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반의 아침 시장에는 마레온에서 보지 못한 물건이 많았다. 손바닥만 한 난방석을 가죽 주머니에 넣고 파는 상인, 빛이 드는 방향에 따라 색이 바뀌는 목걸이, 먼 곳의 교회 종을 들을 수 있다며 조그만 청동귀를 내미는 소년까지. 거리에 쌓인 눈은 사람들이 다니는 자리마다 진창으로 변했고, 마차는 진흙이 튀지 않도록 바퀴에 천을 감아 놓았다.
진혁은 길모퉁이에서 뜨거운 빵을 샀다. 겉은 바삭했지만 속에서는 김이 쏟아졌다. 빵 굽는 냄새를 맡자 마레온의 아침이 생각났다. 그곳에서는 항구 냄새를 지울 만한 향이라곤 젖은 커피 가루와 생선 수프 정도였다.
“이래서 왕도로 오는군요.”
“빵 때문에?” 카렌이 물었다.
“먹을 만한 빵이 있고, 돈을 벌 경매가 있고, 그 돈으로 또 빵을 살 수 있으니까요.”
“상당히 일관된 세계관이네요.”
세리아는 앞장서서 경매원 서쪽 출입문으로 걸어갔다. 그 문은 귀족의 마차가 도착하는 정문보다 작았지만, 보안은 훨씬 엄격했다. 검은 망토를 입은 감정청 직원들이 모든 가방에 봉인표를 달고, 위험 유물의 마력 잔류량을 재는 둥근 접시 위에 하나씩 올려놓게 했다.
마레온 루멘에서는 현장 경험이 많으면 감정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왕도는 달랐다. 왕립감정청의 임시 인증을 받은 감정사만 겨울 경매의 원품 검사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검사실에서 작성된 감정서는 외부 서명 한 번과 감정청 대조 한 번, 총 두 차례 검토를 거쳐야 입찰 자료에 첨부됐다. 값을 잘못 매겨 손해가 나면 그 책임도 도장 두 개 사이에 나뉘었다.
“복잡하군요.” 진혁이 말했다.
“돈이 많아질수록 사기꾼도 정교해지니까.” 세리아가 답했다. “그런데 절차가 많다고 모두 안전한 건 아니야. 절차를 이용해 눈을 가리는 놈도 있거든.”
그들을 맞은 사람은 회색 제복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목까지 단정하게 채운 옷깃에는 붉은 에나멜 펜촉이 달려 있었다. 왼손에는 둥근 작은 줄자를 감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촘촘한 글씨가 적힌 서류판을 들었다.
“하서린입니다. 왕립감정청 겨울 특별감정단 감독관입니다.”
그녀는 세리아와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진혁의 허가증을 살폈다.
서린은 서류를 읽기 전에 맨 윗장의 종이 재질부터 확인했다. 마레온 출신 감정사가 왕도에 도착하면 먼저 정식 자격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녀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발급일과 도장의 압력, 담당 직원의 등록번호를 대조하는 손놀림이 너무 익숙했다. 세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저 사람은 예의를 지키느라 친절한 거지, 아무나 믿는 게 아니야.”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루멘의 벨라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왕도 사람 특유의 느린 말투였지만, 문장을 끝내는 속도는 무척 빨랐다.
“루멘에서 오신 분이군요. 최근 외항 사고 조사에 협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예. 주로 고철을 사다가 욕을 먹었습니다.”
“여기서도 그러실 생각이면 사전 예치금을 넉넉하게 준비하십시오.”
진혁은 그녀를 다시 봤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하서린은 그들을 검사실로 이끌었다. 유리 천장 아래 긴 작업대가 여섯 줄로 놓여 있었고, 각 탁자에는 저울과 금속 핀셋, 검은 천, 온도 계기, 밀봉용 유리병이 갖춰져 있었다. 천장 가까이 달린 커다란 시계는 시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했다.
“겨울 경매의 첫 번째 규칙입니다. 왕도에서는 검사가 끝나지 않은 물건에 대해 ‘진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요?” 라일이 끼어들었다.
“그 단어가 입찰표에 인쇄되면 누군가는 평생 모은 돈을 걸 수 있으니까요.”
카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진혁은 다른 것이 신경 쓰였다. 검사실 벽의 번호판은 1번부터 40번까지 이어지는데 맨 앞에 번호 없는 작업대가 하나 더 있었다. 천으로 덮인 자리였다.
그의 시선이 향하자 하서린이 말했다.
“저건 오래된 표본대입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왜 번호가 없죠?”
“이유까지 설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번호가 없는 물건은 꼭 나중에 비싸지더라고요.”
하서린은 웃지 않았다. 대신 실습품을 탁자 위에 놓았다. 은빛 장식이 된 작은 등잔이었다. 겉보기에는 왕실의 장식품처럼 화려했지만 심지에 불을 붙일 부분이 없었다.
“단순한 감정 시험입니다. 물건의 이름, 예상 거래가, 안전상의 주의점. 세 항목을 기록하세요.”
주위 감정사들이 하나씩 작업대에 앉았다. 누군가는 보석 확대경을 꺼냈고, 누군가는 귀를 등잔에 가까이 댔다. 진혁은 손바닥을 유리면에 대지 않은 채 가까이 가져갔다. 능력이 반응하려면 대상의 윤곽을 충분히 살펴야 했고, 맨손으로 만지는 것은 위험했다.
[은빛 등잔.]
[본래 이름: 소리 먹는 램프.]
[기능: 일정 거리 안의 짧은 금속음을 모아 보관.]
[주의: 과포화 시 소리를 한꺼번에 방출.]
그는 일주일 전 루멘에서 수리한 오르골을 떠올렸다. 소리를 없애는 것처럼 보이는 물건은 대개 소리를 다른 곳에 담아 두었다. 문제는 담긴 소리를 언제, 어떤 세기로 내보내느냐였다.
진혁은 확대경으로 램프의 밑면을 살폈다. 은칠이 벗겨진 자리에는 아주 작은 압력판이 있었다. 시험장 옆에서는 누군가 금속 막대를 탁자에 세게 내려놓고 있었다. 그때마다 램프가 미세하게 떨렸다.
“잠깐 멈추세요.”
소리친 것은 진혁이었다. 몇 명이 고개를 돌렸다. 하서린이 다가오자 그는 얇은 털실을 압력판 위에 올려 진동을 보여 주었다.
“이건 화려한 등잔이 아니라 금속음을 저장하는 장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과부하가 걸릴 수 있어요. 지금 가장 큰 소리를 낸 분께서 조금만 떨어져 주시겠습니까?”
젊은 감정사가 얼굴을 붉히며 망치를 내려놓았다. 하서린은 구동 시험을 중지시키고 램프를 차폐함에 넣었다. 시험장이 조용해졌다.
하서린은 기술자에게 차폐함 속의 압력을 측정하게 했다. 기술자는 금속판에 그려지는 작은 파형을 보며 천천히 숫자를 불렀다. 평소 망치 한 번으로 쌓이는 소리가 겨우 손톱만 한 파형이라면, 램프 내부에는 그것이 수백 겹 접혀 있는 모양이었다. 진혁은 더는 램프를 등잔처럼 부를 수 없었다. 예쁜 유리 속에 작은 폭풍을 넣어 둔 물건에 가까웠다.
실습에 참여한 다른 감정사들도 장치 주변으로 모였다. 처음 망치를 두드리던 젊은 남자가 얼굴을 붉혔다.
“전 은판의 진동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 쳤는데…….”
“그럴 수 있죠.” 진혁이 말했다. “저도 처음엔 물건이 반응하지 않으면 자꾸 더 강하게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정말요?”
“그러다 저희 경매장 바닥이 저한테 대답한 적도 있습니다.”
상대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지만, 라일이 옆에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카렌은 웃음을 삼켰다.
하서린은 시험 결과를 적었다. 위험을 먼저 발견한 진혁에게 높은 점수를 주되, 발견 경위를 다른 감정사가 재현할 수 있도록 기록을 보완하라고 요구했다. 진혁은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그 말이 옳다는 것도 알았다. 자기 눈에만 보이는 문장이 아무리 정확해도, 다른 사람이 안전을 확인할 수 없다면 그 감정서는 현장에서 오래 쓰이지 못했다.
그는 램프의 압력판 위치를 도면에 표시하고, 털실의 움직임을 다시 기록했다. 기술자가 검사를 마친 뒤에는 다른 조가 같은 절차로 확인했다. 결과가 일치하자 하서린은 그제야 안전 조치 완료 도장을 찍었다.
“이 정도면 합격입니까?” 진혁이 다시 물었다.
“성급하게 통과하고 싶은 이유가 있습니까?”
“여기 실습비가 시간당 얼마인지 듣고 나서요.”
“감정청이 지원합니다.”
“그럼 더 오래 배워도 되겠군요.”
이번에는 하서린도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그러나 그녀가 감독관을 맡은 이유는 웃음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왕도에서는 마력 측정 수치 하나를 잘못 적으면 어느 귀족이 손해를 보느냐에 따라 형량까지 달라진다고 했다. 진혁은 화려한 건물 속 사람들도 매일 자기 자리에서 두려움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이해했다. 안전 여부를 확인하는 기술자가 파형 측정판을 들고 와 숫자를 읽었다.
“축적량이 상당합니다. 계속 두드렸으면 몇 분 뒤 방출됐겠군요.”
“그럼 합격입니까?” 진혁이 물었다.
하서린이 서류판에 무언가 적었다.
“위험을 발견한 것은 좋습니다. 다만 감정서는 다시 쓰세요.”
“왜요?”
“‘이 물건은 비싸 보인다’는 의견을 근거란에 적으셨더군요.”
카렌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라일은 벽 쪽으로 돌아서서 어깨를 들썩였다.
진혁은 종이를 돌려 읽었다. 정말 그렇게 써 있었다. 급히 메모하다가 평소 입버릇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판단과 소망은 분리해야겠군요.”
“아주 훌륭한 깨달음입니다.” 하서린이 말했다.
시험을 마친 뒤에는 입찰에 필요한 보증금을 계산했다. 왕도의 겨울 경매에서는 일반 경매품과 지정 유물을 다르게 취급했다. 지정 유물은 응찰자의 재정 능력과 법적 자격을 함께 확인했고, 사람의 신원이나 장래 수익을 담보로 잡는 계약은 원칙적으로 등록되지 않았다. 겉으로는 안전한 체계였다.
그러나 진혁이 확인한 안내문에는 이상한 단서가 있었다.
‘특별 전시품 영번은 거래물로 분류되지 않으므로 가격 보증 규정의 예외를 적용한다.’
그는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거래물이 아니라면서 어떻게 경매에서 특별 전시품으로 취급할 수 있는가. 누구에게도 물어보지 않은 질문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하서린은 진혁을 복도로 불렀다.
“여관에 보낸 영번 통행증 말입니다.”
진혁의 눈빛이 바뀌었다.
“감정청에서 발급하신 게 아니라던데요.”
“그렇습니다. 우리 기관의 발급 원장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경매원 출입 시스템에는 이미 등록되어 있더군요. 사용 시각은 내일 새벽입니다.”
“아직 내일이 오지도 않았는데요?”
“그래서 확인이 필요합니다.”
하서린이 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출입 기록에는 감정사 서진혁의 이름과 함께 출입 목적이 적혀 있었다.
‘영번 감정대 가동 확인. 동의 확인 불필요.’
진혁은 종이를 접지 않았다. 누군가 아직 하지도 않은 그의 행동을 기록해 두었다면, 그것은 예언이 아니라 조작이었다.
“이런 일은 어디에 신고해야 합니까?”
“제 사무실로 오세요. 그리고 내일 아침까지 그 통행증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안 써도 되는군요. 저는 왕도에서 더 비싼 의자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하서린이 이번에는 아주 조금 웃었다.
“그 의자에는 앉지 않는 편이 훨씬 값쌀 겁니다.”
제10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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