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멘의 종이 일곱 번 울렸다.
이번에는 경매를 시작한다는 신호가 아니었다. 상품의 소유권에 중대한 분쟁이 발생했을 때, 경매장이 거래 당사자와 증인을 불러 모으는 오래된 경고음이었다. 정오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마레온에서는 우산을 든 사람들이 광장과 골목으로 쏟아져 나왔다. 시의회 감찰관은 경매장으로 향했고, 귀족들의 마차가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험가 길드에서는 갑자기 루멘이 문을 닫으면 위탁품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 전령을 보냈다.
진혁은 경매장 정문 위의 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분침은 소유권 분쟁의 제한 시각까지 두 시간 남았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이러다 시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겠어요.”
그가 말하자 세리아가 답했다.
“겁나는 게 정상이지. 그래도 도망가지 않았잖아.”
“월급이 밀려서 못 도망간 겁니다.”
“자꾸 월급 이야기만 할래?”
“사장님은 재산이 많으시니까 모르시겠지만 월세 내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보았다. 그리고 뜻밖에도 웃었다. 그 미소는 경매대에서 손님을 상대할 때 짓는 완벽한 표정과 달랐다. 어딘가 피곤했고, 조금 안심한 듯했다.
“끝나고 정식 계약서를 다시 쓰자.”
“부속 조항까지 전부 공개하셔야 합니다.”
“그래.”
“위험 수당도요.”
“그래.”
“퇴직금은….”
“서진혁.”
“예.”
“살아남으면 다 이야기하자.”
진혁은 입을 다물었다. 세리아의 말에는 농담을 밀어내는 진심이 있었다.
이번에 열리는 것은 경매가 아니라 공개 감정 심사였다. 일반 입찰대보다 큰 원형 단상이 대경매장 가운데 놓였다. 천장의 샹들리에는 절반만 켜 두었고, 양쪽 계단에는 경비대가 섰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중앙의 음성이 또렷하게 전달되도록 음향 마석을 설치했다. 홀 뒤편에는 시청 감찰관과 기록 담당자가 나란히 앉았다. 그들이 남기는 공적 기록이 없으면 루멘의 내부 판정은 상회 측에서 또 위조할 수 있었다.
헥터는 대경매장 경비원들에게 검집을 봉인하되, 사태가 악화되면 민간인부터 안전한 출구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카렌은 진혁의 바로 옆에 섰다. 아버지의 검집에 감긴 검은 실 가운데 하나가 풀린 뒤로 검신에는 옅은 푸른 빛이 머물렀다. 라일은 방 한구석의 어두운 발코니에서 아래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불법으로 문서를 바꾸려고 움직이는지 보기 좋은 자리였다.
심사는 세리아가 시작했다.
“상품 등록 000, 루멘 경매장의 소유권 분쟁에 관한 최종 감정입니다.”
그녀는 청중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지난 이틀 동안 경매장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소문만 들은 이들은 건물이 무너질지 모른다고 믿었고, 어떤 이들은 진혁이 귀족의 물건을 가로채려는 사기꾼이라고 했다.
“소유권을 주장하는 측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검은 외투를 입은 남자가 앞줄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 손에 비단 모자를 들고 있었다. 낮에 위조 나침반을 사려다 도망가려 했던 바로 그 귀족이었다.
“오르텐 백작.”
세리아가 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느긋하게 미소 지었다.
“검은 인장 상회를 대리해 나왔소. 이 경매장과 그 부속 시설에 관한 적법한 채권을 보유하고 있지.”
그는 공증된 계약서를 들어 보였다. 붉은 봉랍에는 시의회의 문양과 상회의 검은 인장이 나란히 찍혀 있었다. 종이의 모양만 보면 완벽한 법적 증거였다.
“경매장은 원래 빚을 갚지 못하면 처분되는 법. 오늘 이 자리에서 미납 대금이 확정되면 귀측은 루멘에 대한 권리를 넘겨야 하오.”
청중이 웅성거렸다. 귀족 몇 명은 벌써 무엇을 얼마에 살 수 있을지 계산하는 듯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건물과 창고, 항구의 운송 계약이 한꺼번에 넘어가면 엄청난 부가 생길 터였다.
진혁은 손을 들어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우선 상품의 범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보잘것없는 보조 직원이 나를 심문하겠다는 건가?”
“오늘 심사에서는 제가 임시 수석 감정사입니다.”
진혁은 서류를 펴며 대답했다.
“손님께서는 건물을 사시는 겁니까, 아니면 건물 안의 생명체까지 사시는 겁니까?”
오르텐의 미소가 잠시 굳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계약서에는 ‘루멘 경매장 및 그 모든 부속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부속물에 무엇이 들어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지하 시설을 포함한 모든 자산이지.”
“사람은요?”
“사람이라니?”
“어제 경매장 직원의 이름도 상품으로 등록하려고 하셨잖습니까. 오늘도 사람을 부속물로 적으실 겁니까?”
객석에서 거친 소리가 터졌다. 오르텐이 즉시 말했다.
“그건 별개의 사건이오. 입증되지 않은 혐의로 거래를 방해하지 마시오.”
“좋습니다. 그럼 물건부터 보겠습니다.”
진혁은 준비해 둔 세 가지 증거를 하나씩 꺼냈다. 첫 번째는 위조된 나침반의 감정서와 조작된 마정석이었다. 두 번째는 레온 하르트의 사망일보다 나흘 먼저 작성된 기록이었다. 세 번째는 경매장에 강제로 등록된 사람들의 이름과 동의 없는 출품을 증명한 공적 검증 기록이었다.
“이 서류들은 모두 소유권이 아닌 다른 것을 상품으로 바꾸기 위해 작성됐습니다. 가짜 감정서, 미리 작성한 사망 증명서, 당사자의 서명이 없는 계약입니다.”
시청 기록 담당자가 서류를 대조했다. 젊은 감찰관은 처음에는 불신하는 듯 보였지만 장부의 도장과 서명 날짜를 확인할수록 표정이 굳어졌다.
“서류의 공적 효력에 중대한 의문이 있습니다. 계약 유효성은 재조사해야 합니다.”
오르텐이 손바닥으로 단상을 쳤다.
“도시 행정의 결함을 내 탓으로 돌리는 거요?”
“아직 누구 탓인지 정하지 않았습니다.”
진혁이 대답했다.
“하지만 훔쳐 온 것을 사려는 사람이라면 출처부터 확인해야겠죠.”
그는 카렌을 바라봤다. 카렌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검집을 단상에 올리고 숨을 고른 뒤 증언했다. 아버지가 지킨 검의 기록, 가족의 빚, 동의하지 않은 거래. 그녀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떨렸지만 뒤로 갈수록 단단해졌다. 말하는 내내 손이 검집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람을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저와 동생을 팔 수는 없습니다.”
검집의 푸른 빛이 계약서 위로 번졌다. 오르텐이 가져온 종이의 봉랍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손님들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청 감찰관이 자신의 기록 담당자에게 급히 지시했다.
“변조된 서명 부분을 그대로 기록하십시오!”
세리아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진혁이 해야 할 일이 남았다.
그는 루멘의 중앙 등록대에 손을 얹었다.
“상품 000의 분류를 정정합니다. 건물의 관리권과 그 안에 있는 생명체의 권리를 분리해 심사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오르텐이 코웃음을 쳤다.
“그런 일은 불가능하오. 경매장 자체가 하나의 유물인데 어떻게 분리한단 말이오?”
“물건을 포장한 상자와 그 안의 물건은 같은 소유권을 가진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살아 있는 존재라면 더더욱요.”
진혁은 말을 멈추고 한 박자 쉬었다.
“모라, 들리나요?”
대경매장이 조용해졌다. 청중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누군가 정신이 나간 감정사라고 수군거렸다. 진혁도 알고 있었다. 남들이 듣지 못하는 목소리와 대화하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숨길 수 없었다.
“이름을 말해 줄 수 있겠어요?”
천장에서 가느다란 종소리가 울렸다. 샹들리에의 불빛이 한순간 푸른색으로 변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사방에서 아주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라.”
짧은 두 음절이었다.
“나는 모라.”
홀의 뒤편에서 누군가 숨을 삼켰다. 오르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가 가장 먼저 중앙 등록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안 돼! 그 이름을 올리면….”
카렌이 검집으로 그의 손목을 쳐 냈다. 오르텐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고 헥터의 경비원들이 양팔을 붙들었다. 그는 여전히 소리쳤다.
“저건 원래 우리의 계약 자산이야!”
진혁은 천천히 그를 돌아봤다.
“그러니까 본인이 직접 말씀하셨군요. 살아 있는 존재를 자산으로 취급했다고.”
시청 감찰관의 펜이 미친 듯이 움직였다. 군중 사이의 소란이 커지는 동안 진혁의 눈앞에 문장이 떠올랐다.
[상품 등록 000.]
[기존 분류: 루멘 경매장 및 부속물.]
[변경 분류: 루멘 경매장 관리 시설.]
[별도 등록: 모라, 독립된 생명체.]
[제7봉인 권리 이전: 원래 방식으로는 불가.]
[보호 계약으로 전환 가능.]
그는 세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렌도, 라일도, 헥터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를 보고 있었다.
“보호 계약을 제안합니다.”
진혁이 선언했다.
“경매장은 모라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라와 도시를 지키는 시설을 관리할 의무를 집니다. 관리 권한은 외부에 매각할 수 없고, 당사자의 동의 없는 이전은 무효입니다.”
“그 비용은 누가 내지?”
세리아가 조용히 물었다. 누군가는 물어야 할 질문이었다. 좋은 마음만으로 수백 명이 일하는 건물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경매장의 수수료 일부를 봉인 유지 기금으로 따로 적립하죠. 정식 회계에 남기고 시의회가 감사를 받도록 하면 됩니다. 이제까지도 경매 수수료가 봉인을 보강하는 데 쓰였으니까요.”
오르텐이 비웃었다.
“상인들을 모아 놓고 자선 사업을 하겠다고?”
“아뇨. 정상적인 사업을 하겠다는 겁니다. 고객의 동의 없는 거래를 금지하고, 위험한 유물을 제대로 감정하자는 거죠.”
홀 뒤편에서 한 상인이 먼저 손을 들었다.
“그렇게 하면 나도 찬성하겠소. 지난주 위탁품에 저주가 있는데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다른 손님도 일어섰다.
“내 돈을 받고 가짜 마정석을 팔려던 놈이야. 저 상회의 말보다 감정사 말을 듣겠소!”
진혁은 뜻밖의 지지에 잠깐 어리둥절했다. 자신이 도시를 구할 영웅으로 보이기를 바라진 않았다. 다만 거래를 제대로 하자는 말이 이렇게 큰 소리가 될 줄은 몰랐다.
등록대 위의 붉은 빛이 천천히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보호 계약 초안 접수.]
[상품 000 소유권 청구 기각.]
[기존 담보 징수 취소.]
[봉인 안정화: 임시 성공.]
[정식 보호자 및 원권리자 검증 기한: 30일.]
진혁은 그 자리에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카렌이 한쪽 팔을 잡아 주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 보니 더 이상 미납 대금이나 생명력 징수라는 글씨가 떠오르지 않았다.
“살았네요.”
“아직 끝난 건 아니에요.” 카렌이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살아남았죠.”
“그건 그렇네요.”
그녀가 웃었다.
경매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사람들은 홀을 떠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시청 조사관에게 진술했고, 누군가는 취소된 위탁품의 보상을 문의했다. 헥터는 직원들에게 다음 근무표를 배분했고, 경매장 종업원들은 깨진 잔과 쓰러진 의자를 정리했다. 거창한 선언이 끝나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많았다. 장부를 고치고, 손님에게 사과하고, 사라진 직원 세 명을 찾아야 했다.
진혁은 그 모습을 보며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경매장이 영원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알게 됐다.
세리아는 집무실에서 새 계약서를 내밀었다. 임시 감정사 대신 정식 수석 감정사 대행이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급여는 전보다 세 배 많았고, 위험 수당과 정식 휴가 조항도 들어 있었다. 계약서 맨 끝의 작은 글씨까지 확인한 진혁이 고개를 들었다.
“사장님, 한 가지 빠졌습니다.”
“또 뭐?”
“밀린 월세 때문에 선지급이 필요한데요.”
세리아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돈밖에 모르는구나.”
“그건 아니죠.”
진혁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물건이 많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세리아는 계약서에 마지막 인장을 찍었다. 창밖에서는 비가 그치고 있었다. 멀리 마레온의 항구가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그날 밤, 진혁이 퇴근하려고 외투를 걸쳤을 때 문 아래로 검은 봉투가 밀려 들어왔다. 봉투에는 아무 주소도 없었다. 금박으로 찍힌 문양은 루멘의 일곱 고리와 비슷했지만 하나가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진혁이 봉인을 뜯자 짧은 초청장이 나왔다.
‘루멘에서 상품을 구한 감정사에게.’
‘다음 경매에는 가격이 없는 것을 가져오시오.’
‘검은 경매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그 아래에는 낯선 상품 번호가 하나 적혀 있었다.
[등록번호 999. 마레온의 내일.]
진혁은 창밖의 도시를 바라봤다. 항구에서는 저녁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젖은 돌길 위를 뛰어다녔다. 사람들에게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평범한 하루였다.
그러나 누군가는 이미 그 하루에 값을 매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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