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돈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면, 평범한 사람은 돈을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부터 찾을 것이다.
그러나 김태오가 발견한 것은 조금 달랐다.
돈을 받았다는 기록처럼 보였던 문서가 실제로는 종이를 받았다는 기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럼 대체 누가 뭘 받았다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이벨 자문관은 종이 한 장을 들어 보였다.
“이 질문을 정확하게 하게 됐다는 것이 가장 큰 진전입니다.”
“이제 답을 듣고 싶습니다.”
“답은 오늘 검증할 원본에 달려 있죠.”
태오는 작은 소리로 웃었다. 황금이 쌓인 금고보다 문서 한 장이 더 귀한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왕실 기록보존국은 전날 발견된 봉투를 독립 감정인이 열어 내용을 종류별로 목록화하도록 허가했다. 계약 당사자에게 공개할 수 있는 항목과 제3자 실명을 가려야 하는 항목은 별도 판단한다는 조건이었다. 브라운은 관련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며 참석을 요구했지만, 소유자 대리권 확인이 끝나지 않아 공개 참관 구역에서 절차만 지켜볼 수 있었다.
태오는 이번에도 분필선 뒤에 섰다.
“여기가 제 지정석인가 봅니다.”
리네아가 속삭였다.
“제4 확인석이 아니라 제4 구경석이네요.”
“좋은 이름입니다. 역사에 남겨 주세요.”
“당신이 그린 분필선은 역사에 오래 남지 않을걸요.”
둘은 말없이 웃었다.
***
봉투를 연 감정인은 첫 번째 종이의 제목을 읽었다.
[수령 확인표 사본.]
태오가 숨을 삼켰다.
두 번째는 접수 인계 명세서. 세 번째는 '임시 분리 보존 사유'라고 적힌 짧은 공문이었다. 감정인은 각 문서를 화면 대신 손으로 그린 목록에 등록했다. 자동 복제 마법은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있어 사용하지 않았다.
세딘이 말했다.
“관련 계약번호와 날짜는 마르셀 등록관에게 제한 범위로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서명자 실명은 아직 공개할 수 없습니다.”
“그럼 계약번호가 정말 47과 연결되는지는 확인할 수 있겠네요.”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검증 결과, 계약번호는 태오가 가진 47-B의 조회 대상군과 연결됐다. 그러나 태오 개인 계약서만을 뜻하는 번호는 아니었다. 공동 보관 계정 47의 통지 대조 묶음 전체에 사용하는 참조번호였다.
“이걸로 제 보증금 수령 여부가 확인되는 건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마르셀이 답했다.
태오는 이제 그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받지 못한 230금화에 누군가 수령 서명까지 해 놓았다면 일이 더욱 복잡해졌을 테니까. 하지만 그 가능성을 걱정한다고 지금 확인된 범위를 넘어설 수는 없었다.
감정인은 수령 확인표의 품목란을 확대해 살폈다. 판독 가능한 글자가 나타났다.
[원판 날인 견본 및 통지 재발송 대조사본.]
태오는 읽는 순간 어깨가 풀렸다.
“현금이 아니네요.”
“지금 확인된 품목 문구는 그렇습니다.” 이벨이 말했다. “실제 인계된 물건의 종류까지 동일했다고 확정하려면 관련 인수 자료와 대조해야 합니다.”
“그래도 적어도 이 한 장이 금화를 받았다는 영수증은 아니라는 거죠?”
“해당 문서 자체는 기록물 수령 확인표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른 의문이 생겼다. 원판 날인 견본과 재발송 대조사본은 왜 꼭 보관함으로 옮기기 전날 따로 인계됐을까.
***
다렌 코르와 다렌 베스는 그 소식을 듣고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코르는 수령 확인표의 날짜를 듣자 손을 움켜쥐었다.
“그날 나는 북부 창구를 찾아갔소.”
태오는 바로 적지 않고 확인했다.
“어떤 자료를 보고 기억하셨습니까?”
“오늘 날짜를 들으니 떠오른 겁니다. 하지만 내 기억도 완벽하진 않소.”
“누구를 만났습니까?”
“창구가 닫히기 직전에 한 직원이 서류를 받았던 것 같소. 얼굴은 기억나지 않소.”
이벨이 물었다.
“그때 제출한 문서가 무엇인지 떠오릅니까?”
“주소가 바뀐 세입자들의 재통지 요청서였을 거요. 정확히 몇 장인지는 모르오.”
태오는 코르의 대답을 기존 진술과 연결하되 확정 표시를 하지 않았다. 그는 자칭 다렌이 아니라 오래된 세입자 다렌일 가능성이 강화됐지만, 공식 신원 인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설령 신원이 확인되더라도 과거 관리권 신청이 승인됐다는 뜻은 아니었다.
베스는 다른 것을 기억했다.
“원판 날인 견본이라는 말은 회계 쪽에서도 들었소. 지급할 때 쓰는 도장을 그린 견본과 실제 원판을 따로 보관했지.”
“그 원판이 돈을 지급하도록 허가하는 도장이었습니까?”
“그때 쓰던 방식마다 달랐소. 통지 완료를 확인하는 문장에 찍는 경우도 있었지.”
태오는 베스의 말이 바로 그가 찾는 구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모양이 같은 인장이라도 문서의 기능이 다르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었다. 도장을 발견했다고 그것이 곧 지급 승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누가 쓰도록 관리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대리 확인석이었소. 하지만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맡았지.”
베스가 수첩을 내려다봤다.
“그날의 실명은 당직표를 봐야 알 거요.”
태오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결국 다시 당직표였다.
***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 리네아가 태오의 팔에 가볍게 손을 걸었다.
“어제는 잠을 좀 잤어요?”
“다섯 시간입니다.”
“발전했네요.”
“이제 인간다운 수면 시간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엔 일찍 자요.”
“당신이 집까지 데려다주면요.”
리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은 집에 초대한다는 뜻이에요?”
태오는 갑자기 목이 말랐다.
“아, 그건…….”
“농담이에요.”
그녀가 웃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당황해요?”
“혹시 진짜 오실까 봐요.”
“싫어요?”
태오는 잠깐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지나가던 수레 소리가 커졌다가 멀어졌다.
“싫을 리가 없잖아요.”
리네아는 놀리던 표정을 조금 거두었다. 그러고는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 다음에는 제대로 약속해요. 오늘은 푹 쉬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장난을 치다가도 기다려 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네. 다음에는 제 마음을 먼저 말하겠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말했는데요.”
리네아가 미소 지었다. 태오는 식당 간판을 올려다보며 자기 얼굴이 빨갛지 않기를 빌었다.
***
오후에는 발카스의 접수 확인서 사본과 수장 전날 수령 확인표의 시간대가 대조됐다. 두 문서는 같은 기관의 처리를 거쳤지만 내용과 접수 경로는 달랐다.
발카스의 서류는 계정 47의 처분 보류 요구에 관한 것이었다. 반면 수령 확인표는 이미 만들어진 통지용 문서를 받았다는 확인이었다.
세딘이 말했다.
“두 문서의 번호가 연결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신청 사건이거나 같은 사람이 처리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시간대를 더 보아야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마르셀은 옛 행정일자가 바뀌는 기준과 문서 보존시각의 차이를 조사하기로 했다. 당직표에 찍힌 날짜가 현재 도시 달력과 하루 다르게 계산된 경우도 있었다. 이런 부분을 확인하지 않으면 한 장의 날짜만으로 앞뒤를 뒤집어 놓을 수 있었다.
“이세계 공문은 달력까지 다르군요.” 태오가 탄식했다.
“같은 왕국이라도 부서마다 쓰던 기준이 달랐던 시절이 있습니다.” 세딘이 답했다.
“드래곤 수명보다 저를 더 지치게 하는 게 역사군요.”
***
브라운은 검증이 끝난 뒤 마르셀에게 정식 의견서를 냈다. 기록물 중 일부가 자신이 대리하는 고객의 권리 확인에 필요하므로 제한 열람을 허용해 달라는 취지였다.
마르셀은 접수는 했으나 여전히 대리권 원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을 명시했다.
“영원히 기다리게 할 셈입니까?” 브라운이 물었다.
“원본 확인 일정에 관한 통지를 드렸습니다.”
“고객은 시간이 없습니다.”
태오는 그 말을 듣고 잠시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시간이 없었다. 로벤은 열두 해를 기다렸다. 소피에게도 당장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급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주소와 지급 권리 정보까지 통째로 넘길 수는 없었다.
“급하다는 말은 이해합니다.” 태오가 나직이 말했다. “그래서 필요한 부분만 먼저 확인하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겁니다.”
브라운은 잠시 태오를 바라봤다.
“김태오 씨는 제법 변했군요.”
“그럴 수밖에요. 돈 한 번 받으려다 서류 전문가가 됐으니까.”
“그 전문성을 어디에 쓰실 겁니까?”
“일단 제 보증금 받는 데요.”
상인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재발송 기록을 다루던 세딘은 별도의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은 통지를 맡기는 사람과 편지를 실제로 배달하는 사람이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태오는 대답했다.
“아니요. 우편조합이 따로 있으니까요.”
“좋습니다. 그럼 수령 확인표에 적힌 확인자가 직접 배달까지 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것도 아니죠.”
세딘은 오래된 업무 흐름도를 펼쳤다.
통지 작성, 확인석 접수, 우편조합 인계, 수취인 전달, 반송 후 재대조. 다섯 단계가 서로 다른 사람 손을 거칠 수 있었다.
“그중 어느 단계에서 기록이 빠진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아직 빠졌다고 확인한 건 없습니다. 어떤 기록이 어느 기관에 남는지 정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우편조합 쪽에도 확인할 게 있겠군요.”
마르셀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령 확인표의 시각에 실제로 어떤 묶음이 우편조합에 인계됐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일곱 해 전 자료의 보존 여부부터 확인해야겠지요.”
태오는 예전에 발카스에게 내용증명을 보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그는 우편조합에 맡긴 문서와 상대가 받았다는 확인을 따로 챙겼다. 그 덕분에 나중에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다툴 수 있었다.
“제가 예전 내용증명을 보낸 방식과 비슷하네요.”
“원리는 비슷하지만 왕실 통지대행의 공적 효력은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벨이 말했다.
태오는 씁쓸하게 웃었다.
“역시 제 경험 하나로 전부 설명되진 않는군요.”
그때 창구 직원이 자료 요청서를 가져왔다. 우편조합의 옛 대량 발송 장부 보존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공문이었다. 마르셀이 서명하자 직원은 접수 번호를 찍었다.
리네아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당신이 열심히 보낸 첫 내용증명이 결국 이런 방식까지 알려 준 셈이네요.”
“그때는 그냥 돈 달라는 편지였는데요.”
“중요한 일은 원래 그렇게 시작하는 거 아니에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맞는 말이었다. 자신의 편지 한 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지만, 그때 남긴 기록이 지금도 자신의 권리를 증명해 주고 있었다.
코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예전에 내가 받지 못한 편지도 이런 방식으로 찾을 수 있겠소?”
“가능성을 확인할 수는 있어요.” 태오가 말했다. “그 편지가 남아 있는지부터요.”
코르는 잠시 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누군가 내가 못 받았다고 말한 걸 믿어 줬으면 좋겠소.”
태오는 그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기록이 틀렸다면 고쳐야 했고, 기억이 틀렸다면 그것도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누군가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은 그 둘과 별개로 존중받아야 했다.
***
마지막으로 감정인이 부속 봉투의 편철 흔적을 분석했다. 수령 확인표 사본과 인계 명세서는 같은 시기에 함께 묶인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임시 분리 보존 사유 공문은 용지와 봉인 재료가 조금 달랐다.
“나중에 추가한 문서라는 뜻입니까?”
“같은 시기에 다른 서식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재료 차이만으로 시점을 특정할 수 없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셀이 봉투의 마지막 장을 살피다가 멈췄다.
“여기에 이전 관할 부서 표기가 있네요.”
세딘이 가까이 다가갔다. 두 사람이 한참 글자를 대조한 뒤, 세딘이 제한 공개 가능한 항목 하나를 읽었다.
[수령 장소: 북부 통지대행 제4 확인석.]
그 아래는 실명과 접수인장이 있어 가려졌다.
마르셀이 태오에게 말했다.
“이제 수령 확인표가 어느 자리를 거쳤는지는 확인됐습니다.”
“그 자리에 누가 앉았는지는요?”
“당직표에 정규 담당자와 대체 담당자가 모두 있으니, 실제 서명자 확인을 위한 별도 검증이 필요합니다.”
태오는 오늘도 대답을 다 얻지 못했다. 하지만 수령 확인표가 돈을 받았다는 영수증이 아니라 기록을 받았다는 문서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그것은 작은 차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누가 돈을 받았나'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날 누군가는 먼저 '누가 통지를 받았나'를 확인했던 것이다.
태오는 수첩 마지막에 적었다.
[돈을 지급하기 전에, 누구에게 연락했는지부터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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