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는 '통지 완료'라는 네 글자를 믿지 않기로 했다.
정확히는, 무엇이 완료됐는지 쓰이지 않은 통지를 믿지 않기로 했다.
“보냈다는 겁니까, 받았다는 겁니까?”
그는 재발송 장부의 발췌본을 보며 물었다.
마르셀 등록관이 안경을 고쳐 썼다.
“옛 양식에서는 발송을 완료한 뒤 수취 여부를 별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엔 전부 완료라고 적혔잖아요.”
“지금 보여 드린 것은 상태 표제만 남은 전산 마법 인장의 출력 결과입니다. 세부 내역은 원본 대조가 필요합니다.”
태오는 의자를 뒤로 밀었다.
“이 문서는 사람들이 헷갈리도록 만들어진 것 같네요.”
“헷갈렸을 수 있다는 사실과 누군가 고의로 속였다는 결론은 다릅니다.”
“네. 그건 압니다.”
그는 깊게 숨을 쉬었다.
계정 47에 얽힌 통지 절차를 조사하려는 이유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이름이 잘못 적힌 사람에게 돈이 지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발카스가 처분 보류를 요청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실제 통지가 정확히 누구에게 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면, 돈의 권리자를 정하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통지를 못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돈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문서에는 무엇이라고 기록됐는가. 실제 생활에서는 무엇이 일어났는가.
그 둘을 맞춰 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그래서 더 중요했다.
***
마르셀은 세딘이 작성한 원본 대조 보고서 일부를 보여 줬다. 당직표와 재발송 장부를 모두 열었지만, 실명과 주소는 별도 차폐 상태였다. 대신 계약 당사자가 알아야 할 상태 구분은 공개할 수 있었다.
계정 47과 연결되는 옛 통지 묶음에 세 가지 부호가 있었다.
[발송]
[반송]
[대체 통지 처리 중]
태오는 마지막 항목을 가리켰다.
“이건 도대체 뭡니까?”
“원래 주소에 통지가 닿지 않았을 때 다른 경로로 알리는 절차입니다.”
“처리 중이면 완료된 건 아니죠?”
“그렇게 읽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당시 제도에서 어떤 상태를 완료로 표시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벨 자문관이 덧붙였다.
“당사자가 실제 편지를 받았다는 확인과 행정기관이 대체 절차를 시작했다는 기록은 다릅니다. 이 둘을 합쳐 버리면 수익권자의 권리를 해칠 수 있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피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피는 아이를 돌보느라 하루하루 시간을 쪼개 쓰는 사람이었다. 주소가 바뀌었거나 통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증금에 대한 권리가 흐려졌다면, 행정상의 작은 차이가 한 가정의 삶을 바꿔 버린 셈이었다.
그는 소피에게 연락해도 되는지 먼저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가 공개하기 싫은 주소를 다른 사람이 다시 수집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
소피는 시장 옆의 작은 제과점에서 태오를 만났다. 리네아도 동행했지만 전문 중개 의견을 내는 자리가 아니라 지인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태오는 그 구분을 처음부터 밝혔다.
“지난번에 브라운 상회 서류를 받으셨다고 했죠?”
소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명은 하지 않았어요.”
“그건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예전 통지 주소에 관해서 여쭤봐도 되는지 먼저 확인하려고요.”
“그 이야기는 하고 싶어요. 예전 주소로 편지가 갔다고 하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이 집을 찾아올까 봐 무섭거든요.”
리네아는 그녀 앞에 따뜻한 차를 놓았다.
“주소 자체는 여기서 말하지 않으셔도 돼요. 주소를 바꿨다는 사실과 언제 통지받았는지만 정리해도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소피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사한 해 겨울에 보증금 안내가 올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 편지는 못 받았어요. 나중에 길드 창구에 가서야 발송 완료라고 들었죠.”
태오는 기록지를 꺼냈다.
“그 말씀을 증언으로 남길까요? 나중에 본인이 확인하고 고칠 수 있는 방식으로요.”
“네. 그런데 제가 통지를 못 받았다고 하면 제 돈을 받을 권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죠?”
태오는 함부로 약속하지 않았다.
“저는 법률 판단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다만 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과 통지 기록이 정확한지는 별개로 확인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소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것부터 분명하게 해 주세요.”
“그렇게 요청하겠습니다.”
돌아오는 길, 리네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왜 그래요?” 태오가 물었다.
“처음 계약을 중개할 때 저는 집 상태와 보증금 조건만 제대로 알려 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요?”
“돈을 돌려받는 마지막 날까지 계약이 사람을 따라간다는 걸 알게 됐어요.”
태오는 그녀의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저도 그땐 그저 지붕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젠요?”
“지붕 아래에 금고가 없어야겠습니다.”
리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
오후에는 헤스와 로벤을 포함한 다른 세입자들에게 절차 설명회가 열렸다. 태오가 설명을 맡으려고 하자 이벨이 고개를 저었다.
“당사자가 알고 있는 범위를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법률 판단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럼 저는 뭘 할까요?”
“질문을 모아 주세요.”
태오는 수첩을 펼쳤다.
설명회는 예상보다 소란스러웠다. 어떤 사람은 편지를 받은 기억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세입자 이름이 가족 명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로벤은 자신이 받은 통지와 지금 장부에 남은 통지가 같은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그 종이 말이오.” 로벤이 말했다. “옛날엔 마구간으로 보내 놓고도 집에 보냈다고 했어.”
“그 주소로 보내기로 계약하셨습니까?” 이벨이 물었다.
“아니. 집 주소가 따로 있었지.”
“그렇다면 계약서와 통지 기록을 별도로 대조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헤스가 손을 들었다.
“나는 이 비슷한 걸 받았는데, 집주인이 준 붉은 돌을 돌려줘야 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있었소.”
그녀가 내놓은 것은 31-A 증표였다. 태오는 증표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알고 있었다. 31-A 역시 정해진 보존 상태를 확인하는 표식이지, 현금 인출권은 아니었다.
“그 돌을 누군가에게 넘기셨습니까?”
“안 넘겼지. 네가 함부로 주지 말랬잖아.”
“잘하셨습니다.”
헤스는 콧방귀를 뀌었다.
“잘했으면 돈도 나와야지.”
주변에서 웃음이 났다. 웃음이 멎자 태오는 그 말을 적었다.
다른 설명이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돈을 돌려받는 것이었다.
***
브라운 금고상회 측은 그날도 연락 대행 서비스를 홍보했다. 시장 게시판에 '미확인 수취인 신속 확인'이라는 표제가 붙었다. 서비스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신청서에 연락을 맡기는 위임과 지급 권리를 넘기는 위임이 함께 적혀 있어 이용자들이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
태오는 이벨에게 표제와 신청서 사본을 보여 줬다.
“어디까지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습니까?”
“신청자가 어떤 권한을 위임하는지 명확히 구분해 달라는 설명 요구는 할 수 있습니다. 그 양식의 효력이나 위법성은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럼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면 되겠네요. 주소 확인 위임이 돈 받을 권리의 양도와 같은 뜻인지 반드시 확인하라고.”
“그 표현은 적절해 보입니다. 특정 상회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단정은 하지 마시고요.”
태오는 직접 게시판 앞에서 설명했다. 사람들은 그가 드래곤과 싸운 영웅이라며 웃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지금도 제 돈을 다 못 받았습니다. 그러니 여기 적힌 조언이 언제나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계약서를 들고 공적 창구에서 확인하는 방법부터 찾으세요.”
“그럼 당신은 왜 이런 걸 하오?”
뒤쪽의 남자가 물었다.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저처럼 모르고 서명했다가 몇 년을 잃는 사람이 줄었으면 해서요.”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그는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돌아올 돈이 돌아오게 만드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부족했다.
***
사람들이 돌아간 뒤 마르셀은 태오에게 지난 공동 예비조사 숫자를 다시 보여 주었다.
“처음 확인된 열한 명의 보증금 원금이 1,180금화였죠.”
“네.”
“그 수치는 당시 확인된 계약 원금 합계입니다. 지금 계정 47에 그만큼 현금이 들어 있다는 뜻도, 오늘 기준 미환급 총액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원금 300금화도 그 안에 들어 있고요.”
“맞습니다. 지금은 30금화와 40금화를 돌려받아 잔액이 230금화지만, 예비조사 원금 합계에서 임의로 빼고 다시 계산하면 다른 계약의 상태와 시점까지 혼동하게 됩니다.”
“나중에는 지급한 돈만 따로 정리해야겠네요.”
“개별 계약마다요.”
태오는 다시 수첩을 펼쳤다. 여러 사람이 자기가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전체 숫자부터 말해 버리면 괜히 큰 기대를 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실제 채권과 누적 지급을 계약별로 나눠 보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동안 계속 미뤄진 일이었다.
이벨은 설명회 질문 목록을 검토하고 각 계약자에게 공개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정리했다. 남의 계약 금액을 알려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청구가 어디까지 인정됐는지 확인할 길은 열어 두려는 것이다.
“다음번에는 통지 기록이 어떤 의미인지도 한 장으로 정리해 드릴까요?” 태오가 물었다.
“좋습니다. 다만 오늘 확인한 사실과 아직 조사 중인 가설은 색을 달리 표시하세요.”
“다들 이걸 보실까요?”
“한 명만 헷갈리지 않아도 의미가 있습니다.”
태오는 종이를 두 장 꺼냈다. 하나에는 이미 확인된 원금 반환 사실을 적고, 다른 하나에는 통지 절차에서 아직 밝혀야 할 질문을 적었다.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부분과 법률 담당자가 확인해야 할 부분도 분리했다.
리네아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이제 작은 상담소라도 차릴 수 있겠어요.”
“그건 안 됩니다.”
“왜요?”
“그러면 제 돈 받으러 다닐 시간이 줄잖아요.”
그녀가 웃었다.
“그럼 일단 보증금을 돌려받고 생각해요.”
태오는 책상 위의 두 장을 내려다봤다. 그 말이 무엇보다 합리적인 계획처럼 들렸다.
***
저녁에 발카스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파벨시 조정실이 아니라 빵집 앞이었다. 검은 외투를 걸친 인간형 드래곤이 좁은 문을 지나려다 뿔의 그림자가 간판을 가렸다.
헤스가 먼저 그를 발견했다.
“들어올 거면 빵값부터 내시오.”
“지난번에도 네 빵을 먹지 않았느냐.”
“그때는 내가 줬고, 오늘은 네가 사는 날이지.”
드래곤은 바렌을 돌아봤다.
“가격을 치러라.”
“발카스 님, 동전은 직접 가지고 계십니다.”
발카스는 마지못해 주머니를 뒤졌다. 금화 한 닢이 테이블에 떨어졌다.
헤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잔돈이 없어.”
태오가 끼어들었다.
“주인장님, 저분은 잔돈을 돌려받지 않고 기다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드래곤의 시선이 태오에게 꽂혔다.
“인간.”
“저도 집주인님한테 그렇게 하고 있거든요.”
빵집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발카스는 한동안 태오를 노려보다가 지갑에서 은화를 꺼냈다. 헤스는 정확히 빵값을 받고 영수증을 내밀었다.
“이게 인간의 장사요.”
발카스가 영수증을 읽었다.
“내게도 기록을 남기는군.”
“그래야 다음에 또 받지.”
태오는 그날 발카스가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보았다. 작은 종이 한 장이 드래곤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
발카스는 태오를 길가로 불렀다.
“통지 기록을 찾았다고 들었다.”
“몇 가지 상태를 구분했습니다. 아직 모든 수취인이 실제 통지받았는지는 몰라요.”
“내가 일곱 해 전 걱정한 것이 그 문제였다.”
“그렇다면 왜 당시에 서류를 모두 내놓지 않으셨습니까?”
“내게도 없는 서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오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기록했다. 발카스의 진술은 참고가 됐고, 실제 보존물은 따로 확인해야 했다.
“그럼 지금은 함께 확인합시다.”
“내가 네 밑에서 일하란 뜻이냐?”
“그런 뜻 아닙니다. 저도 집주인님 밑에서 일할 생각 없거든요.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각자 할 일을 하자는 겁니다.”
발카스는 낮게 으르렁거렸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바렌에게 제출 가능한 기록을 정리하게 하겠다.”
“그리고 잔금은…….”
“이백삼십 금화다.”
태오는 웃었다.
“이제 안 까먹으시네요.”
“네가 매번 말하니까.”
발카스는 돌아섰다. 그가 떠난 뒤 헤스가 태오에게 물었다.
“아직도 무섭지 않나?”
“무섭죠.”
“그런데 어떻게 말하나?”
“제가 빚진 사람이 아니니까요.”
헤스는 한동안 태오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태오는 수첩에 '발송'과 '수령' 사이에 긴 화살표를 그렸다. 그 사이에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의 시간과 삶이 있었다.
다음 단계는 누가 어떤 주소를 고쳤고, 그 수정이 언제 승인됐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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