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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91화
PAYLUA ORIGINAL · 제91화

91화. 내 이름으로 문을 두드린 사람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413자

오프라인 책장
서류가 사람보다 먼저 일을 저지르는 세계가 있다면, 그 세계는 분명 파벨시일 것이다. 김태오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세 시부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침대 옆 탁자에 놓인 검은 비늘 47-B가 자꾸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계정 47 열람을 신청했다. 세딘이 보낸 마지막 연락은 신청이 심사 대기 중이며 집행된 일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그 한 줄만으로도 오늘의 재앙은 막힌 셈이었다. 그러나 태오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아직 어두운데요.” 리네아가 맞은편 의자에서 담요를 걷었다. 전날 늦게까지 함께 접수 경위를 정리하다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기며 태오의 수첩을 보았다. “어제 적은 세 번째 확인 사항부터 보시는 거죠?” “첫 번째부터요. 제 이름으로 낸 신청을 제가 안 냈다는 걸 증명해야 합니다.” “당신이 너무 부지런해서 그래요. 남이 대신 신청해 줄 정도니까.” “그 사람이 제 돈도 대신 받아 줬다면 좋았겠네요. 물론 제 계좌에요.” 그녀가 피식 웃었다. 태오도 따라 웃었지만, 47-B를 작은 천 주머니에 넣는 손은 신중했다. 이 증표는 조회를 요청할 때 자기 계약을 연결하는 표시일 뿐, 금고의 돈을 빼거나 다른 세입자의 권리를 대신 행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누군가 동일 계열의 접수번호를 서류에 적었다. 파벨 등록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태오는 입구 계단에 앉아 빵을 먹으려다가, 그곳에 누가 보냈는지 모를 신문 한 장이 놓인 것을 보았다. 큼지막한 제목이 눈에 띄었다. [용의 금고, 결국 인간 세입자의 손에?] “사람이 아침 먹기도 전에 소설을 씁니다.” 리네아는 신문을 접어 가방 깊숙이 넣었다. “당장 항의하지 마요. 그 문장을 사실이라고 주장한 기사인지, 물음표를 달아 조회를 부추기는 광고인지부터 봐야죠.” 태오가 그녀를 돌아봤다. “당신이 저보다 더 차분하네요.” “연인이니까요. 한 사람은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은 날짜를 적어야죠.” “그럼 저녁에는 역할을 바꿉시다.” “저녁에 화내게 할 생각이에요?” “아뇨. 제가 날짜를 적고 당신이 데이트 장소를 고르면 됩니다.” 리네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녀는 그의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그 작은 접촉 덕분에 태오는 비늘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조금 풀 수 있었다. *** 세딘은 밤새 일한 사람처럼 보였다. 안색이 창백했지만, 서류 묶음에는 어김없이 날짜별 탭이 붙어 있었다. “우선 신청에 대한 잠정 심사 정지 표시가 들어갔습니다. 본인 확인이 끝날 때까지 열람 허가와 모든 후속 처리는 보류됩니다.” “제 이름이 접수 명단에서 지워진 겁니까?” “아닙니다. 누군가 제출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다만 당신이 신청했다고 인정한 것은 아닙니다.”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접수 기록 보존. 본인성 부인. 후속 처리 보류. 그는 세 문장이 저마다 다른 뜻이라는 사실을 이제 알고 있었다. 세딘은 원본을 직접 건네지 않았다. 대신 밀랍 봉인의 겉면과 신청서 첫 장을 비식별 처리한 대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접수 창구에는 ‘제3 대리 통지’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태오의 이름은 수취 대상 칸과 신청 명의 칸 양쪽에 나타났는데, 두 칸의 필체가 달랐다. “제가 쓴 글씨가 아닙니다.” “그렇게 진술하시면 됩니다. 필체 감정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건 당신이 직접 접수했는지입니다.” “저 서명은요?” 태오가 가리킨 곳에는 글씨가 아니라 작은 사각형 문양이 찍혀 있었다. 47-B 비늘의 외곽과 비슷해 보였지만, 가운데 흠집까지 같지는 않았다. “신분 인장이 아니라 구형 접수 계열 표식입니다.” 세딘이 말했다. “번호가 유사하다고 같은 증표를 사용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신청했을까요?” “접수대에 서류를 놓고 간 전달인이 기록됐습니다. 전달인이 실제 의뢰인인지는 별개입니다. 신청서 봉투는 왕실 서류 재분류소에서 왔고, 거기에 또 다른 인계표가 붙어 있습니다.” 태오는 머리를 짚었다. “한 사람 찾으려면 세 사람을 찾아야겠네요.” “그럴 수도 있고, 같은 서류를 세 번 건넸을 수도 있지요.” 이벨이 옆에서 덧붙였다. “자기 이름을 쓴 사람과 종이를 옮긴 사람, 실제로 부탁한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아까 화내지 않으신 게 다행이에요.” “아침에 미리 다 내고 왔습니다.” “누구에게요?” “드래곤 소유의 벽에 대고요. 수리비 청구서가 날아올까 봐 손은 안 댔습니다.” *** 접수 장부를 대조하자 더 이상한 점이 나왔다. 신청서 본문의 오른쪽 위에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청산 준비실 분류번호가 적혀 있었다. 반면 봉투 바깥의 송달표는 전날 새로 찍힌 것이었다. 일곱 해 전 양식이 최근에 인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마르셀은 곧바로 단정하지 않았다. “옛 사건을 처리할 때 당시 양식을 복원해 쓰는 관행도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서류를 조작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로 정상 신청으로 받아 줄 수도 없고요.” 태오가 물었다. “그럼 지금 제 이름으로 무슨 일이 진행됩니까?” “아무것도 집행되지 않습니다. 기록 확인만 진행합니다.” 그 대답은 금고 안의 재산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지킬 수 있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기록 보존실에서는 태오에게 별도의 진술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누구에게 원본 47-B를 보여 주었는지, 비늘을 잠시 맡긴 적이 있는지, 지난 사흘 동안 어디를 방문했는지였다. 그는 기억나는 사실만 적었다. 발카스, 세딘, 마르셀과의 공식 대조 자리에 증표를 내보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소유를 넘기거나 서류에 대신 서명하라고 허락한 적은 없었다. “리네아 씨가 제 옆에 있었던 시각은 따로 확인할 수 있겠네요.” 리네아가 눈썹을 들었다. “제가 증인으로 필요해요?” “그렇죠.” “그럼 제가 어제 당신과 얼마나 오래 함께 있었는지도 기록해야겠네요.” 태오가 펜을 멈췄다. “그건 어느 범위까지요?” “저녁 식사부터 밤까지.” “밤까지라고 적으면 등록관이 오해할 텐데요.” “누가 오해해도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우리는 서류 정리했어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고 태오는 어제 둘이 여관 식당에서 그릇을 다 치울 때까지 부속 통지서의 날짜를 맞추던 일을 떠올렸다. 누구든 그 상황을 낭만적으로 묘사할 수 있다면 대단한 재능이었다. *** 점심때 발카스가 나타났다. 복도에 있던 방문자들이 일제히 움직임을 멈췄다. 인간형 드래곤의 검은 장갑 위에서 금속 광채가 번쩍였다. “내가 너에게 준 비늘이 도용되었다고?” 태오는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도용됐는지는 아직 확인 중입니다. 접수번호 계열이 비슷합니다.” “그 비늘을 당장 내놓아라. 내가 진짜인지 확인하겠다.” 태오는 주머니를 감싸 쥐었다. 리네아는 조용히 옆으로 다가왔다. “감정 절차에 입회하실 수는 있어요.” 태오가 말했다. “하지만 신청 중인 자료를 제가 임의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발카스의 콧날이 꿈틀거렸다. “내 비늘이다.” “주신 뒤에는 제가 보관해 왔죠. 이것도 반환하겠다고 적은 계약서가 있습니까?” 드래곤의 눈이 가늘어졌다. 복도 끝에서 토른이 작게 기침했다. 웃음을 참는 소리라는 걸 모를 사람은 없었다. “네가 내 비늘로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발카스가 낮게 말했다. “하지만 누군가 내 계정에 접근하는 데 그 숫자를 쓴다면, 그것은 내 문제이기도 하다.” “맞습니다. 그래서 독립 대조로 확인합시다.” 발카스는 세딘이 준비한 봉인 검사 절차에 동의했다. 검은 비늘을 고정대에 올리고 기존 동굴 출납 기록과 표면 문양을 대조했다. 초보 마법사가 실수로 불꽃을 튀기자 발카스가 신음했다. “그건 감정이 아니라 굽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인간들은 왜 모든 검사에 불을 쓰느냐?” 태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은 발카스 님이 하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토른이 이번에는 대놓고 웃었다. 검사 결과 진품 비늘 자체를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신청서의 표식 역시 복제나 동일 계열 표시일 가능성이 있어 추가 대조가 필요했다. 태오는 조금 안도했다. 최소한 누군가 자신이 잠든 사이 비늘을 훔쳐 갔다고 볼 근거는 없었다. *** 기록국을 나선 태오는 그대로 집에 가지 않았다. 그는 47-B 증표를 가지고 처음 검은 산맥을 방문했을 때의 이동 경로를 수첩에서 찾았다. 동굴 앞에서 비늘을 받던 날, 관리인은 출납 장부에 여러 숫자를 적었다. 그때는 숫자 하나하나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적어도 수령번호와 권한번호가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정도는 알았다. 토른이 그의 어깨너머를 보고 말했다. “그때 내가 찍어 놓은 탁본이 있네. 비늘을 만진 게 아니라 옆면 그림을 종이에 옮긴 거야.” 그는 작은 공구함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희미한 문양 옆에는 '47-B, 임차 계약 대조'라고 적혀 있었다. 태오는 최근 신청서의 접수 계열과 탁본을 나란히 놓았다. 둘 다 47이라는 숫자가 있었지만 뒤에 붙은 작은 문양이 달랐다. “이게 바로 복제 여부의 증거가 될까요?” “아니. 내 탁본도 옛날 물건이 아니고, 내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지. 다만 원본 비늘을 더 손상시키지 않고 형태를 비교할 수 있겠지.” 태오는 토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드워프는 대수롭지 않게 수염을 쓸었다. 얼마 뒤 그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만약 저 드래곤이 마침내 돈을 전부 돌려주면, 그 비늘은 어떻게 할 거냐?” “계약에 따라 반환해야 하는지부터 확인하겠습니다.” “그다음은?” 태오는 웃었다. “복제본을 만들어 액자에 넣을까요? 사업 첫 고객에게 보여 줄 교훈으로요.” “무슨 교훈?” “집주인을 잘 골라야 한다는 교훈이죠.” 토른은 큰 소리로 웃다가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런데 아무리 훌륭한 장부를 만들어도 돈이 저절로 돌아오진 않아. 너도 알고 있지?” “네. 그래서 기록뿐 아니라 실제 지급을 계속 확인합니다.” 태오는 탁본을 보관용 서류함에 넣었다. 봉인된 진품과 구분되도록 '참고 탁본, 권한 없음'이라고 적었다. 작은 글자 하나가 또 다른 오해를 막을 수도 있었다. 근처에는 새벽부터 기다리던 젊은 관리 보조인이 있었다. 그는 태오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자기 이름으로 들어온 신청을 스스로 부인하는 사람이 드문가요?” 태오가 대답했다. “드물어야 정상 아닐까요?” “대부분은 그냥 무시합니다. 옛 자료라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저도 처음엔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제 이름을 신청인으로 쓰면, 다음에 다른 사람이 제가 동의했다고 믿을지도 모르잖아요.” 관리 보조인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말이 거창해졌다고 느껴 얼른 덧붙였다. “물론 사실은 제가 화가 나서 찾아온 게 먼저입니다. 아무나 제 이름을 쓰는 건 싫거든요.” “그게 충분한 이유 같네요.” 그들은 서로 웃었다. 태오는 오늘 처음으로 자기 불안을 설명하기 위해 영웅처럼 말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 오후 늦게 왕실 서류 재분류소에서 답장이 왔다. 문제가 된 봉투는 왕실 직원이 직접 작성해 보낸 것이 아니라, 폐쇄된 청산 준비실 사건의 후속 자료로 분류되어 자동 이송되었다고 했다. 이송 당시 제출자 칸은 비어 있었고, 첫 대리 통지의 수신 대상만 적혀 있었다. “수신 대상만 있었는데 제 이름이 신청인 칸에도 적혔다고요?” “그건 접수 단계의 전사 오류일 수도 있습니다.” 세딘이 말했다. “그러나 첨부물에 위임 보완본이 들어 있다는 설명이 남아 있어 그쪽은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는 신문 기사를 떠올렸다. 사람들이 그의 이름만 보고 금고를 열었다고 말하던 것처럼, 접수 시스템도 이름 하나를 두 칸에 채워 넣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동 오류가 있었다고 해서 누가 위임 보완본을 첨부했는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밤이 되자 태오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새 작업장 앞에 섰다. 아직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은 빈 점포였다. 창문 너머에 토른이 세워 둔 선반 모형이 보였다. 작은 책상 하나와 장부를 놓을 공간. 거대한 금고와 달리 누구의 이름이 어디에 쓰였는지 쉽게 볼 수 있는 방이었다. “여기 이름표는 직접 쓰세요.” 리네아가 말했다. “왜요?” “누가 잘못 적으면 또 일주일 걸릴 것 같아서요.” 태오는 웃었다. 그녀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다가 조용히 물었다. “많이 무서웠죠?” “돈이 사라질까 봐보다, 제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취급받는 게 더 무서웠어요.” “그래도 당신 이름을 당신이 지켰어요.” “아직 진행 중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돼요.” 그날의 마지막 기록에는 이렇게 적혔다. [신청 접수는 확인. 본인 제출 부인. 후속 처리 보류. 열람·인출·관리권 변경 없음.] 그 아래에는 익숙한 숫자가 따라왔다. [누적 반환 180금화. 미환급 원금 120금화.] 태오는 펜을 덮었다. 적어도 자신의 숫자는 타인의 손으로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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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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