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렌 코르의 이름은 일곱 해 전의 수령증에 적혀 있었다.
김태오는 그 사실을 세 번 읽고, 세 번 모두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름이 같다는 사실밖에 알 수 없다는 결론이었다.
“조금 실망했어요?”
리네아가 서신보관소 출입증을 그의 옷깃에 달아 주며 물었다.
“솔직히요? 이름 하나 나오면 문제가 풀릴 줄 알았습니다.”
“일곱 해 동안 아무도 못 푼 문제가 그렇게 쉽게 풀리면, 태오 씨가 지난달 내내 잠을 설친 게 억울하잖아요.”
“잘 알고 계시네요.”
“새벽 두 시에 계약서를 품에 안고 주무시는 분이니까요.”
태오는 재빨리 목소리를 낮췄다. 복도 끝에서 서신보관소의 세딘 기록관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얘기는 사람들 앞에서 하지 마세요.”
“무슨 얘기요? 계약서랑 한 침대 쓴다는 얘기?”
“리네아 씨.”
그녀가 웃었다. 태오는 입가가 올라가는 걸 막지 못했다. 두 사람이 연인이 된 뒤부터 리네아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기술이 늘고 있었다. 반면 그는 반격용 문장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세딘은 두 사람의 표정을 훑어보더니 탁자 위에 회색 장갑 두 켤레를 올려놓았다.
“오늘 보실 것은 실물 수령증의 앞면과 뒷면, 봉인 상태, 그리고 접수인의 필체 대조표입니다. 반출은 안 됩니다.”
“사본은요?”
“이해관계자 이름과 주소를 가린 열람용 사본만 드립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확인된 정보보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더 중요한 때였다. 억지로 이름을 얻어 봤자 증거를 잃으면 아무 소용 없었다.
문서의 앞면은 생각보다 평범했다. 날짜, 인계 목적, 수령 장소, 수령인 명의. '다렌 코르'라는 이름 아래에는 비스듬한 획이 하나 있었다.
“이게 서명입니까?”
“그렇게 적힌 칸입니다.” 세딘이 대답했다. “실제로 당사자가 그은 획인지, 담당자가 대신 기재했는지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칸 옆의 작은 사각형을 가리켰다.
“여기 ‘입회 확인’은 비어 있는데요.”
“맞습니다. 다만 당시 규칙상 모든 인계에 입회인이 필요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입회인이 없다고 위조라고 할 수도 없는 거네요.”
“정확합니다.”
태오는 벌써 머리가 아팠다. 무엇을 찾아도 결론이 한 발씩 뒤로 물러났다.
마르셀이 합류한 뒤 수령증 뒷면을 살폈다. 누렇게 변한 모서리 아래 세 줄의 필기가 있었다.
[인계 대상: 위임 관련 통지 서류, 밀봉 1점.]
[처리: 수취인 명의 확인 보류.]
[참고: 대리 수령 소명서 별도 편철 예정.]
“대리 수령 소명서.” 태오가 중얼거렸다. “그럼 코르가 직접 받았다는 것도 아닌데, 이름은 코르로 적을 수 있었다는 말이군요.”
이벨 자문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다만 소명서가 실제 작성됐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예정이라는 말만으로 접수 완료를 뜻하지 않거든요.”
세딘이 창고 색인을 열었다. 열람 신청서 네 장, 다른 보관소로 이동한 편철 기록 두 건. 모두 대리 수령 소명서의 정확한 번호는 가리지 않았다. 일부 글자는 물에 번져 있었다.
“또 종이를 찾아야 하는군요.” 태오가 말했다.
토른은 두툼한 장갑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난 이제 왜 인간이 종이를 보관하려고 돌집을 만드는지 알겠어. 종이가 사람을 이기니까.”
“드워프도 도면 보관하잖습니까.”
“우린 도면을 보면 집을 짓는다. 너희는 종이를 보면 새 종이를 요구해.”
아무도 반박하지 못했다.
***
오후에는 다렌 코르가 임시 면담실로 왔다.
그는 회색 외투를 입고 있었고, 지난번보다 낯빛이 나아 보였다. 처음 등장했을 때의 날선 경계심 대신 피곤한 체념이 자리해 있었다.
“내 이름이 나왔다지?”
“네. 그 이름이 수령인 칸에 있습니다.”
“그럼 이제 내가 맞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
태오는 숨을 골랐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날 실제로 어디에 계셨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코르의 턱이 굳었다.
“일곱 해 전 어느 날의 시간을 지금 기억해 내라고?”
“기억으로 단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병원, 일한 곳, 함께 있었던 사람의 기록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내가 그때 다쳤다는 건 말했잖소.”
태오는 코르가 왼손으로 차잔을 잡는 모습을 보았다. 예전에도 그랬다. 오른손은 손등부터 손목까지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고, 세 손가락은 조금 굳어 있었다.
“어느 치료소였습니까?”
“남문 자선치료소요.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이벨이 메모했다.
“치료기록이 있다고 해도 개인의 민감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방문 사실과 그날 움직일 수 있었는지 정도만, 본인 동의 범위에서 확인하죠.”
코르는 의자를 밀고 일어났다.
“내가 내 이름을 증명하려고 또 남에게 허락받아야 한다니.”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보다 오래된 피로가 묻어 있었다.
태오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 자신도 여섯 달째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본인입니다'라는 설명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기록을 찾으면 먼저 보여 드리겠습니다. 당신에 관한 일이니까요.”
코르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가져다 쓰는 동안, 내가 어디 있었는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소.”
태오는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
늦은 오후 리네아는 파벨 동문의 빈 작업장 두 곳을 보여 줬다. 태오는 여전히 매달 임대료를 낼 형편을 계산해야 했지만,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첫 번째 작업장은 지붕에 구멍이 있었고 두 번째는 창문 아래에 곰팡이가 폈다.
“보증금 없는 임대라고 써 놓고 이 모양입니까?”
“지붕 없는 곳은 집주인이 '하늘 전망이 좋다'고 광고했어요.”
“그 집주인도 드래곤입니까?”
“아니요. 인간이 더 무서울 때도 있죠.”
둘은 웃다가 동시에 조용해졌다. 창이 깨진 작업장 한쪽에 낡은 원목 탁자가 있었다. 태오는 그곳에 거래 장부와 운송 물품을 놓는 모습을 상상했다. 여전히 생계를 꾸릴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받지 못한 돈을 미끼로 또 불리한 계약을 맺을 순 없었다.
리네아가 그 옆에 섰다.
“제가 계약서를 읽어 드릴까요?”
“엘프 중개인이 곁에 있다는 게 다행입니다.”
“중개 수수료는요?”
“얼마를 원하십니까?”
그녀가 태오의 외투 소매를 당겨 살짝 입을 맞췄다.
“선불로 받을게요.”
태오가 손에 든 도면을 떨어뜨렸다.
“이런 청구 방식은 고지 의무 위반 아닙니까?”
“어머, 거절하실 건가요?”
“이의 신청 기간부터 알려 주세요.”
리네아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발카스도, 왕실도, 관리권도 잠깐 멀어졌다.
***
한편 같은 날 마르셀은 수령증 원본의 날짜를 기록관과 대조했다. 표면에 보이는 날짜와 창구 접수대장에 적힌 날짜는 같았지만, 담당자가 뒤늦게 결재한 흔적이 있었다.
“결재일이 늦으면 수령일까지 바뀝니까?” 태오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문서를 실제로 건넨 시점과 사후 기록을 승인한 시점은 다를 수 있어요.”
그 말은 코르의 치료소 방문일을 대조할 때도 중요했다. 기록이 작성된 날과 실제로 봉투가 이동한 날이 다르면 사람의 동선을 판단하는 방법부터 달라져야 했다.
태오는 작은 표를 만들었다. 왼쪽에는 치료소의 날짜, 오른쪽에는 우편함의 인계 일자, 맨 아래에는 결재와 후속 편철의 시점을 적었다.
“새 날짜가 하나 생길 때마다 일이 두 배가 됩니다.”
마르셀이 웃었다.
“그래도 잘못된 결론을 내는 것보다는 낫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태오는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이제 필요한 건 다렌 코르의 손글씨와 흉터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당일 어떤 시각에 어떤 절차가 이루어졌는지 보여 주는 기록이었다.
리네아는 그가 또 가방을 여미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오늘은 그만해요. 저녁 먹을 시간이에요.”
“알겠습니다. 대신 내일 일찍 시작하죠.”
“좋아요. 내일은 제가 빵 사 올게요.”
두 사람은 문을 나섰다. 파벨시의 평범한 저녁 풍경이 복잡한 기록과 무관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
태오는 코르에게서 들은 말을 생각하며 헤스의 빵집을 찾았다.
헤스는 빵 반죽을 나누고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가게 안에 손님이 셋이나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갓 구운 빵을 기다렸고 누군가는 외상값을 갚으러 왔다.
“무슨 일이야? 또 보증금인가?”
“이번엔 사람의 이름입니다.”
태오는 간단한 사정을 설명했다. 헤스는 반죽을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다렌 코르라면 다친 손으로도 쪽지를 쓰던 사람이지.”
“오른손이었나요?”
“그렇게까지 기억나진 않아. 다만 한동안 누가 대신 물품 인수증을 써 줬던 건 기억나네.”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누가요?”
“동업자라고 소개했는데 이름은 생각이 안 나. 다렌 베스는 아니었어. 베스는 그때 한 번 본 적이 있으니까.”
헤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창고의 상자를 열었다. 오래된 쪽지 여러 장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날짜도 없는 낡은 메모가 대부분이었다.
“이게 직접 쓴 건지, 남이 써 준 건지는 모르겠구먼.”
태오는 곧장 손을 내밀지 않았다.
“사본을 만들어도 될까요? 원본은 여기 두시고요. 다렌 씨 본인의 동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참 까다롭기도 해. 하지만 맞는 말이지.”
헤스는 기록관에게 상담을 요청하기로 했다. 태오는 낡은 종이를 보며 깨달았다. 만약 누군가 대신 서명해 준 적이 있다면 그 자체로 범죄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부탁받아 써 준 경우도 있을 테니까.
밖으로 나오자 로벤이 빵집 앞에 마차를 세우고 있었다.
“오늘은 상자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지?”
“소문이 빠르네요.”
“이 도시에선 마차보다 소문이 먼저 도착하니까.”
로벤은 태오에게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일곱 해 전 남문 치료소를 지날 때 비가 많이 내려 운송이 지연된 날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일지의 몇 장이 물에 젖어 새 장부로 옮겨 적혔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 날짜를 확인할 수 있습니까?”
“내일 찾아보지. 다만 날짜가 맞아도 내가 무슨 서류를 운반했는지는 알 수 없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태오는 대답하면서 자기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충분한 건 전혀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을 모르는지 더 분명해지는 것만으로 다음 걸음을 정할 수 있었다.
***
집으로 돌아오자 소피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잠들어 있어서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제 이름도 누가 대신 썼을까요?”
태오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남의 이름이 적혔다는 이유로 모든 서류가 잘못됐다고 보면 안 되니까요.”
소피는 손에 쥔 통지서 모서리를 접었다.
“내가 무슨 동의를 했다고 적혀 있을까 봐 무서워요. 그때는 아이가 아파서 밤새 약방만 다녔거든요.”
태오는 미리 만든 점검표를 꺼냈다. 어떤 문서를 실제로 받았는지, 본인이 서명한 적이 있는지, 위임장을 써 준 적이 있는지만 표시하는 간단한 표였다.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다고 쓰세요. 틀린 답을 쓰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적어도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기억을 꾸미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됩니다.”
소피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태오는 종이를 돌려준 뒤 잠든 아이의 발이 담요 밖으로 나와 있는 걸 보고 조심스레 담요를 덮어 주었다.
“돈을 돌려받으면 어디로 가실 겁니까?”
“아마 남문 쪽으로요. 아이 학교에서 가까운 곳이 좋겠어요.”
태오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자신에게 보증금은 작업장을 다시 열 돈이었다. 소피에게는 아이가 매일 걸어야 하는 길의 길이를 바꾸는 돈이었다.
그날 그는 조사에 필요한 질문을 하나 덧붙였다.
[문서의 명의자가 서류를 받지 못했다면, 그 사람은 무엇을 놓쳤는가.]
***
밤이 되자 세딘에게서 전달석이 왔다. 대리 수령 소명서의 보관 위치를 찾았다는 연락이었다. 그런데 문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찾으러 왔던 사람의 접수 대장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열람 신청: 인계 수령증 별도 편철 확인 요청.]
[신청 주체: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당시 운용 담당자.]
[성명: 후면 색인 누락.]
태오는 한참 그 문장을 보았다. 코르의 이름으로 문서를 받았다는 수령증. 그 수령증을 나중에 찾아보려 했던 우편함 담당자. 두 기록의 거리는 멀지 않았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저 코르의 서명과 필체만 대조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날 누군가 대리 수령을 허락했다면, 누가 그 허락을 보관했는지도 알아야 했다.
태오는 수첩에 다음 줄을 적었다.
[이름은 수령증에 남는다. 허락은 어디에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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