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카스가 다시 조정실에 왔을 때, 이번에는 나팔을 부는 사람이 없었다.
김태오는 그것이 조금 아쉬웠다. 중고 난로 경매장에서 드래곤의 표정을 보는 즐거움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인간.”
“네.”
“오늘은 웃음이 없다.”
“오늘은 증언하러 오셨잖아요.”
“내가 무슨 죄인처럼 보이는군.”
“죄가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실만 이야기해 주세요.”
발카스는 태오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회의의 목적은 7년 전 처분 보류 요구의 실제 경위와 뒤따른 문서 이관을 분리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계정 47의 돈을 누가 가져갔다는 결론은 없었다. 왕국이 금고를 실제로 봉인했다는 사실도 아직 문서로 검증되지 않았다.
엘레아 조정실 의장은 시작부터 그 점을 명확히 했다.
“오늘은 책임의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자료의 출처와 진술을 기록하겠습니다.”
발카스는 서류를 내려다봤다.
“인간의 세상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말을 제한하는군.”
“아무렇게나 말해서 누군가의 인생이 흔들리는 걸 막기 위해서입니다.” 이벨이 답했다.
태오는 속으로 그녀의 말에 박수를 보냈다.
***
발카스가 처음 계정 47에 문제가 생겼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일곱 해 전 여름이었다. 그는 당시 파벨 주택조합에서 사들인 건물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공동 보관계정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명의를 넘긴 건물들이 여러 채였다. 그러나 지하 보관소의 관리권은 별도였다.”
“그 사실을 언제 아셨습니까?”
“인수 후 점검하던 때였다.”
“그때 수익권자 명단이 상충한다고 판단한 이유는요?”
발카스는 바렌에게 문서를 넘기라고 했다. 7년 전의 사본이었다. 원본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당시 접수 사실과 일치하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같은 계약번호에 다른 통지 대상이 기재되어 있었고, 누군가는 그 명단을 토대로 지급을 준비한다고 했다.”
태오가 물었다.
“실제로 지급됐습니까?”
“내가 아는 한 확인하지 못했다.”
“그럼 지급될 위험 때문에 보류를 요청하신 거군요.”
“그렇다.”
“누가 지급을 추진했습니까?”
발카스는 한참 말이 없었다.
“당시 보고서에는 외부 통지 담당자의 접수 번호만 있었다. 사람 이름은 내게 넘어오지 않았다.”
“그럼 그 사람을 특정하지 못하십니까?”
“못 한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조차 모든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벨이 추가로 물었다.
“처분 보류를 요청한 뒤, 별도 왕실 집행정지 명령을 받으셨습니까?”
“접수 확인서를 받았다. 뒤이어 보전 절차가 진행된다는 통지를 받았지만, 그 문서가 계정 47 전체 지급을 막는 명령인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다.”
엘레아가 자료를 받아 적었다.
“그러면 오늘 확인되는 것은 보류 요구와 일부 절차 통지입니다. 별도 집행정지 명령의 범위는 계속 조사하겠습니다.”
발카스는 불쾌한 듯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
태오는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했다.
“그때 보류를 요청한 사람이 집주인님이라는 걸 왜 지금까지 감추셨습니까?”
“나는 감춘 적 없다.”
“그럼 설명하지 않으신 거네요.”
발카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게는 작은 계약이었다.”
태오가 대답했다.
“제게는 전 재산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당신은 계정의 진상을 규명할 권한이 있었을지 몰라도, 제가 보증금 돌려받을 권리를 잃는 건 아니잖아요.”
“안다.”
발카스의 대답은 의외로 짧았다.
“그래서 다른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흔 금화를 받은 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남은 건 이백삼십 금화입니다.”
“그 숫자를 잊지는 않았다.”
“저도요.”
엘레아는 두 사람의 말을 끊지 않았다. 법률문서가 설명하지 못하는 시간이 있었다. 드래곤에게는 몇 년이었겠지만 인간에게는 생활을 바꿔 놓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발카스는 천천히 말했다.
“그 명단을 의심했을 때, 나는 잘못된 사람에게 돈을 내줄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돈을 받지 못하고 기다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그러나 태오는 처음으로 발카스가 자기 잘못의 일부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느꼈다.
***
엘레아는 발카스의 진술을 마친 뒤 다른 세입자들에게 짧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다. 단, 각자의 계약과 직접 관련된 사정에 한해서였다. 로벤이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나는 열두 해를 기다렸소.”
드래곤이 그를 바라봤다.
“알고 있다.”
“정말 알고 있었소?”
로벤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암말 로지가 죽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보증금을 못 받았소. 새로운 마차를 구하려고 은행을 찾아갔더니 그 집 보증금을 담보로 쓸 수 없다고 했지. 계약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계약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동시에 있었거든.”
발카스는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을 모두 기억하라는 것은 아니오.” 로벤이 이어 말했다. “그저 우리가 몇 년을 기다렸는지 한 번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소.”
태오는 로벤을 바라봤다. 마부는 지난 몇 주 동안 자주 웃으려 했지만 오늘만큼은 웃지 않았다.
발카스가 천천히 대답했다.
“내게는 일곱 해가 짧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네가 기다린 열두 해가 짧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군.”
“그래서 언제 돌려줄 거요?”
로벤의 질문은 거칠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담담했다.
발카스는 바렌을 불렀다. 로벤 계약에 관한 별도 변제 계획이 아직 없는지 물었다. 바렌은 자료를 검토한 뒤 채권 확인과 지급재원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답변을 먼저 받을 날짜를 정하라.”
“예, 발카스 님.”
엘레아는 그 날짜를 기록하도록 했다. 그것이 당장 지급 명령은 아니었지만, 로벤이 다음에 무엇을 확인할 수 있는지는 정해졌다.
태오는 처음으로 발카스의 시선이 계약서 밖의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것을 보았다. 그 시선이 빚을 없애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 갚아야 하는지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면, 다음 회의에서 나올 말도 달라질 수 있었다. 태오는 그 기대조차 수첩에 적지는 않았다. 사람의 변화는 종이에 쓰인 약속만큼이나 신중하게 지켜볼 일이었다.
***
휴식시간, 헤스는 발카스 앞에 작은 빵을 내려놓았다.
“독 들어 있는 건 아니오.”
드래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는 독에 죽지 않는다.”
“그럼 더 좋지.”
헤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이건 빚 갚으라고 주는 빵이 아니라, 배고프면 말이 험해지니까 먹으라고 주는 빵이오.”
태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발카스는 빵을 손끝으로 집어 들었다. 오래된 드래곤이 빵을 어떻게 먹는지 궁금한 사람들이 문 쪽에 서 있었다.
발카스는 아주 천천히 한 입 베어 물었다.
“나쁘지 않군.”
“다음에는 돈 내고 사시오.”
회의실 전체가 웃었다. 발카스는 얼굴이 굳었다가, 곧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래. 다음에는 값을 치르겠다.”
태오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 같았다. 말 한마디로 빚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들의 생활을 실제로 보아야 한다는 사실은 드래곤도 피할 수 없었다.
***
회의 중간에 바렌은 자산 매각 계획의 두 번째 목록을 제출했다. 첫 번째 경매와 달리 이번에는 시장 상황과 다른 계약상의 제약 때문에 지급 가능액을 아직 확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지급 날짜도 없군요.”
“대상 물품은 선정하고 있습니다.”
“서류를 남겨 주세요.”
“이미 준비했습니다.”
태오는 놀라 눈을 들었다.
바렌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선생이 요구할 항목은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발카스가 그 말을 듣고 낮게 한숨을 쉬었다.
“내 직원들이 이 인간의 말을 먼저 떠올리는 날이 오다니.”
“저도 집주인님 생각을 매일 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건 명예로운 일이 아니군.”
“제게도 피곤한 일입니다.”
회의실에 조심스러운 웃음이 퍼졌다.
***
오후에 토른이 가져온 옛 도면은 제4 보전 통로의 마지막 보관 장소를 표시하고 있었다. 현재 동쪽 창고와 지하 통로의 위치는 같지 않았으나, 7년 전 운반로가 연결되어 있었던 사실은 확인됐다.
“이 도면만 보면 수장함이 금고 내부에서 만들어졌는지는 알 수 없어요.” 토른이 말했다.
“하지만 왜 진동을 줄이는 수레를 썼는지는 짐작할 수 있겠군요.”
“도면 끝에 ‘유리 원판 취급’ 표시가 있거든.”
태오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럼 원판이 안에 들어 있는 겁니까?”
“이런 물건을 옮길 때 주의하라는 규정일 뿐이다. 그날 진짜 무엇을 실었는지는 운송 목록을 봐야 해.”
“항상 마지막 한 장이 없네요.”
“이제 그게 네 전문 분야겠지.”
그들은 독립 보관 담당자에게 표식함 외관 사진과 수레 도면을 함께 보존해 달라고 요청했다. 브라운 금고상회와 청산 관리인단 명의의 두 신청은 아직 원본 대리권 대조 중이었다. 당장 누구도 물건을 가져갈 수 없었다.
***
회의가 끝난 뒤, 태오는 발카스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커다란 그림자가 벽을 가로질렀다. 인간형으로 서 있는데도 대기 전체가 조금 뜨거워진 듯했다.
“인간.”
“네.”
“내가 돈을 모두 돌려주면 너는 집을 떠날 것이냐?”
태오는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
“계약은 이미 끝났습니다. 보증금을 받으면 이사할 생각이죠.”
“그 집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끝내 보지 못해도?”
“호기심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집의 비밀을 밝히려고 계약한 건 아니니까요.”
발카스는 긴 침묵 끝에 말했다.
“이상한 인간이군. 보물 앞에서도 금화 이백삼십 닢을 말하는구나.”
“그게 제 돈이니까요.”
“네가 그토록 붙잡는 것이 언젠가 누군가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오는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나도 아직 모른다.”
드래곤이 돌아섰다.
태오는 그의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너무 막연했기 때문이다. 대신 바렌에게서 이미 받은 변제 계획 제출증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드래곤의 은유보다 정확한 일정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태오는 발카스가 타고 온 검은 마차를 잠시 바라봤다. 마차는 화려했지만 안에 앉은 드래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발카스가 태오를 불렀다.
“네가 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지 조금은 알겠다.”
“오늘은 별일을 다 말씀하시네요.”
“네가 내게 분할 변제를 받아 내는 동안 다른 인간들은 내 앞에서 말을 하는 법을 배운 것 같군.”
“처음부터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했죠.”
발카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인간들의 짧은 시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저도 삼천 년 사는 존재의 시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서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느냐?”
“계약서에 날짜를 쓰면 되죠.”
발카스가 낮게 웃었다.
“너는 결국 종이로 돌아가는군.”
“네. 누군가에게는 이 종이가 몇 년의 시간을 지켜 주니까요.”
드래곤은 답하지 않았다. 바렌이 마차 문을 열자 발카스는 천천히 올라탔다. 떠나기 전 그는 태오에게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사과인지, 인정인지, 단순한 인사인지 태오는 판단하지 않았다.
“230닢.”
그가 작게 중얼거리자 바렌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지급 계획을 빨리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
밤에는 마르셀의 통지가 도착했다. 왕실 외부 통지대행 부서에서 7년 전 계정 47 관련 ‘재발송 승인’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통지를 받을 대상의 실제 이름은 보호 규정에 따라 비공개 상태였다.
그리고 이례적인 한 문장이 붙어 있었다.
[관련 전산 마법 인장에는 소유자 실명이 아니라 ‘대리 확인명’이 남음. 당시 대리 확인명 목록 대조 절차를 개시함.]
태오는 문장을 읽고 고개를 들었다.
이 사건에는 서명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가능성이 보였다.
정해진 이름 대신 직무명으로 서명하도록 설계된 절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이름을 복원할 수 있다면, 누가 돈을 빼냈는지는 몰라도 누가 지급 통지를 승인했는지는 확인할 수 있을지 몰랐다.
제49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