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네아가 길드에서 불려 나왔을 때, 김태오는 그녀가 무슨 잘못을 했다는 이야기부터 들었다.
“계약 원본을 수정했다더군요.”
복도에서 기다리던 중개인 하나가 속삭였다.
태오는 곧장 되물었다.
“누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
“소문이 원본을 봤습니까?”
상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연인이니까 감싸는 거요?”
“연인이니까 사실 아닌 걸 사실처럼 듣기 싫은 겁니다.”
태오는 그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리네아에 대한 전문직 심사는 처음 계약을 중개할 당시 드래곤 집주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고지했는지와, 태오와의 관계가 원본 확인 과정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나누어 살피고 있었다.
이미 길드는 독립 담당자가 원본을 대조하도록 하고 있었고, 리네아의 자격 정지는 보류된 상태였다. 감독 조치와 과거 고지 의무에 대한 경고가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누군가 그녀가 증거를 조작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확인된 사실과 달랐다.
태오는 자기 수첩에 그 말을 쓰지 않았다. 쓸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리네아 관련 비공식 소문 확인 필요.]
***
길드 심사실에서 나온 리네아는 생각보다 침착했다.
“괜찮아요?” 태오가 물었다.
“당신이 걱정할 줄 알았어요.”
“방금 복도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저도 들었어요. 그래서 심사위원에게 원본 대조 담당자와 제 업무 범위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죠.”
“결과는요?”
“오늘은 결론이 안 났어요. 과거 고지 경고는 그대로 있고, 제가 확인하지 않은 원본까지 인증한 적이 있는지 따로 살펴보기로 했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자료를 확인해 볼까요?”
“업무상 접근할 수 없는 기록까지 보여 달라고 하진 않을 거예요.”
“물론이죠.”
리네아가 웃었다.
“이렇게 답하는 사람으로 변하다니.”
“드래곤한테 배웠다고 하면 기분 나쁘겠죠?”
“그보다 제가 더 많이 가르쳤다고 해 주세요.”
“그렇네요. 앞으로 길드 서류는 선생님께 배우겠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그의 팔을 찔렀다.
“수업료는 비싸요.”
“얼마인데요?”
“저녁 한 끼. 그리고 얘기를 들어 주는 시간.”
태오는 안도했다.
“그 정도면 제가 낼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 당장요.”
***
그날 오후, 브라운 금고상회에서 별도의 제안이 도착했다. 리네아에게 중립 자문을 맡기겠다는 내용이었다. 통지대행 고객의 서류를 확인해 주면 상당한 자문료를 지급하고, 길드 심사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평가서를 써 주겠다고 했다.
리네아는 편지를 읽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전에 거절했던 제안을 이름만 바꿔 다시 보냈네요.”
태오는 궁금했다.
“불법적인 제안입니까?”
“내용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지금 제가 맡은 업무와 충돌할 수 있고, 실제로 무슨 자료를 확인하라는지도 모호해요.”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거절할 거예요. 이유는 계약서로 남기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습니다.”
리네아는 그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제가 이렇게 돈 되는 일을 거절해서 실망한 건 아니죠?”
“당신 자격이 돈 몇 닢보다 중요하니까요.”
“아주 어른스러운 대답이네요.”
“그럼 어린애 같은 대답도 해 드릴까요?”
“뭔데요?”
“거기 가서 야근하면 데이트 시간이 줄잖아요.”
리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진짜 이유죠?”
“둘 다 진짜입니다.”
그녀는 그의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태오는 아까 복도에서 들었던 소문이 순간 잊혔다.
***
소문은 뜻밖에도 제4 확인석 자료와 연결됐다. 길드 감독관이 태오에게 사실 확인 요청서를 보냈다. 리네아가 원본에서 '대리 확인명' 관련 부분을 열람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실제 열람 로그에는 독립 원본 담당자의 이름만 남아 있었다.
“제가 이걸 어떻게 확인하면 됩니까?” 태오가 이벨에게 물었다.
“먼저 요청의 범위를 읽으세요. 당신은 리네아 씨의 사적 관계를 설명할 수 있지만, 열람 권한이 없었던 내부 기록을 확인했다고 진술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제한 열람 보고서를 받았을 뿐인데요.”
“그 사실을 날짜와 전달 경로대로 적으면 됩니다.”
태오는 진술서를 썼다. 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리네아가 독립 담당자의 업무를 대신했다거나 원본 인장을 수정했다는 사실을 자신은 보지 못했고, 그런 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할 자료도 없다고 적었다.
“이 정도면 됩니까?”
“관찰한 사실과 모르는 부분이 분명합니다.”
태오는 서명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항상 옳다고 주장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좋아한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의혹을 인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그 차이를 잊지 않기로 했다.
***
마르셀은 별도로 계정 47의 통지대조 절차를 진행했다. 제4 확인석 당직표에는 두 명의 근무 표기가 있었고, 수령 확인표에는 한 개의 직무 인장과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인장 원판 보존갑이 존재했지만, 그것만으로 특정 사람을 서명자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세딘이 제한된 검증 결과를 전했다.
“수령 확인표에 표시된 인장은 당시 제4 확인석에서 사용하던 인장 유형과 형태가 일치합니다. 원판의 동일성까지 확정한 것은 아닙니다.”
태오는 펜을 들어 적었다.
“그럼 정규 근무자와 대체 근무자 중 누가 실제로 처리했는지도 아직 모르죠?”
“그렇습니다.”
“그걸 확인할 자료가 있습니까?”
“별도의 인계 일지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직표 뒷면에 대체 근무 전환 시간이 적혀 있으나 판독이 어려워 복원 중입니다.”
“시간이 중요하겠군요.”
“네. 같은 날짜라도 누가 어느 시간에 그 자리를 맡았는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태오는 머릿속으로 모래시계를 떠올렸다. 어떤 사람이 오전에 서류를 받았다고 해서 오후에 찍힌 서명이 그 사람 것일 필요는 없었다.
마르셀은 왕실 자료실에 인계 일지의 보존 위치를 요청했다.
***
발카스의 대리인 바렌은 그 사이 신규 안전 대기 관리비 126금화 청구에 관한 현장 자료를 제출했다. 예전에 발카스 측이 제기했던 212금화 수리비 가운데 일부 항목은 이미 철회됐거나 징수가 중단된 상태였다. 이번 126금화도 여전히 징수 보류 중이었다.
태오는 자료를 살폈다.
“경비 인력 대기료가 두 날짜에 겹칩니다.”
바렌은 손가락으로 표를 짚었다.
“한 날짜는 동쪽 창고, 한 날짜는 주택 쪽입니다.”
“근무자가 같은 이름인데요?”
“동명이인일 수도 있고, 출근 기록이 잘못 정리됐을 수도 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근무 확인서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 비용을 왜 세입자가 부담해야 하는지도 계약 근거가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발카스 님께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원금에서 마음대로 빼지는 못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바렌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 말을 하루에 몇 번 들으시는지 아십니까?”
“제가 하는 횟수만큼은 듣지 않습니까?”
바렌은 잠깐 생각하더니 웃고 말았다.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변화였다. 예전 같았으면 발카스 측 대리인은 태오의 말을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230금화가 돌아온 건 아니었다.
***
오후 늦게 길드의 독립 원본 담당자가 마르셀에게 짧은 확인서를 제출했다. 리네아의 업무기록과 분리된 대조 과정에서 계정 47의 계약번호가 변경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원본의 진위 전체를 보증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번 대조 작업 중 임의 수정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태오는 설명을 듣고 리네아를 바라봤다.
“이게 당신에게 도움이 되겠죠?”
“필요한 범위에서는요.”
“그럼 제가 바로 길드에 말해 줄까요?”
“그건 독립 담당자가 제출하기로 했어요. 당신이 대신 증명하려고 하면 오히려 구분이 흐려질 수 있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자료를 받았다는 사실만 적겠습니다.”
그녀가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고마워요.”
“그런데 억울하지 않아요? 실수한 부분은 이미 인정했고 감독도 받는데, 하지도 않은 일까지 들먹이다니.”
“억울하죠.”
리네아는 창밖을 바라봤다.
“처음에 발카스 님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설명했어야 했어요. 그건 제가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그래서 제가 원본을 조작했다는 말까지 사실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태오는 잠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맞아요. 잘못한 건 책임지되,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다고 말해요.”
“그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저는 계약서로 배웠습니다.”
리네아가 웃었다.
“누군가는 연애를 하면서 편지를 쓰는데, 우리는 원본 대조 확인서를 주고받네요.”
태오는 고민하다가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저도 편지 하나 쓰겠습니다.”
“정말요?”
그는 펜으로 짧은 문장을 적었다.
[오늘 힘들었어도 당신이 잘 버텼다는 걸 알아요. 내일은 제가 좋아하는 빵집에 같이 갑시다.]
리네아가 그것을 읽고 한참 웃었다.
“이건 날짜가 없네요.”
“아, 그렇군요.”
“서명도 없고요.”
“당신이 저를 너무 잘 가르쳤네요.”
태오가 날짜를 넣고 이름을 썼다. 리네아는 편지를 자기 가방 안쪽에 넣었다.
“이건 원본 제가 갖고 있을게요.”
“사본은요?”
“사본은 필요 없어요. 오늘은 제가 기억할 테니까.”
태오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오래 보존할 필요가 있는 기록이 있는가 하면, 한 사람의 마음에 남으면 충분한 기록도 있었다.
***
저녁에는 리네아의 약속대로 식당에 갔다. 창가 자리에서는 해 지는 시장이 내려다보였다. 태오는 오래간만에 수첩을 가방에 넣고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계약 얘기 금지예요.” 리네아가 선언했다.
“알겠습니다.”
“드래곤 얘기도 금지.”
“그럼 할 이야기가 거의 없는데요.”
“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오늘 많이 힘들었죠?”
“조금요.”
“소문 때문에요?”
“그보다 제가 처음 중개했던 날을 계속 떠올리게 돼서요.”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그날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는 다른 집을 구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죠.”
“하지만 지금 당신과 여기 앉아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리네아는 놀란 듯 그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집주인에게 감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태오가 덧붙였다.
그녀는 웃으면서 눈가를 문질렀다.
“전 정말 이상한 사람을 좋아하게 됐어요.”
“저도요.”
“저도 이상하다는 뜻이에요?”
“아니, 이렇게 좋은 사람이 저를 좋아하는 게 이상하다는 뜻이죠.”
리네아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오늘은 말을 잘하네요.”
태오는 심장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계약 없는 대화라서 그런가 봐요.”
그녀는 웃으며 잠시 이마를 맞댔다. 두 사람은 더 가까워지지 않고 그대로 몇 초를 있었다. 식당 주인이 접시를 내려놓는 소리에 동시에 몸을 떼었을 때, 태오는 자신이 문서 감정보다 이 상황에 훨씬 약하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했다.
“식사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리네아가 작게 속삭였다.
“아까보다 얼굴이 더 빨개졌어요.”
“따뜻한 음식 때문입니다.”
“아직 먹지도 않았잖아요.”
태오는 할 말을 잃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드의 임시 통지가 도착했다. 리네아가 원본을 무단 수정했다는 주장에 관해 제출된 열람 기록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과거 고지 의무 감독과 독립 인증 체계 유지 결정은 계속 적용됐다.
리네아는 문서를 오래 읽었다.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사실 확인은 한 걸음 나갔네요.”
“오늘 축하해도 되겠어요?”
“어떻게요?”
“제일 비싼 차 한 잔.”
“그건 내일 마셔요.”
“오늘은요?”
리네아가 그의 손을 꼭 쥐었다.
“오늘은 집에 가서 자요. 진짜로.”
태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얻은 또 하나의 소식은 제4 확인석의 인계 일지가 왕실 외부 보관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류에 누가 서명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누가 언제 자리를 넘겨받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그는 오늘의 일을 오래 기억할 것 같았다. 돈에 관한 소식이 없던 날에도 지켜야 할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밤 태오는 수첩을 열지 않았다.
내일을 위해 남겨 둔 질문은 내일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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