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기록국의 작은 공개실에는 의자 네 개와 자물쇠 달린 장 하나가 있었다.
김태오는 의자가 부족하다는 사실보다, 탁자 위에 놓인 '제7 우편함 개함 확인표 부속 인계대장'이라는 제목에 더 신경이 쓰였다.
“제목이 참 기네요.”
토른이 턱수염을 만졌다.
“문서가 길다고 내용이 깊은 건 아니지.”
“드워프 건축 도면도 이름이 길던데요.”
“그건 정확해서 길어진 거다.”
태오가 웃었다. 리네아가 옆에서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며칠 동안 다렌의 이름을 쫓아다닌 탓에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원본을 볼 수 있는 날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세딘이 부속 대장을 펼쳤다. 개함 확인표에는 관리인과 기록 확인자 두 사람이 나왔고, 우편함을 실제로 연 봉인 조작자의 표식이 별도로 있었다.
“세 사람이군요.” 태오가 말했다.
“명부상 확인 역할은 세 가지입니다.” 세딘이 대답했다. “실제 현장에 세 사람만 있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태오는 서두르지 않고 사본을 살폈다. 관리인 이름 일부는 판독할 수 있었지만, 외부 확인자의 이름은 작은 물 얼룩 때문에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가장 아래에 묘한 문구가 보였다.
[현장 동석: 추가 1인. 별도 방문등록부 참조.]
“네 번째 사람이 있었네요.”
“동석 기록은 있습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 개함 절차에 참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과 열쇠를 돌렸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
그날 오후 다렌 코르와 다시 만났다. 그는 남문 치료소 기록과 수령증 대조 결과를 전달받았지만, 표정이 편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날 내가 치료소에 있었다면 누가 내 이름으로 받았겠소?”
“아직 모릅니다.” 태오가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인정받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가.”
“직접 받았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은 확인했습니다. 다만 대리 수령 문서가 있었는지 아직 대조 중입니다.”
코르는 손등의 상처를 바라봤다.
“나는 그때 내 이름을 가진 종이보다 내 손이 더 걱정이었소. 일을 못 하면 먹고살 수 없었으니까.”
그 말은 태오의 가슴을 찔렀다. 자신은 보증금 때문에 작업장을 잃을 뻔했고, 코르는 상처 때문에 생계를 놓을 뻔했다. 그들에게 문서는 목적이 아니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되찾기 위한 수단이었다.
“문제의 명의가 당신인 이상, 관련된 문서가 확인되면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코르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주시오.”
***
마르셀은 추가 방문등록부를 보관하던 북부 문서국이 최근 정리한 목록을 가져왔다. 그 안에는 제7 우편함 개함일의 출입 명부가 있었다. 방문 목적과 입회 여부는 별도 칸으로 나뉘어 있었다.
“추가 동석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죠?” 태오가 물었다.
“기록에 따르면 주소 충돌 민원과 관련한 참관인입니다.”
“제4 확인석 쪽 사람이었습니까?”
“소속은 그렇게 표시되어 있습니다. 다만 지금까지 확인된 미라 시엔의 표식과는 다릅니다.”
미라는 그날 야간 대체 담당자였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었다. 태오는 참관인이 어떤 자료를 볼 수 있었는지도 물었다.
“원칙적으로 개함 확인과 보관 상태를 지켜볼 수 있었으나, 개별 권리의 승인권은 없었습니다.” 이벨이 설명했다.
다시 역할이 갈라졌다. 열쇠를 돌린 사람, 그것을 확인한 사람, 뒤에서 지켜본 사람. 누구도 그 사실만으로 세입자 대신 원금을 받을 권리를 얻지는 못했다.
“그런데 왜 추가 동석자를 별도 기록으로 남겼을까요?”
“현장 절차에 이의가 있었을 수도 있고, 단순한 행정 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열린 질문이었다.
***
오후에 기록국 앞에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시장에서 돌아다니던 소문 때문이었다. 누군가 네 번째 동석자가 다렌 코르였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이 바로 브라운이었다고 말했다.
김태오는 소란을 듣고 곧장 창구로 갔다. 그러나 관리인은 공개할 수 있는 정보가 아직 없다고 답했다.
“그럼 확인되지 않았다는 안내를 해 주시면 안 됩니까?”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마르셀은 공개 안내문을 만들었다.
[제7 우편함 개함일 추가 동석자 기록 존재. 현재 실명·역할 검증 중. 특정인이라고 확인된 바 없음.]
소문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태오는 시장 입구에서 누군가가 '드래곤이 네 번째 사람으로 둔갑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고개를 저었다.
“저도 발카스 님이 많은 걸 숨겼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말까지 믿을 근거는 없죠.”
토른이 중얼거렸다.
“용이 자기 몸을 줄여서 사람 행세하는 건 실제로 가능하지 않나?”
“가능한 것과 했다는 건 다릅니다.”
“그래. 알았다. 이제 네가 내 말버릇까지 고치는군.”
그들은 시장을 지나 조정실로 돌아왔다. 작은 소문을 바로잡는 데도 하루의 절반이 지나갔다. 태오는 점점 문서뿐 아니라 사람들이 그 문서에 붙이는 상상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등록관 마르셀은 다음 열람 절차를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당사자의 동의를 강조했다. 원 권리자 동의서 묶음에 실제 이름이 적혀 있다 해도 바로 공개할 수는 없었다. 오래된 주소나 가족의 정보가 포함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검증합니까?” 태오가 물었다.
“봉인 상태와 작성 시점부터 확인한 뒤, 해당 당사자에게 필요한 부분만 대조하는 절차를 신청해야겠죠.”
“문서가 진짜인지부터요.”
“그렇습니다. 이름이 있다고 권리자가 자동으로 동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태오는 코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쉽게 가져다 썼지만, 정작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그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리네아가 말했다.
“세입자들도 자기가 무엇에 동의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
“당신은 길드 감독이 아직 남아 있잖아요.”
“그래서 공식 절차로 할 거예요. 마음만 앞서지 않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각각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의 판단까지 대신하지는 않았다.
***
저녁에는 발카스가 조정실에 나왔다. 이번에는 호위도 수행원도 많지 않았다.
“인간. 아직 백오십오 닢이 남았지.”
“네. 며칠 전에 서른 닢을 받았으니까요.”
“돈 계산이 정확하군.”
태오는 아차 싶었다. 수첩의 사건 번호를 회차처럼 부르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한 번 틀리면 제가 손해거든요.”
발카스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나를 오래 기록할수록 나는 늙은 것처럼 느껴지는군.”
“수천 년 사셨으면서요.”
“그런 말까지 기록하지 마라.”
리네아가 웃음을 참았다.
발카스는 짧은 서류를 건넸다. 앞으로 발생하는 독립 자산 수익에서 추가 변제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확정 지급액도 날짜도 아직 적혀 있지 않았다.
“지금은 계획으로만 기록하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당연하다.”
“돈이 실제로 들어오면 누적액에 반영하죠.”
드래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에서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다. 누군가 거대한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말을 믿거나, 하찮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말을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
리네아는 등록소에서 돌아오는 길에 태오를 붙잡았다.
“오늘은 저녁 약속 지켜요.”
“오늘 또 있습니까?”
“제가 사흘 전에 말했잖아요.”
“아, 맞다.”
태오는 부끄러워졌다. 그는 왕국의 7년 전 날짜는 외우면서, 연인이 사흘 전에 한 말을 잊었다.
“미안합니다.”
“화난 건 아니에요.”
리네아는 그의 넥타이 대신 목도리를 바로 매 주었다.
“당신은 누가 문서 한 줄을 잘못 적으면 바로 알아차리죠. 그런데 자기 옆 사람 얼굴은 자주 놓쳐요.”
그녀의 말이 아팠다. 태오는 잠시 생각한 뒤 가방에서 수첩을 꺼냈다. 그 안의 빽빽한 기록들 사이 빈 페이지를 찾아 날짜를 적었다.
[리네아와 저녁. 업무 기록 금지.]
그녀가 그걸 보고 웃었다.
“데이트도 장부에 적어요?”
“이러면 안 잊을 겁니다.”
“정말 못 말리는 사람이네요.”
그날 저녁 태오는 한 번도 계정 47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침묵이 어색했지만, 리네아가 좋아하는 음식과 어릴 적 숲에서 살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당신은 언젠가 이 일을 끝내면 어디 가고 싶어요?” 태오가 물었다.
“바다요. 가을에 바닷바람이 좋대요.”
“그럼 같이 가요.”
“그 말, 지금 약속한 거예요?”
“네. 하지만 계약서로 만들진 않겠습니다.”
리네아는 그를 바라보다가 손을 잡았다.
“그거면 됐어요.”
***
세딘이 마지막으로 가져온 문서에는 매우 작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추가 동석자 기록이 작성된 시점과, 권리 정산 자료가 덧붙은 시점이 달랐다는 것이다. 동석자 이름은 빠져 있었고, 후대에 수정된 문구만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처음 그 사람이 참관했던 건 주소 충돌 문제였을 수도 있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중의 정산 첨부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어요.” 마르셀이 답했다.
“그런데 후대에 누가 그 사람의 역할을 바꾸어 적은 이유는 뭡니까?”
“아직 모릅니다.”
이벨은 원본 부속 인계대장을 요청했다. 한편 세딘은 표식이 덧씌워진 잉크층을 조사하기 위해 별도의 보존 허가를 준비했다. 태오는 그제야 문제의 결이 보였다. 누군가의 이름을 훔쳐 돈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아직 가설이었다. 그러나 다른 시점에 발생한 사건들이 하나의 기록으로 엮여 온 사실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기록을 바로잡으려면 실제 원 권리자들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그는 코르에게 전할 말을 짧게 적었다.
[당신의 이름과 관련한 새 자료가 발견되었습니다. 무리한 해석 없이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누군가 대리 수령을 했다고 해서 코르가 모든 걸 잃은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코르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해서 다른 세입자의 권리가 코르에게 넘어간 것도 아니었다. 태오는 그 원칙을 끝까지 지키기로 했다.
***
밤이 깊어질 무렵 세딘이 다시 찾아왔다. 그의 얼굴은 지친 듯했지만 손에는 작은 종이 상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원본 보관함에서 부속 방문등록부의 뒷장을 찾았습니다.”
태오와 리네아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번째 사람의 이름입니까?”
“일부 이름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방문 목적이 수정된 흔적입니다.”
원본 뒷면에는 처음 적힌 문구를 지우지 않고 위에 새로운 문구를 덧씌운 흔적이 남았다. 기존 문구는 '수취인 정정 상태 참관', 후대 수정 문구는 '권리 정산 첨부자료 인계 참관'이었다.
“그런데 후대 수정이 실제로 언제 이루어졌는지는요?”
“그 날짜를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는 두 문구를 바라봤다. 최초 임시 보류와 후속 위임 첨부를 한 사건처럼 취급했던 혼란이 여기에도 되풀이되고 있었다.
세딘이 상자 밑에서 작은 원본 표식을 꺼냈다. 도장의 숫자는 제7 우편함이 아니라, 이제는 여러 번 이름이 나온 파벨 주택조합 청산 준비실의 접수대 번호였다.
“이 사람이 청산 준비실 대리인이었다는 뜻입니까?”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세딘이 답했다. “그 사람이 방문한 뒤 청산 준비실에서 관련 보완 요청서를 접수했다는 표식일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요청서 원본은 어디 있습니까?”
세딘은 잠시 침묵했다.
“그게 문제입니다. 보관목록에는 있는데, 원본이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수령증의 다렌 코르 명의에서 시작한 추적이, 우편함을 연 현장, 거기 있던 네 번째 사람, 청산 준비실 접수 기록으로 이어졌다.
그때 세딘이 작은 봉투를 하나 더 보여 줬다.
[제4 확인석 반환 대상. 원 권리자 동의서 묶음. 개별 봉인 확인 전 열람 금지.]
그들은 그동안 위임 확인서만 찾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원 권리자의 동의서가 묶여 있다고 기록해 둔 것이다.
안에 정말 서명이 있는지, 누구의 것인지, 진짜 동의인지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태오는 봉투를 만지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종이가 누군가의 이름을 대신 말해 왔다. 이번만큼은 그 종이가 진짜 주인의 말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리네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다음에 열 수 있겠죠?”
“절차가 허락하면요.”
태오는 수첩에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동의했다고 적힌 종이는 있다. 동의한 사람이 실제로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다.
[남은 보증금 155금화. 아직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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