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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95화
PAYLUA ORIGINAL · 제95화

95화. 다렌의 손이 기억한 문장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40자

오프라인 책장
다렌 코르는 일곱 해 전의 일을 한꺼번에 기억해 내지 못했다. 누군가 종이를 읽어 준 기억은 있었다. 손이 아파 펜을 제대로 쥘 수 없었던 날, 차가운 돌 의자와 창문 틈으로 들어오던 비 냄새도 기억했다. 그러나 누가 자기 대신 서명했는지, 실제로 어떤 문장이 종이에 적혔는지는 또렷하지 않았다. 김태오는 코르를 재촉하지 않았다. “기억이 안 나면 안 난다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코르는 오른손을 펴 보였다. 손목 아래 가늘고 길게 남은 흉터가 보였다. “사람들이 이걸 보고 내가 그날 집에 있었다, 없었다 마음대로 말하더군. 내 손이 기억을 대신할 수는 없소.” “맞습니다. 치료소 기록과 이동 기록을 함께 보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리네아가 따뜻한 차를 놓았다. 코르는 감사 인사를 하고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그날 면담에는 아델 마린도 참석했다. 아델은 현재 서쪽 문해 교실에서 글 읽기를 가르치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과거 제7 우편함 부근에서 읽기 보조 일을 했다고 진술했지만, 방문등록부의 훼손된 서명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는 아직 없었다. “당신이 그때 읽어 준 분이 맞는지부터 여쭙겠습니다.” 이벨이 말했다. 아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이 제게 기억나는 사람이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날 제가 읽어 준 사람이 이분뿐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어요.” “좋습니다. 그 범위를 유지하고 말씀해 주세요.” 태오는 이벨의 말이 고마웠다. 오래전 기억을 억지로 확신으로 바꾸는 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아델이 기억하는 문장은 뜻밖에 단순했다. “내 이름으로 누가 받는 건 싫다.” 그녀는 또박또박 말했다. “그 문장이었어요. 제가 들었다고 생각하는 말은요.” 코르는 두 눈을 감았다. 오래된 의자에서 나오던 나무 냄새가 되살아나는 듯했다. “맞소. 적어도 지금 내 마음과 같소. 하지만 그때 무슨 돈을 말했는지는…” 아델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대답할 수 없어요. 저는 종이를 읽고, 말한 내용을 가능한 한 적었을 뿐이니까요.” “그 종이는 어디로 갔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당시 담당 창구에 넘겼습니다. 수령증을 받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세딘은 보존 대조표를 꺼냈다. 원 권리자 동의서 묶음에서 확인된 '명의 사용 이의·대리 수령 거부 진술서'와 아델이 말한 문장이 유사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같은 문서인지, 서로 다른 사람이 한 비슷한 진술인지는 미확정이었다. “이것만으로 당사자가 일치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세딘이 강조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한 문장을 종이 한 장과 정확하게 연결하려면 그 사이의 전달과 보관이 필요했다. 그 사슬의 여러 고리가 빠져 있었다. *** 면담을 마친 뒤 코르는 태오를 따로 불렀다. “나는 내 이름을 되찾고 싶소.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남의 이름을 빼앗을까 두렵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그날 우편함에 있었다고 인정받으면, 누군가 내가 다른 세입자를 대표했다고 주장할까 봐서.” 태오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날 문서를 읽었다는 것과 다른 사람을 대신해 결정했다는 것은 다릅니다. 본인이 말한 범위를 분명하게 남기면 됩니다.” “그 말을 기록해 주겠소?” “제가 먼저 적어서 보여 드리고, 괜찮으시면 본인이 확인하시면 됩니다.” 태오는 빈 종이를 꺼냈다. 코르가 진술한 사실은 자신의 기억과 현재 뜻에 한정되며 타인의 권리를 대리했다는 주장이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코르는 글씨를 여러 번 읽고 서명했다. 손목을 움직일 때 잠깐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펜을 놓지 않았다. 리네아는 서명한 뒤에야 그에게 물었다. “불편한 부분은 없으세요?” “없소. 내 말로 된 종이를 받으니 이상하게 편하구먼.” 태오는 그 문장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 오후에는 아델의 문해 교실을 방문했다. 마을 아이들이 나무 글자판으로 이름 쓰기를 배우고 있었다. 서툰 아이 하나가 자기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계속 거꾸로 썼다. “틀렸다고 화내지 마세요.” 아델이 말했다. “이름은 남이 대신 써 줄 수 있지만, 배우는 속도는 사람마다 달라요.”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어린 학생의 글자판을 바라봤다. 자신 역시 처음 이세계 언어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아무 문제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읽는 것과 누가 내 이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아델은 자신의 옛 장부 하나를 가져왔다. 당시 임시 읽기 보조인이었던 그녀가 개인적으로 적어 둔 일정표였다. 봉인된 공문은 아니고, 일을 마친 날의 이동 기록이었다. “정식 증거인지는 모르겠어요.” “원본 그대로 보존하고, 필요한 부분만 대조를 요청하겠습니다.” 세딘이 말했다. 일정표에는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방문'과 '이의 전달'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날짜는 우편함 개함 관련 기록과 대체로 겹쳤다. 그러나 정확한 시간과 참석자 명단은 적혀 있지 않았다. 세딘은 이를 참고자료로 분류했다. 아델은 태오를 보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사람들의 말을 정확하게 읽고 적는 일이었어요. 그 종이가 나중에 다른 뜻으로 쓰였다고 해도, 제가 그걸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모르는 걸 안다고 말씀하시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됩니다.” *** 돌아오는 길에 리네아는 태오가 너무 진지한 얼굴이라고 놀렸다. “당신이 서류를 사랑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서류에게 질투가 나네요.” “서류는 절 사랑하지 않아요. 매일 새로운 문제만 만들죠.” “그러면 왜 그렇게 하루 종일 보고 있어요?” “결국 당신과 편하게 살기 위해서죠.” “편하게 산다고요? 저한테는 하루에 세 번이나 이의를 제기하면서?” “무슨 이의요?” “아침에 제 머리핀 어디 뒀냐고 두 번, 점심에는 빵을 너무 많이 샀다고 한 번.” “그건 이의가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그녀가 태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이세계에서 질문과 이의가 가장 많은 남자.” “불명예스러운 칭호군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남자죠.” 태오는 더 말하려다 멈췄다. 리네아는 그의 표정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박 안 해요?” “그건 사실이니까요.”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두 사람은 보도 위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걸었다. 한때 태오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날만 기다렸다. 지금은 그날 이후에 함께 걷고 싶은 거리도 생겼다. *** 문해 교실에는 오래된 연필과 짧아진 지우개가 쌓여 있었다. 아델은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간 뒤 태오와 리네아를 작은 책상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여러 언어의 글자판과 읽기 보조용 큰 활자 종이가 놓여 있었다. “읽지 못하는 사람은 종이를 받는 것만으로 불안해합니다.” 아델이 말했다. “누가 그 내용을 다른 뜻으로 읽어 줄까 봐요.” 리네아가 물었다. “그래서 과거 제7 우편함에서도 읽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나요?” “그럴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읽어 주는 경우가 많았죠. 제 업무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아델은 낡은 일정표를 펼치고 비슷한 날짜를 가리켰다. 빈 곳에는 잉크가 번진 작은 점들이 있었다. 태오는 그것이 실제로 글자를 지운 흔적인지 오래된 얼룩인지 묻지 않았다. 그런 구분은 감정인의 일이었다. “일정을 적을 때 사람 이름도 적으셨나요?” “보통은 업무 장소와 시간만 적었습니다. 의뢰인의 사정을 제 개인 장부에 적는 건 좋지 않다고 배웠어요.” “지금 보니 정말 중요한 원칙이네요.” “그때는 그냥 선배가 시키는 대로 한 거였어요.”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처음 상단에서 짐을 나르던 날을 떠올렸다. 물건 수량을 확인하고 손도장을 찍는 작은 절차도 누군가에게는 오랫동안 중요한 증거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들은 아델의 당시 보조 근무수당 정산표를 찾을 수 있는지 의논했다. 아델은 개인적으로 받은 돈을 대략 기억했지만 장부 원본은 조합이 보관했을 것이라고 했다. 읽기 보조인이 지급받은 은화 두 닢의 기록이 이전 조사에서 확인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기록이 반드시 아델 본인의 수당이라고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근무수당 인수명부가 남아 있으면 이름을 대조할 수 있겠군요.” 세딘이 말했다. “네. 그날 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때 뭘 읽어 줬는지까지 증명하지는 못하지만요.” 아델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그녀가 자신의 기억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말을 보태지 않는 태도에 다시 감탄했다. 교실 문 앞에서는 수업을 마친 소년 하나가 아직 돌아가지 않고 서 있었다. 소년은 아델에게 편지를 내밀었다. 집에 계신 어머니에게 읽어 드리고 싶으니 한 문장만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었다. 아델은 의자를 빼 주고 천천히 편지를 펼쳤다. ‘오늘도 건강하세요.’ 짧은 글자들이 소년의 입에서 서툴게 나왔다. 몇 번을 반복한 뒤 소년은 제대로 읽었다. 그는 활짝 웃으며 편지를 품에 안았다. 태오는 그 모습을 보며 눈가가 뜨거워졌다. 누군가의 말을 자기 목소리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큰 힘이었다. 교실을 나오자 리네아가 물었다. “아까 눈물 난 거 아니죠?” “잉크 냄새 때문입니다.” “그럼 제가 안아 줘도 잉크 냄새가 없어질까요?” “아마 치료 효과가 있을 겁니다.” 리네아는 그를 잠깐 안았다가 한 걸음 물러났다. “자, 이제 다시 일하러 가요.” 태오는 웃었다. 짧은 포옹 하나를 허락받기 위해 이렇게 긴 조사가 필요했다면 너무 억울할 뻔했다. 다행히 그건 둘 사이의 문제만으로 충분했다. *** 아델의 옛 보조 일정표는 그날 저녁 별도 밀봉되었다. 태오는 원본을 직접 맡지 않고, 아델의 동의를 받아 세딘이 보관하도록 했다. 사적인 기억이 담긴 종이를 자신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져오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세딘은 당시 문서조합의 수당 지급표가 다른 곳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을 설명했다. 아델의 이름과 은화 두 닢 수령이 같은 날짜에 확인되더라도, 그것은 근무 여부를 뒷받침할 뿐 서류 내용의 진위와는 별개였다. “이렇게 조심하면 언제 끝나겠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세딘이 대답했다. “무리하게 결론을 내리면 끝난 것처럼 보일 수는 있겠죠. 다만 나중에 바로잡는 데 더 오래 걸립니다.” 태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긴 시간을 겪은 사람일수록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을 이용해 아무 서류나 받아들이면 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것이다. 귀가길에 코르를 만났다. 코르는 허름한 장갑을 끼고 있었다. 태오는 그의 손목을 보고 더 이상 흉터의 모양을 묻지 않았다. 그런 질문은 이미 공식 기록으로 충분했다. “오늘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도 고맙소. 누군가 내 말이 틀릴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들어주더군.” 태오는 웃었다. “사람의 기억은 늘 완벽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면 내 말이 틀렸을 때도 알려 주겠소?” “그렇게 하겠습니다.” 코르는 악수를 청했다. 태오는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일곱 해를 지나 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믿어 주는 박수만이 아니라 확인할 기회를 함께 지키는 일이었다. 헤스가 보내 준 빵을 코르에게 건넸을 때 그는 잠시 손을 멈췄다. 헤스와 코르는 오래된 주택조합 문제로 간접적으로 얽혀 있었지만 각자의 계약은 달랐다. 태오는 그들에게 서로의 이름을 빌려 해결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코르는 빵을 받아 천천히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오래전 기억을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는 모르지만, 오늘은 적어도 스스로 받아 든 빵 한 조각이 있었다. *** 저녁에는 코르의 새 진술이 등록소에 보관됐다. 이벨은 타인의 권리를 대신 행사하지 않았다는 문구를 함께 남겼다. 세딘은 아델의 일정표와 기존 문서 묶음의 날짜를 독립적으로 대조하기로 했다. 태오는 오늘 확인한 사실을 적었다. 코르의 당시 기억은 일부 남아 있다. 아델의 진술은 특정 문구를 뒷받침할 수 있으나 최종 동일성 확인은 남았다. 개인 일정표는 공문 원본이 아니다. 어느 것도 자동으로 위임권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그리고 맨 아래에 적었다.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이 말한 뜻보다 크지 않다.] 태오는 그 문장을 오래 바라보았다. 서류를 만든 사람도, 서류를 읽는 사람도 그 경계를 지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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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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