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 서신보관소의 이른 아침에는 종이 냄새가 났다.
김태오는 맨 앞줄에 앉아 봉인 상자를 바라봤다. 리네아가 옆에서 그의 주머니 속 손을 잡았다. 긴장이 올라올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계약서 끝을 구기는 버릇을 알고 있어서였다.
“구기지 말아요.”
“안 구겼습니다.”
“지금 손안에서 소리 나요.”
태오는 주머니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모서리가 이미 조금 접혀 있었다.
“한 장만 더 구겨지면 소송감이네요.”
“그러면 당신이 당신 자신을 고소해야겠네요.”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웃었다.
오늘 보존기관은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의 일부 원문을 공개하기로 했다. 원본 전체를 무제한으로 내놓는 건 아니었다. 계약자 이름과 주소, 개인 인장은 가리고, 신청 권한과 그 효력에 관한 문구만 입회하에 읽을 수 있었다.
세딘은 봉인의 상태를 다시 기록했다. 원판 보존갑 자체는 여전히 봉인을 유지했다. 오늘 여는 것은 별도 보관된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 첨부 봉투였다. 토른은 그 차이를 태오에게 세 번 설명했다.
“원판 갑을 여는 게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누가 열었다고 써 놓으면 내가 증인으로 나설 거야.”
“저도 그렇게 쓸 생각 없습니다.”
“좋아.”
토른은 그제야 팔짱을 풀었다.
***
제한 열람이 시작되기 전, 세딘은 참관인들에게 봉인 상자와 원본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건 처음부터 한 묶음으로 작성된 문서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외관만으로도 종이 질감과 인장 위치가 다릅니다.”
토른이 손가락으로 봉인된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두 번째 장은 구멍이 하나 더 있군. 다른 문서에 묶였다가 옮겨 붙였을 수 있어.”
“그럴 가능성을 기록할 수는 있지만, 실제 경위는 원본의 인계 목록과 대조해야 합니다.” 세딘이 말했다.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가 몰래 문서를 끼워 넣었다고 상상하는 것은 쉬웠다. 하지만 담당자가 정상적으로 보완 서류를 추가했을 수도 있었다. 같은 사실이 전혀 다른 두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다.
마르셀이 확인할 항목을 읽었다.
“첫째, 처음부터 함께 접수된 문서인지. 둘째, 중간에 보완된 문서라면 누가 어떤 자격으로 제출했는지. 셋째, 그 이후 권리자의 개별 동의가 있었는지.”
“넷째는요?” 태오가 물었다.
“실제 지급이 있었는지입니다. 지금 문서만으로 지급까지 이뤄졌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태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드래곤의 거대한 금고를 상상하며 이 사건을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문은 종이 세 장 사이에 있었다.
***
봉투에서는 얇은 세 장이 나왔다.
첫 장에는 주택조합 청산 준비실의 대리 신청서가 있었다. 다음 장은 제7 임시 보관 우편함으로의 대체 통지 요청서였다. 마지막 장에는 별도의 제목이 붙어 있었다.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
세딘이 문서의 작성 시기와 보존 상태를 읽었다. 오래된 종이라는 사실은 확인됐지만 적법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작성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마르셀이 차폐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계약자 여러 명의 수취 주소를 한꺼번에 바꾸려는 요청이 있습니다. 그런데 원금 지급 권리를 함께 대리한다는 문구가 붙어 있어요.”
이벨이 원문을 확인했다.
“정확히는 ‘대체 수령처에 통지가 도달하면 개별 권리자의 통지 수령 확인을 대신할 수 있다’는 주장과, ‘정산 관련 회신과 지급 안내를 통합 대행한다’는 주장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돈도 받을 수 있다는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아닙니다. 문구가 그렇게 해석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 실제로 권리를 넘겼는지는 따로 심사해야 합니다. 개별 권리자의 명시적 위임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모두가 ‘금고에서 돈을 누가 가져갔는가’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 누군가는 먼저 ‘누가 편지를 받은 것으로 취급되는가’를 바꾸려 했던 것이다.
***
첫 장의 신청 주체는 ‘파벨 주택조합 청산 준비실 대리’였다. 다만 실명 서명란은 원본에서 일부 훼손돼 있었다. 옆에는 당대에 등록된 도장과 닮은 인장이 남아 있었다.
“이게 진짜 인장이면 신청이 유효한 거 아닙니까?” 발카스가 물었다.
토른이 고개를 저었다.
“진짜 금속으로 만든 열쇠라도 잠금장치가 허락해야 문이 열립니다. 인장만으로 모든 위임을 대신할 수는 없지요.”
“네가 지금 나를 가르치느냐?”
“아뇨. 문 이야기를 했을 뿐입니다.”
태오가 웃음을 삼키다 발카스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엔 좋은 설명인데요.”
“네 의견은 묻지 않았다.”
“오늘은 공개 조정실이라 발언권이 있습니다.”
발카스가 긴 숨을 내쉬었다.
***
미라 시엔이 원문을 읽은 뒤 고개를 들었다.
“제가 처리 보류를 요청한 건 주소가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런 지급 관련 조항까지 있었는지는 모르겠어요. 제게 왔던 요약본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벨이 물었다.
“확실합니까?”
“확실하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보류 사유를 더 강하게 적었을 겁니다.”
세딘은 원문 묶음의 인계 날짜를 확인했다.
처음 들어온 대체 통지 요청서의 접수 날짜는 발카스의 처분 보류 요구서보다 이틀 전이었다. 그리고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의 인계 기록은 그보다 뒤에 붙어 있었다. 문서 자체의 작성 날짜는 불명확했다.
태오는 숫자를 세었다.
“그러면 첫 보류 표시가 붙을 때와 권리 정산 문서가 확인석 기록에 추가됐을 때 사이에 시간이 있군요.”
“그렇습니다.” 세딘이 대답했다. “처음부터 한 묶음으로 제출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발카스 님도 첫 요청 뒤에 경고문을 받은 거고요.”
드래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열람실 밖에서는 소피가 자신의 계약서 사본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의자 위에서 잠이 들었고, 소피는 작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제 이름도 저 문서에 있습니까?”
태오는 대답하기 전에 마르셀을 바라봤다. 당사자가 본인 정보를 확인할 권리가 있지만, 아직 제한 열람이 진행 중이었다.
“오늘 열람 범위에서는 개별 명단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소피 씨 계약번호가 옛 공동 통지 묶음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전에 확인했습니다.”
소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서명하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편지를 받았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이벨이 옆에서 설명했다.
“그 경우에는 당사자 동의와 위임의 진위를 따져야 합니다. 문서에 이름이 있다는 것만으로 권리를 넘긴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럼 제 목소리도 기록해 주세요.”
소피는 자기를 향해 고개를 숙인 사람들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저는 그 시기에 누군가에게 제 보증금을 받아 달라고 맡긴 기억이 없습니다. 서명한 적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당시 받은 서류를 모두 보관하지 못했으니 기록으로 확인하고 싶습니다.”
태오는 그녀의 진술을 그대로 적었다. 확신하는 부분과 모르는 부분이 동시에 있었다. 그 말이 오히려 믿음직했다.
오후 발표 직전에 발카스는 태오를 한쪽으로 불렀다.
“만약 누군가 잘못된 주소를 써 넣었더라도, 내 보류 요구가 없었다면 너희 돈이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갔을까?”
“알 수 없습니다. 실제 지급이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넌 한 번도 쉽게 고맙다고 하지 않는군.”
태오는 그를 바라봤다.
“집주인님이 당시 다른 사람 돈을 지키려고 행동했다는 증거가 나오면 그 행동에 대해서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하지만 제 보증금은 계약대로 돌려주셔야죠.”
발카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인간이란 종족을 몇천 년 지켜봤지만, 너처럼 감사와 청구를 한 문장에 넣는 자는 드물다.”
“저한테는 둘 다 중요하거든요.”
“그래. 나도 이제 안다.”
드래곤은 돌아서려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때 경고문을 보낸 자가 누구인지 찾으면 나에게도 알려라. 내가 받은 도움인지, 누군가의 장난인지 알고 싶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으로 발카스의 질문과 자신의 질문이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
오후에는 다렌 코르의 개인 기록과 청산 준비실의 신청서가 대조됐다. 코르의 이름이 들어 있는 계약번호가 원문 목록에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코르가 서명했다고 확정할 수 있는 원본 인장은 보이지 않았다.
“내 이름이 들어 있다고 내가 위임한 건 아니겠지.” 코르가 낮게 말했다.
태오는 그를 바라봤다.
“맞습니다. 선생님의 직접 동의가 있었는지 더 확인해야 합니다.”
베스가 덧붙였다.
“그 시기 청산 준비실에서는 이름을 모아 목록을 만들었소. 목록에 있다는 것과 계약 당사자가 동의했다는 건 다르지.”
태오는 그 차이를 수첩에 적었다. 또 하나의 작은 선이었다.
[명단에 등장하는 사람과 서명한 사람은 다르다.]
마르셀은 차폐된 개인 이름 부분을 임의로 공개하지 않은 채, 당사자별 검증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회의가 끝난 뒤 태오는 회랑에서 발카스와 단둘이 마주쳤다.
“집주인님은 일곱 해 전 누가 이 일을 벌였는지 아십니까?”
“모른다.”
“그때도 몰랐고요?”
“이름과 주소가 다르다는 경고만 받았다. 내가 의심한 것은 내 금고를 누군가 다른 사람의 권리로 포장하는 일이었다.”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그때 요구한 보류는 돈을 주지 않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잘못된 대상에게 주지 않기 위한 조치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말해 주겠다는 것이냐?”
“가능성입니다. 그렇다고 제 보증금 잔액이 없어지지는 않아요.”
발카스의 얼굴이 굳었다.
“백팔십오 닢.”
태오는 놀랐다.
“정확히 외우시네요.”
“네가 하루에 세 번씩 말하니까.”
“이제는 제가 안 말해도 되겠군요.”
“그럴 리 없지.”
두 사람은 처음으로 동시에 웃었다.
***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리네아는 태오의 팔짱을 꼈다.
“오늘은 조금 안심돼요.”
“왜요?”
“발카스 님이 적어도 자신이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했잖아요.”
“맞아요. 그렇다고 돈이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지진 않지만요.”
“그래도 사람이 바뀌는 것 같아요.”
태오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당신은 내가 예전이랑 좀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많이요.”
“어떻게요?”
“처음에는 혼자서 계약서를 들고 가셨잖아요. 지금은 같이 들 사람이 많아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리네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키스할 때도 덜 긴장하고요.”
“그건 굳이 지금 말씀하셔야 합니까?”
“그럼 확인해 볼까요?”
태오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골목을 둘러봤다. 리네아가 웃으며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농담이에요. 당신은 여전히 잘 속네요.”
그녀가 한발 앞서 걸었고 태오는 뒤따랐다.
***
마르셀은 제한 공개가 끝난 뒤 세입자 열한 명에게 각각 확인 신청 안내를 보내기로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한 장의 공고에 나열하는 대신 계약번호를 통해 당사자만 자신의 자료를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더 걸리겠죠.” 태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서명 정보를 본인 동의 없이 공개하지 않는 편이 안전합니다.”
소피가 아이를 품에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려도 괜찮아요. 누가 제 이름으로 편지를 받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확인하고 싶어요.”
코르는 조용히 말했다.
“내 이름으로 된 수령증도 나한테 따로 보여 주시오.”
“공식 신원 확인과 함께 진행하겠습니다.” 마르셀이 대답했다.
태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씩 살폈다. 일곱 해 전의 기록이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었다. 누군가는 돈을 찾으려 했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이름을, 또 누군가는 편지 한 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혼자 해결하려던 문제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들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
그날 밤 마르셀의 긴급 연락이 도착했다.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와 함께 별도로 보관된 인계 수령증 한 장이 확인됐다. 기록에 따르면 원본의 일부가 일곱 해 전 누군가에게 되돌아간 적이 있었다.
수령인 명의는 차폐된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지만, 그 사람의 실제 서명 여부는 검증 중이었다.
마르셀은 간단한 문구만 먼저 보냈다.
[임시 열람 결과: 수령인 명의가 다렌 코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임. 그러나 서명 원본 및 본인 수령 여부 미확정.]
태오는 종이를 내려놓았다.
코르의 이름이 또다시 등장했다.
한때 사라졌던 세입자의 이름으로, 누군가 권리 정산에 관한 문서를 받아 간 기록이 있었다.
그것이 코르 본인이었는지, 대신 받은 다른 사람이었는지는 아직 누구도 알지 못했다.
태오는 수첩 끝에 다음 질문을 적었다.
[일곱 해 전 문서를 가져간 사람은, 왜 다렌 코르의 이름을 사용했는가?]
그 질문은 새로운 열 개의 문을 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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