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명이 한 방에 모이면 의견도 열한 개가 된다는 사실을 김태오는 다시 배웠다.
파벨시 동문 회관에는 작은 회의 탁자가 놓였다. 처음 공동 분쟁 예비조사를 신청했을 때는 모두가 막연하게 보증금을 돌려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왔다. 지금은 달랐다. 각자의 생활이 달랐고, 계약금이 달랐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도 달랐다.
로벤은 지팡이를 벽에 세워 두고 앉았다. 헤스는 자기 빵집 문을 일찍 닫고 왔다. 소피는 아이를 친척에게 맡기느라 늦었다. 다른 세입자들도 직장에서 한두 시간씩 시간을 냈다.
“오늘은 뭘 결정해야 합니까?” 로벤이 물었다.
태오는 서류를 펼쳤다.
“공동 조사에서 새로 나온 서류를 계속 확인할지, 각자 개별 조정을 우선 진행할지,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할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어느 쪽을 택하든 자기 계약을 직접 결정할 권리는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가 한꺼번에 돈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군요.”
“아닙니다. 공동 조사 자료를 공유하는 것과 보증금 반환 합의는 별개입니다.”
리네아가 옆에서 세입자마다 다른 색의 서류 봉투를 나눠 줬다. 이름을 겉면에 크게 적지 않고 사건 번호만 붙였다. 일부는 자기 사정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는 그냥 제 것만 받고 싶어요.” 한 사람이 말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그럼 왜 계속 모인다는 겁니까?” 다른 사람이 물었다.
“공통 기록을 확인하면 각자 계약의 상대방과 지급 경로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 회의에서 타인의 계약 처분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회의가 조용해졌다. 태오는 자기 말이 어려웠다는 걸 알아차렸다.
“쉽게 말하면,” 그는 다시 말했다. “같이 우물을 찾을 수는 있어도, 남의 물통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헤스가 웃었다.
“이제야 알아듣겠군.”
***
로벤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오래전 자기 보증금의 반환을 기다리다가 마차 수리비를 빌린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돈을 당장 조금이라도 받으면 좋겠소. 그런데 나 대신 누가 그 돈을 받았다고 해 버리면 그건 못 참겠어.”
소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아이가 있어서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 짧아요. 하지만 누구 이름으로 어떤 문서가 만들어졌는지는 알고 싶어요.”
다른 세입자는 말했다.
“발카스 님이 다른 재산으로라도 돈을 갚으신다면 그냥 그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위험한 금고를 열다가 더 늦어지는 건 싫어요.”
태오는 그 말도 기록했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보고 끝까지 함께해 주길 바라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생계가 자신의 이야기 전개를 위해 기다려 줄 이유는 없었다.
“좋습니다. 개별 지급을 우선 원하시는 분은 그렇게 진행하시죠. 그 합의 조건에 다른 사람의 권리까지 포기한다는 문구가 있다면 꼭 별도로 확인하세요.”
리네아가 각자 질문을 받을 때 태오는 뒤로 물러났다. 지난 몇 달 동안 함께 일해 왔지만, 그녀가 계약 전문가로 판단할 공간은 남겨 두고 싶었다.
“이건 제 역할이에요.” 리네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압니다.”
“그럼 왜 자꾸 보고 있어요?”
“일하는 모습이 멋있어서요.”
리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회의 중이에요.”
“저도 알아요.”
“끝나고 다시 말해 주세요.”
태오는 괜히 종이 모서리를 정리했다. 이 작은 대화 때문에 그의 기분은 조금 밝아졌다.
***
회의 후반에는 다렌 코르가 참석했다. 그는 아직 공식 신원과 관련 권리를 확인받는 절차 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초청자로만 왔고, 열한 명의 계약 결정을 함께하는 당사자로 자동 포함되지는 않았다.
“나는 내 이름을 가진 종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면 그걸 바로잡고 싶소.”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그날 서명하지 않았는지, 누구를 통해 어떤 말을 전했는지는 아직 자료를 다 못 봤소.”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헤스가 코르를 오래 바라봤다.
“당신이 예전에 우리 빵집에서 장부를 읽어 주던 사람이 맞다면, 참 힘든 시간을 보냈겠네요.”
“기억이 같다고 바로 믿어 달라는 뜻은 아니오.” 코르가 답했다. “나도 확실히 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소.”
그 순간 태오는 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이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다는 사실을 느꼈다. 누군가의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그 기억을 다른 사람의 돈을 가져가는 근거로 쓰지 않으려 했다.
***
결정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참석자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였다. 한 사람은 모두가 끝까지 함께해야 발카스에게 힘을 보여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사람은 아이의 약값을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 먼저 돈을 받는 길을 찾고 싶다고 했다.
“그럼 우리는 여기 왜 모였습니까?” 첫 사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려고 온 게 아니오. 내 돈을 찾으려고 왔지.”
방 안이 조용해졌다. 태오는 두 사람 중 누구를 나무랄 수 없었다. 한쪽은 공동 대응이 무너지면 모두가 불리해질까 두려웠고, 다른 쪽은 내일의 지출 앞에서 떨고 있었다.
“서로를 배신자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럼 함께할 이유가 없잖소.”
“함께 확인할 자료는 여전히 있어요. 다만 그 자료를 이용해 누구와 어떻게 합의할지는 각자 결정할 수 있습니다.”
리네아는 큰 종이를 가운데 놓았다. 왼쪽에는 공동 자료 대조, 오른쪽에는 개별 변제 협의라고 적었다.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쪽을 무조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 붙었다. 참석자들은 자기 희망을 표시하고, 원하지 않는 정보 공유는 체크하지 않았다.
다툰 두 사람은 끝내 서로 손을 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회의가 끝날 무렵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자기 경험이 필요하면 알려 주겠다고 말했다. 그것만으로 태오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헤스가 태오에게 다가와 낮게 말했다.
“사람이 모이면 꼭 한마음이어야 하는 건 아니야.”
“오늘 새로 배웠습니다.”
“다른 마음들이 서로를 잡아먹지 않으면 그게 모임이지.”
태오는 그 말을 수첩에 적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기억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바렌이 잠깐 방문했다. 발카스 측에서는 개별 계약별로 검증된 지급 재원에서 분할 변제를 검토하고 있으며, 다음 주 결산이 마무리되면 구체적인 제안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조건은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그 부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세입자들의 공동 조사 참여 포기를 조건으로 내세우지는 않으실 겁니까?”
바렌은 잠시 태오를 바라봤다.
“발카스 님께 그 조건을 다시 사용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왜요?”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까요.”
태오는 웃었다.
“그건 정확한 분석입니다.”
바렌의 입가에도 아주 작은 웃음이 스쳤다.
“우리는 아직 상대방이지만, 쓸데없는 서류를 만드는 데까지 돈을 쓰고 싶진 않습니다.”
발카스의 대리인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회의는 예상보다 늦게 끝났다. 하지만 빈 의자가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태오는 이상하게도 홀가분해졌다. 모두를 같은 줄에 세우는 대신, 각자가 돌아갈 집과 오늘 처리할 일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공동 사건의 번호가 아니었다.
태오는 회의록을 정리했다. 공동 자료 검증은 필요한 범위에서 계속하되, 각 세입자의 조정 및 변제 협의는 각자의 선택과 명시적 동의 아래 진행하기로 했다. 참석자의 동의 여부는 항목마다 따로 기록했다. 어떤 사람은 자료 공동 대조에는 참여했지만 자신의 이름 공개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회의가 흐지부지 끝나는 것 같았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드래곤을 상대하는 장면이 더 멋져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오는 자신이 원한 것이 멋진 장면이 아니라 실제 돈의 반환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로벤이 문 앞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자네가 처음엔 나더러 함께 서명하자고 했지. 그런데 오늘은 따로 결정하라고 하는군.”
“기분 나쁘셨습니까?”
“아니. 이제야 내 이름을 내가 쓰는 느낌이 드네.”
태오는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그렇게 느끼셨다면 잘된 일이죠.”
***
저녁 무렵, 회관을 정리하던 태오는 소피가 놓고 간 작은 목도리를 발견했다. 아이의 것이었다. 리네아는 그것을 들고 소피의 집으로 향했다. 태오도 함께 갔다.
소피는 아이를 재우고 있었다. 그녀는 목도리를 받고 고마워했지만 눈 아래가 짙었다.
“회의가 너무 길었죠?” 태오가 물었다.
“아뇨. 마음은 더 편해졌어요. 적어도 제 결정이 어디에 기록되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집주인과는 다시 말씀해 보셨습니까?”
“다음 달까지 일정을 다시 확인하기로 했어요. 그걸로 충분해요. 오늘은요.”
그녀가 미소 지었다.
태오는 그 미소를 보며 자신이 아주 조금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용과 싸우는 용사라면 이런 날이 얼마나 하찮게 보일까. 그러나 그는 마왕도, 용사도 아니었다. 누군가 아이의 목도리를 돌려주는 것만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시장 구석의 작은 공연을 구경했다. 여행 악사들이 현악기를 켜고 있었다. 리네아는 음악에 맞춰 태오의 손을 끌었다.
“한 곡만 춰요.”
“전 춤을 못 춥니다.”
“그럼 제가 알려 줄게요.”
그녀는 그의 손을 자기 허리 가까이에 놓고 천천히 한 걸음 움직였다. 태오는 발을 헛디딜까 봐 바닥만 쳐다봤다.
“제 얼굴 좀 봐요.”
“그러다 발을 밟으면요?”
“밟으면 미안하다고 하면 되죠.”
태오는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웃는 눈, 귀 끝에 살짝 걸린 머리카락, 가까운 거리. 잠시 동안 금고와 계약서가 모두 사라졌다.
“오늘 좋은 말 많이 했어요.” 리네아가 속삭였다.
“어떤 말이요?”
“다들 자기 결정을 할 수 있다고요.”
“당연한 말이잖아요.”
“그 당연한 말을 지키는 게 어렵죠.”
그녀는 발끝으로 몸을 조금 들어 그의 입술에 짧게 입 맞췄다. 태오는 잠깐 동작을 놓쳤지만 이번에는 발을 밟지 않았다.
“저 좀 늘었죠?” 그가 물었다.
“춤은 아직 멀었어요.”
“그럼 뭐가요?”
“제 말 듣는 건요.”
그들은 함께 웃었다.
***
귀가하던 태오는 로벤에게서 접힌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노인은 공동 조사에 계속 참여하겠다고 표시한 본인 확인서의 사본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여기에 내 뜻이 제대로 적혔는지 한번 더 읽어 주게.”
태오는 문서를 천천히 읽었다. 로벤은 중간에 한 번 말을 멈춰 달라고 하고 '자료 공동 확인'과 '현금 지급에 대한 개별 협의'가 서로 다른 항목인지 재차 물었다.
“네. 둘 중 하나를 포기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럼 됐네. 내가 늙었다고 남이 대신 정하게 둘 수는 없지.”
노인은 종이를 접어 속주머니에 넣었다.
태오는 그 동작을 오래 보았다. 수십 장의 왕실 기록을 찾는 것보다, 이 낡은 종이 한 장이 오늘 더 확실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서류를 모두 정리한 뒤 태오는 각 참가자의 동의 표시를 다시 대조했다. 이름 옆에 체크 표시가 하나라도 잘못 옮겨졌다면 누군가의 의사가 바뀐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마르셀은 회의록 서명 전에 사람마다 자기 부분을 확인하는 시간을 별도로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두가 같은 문구에 서명할 필요는 없군요.”
“오히려 그렇게 하면 오늘 모인 이유가 없어지겠죠.”
태오는 마지막 장에 날짜를 적었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누구의 목소리도 빼놓지 않았다고 느꼈다.
밤에 돌아온 태오는 오늘 회의록을 끝까지 읽었다. 특별한 결론은 없었다. 강제 반환 명령이 나온 것도 아니었고, 계정 47의 관리권이 밝혀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열한 사람의 의사가 열한 개의 칸에 각기 다른 문장으로 기록됐다.
그때 전달석이 울렸다.
세딘이 제4 확인석에서 보낸 문서였다.
[원 권리자 동의서 묶음의 반대 진술서와 후속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를 대조할 때 기재 날짜 불일치 확인. 후속 위임 확인서의 기재일이 반대 진술서 접수일보다 뒤임. 실제 작성일과 유효한 접수 시점은 추가 검증 필요.]
태오는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점점 선명해졌다. 처음부터 사람들이 동의했다고 적힌 문서는 사실 반대 의견을 받은 뒤에 만들어졌을 수 있었다.
그는 수첩에 적었다.
[나중에 온 종이는 먼저 한 말을 지울 수 없다. 지우려 했다면 누가, 왜 그렇게 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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