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이 경매장에 들어오자 호가가 올라갔다.
물건의 가치 때문은 아니었다. 경매사가 경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기 때문이다.
“고대 검은 산맥의 수호자 발카스 님께서 직접 내놓으신…….”
“그런 말은 하지 말게.”
발카스가 낮게 말했다.
경매사는 멈칫했다.
“예?”
“그냥 오래된 운송 설비와 광물 표본이라고 부르라.”
객석 뒤에 앉아 있던 김태오는 웃음을 참았다. 수천 년 산 드래곤이 자신의 물건을 '중고품'이라고 부르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토른은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저 운송 설비는 상태가 좋아요. 금속 피로가 덜 왔거든.”
“그런 걸 어떻게 알아요?”
“내가 보수했으니까.”
“그럼 값을 더 받을 수 있겠네요.”
“그건 사는 사람이 결정할 일이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나온 물품은 발카스 측의 소유권을 별도로 확인했고, 이미 주문받은 자산이나 다른 사람의 담보권이 걸린 물건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매가 성공해도 그 돈 전부가 태오 몫으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다른 계약과 비용 정산을 거쳐야 했다.
그래도 그는 기대했다.
처음 30금화를 돌려받던 날처럼 손안의 숫자가 실제로 달라질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
첫 번째 물건은 오래된 광물 표본이었다. 붉은 유리처럼 빛났지만 마법 재료로서의 가치가 아직 검증되지 않아 예상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지 않았다.
발카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 돌은 옛 용왕들이 탐내던 것이다.”
“그때 용왕님들이 지금 여기 계셨으면 좋았겠네요.” 태오가 말했다.
“네가 나를 놀리는 것이냐?”
“오늘은 시장 가격이 놀리는 것 같습니다.”
바렌이 태오에게 아주 작게 고개를 저었다. 드래곤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발카스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광물 표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치라는 것이 늘 같은 것은 아니군.”
“저도 그걸 배웠습니다.”
“무슨 말이냐?”
“집주인님이 300금화를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셨을 때와 제가 전 재산이라고 생각했을 때가 달랐잖아요.”
드래곤은 대답하지 않았다.
경매사가 두 번째 물건을 들어 올리자 객석이 다시 웅성거렸다.
***
두 번째는 낡았지만 견고한 운송 설비였다. 금고처럼 생긴 바퀴 달린 철제 받침이었는데 토른이 직접 점검한 물건이었다.
“저건 드워프식 완충 설계가 들어갔습니다.”
토른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여러 운송업자가 손을 들었다. 입찰이 이어지며 가격이 조금씩 올랐다.
태오는 손가락으로 금액을 셌다.
“저 정도면…….”
리네아가 그의 손을 살짝 눌렀다.
“아직 낙찰도 안 됐어요.”
“네. 하지만 기분이 좋아서요.”
“얼마나 기뻐할지 미리 정하지 마요.”
“그럼 나중에 몰아서 기뻐하겠습니다.”
그녀가 웃었다.
낙찰이 결정되자 바렌이 장부를 확인했다. 경매 수수료와 기존 보수 비용, 다른 물품 관련 지급 책임을 가려야 했으므로 최종 변제 가능액은 즉시 발표하지 않았다. 태오는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발카스가 먼저 그를 불렀다.
“인간. 얼마를 원하느냐?”
“원래는 230금화 전부요.”
“오늘 그만큼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 텐데.”
“네. 그래서 확인된 금액부터 받겠습니다.”
드래곤은 잠시 눈을 감았다.
“네가 처음 내 동굴에 왔을 때보다 말이 덜 시끄럽군.”
“말씀을 들으실 준비가 되셨기 때문 아닐까요?”
발카스는 으르렁거렸지만 바렌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
경매가 끝난 뒤 이벨과 마르셀이 참여하는 지급 확인 절차가 열렸다. 발카스 측은 이번에 확보한 비계정 매각대금에서 태오의 원금 일부로 금화 20닢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대금의 출처와 지급 가능 여부는 별도 장부로 제시됐다.
태오는 지급 문서를 끝까지 읽었다.
[기존 원금 300금화.]
[기지급 30금화 및 40금화.]
[금회 추가 지급 20금화.]
[누적 변제 90금화.]
[잔여 원금 210금화.]
“이게 원금 변제라는 문구가 빠지지 않았네요.” 태오가 말했다.
“선생이 꼭 넣으라고 하실 테니까요.” 바렌이 답했다.
“다른 비용과 자동 상계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126금화 안전 대기 관리비는 여전히 검토 중이며, 이 지급과는 별개입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전달된 금화 20닢은 손에 닿자 차갑고 무거웠다. 한때 300금화를 전부 잃은 것 같았던 자신에게는 이 작은 주머니도 소중했다. 그러나 아직 210금화를 받아야 했다.
“잘 받았습니다.”
발카스가 그를 바라봤다.
“이제 그 숫자를 덜 말하겠느냐?”
“네. 230 대신 210이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드래곤의 관자놀이가 꿈틀했다.
객석 뒤에서 누군가 웃음을 터뜨렸다.
***
다른 세입자들은 그 소식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였다. 헤스는 축하하면서도 자기 계약은 아직 정산 중이라고 말했다. 로벤은 예정된 개별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는 태오에게 정말 주머니에 금화가 들어 있는지 보여 달라고 했다.
태오는 돈 주머니를 열어 한 번 보여 준 뒤 바로 닫았다.
“진짜네요.” 소피가 말했다.
“네. 마법 그림이 아닙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래야죠. 하지만 제 지급이 다른 분들 지급을 보장하는 건 아닙니다.”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확인해야겠네요.”
“맞아요.”
태오는 남의 생활이 자기 성과의 장식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돈을 받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오래된 기다림이 저절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발카스의 재산과 계약은 서로 연결돼 있었지만, 각각의 보증금 반환에는 각자의 기록과 약속이 필요했다.
그날 오후 조정실은 지급 확인서를 받아 별도로 보존했다. 바렌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경매 수익을 다른 세입자에게 약속하지 않았고, 엘레아 의장은 이번 지급이 어떤 계약에도 자동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회의록에 남겼다.
***
경매가 끝난 뒤에는 낙찰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남아 있었다. 각 물품의 대금을 어느 장부에 넣고, 어떤 비용을 뺄 수 있으며, 지급이 끝난 물건의 인도는 누가 책임지는지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태오는 바렌의 설명을 듣다 말고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아까 낙찰된 운송 설비는 토른이 보수했잖아요. 그 비용도 여기서 계산합니까?”
“이미 지급된 보수 비용과 아직 정산되지 않은 비용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럼 보수 비용을 두 번 빼면 안 되겠죠.”
“물론입니다.”
바렌은 서류를 건넸다. 태오는 문서의 같은 번호가 두 군데에 적힌 것을 발견했다. 하나는 설비의 원래 등록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보수 주문의 접수번호였다. 표면상 비슷했지만 서로 다른 거래였다.
“처음엔 중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요?”
“확인할 자료가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바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저희 직원으로 오셔도 되겠군요.”
“아직은 입사할 생각 없습니다.”
“왜요?”
“퇴직금도 안 주실 것 같아서요.”
토른이 웃음을 터뜨렸고, 바렌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발카스는 멀리서 대화를 듣다가 말했다.
“그 인간을 내 창고에 들이면 매일 재고조사를 시키겠군.”
“제 돈부터 다 돌려주세요.” 태오가 대답했다.
“그래. 그래서 오늘 나온 게 아니냐.”
그 짧은 말이 태오에게는 낯설었다. 드래곤이 자기 입으로 돈을 돌려주기 위한 경매라고 설명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경매장 담당자는 물품 인도증이 실제 낙찰인에게 전달되는지까지 확인했다. 어떤 낙찰인은 다음 날 물건을 가져갈 예정이었고, 어떤 낙찰인은 운반비를 먼저 지불해야 했다. 태오는 또 다른 영수증이 오가는 광경을 봤다.
“돈을 받는 쪽뿐 아니라 물건을 받는 쪽도 확인해야 하네요.”
“그렇습니다.” 바렌이 말했다. “계약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죠.”
태오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이제 그 말을 드래곤의 대리인에게서 듣다니.
***
매각대금 일부를 원금 변제에 사용한다는 의사결정이 기록된 뒤, 엘레아는 공동 세입자 대표들에게 오해가 없도록 안내하라고 요청했다.
“태오 씨의 계약은 일부 변제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의 보증금 계약과 처리 순위는 각자 확인해야 합니다.”
로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젊은이가 돌려받은 걸 보니 내 일도 끝이 있겠구나 싶은 건 사실이오.”
“그런 기대는 이해합니다.” 엘레아가 답했다. “그렇지만 확정되지 않은 날짜를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피가 물었다.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각자 지급 기록과 계약 원금을 대조하고, 필요한 경우 생활상 긴급성을 별도 진술로 제출할 수 있습니다. 공동 절차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태오는 소피에게 자신의 지급 확인서 형식을 보여 주되, 금액이 적힌 원본은 넘기지 않았다.
“받으시면 이런 식으로 누적액과 남은 원금이 기록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그럼 누가 실수로 같은 돈을 두 번 받았다고 적는 일도 줄겠네요.”
“맞아요.”
헤스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말했다.
“이제 돈이 조금씩 움직이니 누가 가장 먼저 받느냐로 싸우진 않았으면 좋겠소.”
그 말에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태오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열한 명이 모인 이유는 서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였지, 누가 더 절박한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각자 받을 돈은 각자의 계약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같이 조사했다고 모두 같은 날짜에 같은 금액을 받는 건 아니겠죠. 그래도 서로의 기록을 지워 버리지는 맙시다.”
로벤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고, 소피도 따라 했다.
그날의 축하는 조용했다. 환호 대신 다음 확인 일정과 필요한 서류가 적혔다. 태오는 그것이 오히려 오래가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
태오는 리네아와 시장 끝까지 걸었다. 햇빛이 지붕 위에서 반짝였고, 상점마다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축하받아도 되겠죠?”
“그럼요.” 리네아가 말했다.
“그럼 어디에 갈까요?”
“당신이 정해요.”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전망대에 가요. 파벨시가 다 보이는 곳이 있잖아요.”
“거기 계단이 높아서 힘들 텐데요.”
“오늘은 조금 힘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오래된 성벽 위로 올라갔다. 아래에는 시장과 파벨시의 집들이 보였다. 그중 어딘가에 태오가 살던 집도 있었다. 금고 위에 세워진 낡은 집. 한때는 그곳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작은 지붕 하나처럼 보였다.
리네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기분이 어때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 그 생각을 기억해요.”
태오는 그녀를 돌아봤다.
“당신 덕분입니다.”
“또 그렇게 말하네요.”
“오늘은 조금 더 말하고 싶습니다.”
리네아가 가볍게 웃었다.
“얼마든지요.”
그는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맞춤했다. 리네아는 그의 어깨를 잡더니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두 사람 사이의 말이 잠시 멈췄다. 태오는 눈을 감았다가, 성벽 아래서 들려오는 경비병의 호각 소리에 깜짝 놀랐다.
“무슨 일이지?”
“교대 시간이겠죠.” 리네아가 속삭였다.
“깜짝 놀랐습니다.”
“드래곤보다 무서워요?”
“지금은 조금요.”
그녀가 웃으며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 태오는 먼저 20금화를 따로 보관했다. 이제 실제로 돌려받은 금액은 90금화였다. 그는 지급 확인서 사본을 작은 철제 상자에 넣었다.
옆에는 47-B 비늘이 놓여 있었다.
태오는 두 물건을 바라봤다.
한쪽은 실제로 받은 돈의 기록이었다.
다른 한쪽은 아직도 자신이 열람할 수 있는 범위를 표시하는 증표였다.
그는 둘을 혼동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기록을 읽을 때마다 숫자가 작아지는 것이 단순한 산수가 아니라 조금씩 되찾는 생활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언젠가 마지막 한 닢을 받는 날도 똑같이 확인서를 받아 둘 생각이었다.
그때 전달석이 울렸다.
마르셀이 보내온 짧은 통지였다.
[제4 확인석 인계 일지의 시간대 대조 신청 수리. 옛 왕실 기준일과 파벨시 현행일 사이의 차이 검증 예정.]
태오는 종이를 읽고 수첩을 펼쳤다.
‘날짜가 하루 달라질 수 있다.’
그는 그 말을 한참 바라봤다.
만약 그 차이가 실제로 있었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사건이 일어난 순서조차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 있었다.
돈은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류 속 시간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제5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