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장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 가장 목소리가 작은 사람은 소피였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쫓겨날 뻔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도 그녀는 손끝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거대한 드래곤이 앉아 있는 방에서 자신에게 돌려주지 않은 보증금을 묻는 일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태오는 그녀 옆자리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이날 청문은 계정 47의 후속 대리 통지와 보완 요청, 세입자들에게 실제로 어떤 통지가 갔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공동 진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오지 않았다. 그들 각자의 선택이었다.
“소피 씨, 불편하시면 직접 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별 진술은 따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이벨이 말했다.
“아뇨. 오늘은 말하고 싶어요.”
소피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저는 받은 적 없는 편지를 받았다고 적힌 것 때문에, 지금 집주인에게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아이가 학교에 가는 길에 그 소문을 들었어요.”
회의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제 보증금 문제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받지도 않은 걸 받았다고 적지 말아 주세요.”
태오는 그 문장을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금고의 번호보다 먼저 지켜야 할 말이었다.
***
마르셀은 청문 시작에 앞서 쟁점을 정리했다. 먼저 새 신청은 태오의 직접 제출로 볼 수 없는 정황이 강해졌고, 그 정정 심사가 진행 중이었다. 다음으로 제3 대리 통지의 근거가 된 역사적 보완 요청서 원본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어떤 대리 권한도 세입자 전원의 권리를 자동으로 합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오늘 누가 책임자인지 결정합니까?” 한 방청인이 물었다.
“아닙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오늘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추가 확인이 필요한 사실을 분리합니다.”
방청인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오도 마음으로는 이해했다. 사람들은 누가 잘못했는지 빨리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지목하기 쉬운 이야기가 사실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이날 제일 먼저 제출된 것은 아델의 일정표와 왕실 발급 대장 사이의 날짜 대조표였다. 둘은 우편함 사건 당시 보완 요구가 있었을 가능성을 강화했지만, 아델이 법적 동의서를 받았다는 증거는 아니었다.
다렌 코르는 자신의 의사를 읽었다.
“나는 내 이름으로 누가 돈을 받도록 허락한 기억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보증금을 대신 받도록 위임받은 사실도 모릅니다. 다만 일곱 해 전 자료가 부족해 과거의 모든 일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한 사람의 솔직한 한계이자, 지금 그가 선택한 태도였다.
***
브라운 금고상회 대표도 출석했다. 그는 낡은 우편함 설비를 인수한 사실과 보존 관련 유지 업무 일부를 계약한 사실을 다시 밝혔다.
“우리가 산 것은 물건과 일부 운영 설비였습니다. 세입자들의 개인 채권을 양수했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태오가 물었다.
“그럼 최근 제3 대리 통지와 상회는 무관합니까?”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원본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 회사 명의로 접수된 문서인지 확인할 자료가 없으니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이벨은 질문을 바꾸었다.
“설비를 양수할 때 옛 청산 준비실의 서식 보관함도 포함되었습니까?”
브라운은 잠시 생각했다.
“빈 서식과 분류 색인 일부는 인수 목록에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 정보가 적힌 서류나 위임 원본은 계약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인수 목록 제출이 가능합니까?”
“개인정보를 가린 범위에서요.”
마르셀이 이를 별도 자료 요구로 정리했다. 브라운을 수상하게 보는 건 쉬웠다. 그러나 그가 갖고 있던 빈 서식이 이번 신청서와 같다고 해서 곧바로 작성자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
발카스 차례가 되자 회의실 온도가 조금 높아지는 느낌이었다. 드래곤은 평소보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정 47에 관한 옛 왕실 회신은 나의 단독 처분을 승인하지 않았다. 나는 그 뜻을 지나치게 넓게 받아들여 계약상 지급 의무까지 미룬 적이 있다.”
태오는 그 말을 들으며 펜을 멈췄다. 발카스가 공개 장소에서 자신의 판단 오류를 인정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었다.
“임차인 김태오에게 원금 300금화 중 180금화를 실제로 지급했으며, 잔여 120금화는 채무로 남아 있음을 인정한다.”
뒤쪽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었다. 마르셀은 말이 끝나자 바로 확인했다.
“그 진술은 다른 세입자 각각의 지급 내역이나 권리 상태를 확정하는 내용은 아니죠?”
“그렇다.”
“계정 47에 실제 금화가 얼마 들어 있는지 증명하는 말도 아니고요?”
“그렇다.”
태오는 등록관의 침착함이 마음에 들었다. 드래곤이 잘못을 일부 인정했다고 해서 모든 빈칸이 채워지지는 않았다.
***
청문이 잠시 중단되었을 때 소피가 태오에게 다가왔다.
“아까 제 말을 적어 주셨나요?”
“적었습니다.”
“정확하게요?”
태오는 수첩을 펼쳐 그녀에게 읽어 주었다. 소피는 두 군데 표현을 고쳤다. '쫓겨났다'가 아니라 '쫓겨날 뻔했다'였고, '받지 못한 돈'과 '받지 못한 편지'는 서로 달랐다. 태오는 수정한 뒤 그녀에게 다시 확인받았다.
“이렇게 해 주면 좋겠어요.” 소피가 말했다. “남들이 제 이야기를 고칠 때마다 제가 다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거든요.”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다. 자신도 몇 번이나 그랬다. 신청하지 않은 신청서의 명의자로 쓰여 있던 날이 바로 그랬다.
리네아는 복도에서 태오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 씨가 조금 편해 보이네요.”
“큰 걸 해결한 건 아닌데요.”
“자기 말을 다시 자기 손에 쥐게 됐잖아요.”
태오는 리네아의 손을 잡았다. 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누군가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들 각자가 자기 말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기다려 주는 일이었다.
***
청문회에 앞서 태오는 자신의 기록방에서 소피와 로벤의 자료를 다시 점검했다. 그는 공개할 항목만 따로 복사했고, 각자의 사적인 생활정보는 밀봉된 파일에 남겼다. 공동 조사라서 모든 정보를 공개할 필요는 없었다.
로벤은 운송일지를 넘기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 줄 알았소. 세입자 대표가 생기고 나서도 걱정이 없어진 건 아니야.”
“무슨 걱정이세요?”
“모두 같은 결정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길까 봐. 나는 일부 선지급을 받고 싶지만, 다른 사람은 원본 권리부터 확인하자고 하니까.”
태오는 차분하게 말했다.
“함께 자료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합의를 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걸 누구에게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로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로벤에게 개인 상담 기록의 열람 범위를 다시 물었다. 노인은 자신이 직접 제출한 지급 청구와 옛 노선 자료 일부만 공동 자료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태오는 그 뜻을 날짜와 함께 기록했다.
소피는 아이가 그린 그림을 가지고 왔다. 그림에는 작은 집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아이와 어머니, 그리고 무척 커다란 날개가 달린 동물이었다.
“저 동물은 누구예요?” 태오가 물었다.
“드래곤이요.” 아이가 말했다.
“왜 집 앞에 있어요?”
“집을 지켜 준대요.”
소피는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웃었다. 아이는 최근 어른들이 드래곤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드래곤이 집을 지키는 동물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태오는 아이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드래곤이 집을 지켜 주면 누가 제일 좋을까?”
“엄마요.”
“그럼 엄마가 편하게 살 수 있도록 어른들이 약속을 잘 지켜야겠네.”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는 태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태오는 자신이 한 일이 별것 아니라고 답하려다 멈췄다. 아이 앞에서 어머니의 불안을 구경거리가 아니라 당사자의 이야기로 다룬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잠시 후 리네아가 들어와 청문 준비 자료를 확인했다. 그녀는 소피의 기록 중 공개할 필요가 없는 이사 예정 날짜가 적힌 부분을 가리켰다.
“이건 오늘 이야기할 필요 없어요. 현재 주택계약의 세부 정보니까요.”
태오는 그 줄을 가리고 다시 인쇄했다. 기록을 많이 모은 사람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만 정확히 다루는 사람이 좋은 기록 담당자라는 사실을 배워 가고 있었다.
***
청문 방청석에는 여러 사람이 있었다. 기자도 있었고 예전에 파벨 주택조합에서 일했던 직원도 있었다. 마르셀은 시작 전에 미확인 사실을 사실처럼 발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신문 기자가 태오에게 물었다.
“그럼 드래곤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있습니까?”
“계약에 따른 반환 지연은 발카스 님 본인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모든 서류 문제를 고의로 일으켰다고 확인된 건 아닙니다.”
“기사 제목을 만들기가 어렵군요.”
“사실대로 쓰시면 됩니다.”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텐데요.”
태오가 웃었다.
“독자들도 자기 이름으로 잘못된 기사가 나면 싫어할 겁니다.”
기자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다른 질문을 꺼냈다. 태오는 이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자극적인 이야기는 빠르게 퍼지지만, 틀린 이야기를 바로잡는 데는 오랜 시간이 든다.
***
청문 전날 태오는 마르셀과 질문 순서를 다시 점검했다. 드래곤의 변제 책임을 묻는 자리와 서류의 신원을 확인하는 자리를 하나로 합치면, 사람들은 돈을 받았는지 묻다가 누가 잘못했는지 추측하게 될 수 있었다.
“꼭 두 절차를 나누어야 합니까?” 한 방청 준비자가 물었다.
“예. 어떤 사람이 부정확한 문서를 만들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든 채무의 상대방인 건 아닙니다. 반대로 채무를 갚을 의무가 있다고 해서 모든 문서 오류를 고의로 만들었다는 뜻도 아니죠.”
마르셀은 그 말을 듣고 의사 진행표에 별도 칸을 만들었다. 태오에게는 작지만 중요한 변화였다. 처음 공동 진정을 시작할 때 그는 발카스가 책임지는 일과 왕실이 자료를 고치는 일을 어디서 나누어야 할지 몰랐다.
저녁에는 리네아가 청문 참석자들에게 전달할 안내문을 읽어 주었다. 참석하지 않아도 개인 청구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설명이 특히 중요했다. 누군가는 오늘 참석할 수 없고, 또 누군가는 직접 나서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제가 혼자 가면 모두를 대표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됩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 이름 옆에 ‘김태오 개인 계약 당사자, 공동 자료 검토 참여자’라고 적었어요.”
“공동 대표라고 쓰지 않았군요.”
“그럴 권한을 전부 위임받은 건 아니잖아요.”
태오는 그녀에게 미소 지었다. 이런 말을 서로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좋았다.
청문에 참석하기로 한 사람들에게는 자기 계약의 숫자만 확인할 수 있는 작은 표가 전달되었다. 소피는 아이를 돌볼 시간 때문에 늦게 도착할 수 있다고 했고 로벤은 지팡이를 짚고 이동할 예정이었다. 태오는 좌석과 출입 통로를 살폈다. 큰 사건의 증거를 찾는 일도 중요했지만, 실제 사람이 그 사건을 말하러 방에 들어오는 일도 중요했다.
청문 당일 새벽, 태오는 옷을 다려 입고 47-B를 보관 주머니에 넣었다. 그 비늘을 내놓아도 아무 금화도 바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몇 달 동안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는 흔적이었다. 리네아는 현관에서 그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었다. 둘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먼저 사실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설명하기로 했다.
***
마지막 절차에서 마르셀은 새 신청의 명의 정정에 관한 잠정 결론을 알렸다. 현 신청의 ‘김태오’는 본인 직접 신청자가 아니라 수신 대상자로 정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이 정정은 곧바로 실질적인 위임의 효력을 인정하거나 부정하는 결정은 아니었다. 첨부 문서의 출처 심사는 별도로 이어진다.
“그럼 제 이름으로 금고를 열겠다는 신청은 없어지는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당신이 신청한 것으로 처리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록합니다. 신청 자체의 처리 이력은 남고, 나머지 첨부는 검토 대상입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끝난 부분과 끝나지 않은 부분이 구분되었다.
청문회장 문을 나설 때, 발카스가 소피에게 먼저 고개를 숙였다. 모두가 놀랐다. 드래곤은 자신의 임대 관리 아래에서 사람들이 겪은 불편을 들었다고 말했다. 소피는 쉽게 웃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앞으로는 약속한 날짜에 알려 주세요.”
발카스는 그 짧은 말을 한참 듣고 있었다.
태오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기로 했다. 큰 목소리를 가진 존재가 처음으로 작은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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