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스는 이번에는 경매가 아니라 임대 수익 정산표를 가져왔다.
“내가 가진 북부 창고 두 곳의 지난 분기 임대료다.”
김태오는 서류를 받아 들었다. 금고 계정과 관계없는 개인 소유 재산이었다. 바렌은 해당 수익에 선순위 담보나 다른 사람의 권리가 있는지 대조한 뒤 지급 가능한 순액을 산정했다고 설명했다.
“총액이 아니라 실제 지급 가능한 금액이 얼마입니까?”
“금화 서른 닢입니다.” 바렌이 대답했다.
태오의 손이 멈췄다. 삼십 닢. 처음 발카스가 반환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금액이었다.
“지금 받을 수 있습니까?”
“오늘 지급하고 회의록에 남기겠습니다.”
“조건은요?”
“기존 채무 원금에서 서른 닢을 줄이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태오는 한 글자씩 다시 확인했다. 이번에는 공동 진정 포기도, 47-B 증표 반환도, 다른 세입자의 권리를 대리 주장한다는 문구도 없었다.
“그러면 받겠습니다.”
금화가 놓인 주머니는 아주 평범했다. 드래곤의 보물처럼 빛나지도 않았고 마법으로 노래하지도 않았다. 세상 어디에나 있을 법한 낡은 주머니였다.
그러나 태오는 주머니를 받고 오랫동안 내려다봤다. 수백 년 묵은 분쟁의 그림자 속에서도 실제 돈은 서른 닢이었다. 이 서른 닢이면 작업대와 저울을 마련할 수 있었다.
마르셀이 기록을 낭독했다.
[최초 계약 원금 300금화. 기지급 115금화. 이번 지급 30금화. 누적 반환 145금화. 남은 미환급 원금 155금화.]
태오는 숫자를 다시 계산했다. 맞았다. 발카스가 자신의 의무를 직접 이행한 사실이 또 한 번 기록됐다.
***
발카스의 지급이 확인되자 바렌은 태오에게 별도의 서류를 내밀었다. 임대 수익이 실제로 계정 47과 무관한지 확인하기 위한 재원 명세였다.
태오는 표를 천천히 읽었다. 거기에는 북부 창고 임차인들이 낸 임대료, 해당 시설의 세금, 시설 유지비, 담보권 확인 결과가 적혀 있었다. 채무자가 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 늘 알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발카스가 스스로 증명자료를 제시했다.
“이런 자료를 내실 줄은 몰랐습니다.”
바렌이 답했다.
“이제는 누구도 계정 47의 돈을 몰래 빼냈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확인 가능한 만큼만 공개하면 됩니다. 다른 임차인들의 거래 내용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고요.”
“그 점은 감사하군요.”
태오는 지급명세서에 적힌 액수를 다시 보았다. 세금과 운영비를 제외한 지급 가능한 금액이 30금화였다. 돈을 벌기 위해 움직였던 사람들의 계약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의 몫으로 온 돈은 다른 임차인의 보증금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 발카스의 확인된 개인 수익에서 나왔다.
“집주인님께도 말씀해 주세요. 나머지 돈도 같은 방식으로 계획을 보여 달라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
“드디어 조금씩 끝나 가는군요.” 리네아가 말했다.
두 사람은 등록소를 나와 광장에서 따뜻한 차를 마셨다. 태오는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허리띠 안쪽에 넣었다.
“절반 가까이 받았습니다.”
“전부 돌려받는 날은 큰 파티를 해야겠어요.”
“다른 세입자들도 받으면요.”
리네아가 잠시 미소를 거뒀다.
“그날은 더 큰 파티를 하죠. 하지만 당신이 받은 돈을 기뻐하는 것도 괜찮아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늘 '아직'이라는 말만 붙이고 있었다. 아직 절반도 안 됐다, 아직 관리권이 불분명하다, 아직 서류가 오지 않았다. 그 말들이 현실이긴 했다. 그래도 손에 들어온 서른 닢은 분명한 진전이었다.
그는 찻잔을 들었다.
“오늘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그건 좋은데, 보증금에서 빼 쓰면 또 장부에 적으실 거죠?”
“당연하죠.”
“그럼 메뉴 선택 권한은 제게.”
“왜요?”
“당신은 가장 싼 걸 고를 테니까요.”
태오는 반박하려다 그녀가 맞다는 사실을 깨닫고 웃었다.
***
한편 세입자 모임에서는 태오의 반환 소식이 전해졌다. 로벤은 지팡이를 짚고 찾아와 축하했고, 소피는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조심스레 물었다.
“우리도 받을 수 있을까요?”
“제 사례는 발카스 개인 자산에서 지급한 겁니다. 같은 날 다른 분들께 얼마가 지급됐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에게 남은 길은요?”
태오는 미리 준비한 서류를 나눠 주었다. 지급명령을 약속하는 문서는 아니었다. 자기 계약의 원금과 기지급액을 확인하고, 개별 통지를 받은 적이 있는지 기록하는 표였다.
“이 자료가 모이면 각자 청구를 이어갈 때 도움이 됩니다. 모두 같은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어요.”
헤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도 이제 피곤하겠네.”
“피곤합니다.” 태오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는 오늘 받은 돈으로 작업장에 필요한 물품을 일부 마련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업 비용과 보증금 반환액을 같은 장부에서 뒤섞지 않기로 했다. 남의 돈뿐 아니라 자기 돈도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
로벤은 새로 받은 서른 닢 이야기를 듣고 태오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돈을 아껴 쓰게.”
“예. 우선 작업대만 살 생각입니다.”
“좋아. 다시 벌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건 중요하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벤 자신의 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노인은 진심으로 그를 축하했다.
“로벤 씨의 청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옛 기록을 정리하고 있네. 자네가 준 목록대로 날짜를 나눠 적으니 한결 낫더군.”
태오는 안도했다. 모든 사람의 사정을 대신 해결할 수는 없었지만, 옆에서 길을 밝히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날 그는 바렌에게 다른 세입자의 환급 계획도 가능하면 개별 권리와 계약 내용을 고려해 세우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바렌은 확인된 사실이 있을 때에만 공지하겠다고 답했다. 태오는 그 답이 당장 듣고 싶은 금액이 아니라도, 없는 지급액을 약속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가을바람이 차가워져 태오는 새 작업장 창을 닫았다. 리네아는 가방에서 목도리 하나를 꺼내 그의 목에 둘러 주었다.
“이것도 장부에 적어야 하나요?” 태오가 물었다.
“아뇨. 선물이니까.”
“그럼 답례는요?”
“무사히 돌아와서 저녁 같이 먹기.”
태오는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돈으로 값을 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그 사실을 알고도 늘 숫자만 셌다. 이제는 가끔 셈을 멈춰도 괜찮다는 걸 배워 가고 있었다.
***
그날 오후 태오는 작업장 후보를 찾던 중 작은 상인의 상담 요청을 받았다. 물류 상단에서 일하던 시절 알고 지내던 곡물 상인이었다.
“상자 열둘을 보내야 하는데 상대편은 열 개밖에 못 받았다고 하네. 운송장을 확인해 줄 수 있겠나?”
태오는 잠시 고민했다. 아직 정식 영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증명해 볼 기회이기도 했다.
“자료는 같이 보겠습니다. 제가 직접 운송한 건 아니니 책임을 대신 지는 건 아니고요.”
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상자에 붙은 번호와 운송장 일련번호를 대조했다. 두 개의 상자는 처음부터 다른 곳으로 보내진 게 아니라, 중간 창고에서 임시 보관됐다는 표시가 있었다.
“이 두 개는 분실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아직 보관 중일 가능성이 큽니다. 중간 창고에 확인 요청을 넣어 보세요.”
상인은 감사하다며 작은 은화를 건넸다. 태오는 기록 검토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 처음이라 잠시 얼떨떨했다.
“정식으로 영업을 시작하면 더 좋은 자리에서 뵙겠습니다.”
상인이 떠난 뒤 태오는 은화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자신이 처음 이세계에서 짐꾼으로 돈을 벌던 때와는 달랐다. 이제는 손의 힘보다 기록을 읽는 능력으로 대가를 받았다.
리네아가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드래곤에게 전세금을 받다가 기록 전문가가 된 거네요.”
“원래 물류 기록도 했습니다.”
“그럼 드래곤이 실무 교육을 시켜 준 셈이군요.”
“수강료가 너무 비쌌습니다.”
둘은 크게 웃었다.
***
해가 질 무렵 토른이 작업장에 찾아왔다. 그는 창턱의 뒤틀린 못 하나를 빼내고 새 못을 박아 주었다.
“아직 계약 전인데 이렇게 해도 됩니까?” 태오가 물었다.
“관리인 허락받았다. 못 하나 고치는 건 건축 허가가 필요 없을 테니까.”
“드워프가 그런 말씀을 하니 믿음직하네요.”
토른은 웃더니 창문을 활짝 열었다. 먼지가 햇살 속에서 날렸다. 태오는 그곳에 서서 몇 달 뒤의 모습을 그려 봤다. 물류 상인들이 작은 상자를 맡기고, 누락된 물건을 찾고, 돈을 정산하는 모습이었다.
“세상 모든 계약서를 다 믿을 수는 없어도, 내가 쓰는 장부는 정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목표다.” 토른이 말했다. “하지만 쉴 시간도 적어 둬라.”
“토른 씨까지 그러십니까?”
“네 엘프가 부탁했다.”
태오는 창밖을 바라봤다. 리네아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두 분이 언제 한편이 되신 겁니까?”
“네가 드래곤의 수리비 청구서를 읽는 동안.”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은 어느새 돈 문제만큼이나 그의 생활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장부에 새 줄을 만들었다.
[일주일 중 하루는 일찍 퇴근.]
***
그날 저녁 태오는 새 작업장을 다시 찾았다. 리네아가 알려 준 동문의 작은 가게였다. 문을 열면 나무 냄새가 났고, 창 아래에는 빛이 꽤 오래 머물렀다.
“이 정도면 서류 선반 세 개는 들어가겠어요.”
“침대는요?” 리네아가 물었다.
태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침대요?”
“늦게까지 일하면 여기서 자려고 할 거 아니에요.”
“아, 그런 뜻이었습니까.”
“다른 뜻으로 들렸어요?”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태오는 잠시 손에 든 도면을 잊었다.
“리네아 씨는 가끔 일부러 그러시죠.”
“어떤 걸요?”
“제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요.”
“그럼 대답하지 마요.”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다. 태오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자 리네아는 눈을 감았다가 웃으며 속삭였다.
“그래도 침대는 놓지 말아요. 여기서는 일만 하고, 집에선 쉬게.”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어떤 계약보다 따뜻하게 들렸다.
***
저녁 식사 자리에서 태오는 앞으로의 생활비를 어떻게 나눌지 리네아와 이야기했다. 동거를 당장 결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지출과 미래 계획을 존중하고 싶었다.
“돈을 돌려받았다고 해서 전부 사업에 넣을 생각은 없어요.” 태오가 말했다.
“잘 생각하셨어요. 다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저를 지나치게 걱정하십니까?”
“처음 보증금 300금화를 낸 사람이잖아요.”
“그건 또 언제까지 놀리실 겁니까?”
“남은 155금화를 다 받는 날까지?”
태오는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늘 숫자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날이 오면 뭘 하실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리네아는 포크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고민했다.
“당신이 보증금 얘기 없이 하루를 보내는지 확인할 거예요.”
“그건 제게 너무 어려운 시험입니다.”
“그럼 반나절만.”
그들은 웃었다. 누군가의 손에 묶여 있던 돈이 조금씩 돌아오는 사이, 태오의 삶에도 작은 선택지가 돌아오고 있었다.
***
밤에는 기록관 세딘의 전달이 왔다. 제7 우편함 개함 확인표의 원본 대조가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태오는 지급 장부를 덮고 새 종이를 펼쳤다.
[개함 사유: 수취인 정정 보류 관련 서신의 보관 상태 확인.]
[개함 입회: 상자 관리인 및 외부 기록 확인자.]
[개함 후 조치: 특정 봉투 1점 재봉함, 반송 분류.]
“외부 기록 확인자?” 태오가 중얼거렸다.
리네아가 다가왔다.
“이름은 없어요?”
“뒷면에 별도 표식이 있다고 합니다.”
정확한 이름을 밝히려면 부속 인계대장을 봐야 했다. 다렌 코르 명의 수령증과 연결된 봉투가 그것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태오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오늘 받은 서른 닢 때문에 잠시 숨을 돌렸지만, 오래된 서류는 여전히 새로운 문제를 던졌다.
리네아가 물었다.
“내일도 기록을 보러 갈 거예요?”
“오전에는요. 오후에는 작업장 계약서를 보겠습니다.”
“좋은 계획이네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회복해야 할 돈과 시작해야 할 삶이 이제 같은 시간표에 놓이기 시작했다.
그의 장부 맨 끝에는 새로운 숫자가 적혔다.
[남은 보증금: 155금화.]
제7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