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벤의 운송일지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가죽으로 만든 표지는 손때가 묻어 검게 빛났고, 안쪽에는 날짜마다 실어 나른 짐과 받은 돈이 적혀 있었다. 마부는 장부를 두 손으로 들고 김태오 앞에 내려놓았다.
“그땐 말 세 마리로 북부 길을 다녔네. 물건을 많이 실으면 차축이 상하니까 짐의 무게를 꼭 적었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기억보다 장부가 정확할 수 있겠네요.”
“내 기억이 아직 그렇게 나쁘진 않네.”
“물론이죠. 장부와 같이 보면 더 좋다는 뜻입니다.”
로벤은 만족스러운 듯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당시 운송일지에는 ‘제7 임시 보관 우편함’이라는 명칭 대신 ‘북부 통지 보관실’이라는 장소가 적혀 있었다. 수취인 이름은 잉크가 번져 읽기 어려웠지만, 도착 시간과 짐 목록은 선명했다.
[구리제 우편함 여섯 개. 번호표 묶음 두 상자. 봉인용 밀랍 열두 통.]
태오는 숨을 들이마셨다.
“우편함을 새로 설치했던 것 같군요.”
“그럴 수는 있겠지. 확실한 건 내가 그 물건을 운반했다는 거네.”
이벨이 한쪽을 짚었다.
“장부상 장소와 오늘의 제7 임시 보관 우편함이 같은 시설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름이 비슷하다고 동일한 시설인 건 아니니까요.”
태오는 웃었다.
“이제 저보다 먼저 말씀하시네요.”
“당신의 질문을 미리 들을 수 있으니까요.”
***
일지는 당시 운송료가 ‘북부 문서 정리 계약자’의 장부에서 지급됐다고 기록했다.
계약자 이름 옆에는 작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세 고리 모양이었다.
토른이 그것을 보자 눈썹을 찌푸렸다.
“동굴 관리인의 장식하고 닮았어.”
태오는 자신이 그려 둔 회색 장갑의 문양을 나란히 놓았다.
“하지만 어느 쪽도 원본이 같은 인장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 게다가 이런 무늬는 옛날 문서 조합에서도 썼어.”
“그럼 그 조합을 조사해야겠네요.”
토른은 기록의 인장 가장자리를 살폈다.
“바깥 고리가 두 겹이군. 내 할아버지의 도면에 나온 건 하나였어. 같은 집안 작품인지, 단순히 유행한 모양인지는 더 봐야 한다.”
리네아가 말했다.
“문양이 비슷한 것만으로 브라운 상회를 범인이라고 할 수는 없죠.”
“맞아요. 그리고 문양이 같아도 그걸 쓴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그날 그들은 인장의 모양을 확대해 그린 그림만 보존하고, 로벤의 개인 거래 상대 이름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
문서 재분류소의 답변은 오후에 도착했다.
일곱 해 전 북부 문서 정리 계약을 받은 조직은 ‘세 고리 문서협동조합’이었다. 왕실 내부 기관이 아니라 운송, 기록 보존, 대량 통지 발송을 맡는 민간 조합이었다.
태오는 눈을 깜빡였다.
“세 고리라는 말이 여기서 나오네요.”
“문양도 협동조합 등록 규격과 일부 맞습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그러나 동굴 관리인의 장식이 그 조합에서 나온 것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지금 그 조합은요?”
“오래전에 해산했습니다. 남은 업무 일부를 여러 회사가 인수했어요.”
그 가운데 브라운 상회와 관련된 사업자도 있었다. 하지만 브라운 개인이 일곱 해 전 어떤 일을 했다는 증거는 없었다. 법인은 업무를 이어받을 수 있어도 과거 직원의 행동까지 단순한 이름 변경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
태오는 그 점을 따로 적었다.
리네아가 물었다.
“우리가 찾는 사람은 사라진 조합에 있었을까요?”
“가능성은 있죠. 그런데 아직은 업무를 맡은 조직만 찾은 겁니다.”
“그래도 편지가 어디로 모였는지 설명이 되기 시작하네요.”
“그렇네요.”
태오는 창밖을 바라봤다. 수많은 주민에게 보내야 할 편지를 한곳으로 모으는 시스템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그 자체는 효율적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누가 편지를 대신 받았고, 그 수령을 어떤 권리에 연결했는지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
늦은 오후 조정실에서는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 원본의 제한 열람 심사가 열렸다.
세딘이 원본 보존갑과 별도 첨부 봉투의 봉인 상태를 설명했다. 개인정보가 많아 열람 범위를 세 단계로 나누었다. 먼저 문서의 존재와 외관, 그다음 요청자 자격과 제출 날짜, 마지막으로 개별 권리자 서명과 원본 진위를 확인하는 순서였다.
“왜 한 번에 열지 않습니까?” 발카스가 물었다.
“세입자 열한 명의 계약과 관련된 내용이 한꺼번에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관련 없는 사람의 정보는 보호해야 합니다.”
드래곤이 혀를 찼다.
“나는 그 종이를 보고 싶다.”
태오가 대답했다.
“저도요. 하지만 제 돈이 걸려 있다고 다른 사람 서명까지 마음대로 보는 건 아니잖아요.”
발카스는 그를 흘겨봤다.
“네가 내 편을 들 줄은 몰랐군.”
“제 편입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서 조용한 웃음이 났다.
마르셀은 현 단계에서 허용된 정보를 읽었다.
[문서 표제: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
[제출 주체 표기: 파벨 주택조합 청산 준비실 대리.]
[대리인 자격: 신청 당시 보완 요구 기록 존재.]
태오가 숨을 멈췄다.
“옛 주택조합 이름이 직접 나오는군요.”
“네. 하지만 대리인 자격이 보완 중이었다는 건 확정된 위임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이벨이 말을 보탰다.
“문서 제목은 ‘권리 정산 위임’이지만, 누가 어떤 권리를 실제로 넘겼는지는 본문을 검증해야 알 수 있습니다.”
***
청문이 끝나갈 때 브라운이 의견서를 냈다.
“이전 조합의 업무 승계 목록을 제공하겠습니다. 다만 회사의 고객 자료 전부를 공개할 수는 없습니다.”
“공개 범위를 협의하면 됩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그 대신 서류 조회를 무제한 요구하는 것은 중단해 주십시오.”
태오는 끼어들지 않았다. 브라운이 어떤 범위까지 협조할지는 정식 절차에서 결정될 일이었다. 그의 목적을 알아내려고 소란을 피우면 증거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브라운은 태오 쪽을 돌아봤다.
“당신은 아직도 채권을 팔 생각이 없습니까?”
“조건이 충분히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잔액은?”
“185금화입니다. 발카스 님이 25금화를 더 지급했어요.”
브라운은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지난 제안의 금액도 다시 계산해야겠군요.”
“필요하시면요. 다만 저는 오늘 그 거래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발카스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이 인간은 드래곤 앞에서도 장사를 하려 드는군.”
“제가 돈 받을 사람이라서요.”
***
세 고리 문서협동조합의 옛 작업장은 파벨 동문 바깥에 있었다. 벽돌 건물은 절반이 비어 있었고, 한쪽은 가구 수리점으로 바뀌었다. 태오는 마르셀과 함께 공개 등록부의 옛 주소가 실제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러 갔다.
수리점 주인은 작업대에서 나무판을 다듬다가 손님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또 옛 조합 이야기를 하러 왔소?”
“저희 말고도 누가 왔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지난달에도 어떤 상인이 왔었지. 건물 이름을 물어보더군.”
“누구였습니까?”
“모르오. 거래가 아니었으니 이름도 안 물었어.”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상인이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 브라운이나 누구를 지목할 수는 없었다.
주인이 벽 위쪽을 가리켰다.
“여기 옛 간판 자국은 남았소. 떼지 않았으면 더 잘 보였을 텐데.”
토른이 벽돌 사이에 박힌 작은 고정판을 살폈다. 세 고리 형태의 홈이 있었다.
“이건 우리 옛 도면에서 보던 세공 방식이랑 닮았어.”
“그러면 같은 조합입니까?”
“등록부상 주소가 여기와 맞으니 가능성이 높지. 하지만 세공 방식만 가지고 운영자를 특정할 순 없어.”
태오는 방금 로벤 장부에서 보았던 인장과 건물의 홈을 나란히 그렸다. 동굴 관리인의 장식은 세 고리가 맞물리는 방향이 반대였다. 얼핏 같아 보였지만 작은 차이가 있었다.
“이 차이가 중요할까요?”
토른이 말했다.
“중요할 수도, 아닐 수도 있지. 세공사가 다른 시기에 만든 물건이면 방향이 바뀌기도 해. 제작 시기를 먼저 보자.”
마르셀은 건물의 오래된 소유권 대장과 사용 허가 기록을 조회하겠다고 했다.
***
수리점 주인은 그들이 떠나려 하자 조용히 불렀다.
“옛 조합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소. 문서가 없어서 집을 잃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편지를 보내 준 적도 있었지.”
태오가 돌아섰다.
“그런 일도 했습니까?”
“그렇소. 우리 아버지도 도움을 받았어. 그러다 어느 때부터 일이 커지고, 서류가 복잡해졌지. 해산하던 해에는 사람들도 서로 책임을 미뤘다고 들었소.”
“왜 해산했는지 아십니까?”
“잘 모르오. 돈 문제가 있었다는 말도 있지만 소문일 뿐이야.”
태오는 소문을 따로 적지 않았다. 대신 조합의 무료 통지 사업을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지 물었다.
“동문 교구 회관에 옛 안내문이 남아 있을 거요.”
태오가 고맙다고 말하자 주인은 다시 작업대로 돌아갔다.
리네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 고리 문양을 본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뻔했어요.”
“저도요.”
태오는 건물의 벽을 마지막으로 바라봤다. 한때 누군가는 통지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그 조합을 만들었을지도 몰랐다. 그 제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누가 틈을 이용했는지는 여전히 별개였다.
***
동문 교구 회관에는 낡은 무료 통지 안내문이 있었다.
[공동 통지 보관 서비스. 집을 비우는 주민을 대신해 우편을 보관합니다. 수취 사실은 본인 확인 후 등록합니다.]
태오는 마지막 문장에 동그라미를 쳤다.
“처음에는 본인 확인을 하도록 했네요.”
“그게 지켜졌는지 확인해야겠어요.” 리네아가 말했다.
안내문 아래쪽에는 서비스 이용자 동의서의 예시가 붙어 있었다. 서명란과 대리인란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관련 자료에선 그 구분이 흐려진 부분이 보였다.
태오는 사본 요청을 했다. 직원은 종이를 주며 말했다.
“오래된 일이니 전부 같은 규칙을 썼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시기마다 양식이 바뀌었습니다.”
태오는 그 말을 적었다.
작은 동네의 오래된 게시판이 거대한 드래곤의 금고보다 더 중요한 단서를 줄 때도 있었다.
***
헤스는 옛 세 고리 문서협동조합의 무료 통지 안내문을 보고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이 조합이 우리 빵집에도 편지를 보내 준 적이 있어.”
“기억하십니까?” 태오가 물었다.
“물론이지. 그때는 우편료가 부족한 사람을 도와주기도 했어. 나는 조합에서 보내준 편지 덕분에 멀리 이사한 손님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지.”
“그런데 지금은 왜 의심받는 걸까요?”
“좋은 제도라고 계속 좋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건 아니잖아. 그렇다고 나중에 문제가 생겼다고 처음부터 나빴던 것도 아니고.”
태오는 그 말을 천천히 적었다.
헤스가 빵을 두 개 포장했다.
“하나는 태오 자네 거고, 다른 하나는 리네아 양 거네. 오늘은 두 개 다 값을 받을 거야.”
“왜요? 어제는 선물이었는데.”
“장사하는 사람은 그날그날 사정이 다른 법이지.”
리네아가 웃었다.
“그 말은 태오 씨가 좋아할 것 같아요. 계약 내용이 명확하잖아요.”
태오는 금화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빵값은 제대로 냈다. 큰 보증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결국 약속을 지키는 문제였다.
***
밤이 되자 마르셀은 로벤의 운송일지 사진과 오래된 조합 등록부를 함께 대조했다. 그 결과 운송일지의 장소가 제7 임시 보관 우편함의 초기 설치 주소와 일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수취인 이름 판독은 미완료였다.
태오는 마지막 쪽지를 읽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옛 종이에서 답을 찾는 동안에도 서류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편지를 누가 가로챘는지 찾으려 했습니다.”
“그런데요?” 리네아가 물었다.
“이제는 제7 우편함이 적법한 공동 보관처였는지, 그곳에 편지를 전달한 사실을 실제 권리자 수령으로 처리했는지 먼저 확인해야겠어요.”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돈을 받았는지는 그 다음.”
“그렇죠.”
태오는 수첩에 세 줄을 적었다. 같은 종이를 두고도 제각기 다른 사람의 권리를 주장했다. 그 차이를 잊지 않는 것이 앞으로의 조사에서 가장 중요했다.
[편지를 운송한 사람.]
[편지를 보관한 사람.]
[돈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
세 사람은 같을 수도 있지만, 처음부터 같다고 가정할 이유는 없었다.
그의 전세금이 사라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 차이가 종이 한 장에서 지워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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