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스가 세 번째 매각에 내놓은 물건은 의외로 작았다.
황금 왕관도 아니고 검은 산맥의 광맥도 아니었다. 한 손에 들 수 있는 은빛 모래시계 두 개와 오래된 항로 계측기였다.
“전부 합쳐 금화 쉰 닢은 받겠습니다.” 바렌이 말했다.
감정사들은 서로를 쳐다봤다. 태오도 구경꾼 틈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게 그렇게 비싸요?”
토른이 무거운 얼굴로 대답했다.
“항로 계측기는 일찍이 마력 폭풍을 건너는 상선들이 썼어. 제대로 작동한다면 값이 나가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요?”
“그래서 감정하는 거야.”
리네아가 웃었다.
“태오 씨, 오늘은 물건을 사러 오셨어요, 집주인 감시하러 오셨어요?”
“둘 다 아닙니다. 돈 들어올 가능성을 보러 왔어요.”
“눈빛이 너무 진지한데요.”
“저에겐 이게 왕관보다 중요합니다.”
그녀가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알아요.”
***
경매 전날 태오는 바렌이 작성한 물품 소유권 표를 검토하러 갔다. 창고 한쪽에는 흰 천에 덮인 항로 계측기가 놓여 있었다. 유리구슬 안에서 작은 빛이 천천히 돌았고, 오래된 금속 바늘이 북쪽을 향해 떨렸다.
“이걸 드래곤이 어떻게 구했습니까?”
바렌이 미소를 지었다.
“수백 년 전에 바다를 건널 일이 있었다더군요. 당시 선장의 빚을 대신 갚고 받은 물건이라고 합니다.”
“그럼 소유권 기록이 있습니까?”
“당시 인수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조합 등록 자료와 대조하고 있지요.”
태오는 감탄했다.
“고대 드래곤이 선장 빚까지 대신 갚아 줬다니.”
“항해 조합의 폭풍 경보 장치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순수한 선의였는지는 모르지요.”
태오가 웃었다.
계측기 옆에는 모래시계가 있었다. 모래알 대신 은빛 입자가 위로 올라가는 신기한 물건이었다. 리네아가 손을 뻗자 토른이 급히 막았다.
“만지지 마! 방향을 바꾸면 안쪽 마력 균형이 깨질 수 있어.”
“그냥 가까이 보려고 했어요.”
“관람객들이 다 그렇게 말하지.”
태오가 토른에게 물었다.
“혹시 저거 시간을 거꾸로 돌립니까?”
“아니. 항해 중 마력 폭풍이 오는 시간을 재는 계측기지.”
“그럼 지난달로 돌아가서 우리 일을 쉽게 해결하긴 어렵겠네요.”
“그런 걸 기대했다면 환불부터 포기해라.”
리네아가 조용히 웃었다.
“태오 씨는 과거로 가도 계약서부터 챙길 사람 같아요.”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집 계약 전에 집주인부터 확인할 겁니다.”
그녀는 그의 팔을 가볍게 때렸다.
***
매각은 예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모래시계 하나에는 오래된 담보권 표식이 남아 있었고, 계측기에는 어느 항해 조합의 수리 보증이 붙어 있었다.
바렌은 경매 시작 전에 목록을 정정했다.
“담보권 소명이 끝나지 않은 모래시계 한 개는 제외합니다. 계측기의 수리 보증은 소유권 제한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한 상인이 투덜거렸다.
“그럼 물건이 줄었잖소.”
“확인되지 않은 물건을 팔 수는 없습니다.”
태오가 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이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누군가 자신의 돈을 돌려주려고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는데, 그 방식이 조금씩 안정되고 있었다.
경매는 삼십오 금화에서 시작해 마흔두 금화까지 올랐다. 마지막 호가를 부른 항해 조합 대표가 서명하자 사람들은 가벼운 박수를 쳤다.
“전부 임차인에게 지급됩니까?” 태오가 물었다.
바렌이 말했다.
“매각 비용과 이미 계약된 보관료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 지급 대상은 김태오 씨 혼자만이 아닙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서운하지만 옳았다. 로벤과 소피, 헤스의 권리도 따로 남아 있었다.
***
경매장 밖에서는 다른 채권자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 있었다. 태오가 금화를 받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누구는 자신도 오늘 지급받을 거라 기대했고, 누구는 우선순위가 부당하다고 화를 냈다.
태오는 제일 먼저 발을 멈췄다. 자신이 가장 빨리 돈을 받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지급은 개별 계약 증빙과 동의에 따라 조정실이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 남자가 따졌다.
“그럼 왜 자네가 자꾸 먼저 받지?”
태오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 역시 그 질문이 불편했다.
엘레아가 앞으로 나섰다.
“이번 지급은 각 사건별로 자금 출처와 확정된 부분부터 처리하는 임시 조정입니다. 누구에게 우선권이 확정됐다는 뜻이 아니며, 다른 분의 신청과 이의를 막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린 몇 년을 기다렸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급 재원이 확인되는 즉시 개별 심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 말이 곧바로 원망을 없애지는 못했다.
태오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저도 처음엔 제 돈만 빨리 받으면 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돈도 기록에 남겨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오늘 제가 받는다고 여러분 몫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는 실제 지급될 돈이 확정되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액수를 약속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가 또 다른 기대와 실망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매가 끝난 뒤 발카스는 항로 계측기를 사 간 상인의 마차를 오래 바라봤다.
“저걸로 첫 번째 서쪽 바다를 건넜다.”
바렌이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기록은 사본으로 남겨 두었습니다.”
“사본은 바다의 냄새를 담지 못하지.”
태오는 조금 떨어져 그 모습을 보았다. 드래곤이 금화 대신 기억을 내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낭만에 약해지는 사이, 발카스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보고 있느냐.”
“그냥요. 오래 아끼던 걸 파셨구나 싶어서요.”
“동정하느냐?”
“아뇨. 기왕 파신 거 제 돈을 돌려주셔야죠.”
“네놈은 감상이 세 문장을 넘기지 못하는군.”
“잔액도 아직 세 자릿수라서요.”
발카스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언젠가 그 숫자가 영이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는 계약이 계속됩니다.”
“알고 있다.”
발카스는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태오도 잠시 곁에 서 있었다. 적어도 그날은 더 비꼬고 싶지 않았다.
***
며칠 뒤 조정실에는 확인된 매각 대금의 정산표가 제출됐다.
태오에게 돌아갈 금액은 원금 25금화였다. 다른 세입자에게 배정될 금액은 개별 계약과 동의에 따라 따로 정해졌고, 이 표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확실합니까?” 태오가 물었다.
엘레아가 지급 증빙을 내밀었다.
“서면 확약이 아니라 실제 지급 준비입니다. 오늘 수령 확인 후 전달됩니다.”
태오는 영수증과 금화 주머니를 차례로 확인했다. 금화 스물다섯 닢. 숫자를 두 번 세었다. 세 번째 세려는 순간 리네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또 세면 줄어들까요?”
“그럴 리가 없죠.”
“그럼 오늘은 두 번만 세요.”
태오는 웃었다.
[최초 원금 300금화. 이전 반환 90금화. 이번 반환 25금화. 누적 반환 115금화. 미환급 원금 185금화.]
그는 장부에 잔액을 적고, 지급 확인서를 조정실 기록과 대조했다. 남은 돈은 여전히 컸다. 그러나 처음으로 계약서를 들고 검은 산맥을 찾아갔던 날보다 집주인의 주머니가 조금씩 열리고 있었다.
발카스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봤다.
“나는 삼천 년 동안 수집품을 팔지 않았다.”
태오가 말했다.
“오늘 잘 파셨네요.”
“그 계측기는 내게 왕국 하나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저는 스물다섯 닢만큼 귀합니다.”
“네놈은 감동을 모른다.”
“보증금 잔액을 보시면 제 감동이 아직 부족한 이유를 아실 겁니다.”
드래곤은 눈을 감았다. 회의실 사람들의 웃음이 번졌다.
***
오후에 로벤이 태오를 찾아왔다.
“축하하네.”
“로벤 님도 이번 정산표를 확인하셨습니까?”
“내 것은 아직 검토 중이네. 젊은이부터 돈이 돌아왔다고 화낼 일은 아니지.”
태오는 잠시 망설였다.
“죄송하다는 말은 안 하겠습니다. 대신 로벤 님 계약의 다음 지급 심사에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 말이면 됐네.”
로벤은 지팡이를 세우며 말했다.
“아, 그리고 내 옛날 마차 기록을 다시 봤다네. 제7 임시 보관 우편함이 있던 골목에 물건을 실어다 준 적이 있어.”
태오는 놀라 물었다.
“언제요?”
“일곱 해 전이네. 우편함 관리인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지.”
“누구에게 물건을 전달하셨습니까?”
“정확히는 기억 안 나네. 내가 직접 적은 운송일지를 찾아오겠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만으로 누군가를 지목할 수는 없었지만, 운송일지가 남아 있다면 우편함을 운영한 장소와 날짜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
그날 밤 태오는 리네아와 조용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식당의 낡은 벽난로는 작은 불꽃을 내고 있었다.
리네아가 물었다.
“이번에 받은 돈으로 뭘 할 거예요?”
“일단 밀린 장비 수리비 일부를 갚으려고요. 남는 건 작업장 보증금으로 모으고요.”
“제 수수료는요?”
“저번에 매일 밥 같이 먹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새 집을 찾아줄 때요.”
“그럼 오늘은 뭘 원하세요?”
리네아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당신이 오늘 웃으면서 돈을 세는 걸 처음 봤어요. 그 얼굴을 좀 더 보고 싶네요.”
태오는 눈을 마주쳤다.
“그건 공짜입니다.”
“어머. 태오 씨한테 공짜인 게 있었어요?”
“당신한테만요.”
이번에는 리네아가 먼저 얼굴을 붉혔다. 그게 좋아서 태오는 일부러 한 번 더 웃었다.
***
정산표가 마련되던 날 바렌은 태오를 별도로 불렀다.
“이번 매각 대금에는 항로 계측기 제작자의 수리 보증 채무가 남아 있는지 검토하는 비용도 들어갑니다. 그 비용을 뺀 뒤의 금액을 분배합니다.”
태오가 종이를 살폈다.
“보증금 원금과 관련 없는 비용을 자동 상계하진 않는 거죠?”
“그렇습니다. 비용은 매각 재원에서 공제할 수 있는 계약상 항목인지 먼저 확인했고, 세입자에게 새 관리비로 청구하지 않았습니다.”
태오는 그 부분에 표시했다.
“그럼 이 자료를 공동 모임에 설명할 때 다른 분들 금액은 가려서 보여 줄 수 있습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전체 분배가 공정했는지 검토할 수 있는 요약표는 별도로 준비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는 서류를 챙겨 나오다가 발카스와 마주쳤다.
“네가 요즘 바렌에게 시키는 일이 많은 듯하더군.”
“제 돈을 받아야 하니까요.”
“나는 네가 내 대리인을 빼앗아 갈까 걱정이다.”
“그분이 이직을 원하면 계약부터 확인하겠습니다.”
발카스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네 사업을 시작하면 내게는 물건을 팔지 마라.”
“왜요?”
“영수증을 받을 때마다 네 얼굴이 떠오를 테니까.”
태오가 말했다.
“그건 아주 좋은 사업 평가입니다.”
바렌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
돈이 실제로 입금됐다는 통지를 받은 태오는 시장의 공구상에 들렀다. 오래전에 맡겨 놓은 고장 난 절단기를 찾을 수 있을지 묻기 위해서였다.
공구상 주인은 장부를 펼쳤다.
“아, 이거요. 수리비가 밀렸지만 아직 보관 중입니다. 버리지는 않았어요.”
“고맙습니다. 오늘 일부를 먼저 낼 수 있습니다.”
주인은 그를 바라봤다.
“이제 일을 다시 시작하실 겁니까?”
“그러려고요. 당장 전체 장비를 들일 돈은 없지만 하나씩 준비할 수는 있겠죠.”
태오는 수리비 일부를 지급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돈을 주는 사람이었다. 참 이상했다. 같은 금화인데 계약을 지키는 데 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절단기를 들어 올렸다. 무겁지만 손에 익은 무게였다.
어쩌면 이야기가 전세금을 되찾는 데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돈으로 다시 어떤 삶을 시작할지가 남아 있었으니까.
***
잠자리에 들기 전, 마르셀이 보낸 전달석이 울렸다.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관련 옛 관리 계약의 연혁 확인. 담당 부서에서 계약 갱신 시점과 인수인 명세를 조회 중.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 원본의 제한 심사는 다음 조정일에 예정.]
태오는 손에 쥔 기록을 천천히 읽었다.
금화 스물다섯 닢이 실제로 돌아왔다고 해서 옛 편지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원금은 185금화였다. 더 줄이려면 집주인의 자산을 찾아야 하고, 다른 세입자들도 보호하려면 원본을 누가 조작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권한이 실제로 인정됐는지를 확인해야 했다.
그는 장부 옆에 새로운 두 줄을 적었다.
[금전 정산: 일부 진전.]
[통지 및 권리 증빙: 별도 추적.]
그리고 내일은 로벤의 운송일지를 보러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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