닢짜리 접속구는 값싼 품목으로 분류되어 별도 상자도 없이 손수건에 싸여 있었다. 진혁은 그 포장을 보고 인수 기록에 운반 시 파손 위험을 적었다. 비싼 유물은 경비병 둘이 지켰지만, 값이 낮다는 이유로 얇은 종이 한 장에 싸인 부품은 더 쉽게 훼손될 수 있었다. 경매장에서는 가격이 보호의 순서를 정했지만, 그 물건이 실제로 무엇에 쓰일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했다. 첫 경매에서 가장 비싼 물건은 금화 백스무 닢짜리 화로가 아니었다.
자신이 은화 오십 닢에 산 접속구가, 누군가 숨기고 싶었던 오래된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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