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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96화
PAYLUA ORIGINAL · 제96화

96화. 드래곤의 변호사는 용보다 무서웠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48자

오프라인 책장
발카스가 외부 기록 감정인을 고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김태오는 먼저 비용을 떠올렸다. “감정인한테 줄 돈은 있습니까?” 바렌이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있습니다.” “제 보증금 잔액도 120금화 있는데요.” “그건 따로 지급 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카스는 조사에 필요한 돈과 채무 반환에 필요한 돈을 별개로 쓰겠다는 뜻이었다. 적어도 예전처럼 모든 자금이 금고에 묶여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그날 오후 조정실에는 뜻밖의 인물이 들어왔다. 회색 옷을 입은 노년의 여성이었다. 긴 이름을 가진 외부 감정인 디아나 벨크. 그녀는 드래곤의 대리인으로 왔지만 첫 인사부터 자신의 업무 범위를 설명했다. “저는 발카스 님의 재산을 변호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제출된 기록이 어느 시기에 어떤 절차로 작성되었는지 감정하러 왔습니다. 결론은 의뢰인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발카스가 의자에서 낮게 으르렁거렸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원고 당사자와 기록 보존 담당자의 질문에도 동일한 기준으로 답하겠습니다.”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자세를 바로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든 것은 감정인이 처음부터 어느 한쪽의 결론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감정 대상은 크게 세 가지였다. 최근에 접수된 태오 명의 신청의 표식, 일곱 해 전 보완 요청 발급 대장, 그리고 후속 위임 확인서의 종이와 잉크였다. 다만 후속 위임 확인서 원본은 아직 제한 범위만 열람할 수 있었으므로, 디아나는 제공된 범위 밖에 대해 판단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청서에 찍힌 47계열 표식은 물리 비늘 47-B와 모양이 비슷하지만 복제한 인장이라고 말할 증거는 부족합니다.” 태오가 물었다. “그럼 번호를 누가 갖다 썼을 가능성은요?” “인쇄된 표식 양식이 널리 쓰였다면 번호만 알아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했다는 행위와 사용 권한이 있었다는 사실은 별개입니다.” 디아나는 돋보기를 들어 표식의 테두리를 비교했다. 현재 신청서의 테두리는 인쇄됐고 진품 비늘에는 자연적인 미세 흠이 있었다. 표식이 마법으로 직접 찍혔는지 인쇄됐는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두 물건의 관계를 좁힐 수 있었다. “실제 비늘을 가져간 흔적은 없다는 말씀이군요.” “현재 자료만으로는 그렇습니다.” 태오는 조금 안심했다. 그러나 디아나는 바로 다음 말을 덧붙였다. “비늘을 사용하지 않고도 이름을 쓸 수는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성이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 발카스는 감정이 진행되는 내내 팔짱을 끼고 앉아 있었다. 노년의 감정인이 그의 말 한마디에 흔들리지 않자 드래곤의 표정에는 묘한 호기심이 떠올랐다. “네가 내 옛 기록에 흠이 있다고 말하면, 내 체면은 어떻게 되는가?” “체면은 감정 대상이 아닙니다.” “나는 검은 산맥의 주인이다.” “산맥의 크기도 감정 대상이 아닙니다.” 태오는 기침으로 웃음을 감췄다. 이벨은 아예 메모하는 척 고개를 숙였다. 발카스는 한참 뒤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보는가?” “발급일, 작성자, 바뀐 내용, 보관 상태, 그리고 이 자료가 증명할 수 있는 범위를 봅니다.” “네 말대로라면 수천 년의 재산보다 종이 한 장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군.” “아닙니다. 재산의 소유나 사용권을 정할 때 어떤 종이가 필요한지 확인하는 겁니다.” 태오가 끼어들었다. “드래곤 님, 그 종이 한 장 때문에 제가 2년 동안 이사를 못 했습니다.” 발카스는 태오를 바라봤다. 그에게 반박할 말은 있어 보였지만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감정의 첫 결론은 태오가 예상한 것보다 소박했다. 현재 신청서의 ‘김태오’ 표기는 새로 작성한 본인 신청란이라기보다 기존 수신 대상 칸에서 옮긴 것이었다. 동일한 글씨 간격, 위치, 접수대 기록의 전사 지침이 서로 부합했다. 그러나 누가 첨부한 대리 통지를 처음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 기록을 정정할 수 있겠습니까?” 마르셀이 물었다. “현재 신청이 김태오 당사자 직접 제출로 볼 근거가 부족하다는 감정 의견은 낼 수 있습니다. 행정 정정의 효력은 담당 기관이 결정합니다.” 태오는 감정인이 결정권을 넘지 않는 태도를 마음에 새겼다. 지금까지 사건이 복잡해진 이유 중 하나는 누군가 자기 역할이 아닌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 몰랐다. 다음으로 보완 요청 발급 대장을 검토했다. 발급번호는 당시 왕실 기록 체계와 형식상 일치했다. 그 번호는 최근 신청서의 첨부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번호가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새 신청이 유효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효한 원본 보완 요청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보지 못했으니까요.” 디아나가 말했다. “그 번호를 누구나 베껴 쓸 수는 있나요?” 태오가 물었다. “발급 대장을 볼 수 있었던 직원이나 공식 조회권자는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실제로 열람했다고 추정할 수는 없어요.” 태오는 또 한 번 수첩에 '가능성'과 '확인'을 구분해 적었다. *** 오후에는 발카스가 청문을 잠깐 멈추자고 했다. 그는 태오에게 바깥 테라스로 나오라고 손짓했다. 리네아는 두 사람을 따라왔고, 이벨 역시 그들의 대화가 사건과 연결될 수 있다며 입회했다. “인간. 너에게 남은 백스무 닢을 어떻게 갚을지 생각하고 있다.” “실제 날짜와 금액이 나오면 알려 주세요.” “나는 수백 년 동안 자산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러나 인간 한 명에게 돈을 돌려주는 방법을 이렇게 오래 배울 줄은 몰랐다.” 태오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발카스가 자신을 진심으로 낮추는 건지, 그저 시간이 흐르자 익숙해진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회피하지 않았다. “드래곤 님도 배울 게 있다는 거죠.” “너는 항상 가르치려 드는군.” “수업료를 돌려받아야 하니까요.” 발카스의 입꼬리가 아주 잠깐 올라갔다. “감정 결과는 내 뜻과 달라도 공개하겠다. 다만 네가 기다리는 금화까지 감정인이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 “그건 발카스 님이 하실 일입니다.” 드래곤은 고개를 끄덕였다. *** 감정인이 돌아가기 전 발카스의 자산관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는 일정이 잡혔다. 태오는 당연히 참석 권한을 확인했다. 자신이 임차인이긴 해도 발카스의 모든 재산 장부를 볼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디아나는 계정 47 관련 범위로만 자료를 구분하여 열람하겠다고 했다. 사무실의 벽은 고대 왕조에서 쓰던 화폐와 인장으로 가득했다. 태오는 잠시 구경하던 손을 멈췄다. 그중 일부는 지금 파벨에서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비싸다고 바렌이 설명했다. “그런 물건이 있으면서 제 보증금은 왜 그렇게 오래 미루셨습니까?” 바렌이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귀중품이 있다고 바로 처분 가능한 현금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압니다. 하지만 발카스 님은 그 이유와 반환 계획을 서면으로 설명할 기회가 여러 번 있으셨죠.” 바렌은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태오의 질문에는 낡은 사치품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계약을 어긴 사람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묻는 뜻이 담겨 있었다. 디아나는 오래된 인장의 목록을 하나씩 확인했다. 일부는 왕국에서 아직 통용되는 양식이었고, 일부는 폐지된 관행을 연구하기 위한 참고 표본이었다. “이 표식도 47 계열입니까?” 태오가 물었다. “형태는 비슷하지만 다른 분류입니다.” “흉내 내기가 쉽겠군요.” “흉내 낸 사람을 특정하기는 어렵겠지요. 오래전에 쓰던 양식이라 여러 창구에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바렌은 구형 접수용 밀랍틀 몇 개를 제출했다. 원본 상태와 보유 경로는 별도로 조사할 예정이었다. 그중 어느 것도 최근 신청서에 실제 사용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디아나는 사용법 시연도 거절했다. 실험을 위해 원본 인장을 찍으면 새 흔적이 생겨 이전 흔적과 뒤섞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태오는 그런 주의를 처음에는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손에 든 47-B 비늘을 떠올리자 곧 이해했다. 증거는 함부로 다루는 순간 더 불분명해질 수 있었다. “옛 기록을 잘 보관해 두셨네요.” 태오가 발카스에게 말했다. “내 것은 버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 “남의 것은요?” 드래곤은 그 질문에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남의 것도 그만큼 지켜야 한다는 걸 뒤늦게 배웠다.” 태오는 잠시 말이 없었다. 사과보다 더 어려운 말처럼 들렸다. 발카스가 앞으로 그 원칙을 얼마나 지킬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대놓고 인정하는 모습은 전과 달랐다. 사무실을 나서자 디아나가 태오에게 말했다. “당신은 드래곤을 두려워하지 않나요?” “두렵습니다.” “그런데 계속 질문하네요.” “겁이 나서 질문을 안 하면 돈이 더 늦게 돌아올 것 같거든요.” 디아나는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현실적인 용기군요.” “제 특기는 검이 아니라 영수증입니다.” 태오는 웃으며 수첩을 덮었다. 자신에게는 화염 마법을 막을 힘이 없었다. 그래도 질문할 권리와 기록을 보존할 방법은 있었다. *** 디아나의 감정 비용 문제도 따로 논의되었다. 발카스가 외부 전문가에게 돈을 지급하는 건 자기 방어를 위한 행동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록 혼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벨은 그 비용을 세입자의 보증금 원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는 점을 문서에 명확히 적었다. “감정인이 비싸다는 이유로 제가 받을 돈을 깎으면 안 되죠.” 태오가 말했다.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않겠다.” “약속만이 아니라 금액을 장부에서 분리해 주세요.” 바렌이 곧바로 항목을 분리했다. 태오는 그 작은 동작이 마음에 들었다. 신뢰는 거창한 맹세가 아니라 상대가 볼 수 있는 행동에서 조금씩 쌓였다. 디아나는 떠나기 전 태오에게 자신이 작성할 보고서에 확실한 내용과 유보할 내용을 따로 적겠다고 설명했다. 이름 칸의 자동 전사 가능성은 강하지만, 누가 처음 대리 통지를 보냈는지는 이 자료만으로 특정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저는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결론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믿을 만합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디아나는 웃었다. “그 말은 의뢰인에게도 해 주세요.” 태오는 발카스를 돌아봤다. “드래곤 님,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도 읽으셔야 한대요.” “이미 수백 번 들었다.” “그럼 이번에는 직접 서명도 하시죠.” 발카스는 한숨을 쉬며 펜을 집었다. 고대 드래곤의 손이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확인란 위에서 한참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 태오는 마침내 웃음을 터뜨렸다. 태오는 감정서 첫 장에 표시된 ‘조사 한계’라는 표제를 오래 바라봤다. 전에는 보고서가 길수록 명쾌한 결론이 적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어떤 부분을 판단하지 않았는지 적는 일이 오히려 믿음을 준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언젠가 다른 사람의 장부를 검수하더라도 똑같이 하리라 마음먹었다. *** 집으로 돌아온 태오는 기록방 장부를 정리했다. 개업을 알리는 종이가 문 옆에 붙어 있었다. 리네아는 꽃병을 옮기며 말을 걸었다. “오늘 드래곤 님 표정 보셨어요?” “어떤 표정요?” “감정인에게 혼날 때요.” “산맥 주인이 아니라 학교 학생 같았습니다.” 리네아가 웃었다. “당신도 처음 계약서 제대로 안 읽었을 땐 그랬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를 가르쳐 준 건 사실 드래곤이군요.” “비싼 선생님이네요.” 태오는 그녀를 가까이 끌어당기려다 멈췄다. 책상 위에 새 고객의 기록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만요. 이건 먼저 잠가야 합니다.” 리네아가 한숨을 쉬었다. “당신에게 제일 먼저 키스하는 건 늘 서랍이군요.” “서랍은 비밀을 지켜 주니까요.” “저도 비밀 잘 지켜요.” 태오는 서랍을 잠그고 돌아섰다. 리네아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은 서로 웃으며 포옹했다. 세상 모든 비밀을 잠가 둘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맡은 사람들의 기록을 지킬 수는 있었다. 그날 밤 디아나의 첫 감정서가 조정실에 접수되었다. 마지막 줄은 짧았다. [현 신청의 명의자 자동 전사 정황 확인. 첨부 대리 통지의 실제 요청자 및 권한 확인은 미완.] 태오는 그 문장에 줄을 그었다. 그의 이름을 이용한 접수의 잘못된 부분은 조금씩 드러났지만, 더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질문은 그대로였다. 누가, 왜 일곱 해 전의 요청번호를 지금의 봉투에 붙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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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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