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외곽의 제7 서신보관소는 오래된 우체국 건물 안에 있었다. 유리창 세 개 중 하나는 깨진 채 나무판자로 막혀 있었고, 창구에는 ‘이곳은 편지를 배달하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김태오는 그 문장을 읽고 무릎에 힘이 풀렸다.
“우체국인데 편지를 안 보낸다고요?”
직원이 얼굴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옛 편지를 보관합니다.”
“그럼 맞게 왔네요.”
“보관한다고 읽을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마르셀이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태오는 어느새 왕국의 사무실에 들어가면 놀라는 순서까지 익숙해졌다. 첫 번째는 문을 찾고, 두 번째는 양식을 받고, 세 번째는 자격을 증명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왜 아직 살아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었다.
서신보관소는 비가 새는 지붕 아래에서도 의외로 잘 관리되고 있었다. 중요한 문서는 방수 마법이 걸린 통에 들어 있었고, 보관 번호는 푸른 실로 묶여 있었다.
“청색 철 4-7-A를 찾습니다.” 세딘이 신청서를 내밀었다.
“외부 이관 원문이지요.” 직원이 확인했다.
“개인정보 차폐 조건부 열람 허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봉함 외관과 목록만 확인하려고요.”
직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분리하는 태도가 태오에게는 조금 반가웠다. 이 도시에서 가장 친절한 말이 언제나 네, 알겠습니다는 아니었다. 안 되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려 주는 사람이 오히려 그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무엇을 다음에 해야 할지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
원문 상자는 생각보다 작았다. 그 속에는 청색 표지가 끼워진 얇은 서류 묶음과 별도의 봉인 봉투가 있었다. 표지에는 오래된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수취 주소 정정 검토. 우선 처리 금지.]
“‘우선 처리 금지’가 뭘 뜻합니까?” 태오가 물었다.
세딘이 옛 업무 규칙집을 뒤적였다.
“같은 대상자의 두 주소가 충돌할 때, 하나를 임의로 우선 적용하지 말라는 내부 표시입니다. 지급 금액 자체를 동결한다는 말은 아니고요.”
태오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태껏 ‘보류’라는 두 글자를 볼 때마다 금고의 문을 잠그는 거대한 손을 상상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편지 한 통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모르는 직원의 고민에서 시작된 표시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영향이 작지는 않겠네요.” 마르셀이 말했다.
“맞습니다. 통지를 제대로 못 받으면 권리자가 이의 신청이나 정산을 놓칠 수 있으니까요.”
토른이 빈정거렸다.
“금고는 안 잠겨도 사람이 문 앞에 서게 되는군.”
***
태오와 리네아는 열람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건물 맞은편 여관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생각보다 절차가 길어져 돌아가는 마차를 놓쳤기 때문이다.
여관 주인은 열쇠 한 개를 내밀었다.
“방 하나 남았소.”
태오가 멈칫했다.
“침대는요?”
“하나 있지.”
리네아가 태오를 돌아봤다.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태오 씨는 왜 침대 개수를 먼저 물어요?”
“아니, 그게, 숙박 여건을 확인하는 겁니다.”
“그럼 욕실도 확인할까요?”
“그건… 네, 확인해야죠.”
여관 주인은 못 들은 척 장부에 숙박자 수를 적었다. 태오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리네아가 열쇠를 받아 들었다.
“걱정 마요. 침대는 제가 쓰고 태오 씨는 바닥에 이불 펴면 되잖아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왜 섭섭한 얼굴이에요?”
“제가요?”
“아까부터 그래요.”
태오가 항의하려는 순간 토른이 지나가다 말했다.
“복도에서도 다 들린다!”
리네아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리네아는 머리끈을 풀었다. 은빛 머리카락이 어깨로 흘러내렸다. 촛불 아래에서 그녀는 낮 동안의 중개인 같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 잠깐 쉬어도 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태오는 바닥에 이불을 펼치다 한쪽 모서리를 제대로 펴지 못했다.
“도와줄까요?”
“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보다 어렵죠?”
“계약서도 제 뜻대로 안 되던데요.”
리네아가 웃으며 무릎을 꿇고 이불을 잡았다. 두 사람이 한꺼번에 모서리를 당기자 손끝이 닿았다. 태오가 반사적으로 손을 빼자 리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가 그렇게 무서워요?”
“그게 아니라.”
“그럼 손은 왜 빼요?”
태오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았다. 리네아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조금 옅어졌다.
“이제야 제대로 하네요.”
그녀가 먼저 가까워져 짧게 입맞춤했다. 태오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일도 같이 가 줄 거죠?” 그가 물었다.
“당연하죠. 일 때문에만 가는 거 아니에요.”
“알아요.”
“아니, 가끔 모르는 얼굴을 하니까 말해 주는 거예요.”
태오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둘은 잠깐 말없이 있었다. 멀리서 빗소리가 굵어졌다.
리네아가 어깨 너머로 낮게 말했다.
“그런데 바닥이 꽤 차가워 보여요.”
태오가 숨을 멈췄다.
“그렇긴 하네요.”
“담요 하나 더 가져다줄까요?”
“……네. 부탁드립니다.”
리네아가 웃느라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밤새 비가 내린 뒤 제7 서신보관소에는 문제가 생겼다.
지붕 틈새로 스며든 빗물이 열람실 바닥을 따라 흘렀다. 물은 원문 상자가 놓인 서가까지 닿지 않았지만, 입구 쪽 임시 접수장부가 젖을 위험이 있었다.
태오가 직원과 함께 양동이를 옮겼다. 토른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지붕을 살피려 했지만 관리인이 제지했다.
“공사를 하려면 별도 허가가 필요합니다.”
“물이 떨어지고 있잖소!” 토른이 소리쳤다.
“그래서 지금 긴급 안전 조치를 신청하고 있습니다.”
토른은 잠시 입을 벌렸다가 태오를 돌아봤다.
“네가 좋아할 만한 대답이군.”
“오늘은 저도 좀 답답합니다.”
리네아는 젖은 접수장부를 임의로 펼치지 않고 직원이 지시한 순서대로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 빗방울이 맺혔다.
“이렇게 할까요?”
“네. 원래 위치와 이동 위치를 함께 기록해 주십시오.” 직원이 대답했다.
태오는 웃음이 났다. 어느새 리네아도 기록보존 전문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들고 있던 양동이를 내려놓고 낡은 책장을 받쳤다.
잠시 뒤 토른은 긴급 승인을 받아 천장의 임시 지지대를 설치했다. 고풍스러운 마법도 아닌 나무 기둥과 철제 고정쇠였다.
“이런 건 나한테 맡겨야 한다니까.”
“벽을 부수지 않는다는 조건입니다.” 직원이 말했다.
토른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얼마나 얌전한 장인인데.”
태오는 예전에 자기 집 계단을 조사하다 토른이 바닥을 두드렸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 말은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직원도 웃었다.
급한 물은 막았지만 보존소는 서류 열람을 잠시 중단했다. 직원은 접수 순서가 밀릴 것이라며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젖은 종이를 억지로 읽으면 더 큰일이니까요.”
직원이 그를 바라봤다.
“혹시 기록보존 일을 하십니까?”
“아뇨. 전 집주인한테 돈을 못 받은 사람입니다.”
“……그 일이 이렇게 많은 기술을 가르칩니까?”
“살면서 배우고 싶지 않았던 분야를 많이 배웠죠.”
***
서류가 마를 동안 마르셀은 직원과 함께 옛 열람자 명부를 확인했다. 원문 A철이 옮겨진 뒤 누가 관리 상태를 점검했는지 기록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기록에는 두 차례 외부 방문이 있었다. 첫 번째는 왕실 재분류 직원, 두 번째는 민간 위탁 업체의 보존 검사 담당자였다. 그러나 두 번째 방문자의 실명은 개인정보 보호 조치로 가려져 있었다.
“민간 위탁 업체가 이 문서를 본 적이 있다는 뜻인가요?” 태오가 물었다.
“봉함 상태를 점검한 기록입니다. 내용을 열람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럼 적어도 문서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수 있겠네요.”
“그렇습니다.”
리네아가 말했다.
“일곱 해 동안 원문이 돌아다니기만 한 건 아니네요. 누군가 상태를 확인하고 보관했어요.”
“그러면 원문과 뒤에 붙은 첨부 서류의 봉인 시점도 비교할 수 있겠어요.”
세딘은 그 제안이 유용하다며 외관 검증 항목에 추가했다. 비를 피하려고 머무른 하루가 뜻밖의 단서를 남겼다.
태오는 리네아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당신이 없었으면 접수장부도 못 옮길 뻔했네요.”
“그럼 수수료를 받아야겠어요.”
“또요?”
“아까 침대는 제가 쓰기로 했으니까, 오늘은 따뜻한 차 한 잔으로 할게요.”
“그 정도면 바로 지급 가능합니다.”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봐요. 당신도 이제 즉시 지급이란 말을 할 수 있잖아요.”
태오는 차를 가져오며 속으로 생각했다. 전세금 사건이 끝나도 이 여자에게는 평생 놀림받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 미래는 꽤 마음에 들었다.
***
한밤중에 여관의 복도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위층 손님이 물이 새는 통에 놀라 내려왔고, 주인은 급히 방을 확인했다. 태오와 리네아의 문에도 두 번 노크가 울렸다.
“괜찮으십니까?”
“네.” 태오가 대답했다.
문을 열자 주인은 바닥에 펼친 이불을 보고 어리둥절했다.
“침대가 있는데 왜 바닥에서 주무십니까?”
태오가 대답을 찾기도 전에 리네아가 끼어들었다.
“저분은 계약에 충실하거든요.”
“무슨 계약이오?”
“저희끼리 정한 아주 중요한 약속이에요.”
주인은 더 묻지 않고 올라갔다. 문이 닫히자 태오가 속삭였다.
“굳이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어머, 부끄러워요?”
“조금요.”
그녀는 장난을 멈추고 바닥의 이불을 살폈다. 침대 위는 충분히 따뜻했지만 그가 춥게 자도록 둘 생각은 없었다. 둘은 놀리는 일과 돌보는 일을 자연스럽게 구분했다. 창틈 바람 때문에 모서리가 젖어 있었다.
“그건 쓰면 안 되겠네요. 여분 담요를 달라고 할게요.”
태오가 막으려 하자 리네아가 먼저 그의 손을 잡았다.
“장난은 장난이고, 감기 걸리면 안 되죠.”
태오는 그 다정함에 웃었다.
두 사람은 촛불 아래서 새 담요를 기다렸다. 빗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마음은 한결 조용했다.
***
다음 날 아침, 보관소에서는 허가 범위가 일부 확대됐다. 원문 본문의 이름과 주소는 가린 채 요청 사항의 종류와 첨부 목록을 열람할 수 있다는 결정이었다.
세딘은 문서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첫 장의 핵심 항목은 ‘수취인 번호 정정’이 아니었다.
[수취 주소 대체 지정 신청.]
그 아래 두 주소가 나란히 있었고, 하나는 원래 계약자에게 보냈던 주소였다. 다른 하나는 여러 계약에 같은 형태로 반복된 대체 수령처였다. 구체적인 위치는 차폐돼 있었다.
“누가 사는 집 주소로 바뀐 게 아니라 하나의 보관처로 모으려 한 거네요.” 태오가 말했다.
“그렇게 보입니다. 다만 그곳이 어떤 기관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세딘이 답했다.
제4 확인석의 보류 표시는 바로 이 두 주소가 서로 충돌한다는 검토에서 비롯됐을 수 있었다.
그런데 문서 아래에는 작고 낯선 문구가 있었다.
[대체 통지처를 권리자에게 도달한 주소로 간주하는 조항 포함 여부: 추가 심사.]
태오의 눈이 커졌다.
“실제로 사람이 편지를 못 받아도, 다른 곳에 보내면 받은 것으로 간주하려 했다는 뜻입니까?”
이벨이 대답했다.
“신청서에 그런 효력을 넣으려 했을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말입니다. 효력이 인정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우 중요한 항목이죠.”
소피와 로벤이 편지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던 일이 떠올랐다. 오래된 우편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단순한 운송 사고가 아닐 수도 있었다.
마르셀이 종이에 손가락을 댔다.
“원래 계약자의 권리를 보장하려면 통지가 실제 어디에 도달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대체 주소가 무슨 목적으로 등록됐는지도요.”
그때 보관소 직원이 다른 서류 한 장을 가져왔다.
“수취 장소 등록 번호가 이쪽 목록에 있습니다.”
[제7 임시 보관 우편함. 관리 계약자 확인 필요.]
제7 서신보관소와 이름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기관이었다.
“여기도 제7이네요.” 태오가 한숨 쉬었다.
토른이 팔짱을 끼고 말했다.
“왕국이 숫자 일곱을 너무 좋아하는군.”
태오는 수첩을 덮었다.
돈을 빼돌린 사람의 이름은 아직 없었다. 하지만 돈을 받을 사람에게 도착해야 할 편지를 한곳으로 모으려 했던 흔적은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 시도에 제4 확인석이 즉시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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