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바닥을 뜯지 마.”
토른의 첫마디였다.
김태오는 그를 집 안으로 들이며 물었다.
“뜯으면 안 되는 이유가 뭔가요?”
“모르니까.”
“그럼 언제 뜯습니까?”
“알고 나서.”
이야. 건축 장인다운 대답이다.
토른은 공구함에서 누렇게 바랜 설계도를 꺼냈다. 겉표지에는 파벨시 주택조합의 인장이 찍혀 있었다. 태오는 도면을 펼친 뒤 자신이 사는 집의 윤곽을 찾아봤다. 부엌, 계단, 거실, 침실. 구조는 실제와 거의 같았다.
단 하나만 빼고.
“여기 밑에 공간이 하나 더 있는데요?”
태오가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그래. 지하 작업실이라고 적혀 있어.”
“지하실은 없다고 들었는데요.”
“지금은 없어 보이지.”
“말씀을 참 무섭게 하시네요.”
토른은 웃지 않았다. 그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여기가 비어 있어. 그런데 빈 공간을 만든 방식이 이상해.”
태오가 바닥에 귀를 대 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이 토른만큼 나무와 돌을 잘 아는 건 아니었다. 드워프는 세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속이 찬 벽과 빈 벽을 구별했다.
“혹시 위험합니까?”
“잘못 건드리면 집이 내려앉을 수 있어.”
“그럼 안 건드립니다.”
“겁이 많군.”
“집이 무너지면 보증금에서 공제한다잖아요.”
토른이 이번에는 크게 웃었다.
“용 둥지까지 찾아간 놈이 바닥 수리비는 무섭냐?”
“금화 삼백 닢이 걸린 문제라서요.”
“좋아. 그럼 제대로 하자.”
토른은 계단 아래에 숯으로 직사각형을 그렸다. 손가락으로 조각을 문지르자 희미한 푸른 선이 나타났다.
“봉인은 네가 생각하는 단순한 잠금 마법이 아니야. 집의 하중 일부를 이 선에 걸어 놨어.”
“마법이 기둥 역할을 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지. 봉인을 풀면 기둥 하나를 뽑는 셈이지.”
태오는 눈을 크게 떴다.
“집주인에게 허락받고 풀어야겠군요.”
“허락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대체 지지대를 먼저 세워야 해.”
이 사람, 정말 전문가였다. 태오는 처음으로 발카스가 무서운 것과는 별개로 집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느꼈다.
“비용이 얼마나 들까요?”
“금화 여섯 닢.”
“생각보다 비싸네요.”
“집이 안 무너지는 값이다.”
“그렇게 설명하시면 싸네요.”
토른은 입꼬리를 올렸다.
“먼저 세 닢만 받아. 나머지는 나중에.”
“왜요?”
“보증금도 못 받았다며. 내 일당까지 밀리면 곤란하니까.”
태오는 기꺼이 계약서를 썼다. 작업 범위와 대금, 결과물 기록, 책임 범위를 적었다. 토른은 계약서를 읽고 감탄했다.
“내가 일하면서 본 의뢰인 중에 제일 귀찮은 인간이군.”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칭찬 맞아. 귀찮은 사람이 돈은 제때 주거든.”
***
다음 날 오전, 토른의 작업이 시작됐다. 태오는 벽 옆으로 밀린 가구를 정리했다. 리네아는 중개업 길드에서 받은 주택 이력서를 가져왔다.
“이상한 기록이 있어요.”
“뭔데요?”
“발카스 님이 집을 사들이기 전에 지하 작업실을 폐쇄하도록 명령한 기록이요.”
“매입 전에요?”
“네. 소유권이 넘어가기 사흘 전이에요.”
토른이 망치를 멈췄다.
“그거 날짜 확실해?”
“확실해요.”
“그러면 누가 지시했는지 봐야겠군.”
“서명란이 비어 있어요.”
리네아가 내민 서류에는 명령 문구만 남아 있었다.
[지하 보관실의 출입을 영구 제한한다. 승인 권한: 금고 관리자.]
태오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집 밑에 금고가 있다는 겁니까?”
“원래는 그런 용도가 아니었어.”
토른이 낮게 말했다.
“이 동네 지하실은 겨울 식량을 저장하려고 만들었지. 그런데 누군가 용의 봉인을 덧씌웠어.”
그는 바닥을 향해 망치를 들어 올렸다.
“이건 수리가 아니라 봉인 설치 공사야.”
태오는 리네아를 바라봤다.
“이 집에 살던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발카스는 알고 있었겠죠.”
“직접 묻는 수밖에요.”
태오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일이 생길 때마다 결론이 드래곤에게 돌아갔다.
그날 오후, 토른은 계단 한쪽을 뜯어냈다. 먼지가 올라왔다. 지지대를 세운 뒤 얇은 판자 두 개를 들어내자 까만 돌바닥이 드러났다. 중앙에는 손바닥 크기의 둥근 홈이 있었다.
“열쇠 구멍인가요?”
“물건을 꽂는 자리 같군.”
리네아의 시선이 태오의 가방으로 향했다.
태오도 같은 생각이었다.
발카스가 돈 대신 보낸 검은 비늘.
[47-B.]
“설마 이거겠어요?”
태오가 비늘을 꺼냈다.
토른이 재빨리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꽂지 마.”
“왜요?”
“넌 이게 열쇠인지 폭탄인지 모르잖아.”
“그럼 어떻게 확인합니까?”
토른은 비늘을 꺼내지 않은 채 수정 탐침을 가까이 댔다. 탐침 끝이 일곱 번 깜박였다. 이어 홈의 가장자리에서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보관 계정 확인. 인증 잔여 2단계.]
태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계정?”
그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은행 계좌를 열 때마다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세계 마법 금고가 계정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처음 보았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토른은 침묵했다. 그가 태오에게 비늘을 돌려주었다.
“여기까지다.”
“왜요? 이제 막 찾았는데.”
“내가 고칠 수 있는 건 집이지, 남의 비밀 금고가 아니야.”
“금고를 열자는 게 아닙니다. 집 구조가 안전한지 확인하려는 거예요.”
“그럼 집은 안전하게 만들어 주마. 안에 든 건 따로 해결해.”
태오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토른에게 집주인과 싸울 의무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본래 부탁한 일은 집의 위험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토른은 못을 세게 박았다.
“고맙다는 말은 수리 끝나고 해. 아직 끝난 거 아니야.”
***
토른이 집 안에서 작업하는 동안 태오는 따로 장부를 만들었다. 날짜별로 무엇을 뜯었는지, 어떤 자재를 썼는지, 누가 현장에 있었는지를 기록했다. 리네아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이 정도면 드워프 장인의 제자 같아요.”
“저는 손재주는 없어서요.”
“계단은 직접 고치셨잖아요.”
“그래서 일이 더 커진 거 아닙니까.”
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토른은 계단을 고칠 때마다 작은 쇠못에 고유한 표시를 남겼다. 망치 끝의 무늬가 못머리에 찍혔다. 그는 누구도 남의 실수로 자기 공사를 탓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드워프도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네요.”
“당연하지. 백 년 뒤에도 내 자식들이 이 계단을 고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럼 설계도도 남기시겠네요.”
“남기지. 그런데 대부분의 집주인은 그걸 귀찮아하지.”
토른은 오래된 나무기둥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서류 없는 집은 고장 나면 누구도 원인을 몰라. 결국 사는 사람이 돈을 더 쓰게 돼.”
그 말이 태오의 마음에 남았다. 지금 자신의 보증금 문제와 다르지 않았다. 돈이 어디에 있는지 기록이 없으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
점심 무렵에는 이웃집의 할아버지가 구경하러 왔다. 그는 계단 아래에 세워진 임시 지지대를 보고 혀를 찼다.
“저 구멍, 옛날에도 있었는데.”
태오가 돌아봤다.
“예전에도 지하실 입구였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살던 때에는 아래에 저장고가 있었다더군.”
“어떤 물건을 보관했는데요?”
“곡식이랑 겨울용 장작.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잠갔대.”
“왜죠?”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 손바닥을 펼쳤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와서 한동안 공사를 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어.”
태오는 토른을 흘끗 보았다. 드워프는 대답 없이 못을 박았다.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언제쯤 일이었습니까?”
“내가 스무 살쯤 됐으니, 스물세 해 전인가.”
또 같은 시기였다.
태오는 그 말을 수첩에 기록했다. 다만 직접 보았다는 말이 아니라 전해 들었다는 말이었으므로 맨 옆에 ‘간접 증언’이라고 적었다.
오후에는 작업이 잠시 중단됐다. 토른이 금속 지지대를 주문했는데 배송된 물건의 길이가 짧았다. 드워프는 배송 기사에게 성을 냈다.
“여섯 뼘이라고 했지 다섯 뼘 반이라고 했느냐!”
“주문서에는 다섯 뼘 반인데요.”
“말도 안 돼!”
태오는 재빨리 주문서를 펼쳤다. 글씨를 확인한 뒤 토른에게 보여 줬다.
“정말 다섯 뼘 반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토른이 얼굴을 구겼다.
“내가 잘못 썼군.”
배송 기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교환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태오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교환 날짜와 운송비를 확인했다. 잘못 주문한 책임은 토른에게 있었다. 토른은 투덜거리면서도 직접 비용을 냈다.
“장인이 실수할 수도 있죠.”
태오가 말했다.
“실수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남한테 뒤집어씌우면 장인이 아니지.”
토른은 새 길이의 자재를 주문하고 돌아섰다.
태오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래곤이 그런 태도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지금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리네아는 어수선한 작업실을 정리하며 물었다.
“태오 씨, 보증금만 받으면 여기서 이사하실 거예요?”
“원래는요.”
“지금은요?”
태오는 열린 마룻바닥을 내려다봤다. 살면서 정든 집이었다. 하지만 계약이 끝난 집에서 계속 사는 것도 이상했다. 이사할 돈은 묶여 있었고, 새로운 가게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아직 모르겠어요. 우선 돈부터 받아야죠.”
“발카스 님은 계약을 연장하라고 할지도 몰라요.”
“그럼 계약서를 새로 쓰겠죠.”
“또 읽으실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요.”
리네아가 웃었다.
“이젠 제가 먼저 읽어 볼게요.”
두 사람은 잠깐 웃었다. 집 안은 먼지투성이였고, 바닥에는 공구와 나무판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래도 일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누군가 고장 난 곳을 살펴보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필요한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창문 밖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탁.
태오가 돌아보니 검은 새 한 마리가 창틀에 앉아 있었다. 주둥이에는 얇은 종이가 물려 있었다. 태오가 문을 열자 새는 종이를 떨어뜨리고 날아갔다.
[계정 확인 중. 봉인을 훼손하지 말 것.]
서명은 없었다.
리네아가 얼굴을 굳혔다.
“누가 보낸 걸까요?”
태오는 종이를 자세히 봤다. 검은 잉크에는 미세한 금빛 가루가 섞여 있었다. 발카스의 동굴에서 보았던 문서의 잉크와 비슷했다.
“저희가 무엇을 찾았는지 누군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토른은 종이를 받아 냄새를 맡더니 짧게 말했다.
“이건 경고야.”
“드래곤의 경고입니까?”
“글쎄. 드래곤이 쓴 편지라면 이름을 숨길 이유가 있을까?”
태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용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다는 뜻일까.
토른은 종이를 돌려주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기둥을 마저 고치지.”
태오는 종이를 접었다. 경고라고 해서 당장 작업을 멈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서두르다가 증거를 망칠 생각도 없었다. 그가 원하는 건 문을 억지로 부수는 일이 아니었다. 문을 열어야 할 이유와 방법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
저녁 무렵, 태오는 마당에 나와 머리를 식혔다. 집 안에서는 토른이 기둥을 조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신문처럼 배달된 시장 소식지를 펼쳤다. 동문 골목의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올랐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검은 산맥 임대주택, 안정적 자산으로 인기.’
태오는 기사를 읽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안정적이라는 말이 누구에게는 참 편했다. 투자하는 사람에게 안정적이면 세입자에게도 안정적인 걸까.
그는 소식지 가장자리에 적힌 작은 광고를 발견했다.
[주택 보증금 선지급 서비스. 신속 심사. 보관 계정 담보 인정.]
업체 이름은 브라운 금고상회였다.
태오는 주소를 적었다. 누군가 보증금을 현금으로 바꿀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때 집 안에서 토른이 소리쳤다.
“태오! 이것 좀 봐!”
태오는 달려 들어갔다.
뜯어낸 바닥 가장자리에 쇳조각 하나가 끼어 있었다. 오래된 동전처럼 생겼지만 양면이 매끈했다. 토른이 닦아 내자 문장이 드러났다.
[주택조합 공동 보관소. 입고 확인.]
태오는 그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집주인이 자기 돈을 숨긴 게 아니었군요.”
“그럼?”
“누군가 맡긴 돈을 여기에 모아 둔 겁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했을까.
그 질문에는 아직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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