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문서 재분류소로 가는 길은 깃털처럼 가벼운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끔찍했다.
마차가 산비탈의 진흙길을 지나면서 김태오는 세 번 머리를 부딪쳤다. 리네아는 네 번째를 막겠다며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다.
“이건 보호 장치입니까?”
“네. 유료예요.”
“얼마인데요?”
“저녁에 제 부탁 하나 들어주기.”
“구체적인 조건이 없는데요.”
“당신은 정말 낭만을 서류로 죽이는 재능이 있어요.”
그녀가 웃었고 태오도 웃었다. 토른은 맞은편에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척했다. 실은 둘의 말을 전부 듣고 있다는 것을 태오는 알고 있었다.
재분류소는 넓은 석조 창고 세 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낡은 왕실 깃발이 흔들렸고, 문 위에는 ‘제2’라는 숫자를 덧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제1이었다는 뜻일까. 하지만 태오는 표지판만으로 단정하지 않았다.
마르셀이 준비한 정식 열람 허가서를 내밀자 창구 직원은 의자를 끌어왔다.
“열람 자체는 가능하지만 원문이 있는지 보장은 못 합니다.”
“그 말은 저도 잘 압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이관 때 일부는 목록만 남았을 수 있습니다.”
“목록이라도 보여 주세요.”
직원은 두꺼운 색인책을 펼쳤다. 종이를 넘길 때마다 고운 먼지가 창가의 햇살에 떠올랐다.
그날 그들은 오래된 부서가 사라져도 문서에는 두 번째 삶이 남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북부 통지대행실’이란 이름은 세 번 바뀌었고, 같은 번호가 시대에 따라 다른 보관함에 쓰였다.
“청색 철 4-7이 지금은 4-7-B예요.” 직원이 말했다.
“왜 뒤에 B가 붙었습니까?”
“첫 재분류 때 원본과 복본을 갈랐습니다. 원본은 A, 수취 확인 및 요약철은 B.”
마르셀이 눈썹을 올렸다.
“우리가 수장함에서 본 것은 B에 해당하겠군요.”
태오가 물었다.
“A는 어디 있습니까?”
직원의 손가락이 장부 아래로 이동했다. 거기에는 ‘외부 위탁 이송’이라는 글씨와 함께 수취 장소만 적혀 있었다.
[북부 제7 서신보관소.]
“또 옮겼네요.” 태오가 중얼거렸다.
리네아가 그의 팔꿈치를 살짝 눌렀다.
“그래도 이번엔 길을 찾았잖아요.”
“길 찾는 데 왕국 하나를 가로지르는 기분입니다.”
***
재분류소에 보관된 것은 원문이 아니라 이관 명세서였다. 놀랍게도 명세서의 발신 부서 표기는 왕실 재무부가 아니었다.
[북부 주민통지 정정지원실.]
이벨이 확인했다.
“이름이 비슷해도 지급 명령을 내리는 부서는 아닙니다. 주소와 수취인 정보를 검토하고 관련 부서에 통지하는 조직이었어요.”
“그럼 발카스의 처분 보류와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겁니까?”
“별개일 수도, 이후 절차에서 연결됐을 수도 있죠. 둘을 연결하는 문서가 필요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 전체가 한 손으로 움직이는 기계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는 서로 다른 부서들이 따로 도장을 찍고 있었다.
이관 명세서에는 원본 요청서가 있었다는 사실과 발신 부서의 명칭이 기재돼 있었다. 그러나 요청을 넣은 사람의 이름은 보존 범위가 정해질 때까지 가려져 있었다.
“그럼 이건 무엇입니까?”
태오가 서류 귀퉁이에 찍힌 붉은 숫자를 가리켰다.
[원문 대조 창구 7.]
반대편에는 잉크가 조금 다른 글씨가 있었다.
[회신 확인 창구 4.]
마르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4 확인석에서 보낸 회신이니까 4는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7은 원문을 발송한 사람의 소속이 아니라 문서를 받는 창구를 가리킬 수도 있겠네요.”
태오는 수첩에 두 줄을 적었다.
[7번은 요청자 이름이 아니다.]
[4번은 지급 금고 번호가 아니다.]
그동안 숫자들이 서로의 정체를 흉내 내고 있었다. 누구든 성급하면 다른 숫자를 하나로 묶어 오해할 수 있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창고 밖으로 나오자 발카스 측 대리인 바렌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카스 님께서 이곳에 오시지 못해 제가 대신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그분이 개인 금고 봉투의 등사본이 정식 증거로 접수됐는지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접수됐습니다. 보존 기관이 원본 상태를 기록했고요.”
“그렇군요.”
바렌은 잠시 망설이다 다른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추가 관리비에 관한 겁니다.”
태오의 표정이 굳어졌다.
예전에 발카스 측은 계단 손상비와 방화시설 비용, 봉인 오염 비용을 묶어 무리한 청구를 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철회됐고, 나머지도 징수 중단 상태였다. 이후 제시된 126금화 안전 대기 관리비 역시 징수가 보류돼 있었으며 보증금 원금과 자동으로 상계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돼 있었다.
“또 청구합니까?”
“아뇨. 이번엔 산출표를 제출하라는 요청에 대한 답변입니다.”
태오는 안도하면서도 종이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산출표에는 야간 순찰과 안전 점검의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러나 실제 근무자 서명은 일부 빈칸이었다.
“서명이 없는 날짜는요?”
“확인 중입니다. 제가 지급을 확정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세입자에게 청구하는 근거도 아직 없고요?”
“맞습니다. 그래서 잠정 징수 보류를 유지합니다.”
태오는 조금 놀랐다.
“오늘은 서로 말이 잘 통하네요.”
바렌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서류가 명확하면 저도 일이 줄어듭니다.”
리네아가 덧붙였다.
“태오 씨한테 배웠나 보네요.”
“아닙니다. 그건 발카스 님 앞에서는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
늦은 오후, 외부 위탁 기록에 붙은 작은 주석이 발견됐다.
[청색 철 원문, 개인정보 봉함 후 운송. 원문과 권리 이전 첨부 서류는 별도 관리.]
태오는 마지막 부분을 두 번 읽었다.
“권리 이전 첨부 서류?”
이벨이 명세서를 읽었다.
“있었다는 사실만 기록된 겁니다. 실제 권리가 이전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신청인이 관련 서류라고 주장해서 붙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원문이 수취인 주소 정정만 다루는 게 아닐 수도 있겠네요.”
“그럴 가능성은 있죠.”
마르셀은 즉시 열람 범위 확대를 신청했다. 다만 제3자의 돈을 받을 권리에 관한 자료라서 독립 심사가 필요했다. 신청을 낸다고 바로 문서를 꺼낼 수는 없었다.
태오는 서두르지 않았다. 돈이 급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원본을 훼손하거나 몰래 보고 난 뒤 무효가 된다면 지금까지 한 일이 허사가 될 수 있었다.
***
점심을 마치고 태오는 재분류소 옆 안내실에서 오래된 민원 기록의 편철 방식을 배웠다. 리네아는 그런 걸 왜 배우느냐고 물었지만, 그가 종이 한 장을 보여 주자 눈빛이 바뀌었다.
[반송 처리 뒤 대체 우편함으로 재발송한 경우, 기존 계약자에게 별도 고지할 것.]
“그런 규정이 있었어요?”
“적어도 그때의 안내문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요.”
태오가 말했다.
“그런데 소피 씨는 어떤 안내도 받지 못했다고 했죠.”
“그렇다고 안내가 없었다고 바로 결론 낼 수는 없어요. 못 받은 이유가 다양하니까요.”
“네. 그래서 비교 자료를 찾아보려 합니다.”
직원은 보존소가 보유한 공개 양식을 보여 주었다. 대체 우편함으로 통지를 모으더라도 원래 계약자에게 ‘재발송 사실’을 알려 주어야 했고, 그때의 통지 번호는 따로 생성됐다. 그런데 계정 47 관련 묶음에는 그 두 번째 통지 번호가 빠진 사례가 여럿 있었다.
마르셀이 말했다.
“하나가 빠졌다는 게 전부 누락됐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른 장부에서 처리했을 수 있습니다.”
“그 장부도 있습니까?”
“옛 북부 우편조합 자료로 요청해 보지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취 주소 정정이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확인하려면 ‘새 주소로 보냈다’는 기록뿐 아니라 ‘원래 사람에게도 알렸다’는 기록이 있어야 했다.
그때 안내실로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아기를 업은 젊은 어머니였다. 그녀는 계정 47과 관계없는 다른 사건으로 민원 서류를 받으러 왔다가 직원에게 물었다.
“예전에 이사한 사람이 편지를 못 받았으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직원은 공개 안내문을 가리켰다.
“신분 확인 후 재발송 요청을 하면 됩니다. 다만 오래된 기록은 보존 여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태오는 문득 소피를 떠올렸다. 서류 하나를 잃어버리면 돈 한 닢을 버는 일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은 혼자 살던 시절에도 서류 때문에 며칠씩 지쳤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에게 그 일이 얼마나 무겁게 느껴질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리네아가 그의 표정을 보고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혼자 버티게 해선 안 되겠죠.”
“네.”
태오는 모임에 돌아가면 세입자들이 열람 신청서를 함께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누군가 대신 서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당사자가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방식으로.
***
해 질 무렵 제2 재분류소에는 작은 실수가 있었다. 한 직원이 4-7-B 상자를 A라고 착각해 가져온 것이다. 태오는 이미 본 회신 사본을 다시 받았다.
“이게 원본은 아니죠?”
“아, 죄송합니다. 표지 색이 같아서.”
직원이 얼굴을 붉혔다. 태오는 사과를 받고 상자를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토른이 말했다.
“봐라. 한 사람이 상자 하나를 잘못 꺼내는 데도 이렇게 쉽게 일이 생긴다.”
“일곱 해 전에도 그랬을 수 있겠네요.”
“그랬을 수는 있지. 하지만 확인 없이 그랬다고 적지 마.”
“제가 평소에 하던 말인데요?”
“그래서 너한테 돌려주는 거야.”
리네아가 조용히 박수쳤다.
“두 분이 아주 훌륭한 한 쌍이세요.”
토른이 얼굴을 찡그렸다.
“난 저 인간하고 한 쌍 할 생각 없어.”
“저도요.”
태오가 동시에 답하자 셋은 웃었다. 긴장된 조사 속에서도 이런 순간이 있어 그들은 다음 날 다시 서류함 앞에 설 수 있었다.
***
재분류소에서 돌아갈 준비를 하던 태오는 창가에 붙은 낡은 신청 안내문을 발견했다.
[직접 수령하지 못한 통지는 대리 수령처 지정 후 원 권리자에게 확인해야 함.]
옛 문장이었다. 간단했지만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이런 걸 소피 씨가 읽었다면 무슨 뜻인지 알았을까요?”
리네아가 말했다.
“설명을 들으면 알았겠죠. 하지만 누가 설명했는지는 모르잖아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리인의 이름과 권리를 구분하기 전에, 서류를 받아 든 사람이 그 뜻을 이해했는지도 중요했다.
그는 설명서에 넣을 문장을 하나 생각했다.
‘편지를 대신 받아 주는 사람은 당신의 돈을 대신 가질 수 없습니다.’
이벨이 그 문장을 듣고 미소 지었다.
“원칙을 설명하기엔 좋습니다. 다만 정식으로 위임한 경우는 예외가 있으니 그 내용도 덧붙이죠.”
“또 한 줄이 늘어나네요.”
“정확한 문장은 가끔 길어집니다.”
태오는 웃었다. 짧게 쓰되 틀리지 않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이제 그는 다음 세입자 모임에서 이 차이를 설명하기로 마음먹었다. 조사한 결과가 사람들의 선택을 바꾸지 못한다면 기록만 늘어날 뿐이었다.
***
돌아오는 길에 리네아가 태오에게 물었다.
“우리가 오늘 알아낸 걸 세 줄로 말해 봐요.”
“원문은 제7 서신보관소에 있습니다. 원본 요청 부서는 주민통지 정정지원실이었고요. 그리고 권리 이전을 주장하는 첨부 서류가 따로 있었을 수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한 줄로요.”
“누가 편지를 받을지 바꾸는 일에 돈 받을 권리까지 섞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게 핵심 같네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카스가 익명 편지를 받고 두려워했던 것도 바로 그런 혼란이었을까.
그날 저녁 파벨에 돌아오니 헤스가 빵집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은 어디까지 갔다 왔나?”
“서류 찾으러요.”
“드디어 돈 받을 서류가 나왔나?”
“아직 아닙니다.”
“역시 그렇지.”
헤스는 빵 두 개를 내밀었다.
“외상 아니야. 오늘은 내 선물이네.”
태오가 놀라자 헤스가 말했다.
“자네가 서류를 쫓아다니는 동안 나는 손님한테 빵을 팔 수 있잖아.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태오는 고맙게 빵을 받았다.
그는 여전히 210금화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숫자만 보고 서류를 찾다 보면 누구에게도 돈이 돌아가지 않는 결말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이제 알고 있었다.
문득 재분류소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원본과 복본을 갈랐습니다.’
그 둘이 다시 만나는 날, 계정 47의 다른 얼굴이 나타날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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