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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101화
PAYLUA ORIGINAL · 제101화

101화. 겨울 경매에 초대된 감정사

던전 경매장의 말단 직원입니다 · 5,028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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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에르반으로 가는 새벽 열차는 눈을 뚫고 달렸다. 마레온에서는 겨울에도 바다의 열기 때문에 빗물이 골목에 고이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내륙으로 두 시간만 들어가면 풍경은 전혀 달라졌다. 들판의 물길은 흰 껍질을 뒤집어썼고, 나무들 사이를 지나는 전신선에는 얼음이 가는 유리 구슬처럼 매달렸다. 차창에 닿은 승객의 숨이 곧바로 서리가 되었다. 서진혁은 그 서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뿌연 원 너머로 성벽이 겹겹이 놓인 도시가 멀리 보였다. 왕도 에르반. 왕국의 세금과 법률, 그리고 돈이 가장 비싼 물건을 찾아 모이는 곳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온 게 출장이란 말입니까?” 마주 앉은 라일이 물었다. 그는 평소 쓰던 낡은 외투 위에 회색 망토를 하나 더 걸쳤는데, 오른쪽 소매가 왼쪽보다 길었다. 기차역에서 급히 산 탓이었다. “출장이지. 여행이면 저런 걸 챙기겠니.” 세리아가 턱으로 짐칸을 가리켰다. 검은 철제 가방 세 개가 짐망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내부에는 화령에서 확보한 인쇄 원판의 치수 기록, 마레온 제9창고의 유리판 사본, 루멘의 새 직원 규정이 들어 있었다. 원본 증거는 각각의 보존 기관에 남겨 두었다. 진혁이 슬쩍 물었다. “제 승급 계약서도 있습니까?” “당연하지.” “그럼 위험수당 항목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도착해서 살아 있으면 확인해.” “사장님, 방금 아주 불길한 경영 철학을 말씀하셨어요.” 카렌은 웃지 않았다. 그녀는 창밖의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왕도에는 아버지 레온이 마지막으로 입회했던 감정 심사의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 기록의 보존기간이 끝나기 전에 열람 신청을 해야 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오래된 검집이 놓여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 작은 흠집이 세 개 있었다. 어린 카렌은 그것이 훈련 중 생긴 흔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아버지의 서명 옆에서 같은 모양을 발견했다. 세 개의 흠집은 어떤 문장보다 확실한 기억을 불러왔다. 자기 키보다 높은 작업대에서 아버지가 검을 닦던 모습, 축축한 가죽 냄새, 그리고 끝내 하지 못한 질문. “카렌.” 진혁의 목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도착하면 먼저 기록청에 갈까요? 경매장보다.” “왜요?” “경매는 사흘 뒤에 시작하잖아요. 그동안 당신 일부터 확인해도 되겠죠.” 카렌이 잠깐 말을 잃었다. 라일은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모르는 척했다. “고마워요. 하지만 첫날은 숙소에서 짐 풀고 입찰 자격부터 확인해요. 일정이 틀어지면 당신이 또 어디 이상한 창고에서 밤을 새우게 될 테니까.” “이상한 창고라니요.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작업 환경입니다.” 그때 열차가 갑자기 흔들렸다. 복도에서 찻잔이 굴렀다. 승객들의 어깨가 한쪽으로 쏠리고 천장의 황동등이 짧게 깜박였다. 기관실 쪽에서 길고 낮은 경적이 울렸다. 열차는 완전히 멈추기 전에 두 번 더 끽끽 소리를 냈다. 차장이 객차 문을 열었다. 얼굴과 모자챙에 눈이 엉겨 붙어 있었다. “왕도 북문 앞 분기기에서 고장이 발생했습니다.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객차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창밖에서는 철도 노동자 두 명이 곡괭이로 얼음을 깨고 있었다. 철도 노동자들의 신발은 물에 젖어 검게 변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왼쪽 다리를 절었다. 어제도 비슷한 문제로 밤새 작업했다고 했다. 눈이 오면 기계가 망가지고, 기계가 멈추면 왕도로 들어가는 식량 운반도 늦어졌다. 진혁은 차창 안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는 승객들과 눈 속에서 망치를 드는 노동자들을 번갈아 봤다. 왕도의 풍요는 저 사람들의 얼어붙은 손 위에 놓여 있었다. 문제는 얼음이 아니었다. 진혁의 눈에는 분기기 옆에서 희미한 보랏빛이 보였다. 불꽃처럼 솟구친 것이 아니라 철길의 쇠붙이를 따라 안쪽으로 스며드는 빛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손바닥의 오래된 문장이 가볍게 뜨거워졌다. [대상: 방향 기억쇠, 분기기 부착형.] [표면 평가: 오래된 철도 부품.] [실제 기능: 직전 통과한 차량의 진행 방향을 임시 보존.] [손상 상태: 기억면 역전.] [주의: 마지막 기록을 현재 지시로 착각할 수 있음.] “방향 기억쇠?” 진혁이 중얼거리자 세리아가 시선을 좁혔다. 그의 능력은 물건에 관한 단서를 보여 주었지만, 그 단서가 곧바로 안전한 조치 방법을 알려 주지는 않았다. 마레온에서도 그렇게 배웠다. 진혁은 차장을 불러 부품 이름을 물었다. 차장은 처음에는 난처한 얼굴을 지었지만, 철도 정비사의 확인을 받아 와서는 분기기 보조 기억쇠가 최근 교체됐다고 설명했다. “새 부품이라고요?” “정확히는 재생 부품이오. 왕도에 들어가는 겨울 화물열차에서 쓰던 물건을 재활용했답니다.” 진혁은 창밖의 새하얀 눈을 봤다. 방향을 반대로 기억하는 쇳조각 하나가 무거운 열차의 진로를 틀 수 있었다. 값이 싸다는 이유로 산 중고품이 누구의 시간을, 심하면 목숨을 잡아먹을 수도 있었다. 정비사는 진혁의 제안을 듣고 수동 분기 상태를 점검한 후 안전핀을 걸었다. 부품의 분리 여부는 철도 당국이 결정했다. 시험용 수레를 먼저 통과시켜 바퀴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열차는 다시 움직였다. “또 폐품에서 사고를 찾아냈네요.” 카렌이 말했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안 샀습니다.” “아쉬워요?” “조금요. 사고를 막아 주고 금화 한 닢쯤 받는 직업이 세상에 있을 텐데.” 세리아가 말했다. “그 직업을 보통 감사원이라고 하지.” 라일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진혁은 마지막으로 철길을 돌아봤다. 기억쇠 표면의 아주 작은 문양이 눈에 남아 있었다. 세로선 두 개와 아래로 기운 원. 제9창고의 서류함에서 발견한 지워진 표식과 닮아 있었다. 정오를 조금 넘겨 열차가 왕도 북역에 들어왔다. 붉은 벽돌의 거대한 아치 아래로 객차마다 하얀 증기가 번졌다. 짐꾼들은 고함을 질러 통로를 열었고, 검문관들은 여행객의 허가증에 날짜를 찍었다. 역 앞 광장에는 황금빛 돔을 얹은 건물이 보였다. 그 뒤로 좁고 높은 첨탑 수십 개가 겨울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왕립 경매원입니다.” 세리아가 말했다. 루멘의 어둑한 돌기둥과는 정반대였다. 에르반 경매원은 멀리서 봐도 돈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화려했다. 중앙 건물의 구리 지붕에는 열두 별자리 모양의 환기창이 있었고, 바닥에는 검은 돌로 왕실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마차가 지날 때마다 금장 바퀴가 얼음 위에서 작은 소리를 냈다. 진혁은 어깨에 멘 짐을 고쳐 들었다. 마레온에서 그는 이제 정식 감정사였지만,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그를 알지 못했다. 기분이 묘했다. 괴수의 껍질을 감정한 사람도 이곳에선 평범한 방문객 하나였다. 역에서 여관까지는 도보로 스무 분 남짓이었다. 사람들은 왕도의 성벽을 황금이라 불렀지만 가까이서 본 돌은 어두운 회색이었다. 오랜 세월 눈과 비에 씻긴 벽 아래에는 좁은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앞쪽에는 귀족의 옷을 손질하는 재단실이 있었고, 뒷골목에는 마차에 끼는 바퀴핀을 하루 종일 두드리는 대장간이 있었다. 같은 거리에서도 금화가 오가는 가게와 동화 한 닢을 아끼는 사람들이 등을 맞대고 살았다. 길을 건너던 노인이 짐수레에 발을 걸려 넘어졌다. 라일이 먼저 뛰어가 노인의 짐을 일으켰다. 바닥에 쏟아진 것은 녹슨 숟가락과 양철 컵, 손잡이가 빠진 작은 냄비들이었다. 노인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말하며 굽은 손가락으로 물건들을 주웠다. “저걸 전부 팔아도 빵값이 나올까요?” 라일이 낮게 물었다. “쇳값으로만 치면 얼마 안 되겠죠.” 진혁이 대답했다. “그런데 손잡이만 고치면 아직 쓸 만한 것도 있어요.” 진혁이 냄비 하나를 집어 들자, 바닥과 몸통을 잇는 리벳이 생각보다 튼튼했다. 왕도의 주방 기구는 비쌌다. 손잡이가 떨어졌다고 버리는 대신 수리해 쓰면 가난한 여관 몇 곳에는 도움이 될 물건이었다. 노인은 폐품을 모아 작은 수리소에 넘기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경매원에서 나온 게 많아요. 멀쩡한 것도 버리지. 부자들은 창고에 가득한 물건을 잊어버리니까.” 진혁은 노인에게 가까운 수리소 위치를 물었다. 지도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 놓았다. 이제 막 왕도에 도착했지만 그는 여전히 버려진 물건부터 바라보고 있었다. 광장 쪽에서 행렬의 나팔 소리가 났다. 검은 사자 깃발을 단 마차 여섯 대가 경매원으로 들어갔다. 마차를 바라보던 재단사가 혀를 찼다. “겨울 경매가 시작되면 부자들이 한 달 치 장작값을 하루에 쓰지. 그래도 거리의 사람들은 구경만 해야 해.” 카렌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마차를 돌아봤다. 경매는 단순히 부자들의 장난이 아니었다. 잘 쓰면 장인들의 일거리를 만들고, 잘못 쓰면 가장 약한 사람의 이름을 값으로 바꾸는 곳이었다. “우리한테 주어진 일은 예전과 같네요.” 그녀가 말했다. “뭐가요?” “누가 돈을 많이 냈는지가 아니라, 그 돈을 낸 사람이 무엇을 샀는지 확인하는 것.” 세리아는 작게 웃었다. “좋은 말이네. 돌아가면 루멘 출입문에 새겨 둘까?” “사장님.” 진혁이 말했다. “현관 새기는 비용이 제 위험수당보다 크면 반대하겠습니다.” 그들은 웃으며 여관 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진혁은 왕립 경매원의 높은 돔을 마지막으로 돌아봤다. 멀리서 보면 무척 아름다운 건물이었으나, 그 안의 모든 거래가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광장 건너편 여관에 도착하자 벨라가 미리 보낸 봉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안에는 숙박 영수증과 겨울 경매의 안내표, 왕립감정청에서 보낸 얇은 통행증이 들어 있었다. 통행증의 앞면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서진혁. 루멘 경매장 소속. 정식 감정사.’ 그러나 뒷면은 이상했다. ‘감정 보조번호: 0.’ 진혁이 봉투를 뒤집자 작은 종이 하나가 떨어졌다. ‘영번 자리에 앉으면 첫 거래가 시작된다.’ 라일은 평소와 달리 농담하지 않았다. 카렌은 창문을 닫고 복도로 나가 사람이 있는지 살폈다. 세리아는 통행증을 빼앗아 불빛에 비추었다. “이건 공식 발급품이 아니야.” “그럼 누가?” 세리아는 손가락으로 뒷면을 가리켰다. 금박 아래에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압인이 있었다. 왕립감정청의 인장이 아니라, 오래전 거래를 무효로 만드는 장치에서 봤던 두 가닥 선이었다. 진혁은 통행증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가 겨울 경매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 이미 그의 자리를 정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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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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