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렌 코르와 다렌 베스가 같은 테이블에 앉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이름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 두 번째에는 어느 쪽이 진짜 다렌이냐는 주변 사람들의 수군거림 때문에 회의가 중단됐다. 세 번째에는 김태오가 테이블 위에 커다란 이름표를 놓았다.
[다렌 코르: 과거 세입자라고 주장하는 사람.]
[다렌 베스: 당시 회계 보조 업무에 참여한 사람.]
코르가 얼굴을 찌푸렸다.
“내 이름 옆에 ‘주장’이란 말은 언제 지워 주겠소?”
“공식 신원 검증이 끝나면요.”
“난 내 얼굴을 가지고 여기 앉아 있는데도?”
베스가 말없이 자기 명찰을 내려다봤다.
“그럼 내 명찰에는 왜 ‘회계 보조’라고만 쓰여 있소? 나도 아직 살아 있는데.”
태오는 이마를 문질렀다.
“두 분 다 별개 인물이라는 건 확실히 하려고 만든 겁니다.”
마르셀이 도와주려는 듯 두 명찰 아래에 다른 글씨를 적었다.
[계정 관리권 승인 여부: 두 사람 모두 현재 확인되지 않음.]
코르가 한숨을 쉬었다.
“더 나빠졌소.”
리네아가 웃음을 참다 실패했다.
***
오늘의 쟁점은 제4 확인석의 임시 보류 표시가 처음 붙었을 때, 누구에게 어떤 편지가 돌아왔느냐였다.
마르셀은 소피와 헤스, 로벤이 보관한 계약서 번호를 확인했다. 이름과 주소는 공개하지 않고 번호의 끝자리만 비교했다.
코르가 낡은 영수증을 내밀었다.
“일곱 해 전 나는 계약 문제를 알아보려고 북부 창구를 찾아갔소. 그때 받았던 번호표요.”
태오가 숫자를 살폈다. 보존소에서 찾은 반송 장부의 번호와 앞자리는 비슷했지만, 끝의 부호가 하나 달랐다.
“같은 건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그곳에 갔다는 증거 아닙니까?”
“방문했다는 정황에는 도움이 됩니다. 어떤 서류를 냈는지까지는 따로 확인해야 해요.”
코르는 한숨을 쉬더니 번호표를 다시 접었다.
“요즘은 내가 살았다는 것도 증명해야 할 것 같소.”
“코르 씨, 우리는 선생님을 의심하기 위해 모인 게 아닙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선생님 이름으로 돈을 받아 가는 일을 막으려는 겁니다.”
코르는 그제야 얼굴을 조금 폈다.
베스는 자신의 기억을 말하기 전에 손바닥으로 책상을 짚었다.
“제4 확인석에서 한 일은 통지의 접수와 보류 표시였소. 나중에 원금을 지급하는 자리가 아니었지. 그런데 외부에서는 우리가 금고의 주인이 된 것처럼 말하더군.”
“대체 통지처의 사용을 승인했다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이벨이 물었다.
“원래 주소로 다시 보내야 할 편지가 그쪽으로 갔을 수는 있소. 하지만 지급 권리가 넘어가는지는 다른 승인 단계였소.”
태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찾는 것은 마법 금고의 비밀번호가 아니라 서로 다른 단계에서 통과해야 할 문이었다. 하나를 열었다고 나머지가 열리는 건 아니었다.
***
오전 회의가 끝날 무렵 한 여자가 복도에 나타났다.
흰 머리카락을 단정하게 묶은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복장도, 낡은 옷도 입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가 마르셀에게 말했다.
“일곱 해 전 제4 확인석에서 야간 대체 근무를 했습니다.”
태오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성함이?”
“미라 시엔입니다.”
실제 사람이 나타났다. 태오는 자리에 있던 모두가 동시에 숨을 들이마셨다고 생각했다.
마르셀이 의자를 권했다.
“기록상 근무 자격과 일지의 이름 일부가 확인돼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오신 겁니까?”
“예. 오래전 일을 듣고도 가만히 있으면 더 큰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요.”
이벨이 신중하게 말했다.
“기억과 기록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법적 책임을 전제로 묻는 자리는 아니며 답변을 거부할 권리도 있습니다.”
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태오는 펜을 쥐었다가 내려놓았다. 자신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왜 돈을 막았느냐는 말이었지만, 그 질문 자체가 틀렸을 수 있었다.
“그날,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
미라는 잠시 눈을 감고 당시의 야간 근무를 떠올렸다.
“두 개의 신청이 거의 동시에 왔습니다. 하나는 원래 계약자 주소로 반송된 통지의 재발송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의 통지를 한 주소로 보내자는 정정 요청이었습니다.”
“누가 두 번째 신청을 냈습니까?” 마르셀이 물었다.
“봉투에는 대행인 등록번호가 있었어요. 실명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시에도 실명을 확인한 뒤 접수한 건 아니었어요. 대행인 자격은 별도 심사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보류’라고 적으셨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미라는 그를 바라봤다.
“원래 주소로 보낸 편지가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왔는데, 그걸 다른 주소에서 받았다고 간주해 달라는 요청이었어요. 그렇게 처리했다가 원래 권리자가 이의 신청 기회를 잃으면 어떻게 되죠?”
태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서 주소 정정만 임시 보류했습니다. 저는 금고 지급을 중단시킬 권한이 없었어요.”
그날의 보류는 어쩌면 한 직원이 이름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려 했던 행동일 수 있었다. 하지만 미라의 기억만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이벨이 물었다.
“본인이 실제로 그 표시를 기재했다는 근거가 남아 있습니까?”
“일지 뒷면에 제가 인계받았다는 서명이 있을 겁니다. 상태 표시는 제가 감독하던 야간 창구에서 기재됐지만, 정확히 제 손으로 썼는지는 원본을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태오는 그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
미라는 낡은 작은 수첩을 꺼냈다. 퇴직할 때까지 자신이 맡았던 야간 근무 날짜를 적어 놓은 개인 기록이었다. 공문서의 원본을 대신할 수는 없었지만, 검증을 위한 단서는 될 수 있었다.
해당 날짜의 옆에는 짧은 문구가 있었다.
[두 주소. 원본 확인 전 처리 금지.]
그리고 다음 장에는 서류 전달 대상의 번호가 남아 있었다.
[청색 철 4-7-A.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관리 계약자 확인 요청.]
“바로 그 우편함이군요.” 태오가 말했다.
“네. 누가 그 우편함을 관리하는지 증빙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어요.”
“그 뒤 어떻게 됐습니까?”
미라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저는 그해 겨울 다른 부서로 옮겼습니다. 며칠 뒤 후임이 ‘정정 관련 첨부 서류가 추가됐다’고 전했는데, 실제 내용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벨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무슨 첨부 서류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제목만요.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였습니다.”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태오는 63화에서 보았던 이관 명세서의 문구를 떠올렸다. ‘권리 이전 첨부 서류는 별도 관리.’ 우연히 같은 말을 쓴 것일까.
“그 문서가 실제로 권리를 이전시켰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벨이 먼저 말했다.
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래서 더 기억나요. 주소를 고치는 업무에 왜 돈 받을 권리 이야기가 붙는지 이해하지 못했거든요.”
***
미라가 떠나기 전 마르셀은 그녀의 오래된 근무 수첩을 공적 기록과 맞춰 보자고 제안했다. 미라는 잠시 망설였지만 사적인 부분을 가리고 필요한 날짜만 공개하는 데 동의했다.
“전 이 수첩을 일기처럼 썼어요. 퇴근한 날이면 무엇을 먹었는지까지 적어 뒀거든요.”
“음식 기록은 가려도 됩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그럼 다행이네요. 그날 야식이 너무 비쌌다는 불평도 있거든요.”
태오는 웃었다.
그날 수첩의 근무 종료 시간은 왕실 교대 일지와 한 시간쯤 차이가 났다. 처음 보았을 때 태오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기억이 틀리신 걸까요?”
미라가 손가락으로 작은 부호를 짚었다.
“이건 야간 대체 근무가 끝나는 시각이에요. 문서에 남은 시간은 제4 확인석이 다음 근무조에 상태를 넘긴 시각이고요.”
세딘이 표를 맞췄다. 두 기록은 서로 모순되지 않았다. 오히려 앞선 검증에서 정리한 옛 행정일 변경 기준과 들어맞았다.
“그러면 보류 표식을 누가 입력했는지 확인할 구간이 좁아지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네. 하지만 직접 쓴 사람까지는 아직 모릅니다.”
이벨이 미라에게 물었다.
“표시를 남기는 데 상급자 승인이 필요했습니까?”
“초기 임시 표시에는 필요 없었습니다. 다음 조가 확인하고 계속 유지할지 결정했지요. 그 단계에서 원본 요청의 법적 효력을 판단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작은 보류 표시를 왕실 전체 금고의 봉인 명령으로 여겼던 소문이 얼마나 비약적이었는지 더 선명해졌다.
***
오후 늦게 다렌 코르가 조용히 남아 태오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내 이름을 다시 찾고 싶소.”
“공식 신원 검증이 진행 중입니다.”
“알고 있소. 그걸 말하는 게 아니오.”
코르는 주머니에서 아주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냈다. 파벨의 축제 날 찍은 사진이었다. 젊은 코르처럼 보이는 남자와 다른 사람들이 길가에 서 있었다.
“일곱 해 전 나는 집에 관한 기록을 찾다가 사람들을 잃었소. 일을 하던 동료들도, 같이 살던 이웃도 내가 돌아왔을 때는 다른 곳으로 갔지.”
태오는 사진을 바라봤다. 얼굴을 비교하는 문제도 중요했지만 지금 코르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먼저 듣고 싶었다.
“여기 온 건 보증금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때 내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날 처음에 관리권 신청을 하셨던 이유를 기억하십니까?”
코르는 오랫동안 침묵했다.
“내 돈만 찾으려면 돈을 달라고 했겠지. 그런데 나는 기록을 볼 권한부터 달라고 했소. 누군가 다른 사람 이름으로 우편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태오는 얼굴을 들었다.
“누구한테 들었습니까?”
“기억이 분명치 않소. 시장에서 만난 회계 보조였을 수도 있고, 여관에서 받은 쪽지였을 수도 있어.”
“그렇다면 확실한 사실로 기록하진 않겠습니다. 다만 당시 우편 문제를 의심하셨다는 진술로 남길게요.”
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누군가 들어 주니 좋군.”
태오는 그의 사진을 돌려주었다. 모든 기록이 계약서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기록은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기억하기 위해서 필요했다.
***
베스는 그날 밤 태오에게 별도의 편지를 보냈다.
[제가 기억하는 당시 청산 준비실의 임시 명단 작성 방식에 대해 구두 증언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이름이 비슷한 사람의 계약번호를 합쳐서는 안 됩니다. 제 이름으로 남은 수령 기록이 있다면 그것도 직접 확인하고 싶습니다.]
태오는 편지를 읽으며 한참 고민했다. 코르와 베스가 이름 때문에 겪는 혼란은 단지 우스운 일이 아니었다. 잘못 연결된 서명이 한 사람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데 악용될 수도 있었다.
그는 두 사람에게 별도의 열람 안내를 보내기로 했다. 이름을 아는 사람에게는 쉽고, 이름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유난히 먼 길이었다.
***
미라는 돌아가면서 태오에게 당부했다.
“저를 좋은 사람으로 써 주지 않아도 됩니다. 그때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만 남겨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보류가 사람들의 돈을 보호했는지, 나중에 다른 절차 때문에 피해가 났는지는 따로 확인해 주세요.”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미라는 은퇴한 평범한 직원이었다. 일곱 해 전의 판단이 옳았다고 칭찬받는 것보다, 잘못되었다면 바로잡을 수 있는 기록이 남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가 리네아를 돌아보자 그녀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매번 말하던 거네요. 사람부터 미리 결정하지 말자고.”
“오늘은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려요.”
***
회의가 끝난 뒤 태오는 미라를 밖까지 배웅했다.
“괜히 다시 불편한 일을 겪으시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뇨. 제가 한 일을 정확하게 말할 기회가 생겨서 오히려 좋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오셨습니까?”
미라는 잠시 웃었다.
“기사에서 봤어요. 드래곤한테 돈 돌려달라는 인간이 있다더군요.”
태오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기사가 아직 돌아다닙니까?”
“제목은 재미있었어요. '불보다 무서운 보증금 청구서'.”
“그 기자를 찾으면 제가 먼저 청구할 게 있습니다.”
미라가 웃으며 떠났다.
멀리서 리네아가 다가왔다.
“어땠어요?”
“지금까지 찾던 사람이 나왔는데, 더 많은 질문이 생겼어요.”
“그럼 제대로 가고 있는 거겠죠.”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미라가 말한 대로라면 첫 보류는 세입자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통지가 엉뚱한 곳에 도달한 것으로 처리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다음에 붙었다는 ‘권리 정산 위임 확인서’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리고 발카스에게 도착한 익명 봉투는 그 문서를 경고하려던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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