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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2화
PAYLUA ORIGINAL · 제62화

62화. 드래곤의 개인 금고는 영수증을 싫어한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226자

오프라인 책장
검은 산맥으로 향하는 마차에서 토른은 세 번째로 같은 질문을 했다. “정말 그 늙은 용의 개인 금고를 보러 가는 거냐?” “봉투 한 장만 확인합니다.” 태오가 대답했다. “네가 그 안에 금화가 잔뜩 있는 걸 보면 흔들리지 않겠어?” “제 돈이 아닌데요.” “그런 말을 하는 인간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볼 줄이야.” “그럼 제 보증금부터 돌려달라고 해 주세요.” 토른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리네아는 창밖의 산 능선을 바라봤다. 가을 끝자락인데도 높은 곳에는 벌써 서리가 앉아 있었다. 마차 바퀴가 작은 돌을 넘을 때마다 두 사람의 무릎이 잠깐 닿았다. “추우세요?” 태오가 물었다. “조금요.” 그가 겉옷을 건네자 리네아는 받아 들지 않고 그의 손을 잡았다. “이쪽이 더 따뜻해요.” 토른이 헛기침했다. “난 귀가 멀지 않았어.” “듣지 말아 주세요.” 태오가 말했다. “둘이 내 앞에서 손잡고선?” 리네아가 웃었다. “토른 님, 장갑 빌려 드릴까요?” “내가 손 시릴 나이냐? 이건 벌써 두툼하다!” 드워프는 낡은 장갑을 들어 보였다. 그 손끝에 작은 꿰맨 자국이 있었다. 리네아는 그 말을 듣고 더 웃었고, 태오는 괜히 창밖을 봤다. *** 발카스의 동굴은 예전과 같았다. 검은 석벽, 거대한 금속문, 찬 공기 속에 섞인 유황 냄새. 하지만 태오가 처음 그곳을 찾았던 날과 달리 입구에는 방문자 명부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뭡니까?” 태오가 물었다. 동굴 관리인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들어온 자와 나간 자를 기록하라는 명령입니다.” “누가 내렸는데요?” “주인님.” 태오는 잠시 말을 잃었다. 토른이 귓속말했다. “네가 고대 드래곤을 서류 중독자로 만들었군.” “전 돈만 받으려 했는데요.” 관리인은 명부에 서명하라며 펜을 내밀었다. 장갑 아래 금속 장식에 세 고리 문양이 있었다. 태오는 시선을 잠깐 머물렀다가 장식의 위치만 기억해 두었다. 파벨에서 보았던 회색 장갑 수행원의 문양과 닮았지만, 같은 물건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디서 만든 장식인가요?” 관리인은 대답 대신 펜을 탁 내려놓았다. “방문 목적부터 적으시오.” “익명 봉투 열람.” “열람? 내가 손님을 들여놓는 건가, 도서관을 여는 건가.” “도서관이면 책 대출도 되겠네요.” 토른이 웃음을 터뜨렸다. *** 발카스의 개인 금고는 계정 47의 공동 보관소와 전혀 달랐다. 산속으로 길게 이어진 작은 방 여러 개가 한 사람의 수집벽을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오래된 왕관, 칼집이 없는 검, 밑바닥이 깨진 술잔, 멸망한 왕국의 지도, 반쯤 녹아내린 청동 종. “그걸 다 왜 보관합니까?” 태오가 물었다. 발카스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쓸모가 있으니까.” “저 깨진 술잔도요?” “한 왕이 마지막 술을 마신 잔이다.” “돈은 안 돌려주시면서 추억은 잘 간직하시네요.” “사백 해 된 물건의 가치를 네가 아느냐.” “금화로 환산하면 더 잘 알 것 같습니다.” 발카스의 눈썹이 씰룩했다. 바렌은 옆에서 장부를 들고 말없이 서 있었다. 그는 이 금고의 물건들이 계정 47과 무관한 개인 재산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목록을 준비해 왔다. 문제의 봉투는 돌서랍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검은 밀랍은 가장자리가 조금 깨져 있었고, 안쪽에는 얇은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발카스가 말했다. “원본은 손대지 마라. 내가 먼저 보여 주겠다.” 그는 봉투를 탁자에 놓았다. 세딘이 보존 천을 깔고 표면 상태를 기록했다. [명단을 다시 보라. 제4 확인석에서 수취인 정정이 진행된다. 이전 이름과 새 주소가 일치하지 않는다.] 짧았다. 발신인도 없고 왕실 인장도 없었다. 글씨는 고르게 적혀 있었으나 종이 끝이 비스듬히 잘려 있었다. “이 편지를 받고 처분 보류를 요구하신 겁니까?” 이벨이 물었다. “그렇다. 누군가 예치금을 다른 곳으로 넘기려 한다고 생각했다.” “편지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요.” 태오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발카스가 태오를 노려봤다. “이름과 주소가 바뀌는데 무얼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냐?” “의심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정정이 진행된다’고만 적혀 있습니다. 돈을 옮겼다는 문장은 없어요.” 드래곤이 불만스레 코에서 연기를 내뿜었다. 세딘이 종이의 절단면을 살폈다. 발카스가 손가락을 뻗자 이벨이 급히 말렸다. “원본의 상태를 유지해 주십시오.” “내 금고에서 나온 내 종이다!” “소유권과 증거 보존은 다른 문제입니다.” 발카스는 손을 거뒀다. “너희 인간은 무엇이든 둘로 나누는구나.” 태오가 말했다. “금화는 다시 한데 모을 줄 압니다.” *** 세딘은 봉투 바깥의 주름을 대조했다. 검은 봉투는 파벨 우편조합의 정규 발송 봉투보다 폭이 조금 좁았다. 다만 그것만으로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편조합의 공개 유통품일 수도 있고, 주문 제작품일 수도 있습니다.” 마르셀이 물었다. “소인이나 배달 번호는 없습니까?” “겉면에는 없습니다. 안쪽 접힘에 숫자처럼 보이는 것이 있는데 손상돼 있습니다.” 토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건 숫자 일곱이 아니라 짧은 홈 두 개야. 구리판을 대고 눌렀을 때 생기는 자국이지.” “그럼 동일한 재단기를 썼는지 비교할 수 있겠네요.” 태오가 말했다. “어디까지나 비슷한 자국인지 비교하는 거다. 만드는 사람이 같았다는 결론은 나중에.” 태오는 말을 적다가 웃었다. “요즘은 토른 님도 말을 조심하시네요.” “너하고 오래 다니면 누구든 그렇게 된다.” 리네아가 손을 들었다. “전 처음부터 조심했어요.” “리네아 양이?” 토른이 콧방귀를 뀌었다. “적어도 태오 씨 앞에서는요.” 태오가 목이 메는 소리를 냈다. 발카스는 마침내 인내심을 잃었다는 듯 말했다. “네 연애 이야기를 들으려고 삼천 년을 살지 않았다.” “저도 집주인님하고 연애 상담하려고 여기 온 건 아닙니다.” “다행이군.” *** 동굴을 나오기 전 바렌이 태오를 따로 불렀다. “다음 비계정 매각 심사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직 지급 확약을 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지급할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해 주세요. 잔액은 210금화입니다.” “발카스 님은 그 숫자를 요즘 외우고 계십니다.” “정말요?” “새벽에도 듣습니다.” “저한텐 좋은 소식이네요.” 바렌은 미소를 지었다가 곧 진지해졌다. “다만 발카스 님이 진짜로 무서워하는 것은 돈의 규모가 아닙니다.” 태오는 기다렸다. “오래된 계약의 서명이 자기 뜻과 다른 일을 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그런 일을 한 번 겪었다고 하셨지요.” “언제였습니까?”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직접 여쭤보십시오.” 태오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 적었다. 바렌이 모른다고 한 부분을 상상으로 채울 생각은 없었다. *** 발카스의 개인 금고에는 작은 출납실도 있었다. 드래곤이 돈을 쓸 때마다 집사가 물품 수와 상태를 적던 방이었다. 태오는 서랍에 쌓인 송장들을 보고 입을 벌렸다. “삼천 년 동안 이걸 다 보관하신 겁니까?” “일부는 잃어버렸다.” 발카스가 말했다. “일부요?” “전쟁이 세 번 있었으니까.” “그럼 보증금 영수증도 그중에 들어간 건 아니겠죠?” 발카스는 주저 없이 말했다. “네 계약 원본은 안전하다.” “그것부터 다행이군요.” 바렌이 한쪽 장부를 가져와 실물과 번호를 맞췄다. 익명 봉투가 들어 있던 서랍의 번호, 마지막 개봉일, 담당 집사의 인계 서명이 남아 있었다. 봉투를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지만 발카스가 그것을 보관한 경위는 어느 정도 재구성할 수 있었다. 토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봉투가 배달된 날이랑 서랍에 들어간 날이 일치하나?” “같지는 않소.” 바렌이 답했다. “도착 후 닷새째에 옮겨 놓았다고 돼 있습니다.” “그 사이 다른 사람이 봉투를 열어 본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도 열어 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요.” 태오는 바렌을 바라봤다. 드래곤의 대리인도 이제 확실하지 않은 부분을 먼저 인정하고 있었다. “그 닷새 동안 발카스 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발카스가 의자에 앉았다. 거대한 몸의 힘을 인간형에 억지로 담아 둔 듯 의자가 작은 소리를 냈다. “대리인들과 상의했다. 원래는 금고 장부만 확인하면 해결될 줄 알았지. 하지만 당시 공동 보관소의 권한을 가진 자가 누구인지도 의견이 갈렸다.” “그럼 그때부터 계정 47이 복잡했군요.” “처음부터 복잡한 일은 아니었다.” 드래곤의 목소리에 피로가 섞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한곳에 맡겼다. 불이 나고 집이 무너져도 남게 하려고. 그러다 왕국이 기록을 관리했고, 상회가 통지를 대행했으며, 누군가 수익권자라는 말을 들고나왔다.” 태오는 설명을 들으며 동굴 저편을 바라봤다. 이곳에는 왕국이 무너진 뒤에도 남은 물건이 많았다. 물건은 남았는데 약속은 더 쉽게 훼손됐다. “그래도 집주인님은 제게 계약을 하셨습니다.” “알고 있다.” “그 사실은 누가 금고를 관리하든 안 바뀝니다.” 드래곤이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그래. 그래서 내 물건을 팔고 있지 않느냐.” 태오는 말을 잇지 않았다. 발카스가 봉투를 내미는 손짓을 했다. “내가 경고받았다고 믿었던 일의 시작을 찾아라. 다만 함부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마라. 그랬다간 오히려 원본을 가진 자들이 입을 닫을 것이다.” 태오는 놀라 그를 바라봤다. “그 말씀은 좀 의외네요.” “네게도 배운 것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말씀 안 하셔도 알아요.” 바렌이 뒤쪽에서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토른은 소리 내 웃지 않으려고 수염을 쥐어뜯었다. *** 리네아는 동굴 바깥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늙은 관리인이 문 앞에 앉아 장갑의 끈을 고치고 있었다. “발카스 님이 이 봉투를 처음 읽었을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기억하세요?” 관리인은 잠시 손을 멈췄다. “오래된 일이오. 내가 본 건 그분이 이틀 동안 외부 손님을 들이지 않았다는 사실뿐이오.” “기록은 있습니까?” “방문자 명부가 있을 거요. 요즘처럼 상세하지는 않지만.” 리네아는 태오를 불렀다. 그는 관리인에게 정식 요청으로 명부의 당시 날짜만 확인할 수 있는지 물었다. 관리인은 발카스의 허가가 필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럼 허가를 받아 오겠습니다.” 리네아가 말했다. “당신이 보고 싶은 건 봉투를 받은 뒤 누굴 만났는지죠?” “네. 발카스 님이 요구서를 내기 전에 상의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관리인이 낡은 장갑을 접었다. “일곱 해 전의 손님이라. 이름보다 그들이 무엇을 가져왔는지 기억날지도 모르지.” 태오는 그 말까지 정확히 적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새로운 질문의 방향이 생겼다. *** 돌아오는 마차에서는 바람이 더 차가워졌다. 리네아는 태오의 어깨에 기대 졸다가 깨어났다. “오늘도 돈은 못 받았네요.” “네. 대신 봉투를 받았습니다.” “읽어만 본 봉투죠.” “그렇죠. 근데 이상하지 않아요? 발카스 님은 수취인 명단이 잘못됐다는 익명 경고를 받고 움직였대요. 그런데 그 경고가 왜 하필 그때 도착했을까요?” “이미 누군가 정정을 보류한 뒤였으니까요?” “가능성 중 하나죠.” 리네아는 잠시 생각하다 그의 손등을 만졌다. “누가 먼저 알렸든, 알려주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던 걸까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거리의 어둠 속에서 마차 등불이 흔들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왜 그렇게 봐요?” “당신은 꼭 제가 생각 못 한 방향을 알려 줘서요.” “그러면 보상은요?” “보상?” “좋은 생각을 했으면 보상을 받아야죠. 태오 씨가 늘 그러잖아요.” 그는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했다. 리네아가 눈을 감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 건은 선지급으로 인정할게요.” “잔금도 있습니까?” “물론이죠. 저녁 같이 먹어 줘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가 파벨시 성문을 통과할 때 작은 전달석이 울렸다. 마르셀이 보낸 속보였다. [청색 철 4-7의 발신기관 이관 경로 확인. 북부 통지대행실에서 왕실 서신 분류국을 거쳐, 현재 파벨 외곽의 제2 문서 재분류소로 이전된 기록 존재.] 태오는 돌을 내려다봤다. 드래곤의 개인 금고에서 찾은 봉투는 질문을 하나 던졌다. 이제 그 질문의 처음이 적힌 종이가 있을 법한 장소도 생겼다. 문제는 그곳이 왕국의 관청이라는 점이었다. 태오는 무심코 말했다. “내일은 관청이군.” 리네아가 잡고 있던 손을 살짝 놓았다. “방금 드래곤 이야기했어요.” “아니, 관청이라고 했는데요?” “그 얼굴이면 똑같아요.” 태오는 속으로 항변했지만,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때까지 잠자코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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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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