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시에서 등기부를 떼는 방법은 간단했다.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복잡했고, 담당자를 아는 사람에게는 간단했다.
김태오는 두 번째 방법을 택할 수 없었다. 아는 담당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신청서 쓰고, 인장 확인하고, 세금 납부 확인서를 받으세요.”
등기 창구의 서기가 설명했다.
“세금 납부 확인서는 어디서 받는데요?”
“옆 건물 세무과요.”
“그럼 다시 여기 와야 합니까?”
“물론이죠.”
태오는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받았다. 이세계에 와서 가장 고향 생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두 시간을 돌고 돌아 받은 등기부에는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적혀 있었다.
[현재 소유자: 발카스.]
[이전 소유자: 파벨시 주택조합.]
[이전 이전 소유자: 미상.]
“미상?”
태오는 서기관을 올려다봤다.
“그건 무슨 뜻입니까?”
“옛날 기록이 분실됐나 보죠.”
“백삼십 년밖에 안 된 집이라던데요.”
“그동안 전쟁도 있었고, 화재도 있었고…….”
서기관은 어깨를 으쓱했다.
“기록이 없는 집은 흔합니다.”
흔하다고 괜찮은 건 아니었다. 태오는 등기부의 거래 날짜를 훑었다. 발카스가 집을 사들인 날은 정확히 스물세 해 전이었다. 그날 같은 골목의 집 열두 채가 일괄로 이전되었다.
“이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까?”
“글쎄요.”
“집 열두 채가 같은 날 매각됐어요.”
“큰 부자가 한꺼번에 샀겠죠.”
태오는 깊게 숨을 쉬었다.
“거래 사유라도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소유자 승인 없이는 안 됩니다.”
“소유자가 승인하지 않으면요?”
“못 보죠.”
그래. 결국 다시 드래곤이었다.
***
리네아는 중개인 길드에서 오래된 계약 장부를 찾아왔다.
“모든 기록을 가져올 수는 없었어요. 개인정보라서요.”
“그럼 공개된 범위만 보죠.”
“일단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건 동문 골목에서 지난 삼십 년간 계약 만료한 세입자 명단이에요.”
리네아는 작은 종이를 펼쳤다. 이름만 열여덟 명이었다.
태오는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중 보증금 반환 확인이 있는 사람은요?”
“넷.”
“열여덟 명 중 넷이요?”
“아뇨, 네 건의 계약에는 반환 기록이 있어요. 나머지는 기록이 없거나 다른 방식으로 종료됐어요.”
태오는 계산을 멈췄다. 반환 기록이 없는 것이 반드시 미지급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기록이 누락됐을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확인해야 할 사람이 많다는 건 분명했다.
“연락 가능한 분부터 만나 보죠.”
“제 고객 명단을 마음대로 드릴 수는 없어요.”
“그럼 리네아 씨가 연락해 주세요. 동의하는 분만 저와 만나고요.”
리네아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렇게 할게요.”
두 사람은 오후 내내 서류를 분류했다. 태오는 노트 한 장에 날짜별로 줄을 그었다. 이미 떠난 세입자, 아직 사는 세입자,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 단정할 수 없는 칸에는 억지로 결론을 쓰지 않았다.
[확인 필요.]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마음을 편하게 했다.
***
첫 번째로 만나기로 한 사람은 빵집을 하는 노파였다.
이름은 헤스. 동문 골목에서 십오 년 동안 살다가 시장 앞 가게로 옮겼다고 했다. 작은 빵집은 버터 냄새로 가득했고, 문 앞에는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발카스의 집?”
헤스가 손에 묻은 밀가루를 털었다.
“거기 살았지. 오래됐네.”
“보증금은 돌려받으셨습니까?”
“받았다고 해야 하나.”
헤스는 계산대 아래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붉은 조약돌이 들어 있었다.
“이걸 줬어.”
태오의 입술이 굳었다.
“금화 대신요?”
“그렇지. 이걸 가지고 있으면 발카스 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했어.”
“그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처음엔 고마웠지. 산적들이 시장을 습격하던 때였거든.”
헤스가 조약돌을 돌려 보였다.
“그런데 빵 반죽은 보호만으로 못 사잖아. 돈이 있어야 밀가루를 사지.”
“결국 금화는요?”
“못 받았어. 그때는 따질 용기도 없었고.”
태오는 말을 잃었다. 열다섯 해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니. 그의 문제만은 아닐 가능성이 커졌다.
“그 뒤엔 어떻게 됐나요?”
“다른 세입자가 들어왔지. 보증금을 새로 냈을 테고.”
태오는 눈을 들었다.
“그렇다면 새 보증금을 받아서 이전 세입자에게 지급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텐데요.”
“가능했겠지.”
노파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나한테는 오지 않았어.”
태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야기를 기록해도 될까요?”
헤스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 빵집 이름은 함부로 쓰지 마. 발카스 님이 화나면 거래처가 끊길 수도 있어.”
“그렇게 하겠습니다.”
노파는 빵 두 개를 종이에 싸 주었다.
“너 같은 사람이 예전에도 하나 있었어.”
“저 같은 사람이요?”
“계약서 들고 용을 찾아가겠다고 떠들던 청년.”
태오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떻게 됐습니까?”
“잘 모르겠어. 어느 날 갑자기 동네에서 사라졌거든.”
태오는 입안이 말라 갔다.
“이름은 기억하세요?”
“아마…… 다렌이라고 했을 거야.”
***
빵집을 나선 뒤 태오는 골목 모퉁이에 멈춰 섰다.
리네아는 헤스에게서 받은 조약돌의 그림을 그린 뒤 말했다.
“비슷해요.”
“뭐가요?”
“태오 씨가 받은 비늘하고요. 모양은 달라도 마력 문양이 닮았어요.”
태오는 가방에서 비늘을 꺼냈다. 47-B라는 글자가 보였다. 헤스가 받은 돌에는 작은 선이 두 개 새겨져 있었다.
“저건 번호가 없는데요.”
“마력으로 감춘 걸 수도 있어요.”
리네아가 손가락 끝에 빛을 모았다. 조약돌 그림 위에 그림자처럼 다른 선이 나타났다.
[31-A.]
태오는 가만히 숫자를 바라봤다.
둘 다 번호가 붙어 있었다.
집주인이 돈 대신 주는 물건을 아무렇게나 골라 준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목록이 있는 거군요.”
“어쩌면요.”
“그 목록을 찾으면 누가 얼마를 못 받았는지 알 수도 있겠습니다.”
리네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목록이 어디 있는지는…….”
“발카스의 금고겠죠.”
태오가 말했다.
“아니면 중개 길드의 창고거나요.”
리네아는 조용해졌다.
그녀가 길드 창고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건 태오도 눈치챘다. 하지만 다그친다고 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었다.
“괜찮아요. 오늘 당장 말 안 하셔도 됩니다.”
“태오 씨.”
“네?”
“저 정말 돈 안 돌려줄 줄은 몰랐어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알면 되죠.”
그 말에 리네아의 눈빛이 흔들렸다.
***
태오는 헤스의 빵집에서 나오기 전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때 다렌이라는 사람,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헤스는 한참 기억을 더듬었다. 쟁반 위에 놓인 막 구운 빵을 살피다가 천천히 말했다.
“말이 많았어. 그런데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 마을 서쪽에서 작은 가구점을 했어.”
“가구점이요?”
“응. 늘 손에 톱밥이 묻어 있었어. 이웃집 문짝이 고장 나면 돈도 안 받고 고쳐 주곤 했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토른이 떠올랐다. 손으로 집을 고치는 사람들은 집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왜 발카스와 싸웠을까요?”
“아내가 아팠거든.”
헤스는 빵을 포장하는 손을 멈췄다.
“보증금을 받으면 다른 도시의 치료소에 데려갈 수 있었어. 하지만 집주인은 기다리라고만 했지.”
태오는 말을 잃었다.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았다. 그것도 원래 자기 돈이었는데. 그는 방금까지 보증금을 생활비와 새 가게 마련에 쓰려 했던 자신의 사정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 돈이 가족의 목숨에 가까운 문제였을 수 있었다.
“그분 아내는 어떻게 됐습니까?”
“모르겠어. 어느 날 둘 다 떠났다고 들었지.”
“어디로 갔는지도요?”
“그때는 다들 자기 살기 바빴으니까.”
헤스의 목소리에는 오래된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태오는 더 캐묻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에 관해 증언을 부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조심스러웠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헤스가 손목을 붙잡았다.
“젊은이.”
“네.”
“용이 무섭다고 모두 나쁜 사람은 아니고, 용이 부자라고 모두 좋은 사람도 아니야. 네 눈으로 확인해.”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러려고 합니다.”
그 후 리네아는 또 한 명의 세입자를 만나게 해 주었다. 낡은 구두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그는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보증금 대신 발카스의 광산에서 사용할 수 있는 채굴권을 받았다고 했다.
“금화 대신 광산 이용권을 준다고요?”
“그게 돈이 된다고 했지.”
장인은 서랍에서 낡은 나무패를 꺼냈다. 패에는 삼각형 산맥이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몇 번 가 봤어. 그런데 광산 입구에서 따로 입장료를 내라고 하더군.”
“입장료요?”
“채굴 허가권은 있는데 시설 이용료는 별도라는 거야.”
태오는 이마를 짚었다.
안내문을 읽다 보면 항상 작은 글씨가 문제였다. 채굴권을 주는 것과 실제로 채굴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달랐다. 게다가 혼자 들어가서 광물을 캐낼 장비나 기술이 없다면 권리는 종이 조각일 뿐이었다.
“결국 사용 못 하셨군요.”
“그렇지.”
장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중에 그 패를 팔려고 했더니 사는 사람도 없더라고.”
태오는 목장갑이 낡은 그의 손을 바라봤다. 돈이 돌아오지 않은 채로도 사람들은 살아갔다. 조금 더 일하고, 조금 덜 쓰고, 꿈을 미루면서. 그런 모습이 익숙해서 더 마음이 무거웠다.
리네아는 돌아오는 길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중개인으로서 좋은 조건만 봤던 것 같아요.”
“어떤 점에서요?”
“집주인이 강력하다는 건 중개인에게 장점이거든요. 세입자가 함부로 집을 부수거나 월세를 밀릴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세입자가 돌려받아야 할 돈은요?”
“그걸 충분히 생각하지 않았어요.”
태오는 그녀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잘못을 인정한다고 이미 일어난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가 여전히 서류를 들고 함께 걷고 있다는 점에는 의미가 있었다.
그들은 시장 광장의 게시판 앞에 멈췄다. 태오는 안내문을 붙일까 고민했다. ‘발카스 집에서 보증금을 못 받은 사람이 있다면 연락해 달라.’ 하지만 타인의 계약을 함부로 공개해도 괜찮은지는 알 수 없었다.
“중개 길드 규정에는 공개 모집이 가능합니까?”
“특정 집주인을 지목하면 명예를 훼손했다고 문제 삼을 수 있어요.”
“그럼 거주권 등록소의 분쟁 번호를 안내하는 건요?”
“그건 공식 절차니까 문제 없을 거예요.”
태오는 신중하게 문구를 적었다.
[파벨 동문 주택 임대 계약 관련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거주권 등록소에 문의하십시오. 분쟁 번호 218-47.]
리네아는 글씨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괜찮아요.”
태오는 안내문을 붙였다. 종이는 바람에 흔들렸다. 당장은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언젠가 읽고, 자기 계약을 다시 꺼내 볼지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태오는 다렌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여러 번 되뇌었다.
그가 어디로 갔든, 그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든, 함부로 실종 사건이라고 단정하지는 않을 생각이었다. 살아 있을 가능성도 있었고, 제 발로 떠났을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이상한 숫자들이 계속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47.
집 아래의 비밀 공간.
그리고 보증금을 돈 대신 다른 물건으로 바꿔 주는 드래곤.
***
그날 밤, 태오는 집으로 돌아와 헤스의 말을 기록했다. 날짜, 장소, 동의 여부, 보증금 대신 지급된 물건. 그는 증언과 추측을 다른 색 잉크로 구분했다.
그러다 책상 아래에 놓인 상자를 보았다.
이사할 때 쓰려고 사 둔 빈 나무 상자였다. 원래라면 오늘쯤 짐을 싸고 있어야 했다. 새 작업장 근처에 점찍어 둔 작은 가게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계약이 늦어지는 동안 놓친 기회였다.
태오는 빈 상자 옆에 앉았다.
자기 일 하나 해결하겠다고 시작한 일이 어느새 남의 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겁이 났다. 한 사람의 보증금만 받아도 드래곤이 화를 낼 판에, 오래전 세입자들까지 문제를 꺼내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 똑. 똑.
늦은 밤이었다.
태오가 문을 조금 열자 낯선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은 얼굴의 절반을 후드로 가리고 있었다.
“김태오 씨 맞죠?”
“그런데요.”
소년은 접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다렌 씨가 전하라고 했어요.”
태오의 손이 멈췄다.
“다렌이요? 그분 살아 계십니까?”
“전달만 하라고 했습니다.”
소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태오는 문을 닫고 종이를 폈다.
[발카스의 금고를 열려면 집을 보지 말고, 집 아래를 보시오. 그러나 혼자 내려가지는 마시오.]
이름도 날짜도 없었다.
다만 종이 끝에, 익숙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47.]
태오는 계단 밑을 바라봤다.
이제 집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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