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C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고 토른은 너무 빨리 뛰어왔다. 드워프가 숨을 몰아쉬며 작업장 문을 열어젖히자 김태오는 놀라 서류를 떨어뜨렸다.
“찾았다고?”
“기록을 찾았습니다.”
“그 물건 자체를 찾은 게 아니구나.”
“아닙니다.”
토른은 낮은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또 말 조심이냐.”
“지금까지 말 안 조심해서 일이 얼마나 커졌는데요.”
리네아가 따뜻한 물을 건넸다. 토른은 컵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일단 봐라.”
태오가 펼친 것은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의 보조 등록부였다. 모든 표식의 소지자 정보를 보여 주는 자료는 아니었다. 대신 표식에 부여된 역할을 기록한 표였다.
47-A: 보관 상태 확인 요청.
47-B: 원금·권리 기록 조회 절차 개시.
47-C: 집행 개시 전 수익권자 통지 여부 확인 및 이의 기록 열람.
태오가 말했다.
“그럼 47-C가 있으면 금고 문이 열립니까?”
“안 열려.” 토른이 즉시 답했다.
“다른 표식이랑 합치면요?”
“그렇게 단순하면 굳이 세 가지로 나눴겠냐. 관리자의 승인, 수익권 증명, 효력 있는 명령이 따로 있어야 해.”
“어렵네요.”
“돈을 맡긴 사람에게는 어려운 게 나을 때도 있어. 너무 쉽게 열리면 남이 먼저 꺼내 가니까.”
태오는 비늘 47-B를 넣어 둔 잠금함을 떠올렸다. 드래곤이 직접 건넨 물건이었지만 그가 원금을 꺼내 갈 열쇠라고 믿은 적은 없었다. 이제 역할이 조금 더 분명해졌다.
“47-C가 누구에게 있는지는 확인됐습니까?”
“등록부엔 예전 관리 주체가 따로 기재돼 있는데 최신 보유자는 가려져 있어. 공개해 달라고 할 사유가 필요해.”
“그럼 신청하죠.”
“네가 보유자가 아니면서 왜 보겠냐고 물을 거다.”
“제가 돈을 못 받고 있으니까요.”
“그걸 정확한 신청 사유로 써.”
태오가 웃었다.
“드워프식 법률 조언이군요.”
“수수료는 나무 못 열 자루.”
“법률가보다 싸네요.”
***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 기록관 세딘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을 아꼈다. 그는 구부러진 서가 앞에 서서 신청서를 읽었다.
“47-C의 존재와 역할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현 보유자가 누구인지 알려면 권리 관련성이 구체적으로 필요합니다.”
태오가 계약서와 공동 분쟁 사건번호를 내밀었다.
“계정 47에 보관됐다고 주장되는 원금 가운데 제 돈이 300금화입니다. 30금화는 돌려받았고, 270금화는 아직 못 받았습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기록은 있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세딘은 서류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관련 통지 이력의 존재 여부를 부분 조회할 근거는 됩니다. 하지만 특정인의 사적 정보나 표식을 넘길 권한을 얻은 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전 표식을 훔치러 온 게 아닙니다.”
세딘이 태오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런 말을 먼저 하는 사람도 위험할 수 있죠.”
“그렇겠네요. 취소하겠습니다.”
리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세딘이 기록판을 펼쳤다. 오래된 고리 셋이 겹쳐진 문양이 빛났다. 하지만 그 빛은 사람을 알아보거나 진실을 가려 주지 않았다. 분류된 서식을 찾기 위한 표식일 뿐이었다.
“이 기호가 익명 경고문에 찍혔던 것과 비슷하네요.”
“같은 계열 문양입니다. 같은 사람이 보냈다는 뜻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태오는 이미 여러 번 들은 말을 이번에는 한 번만 들었다. 조금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기록판에서 확인된 것은 하나였다. 일곱 해 전 계정 47의 수익권 통지 완료 여부를 두고 이의가 접수됐으며, 47-C 관련 조회가 그 과정에 사용되었다. 다만 이의 신청인이 실제 표식을 가졌는지, 정식 감시인 자격이 있었는지는 조회 기록만으로 알 수 없었다.
“통지가 완료됐습니까?”
“여기에 완료 확정이 없습니다.”
“그럼 안 된 겁니까?”
“완료를 증명하는 이력은 없는 겁니다. 종이가 없는 것과 일이 없었다는 것은 다릅니다.”
태오는 필기를 멈췄다.
“그 말이 제일 무섭네요.”
“그래서 기록관이 필요한 겁니다.”
***
마르셀에게 돌아가자 뜻밖에 다렌을 자처한 남자가 먼저 와 있었다. 그는 입회 가능한 범위에서 자신의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 남자는 다소 초조해 보였다.
“제가 가지고 온 문서 안에는 수익권자 목록 초안이 있습니다.”
태오의 시선이 움직였다.
“원금 소유자들의 이름 말입니까?”
“일부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가 없어요.”
“왜 없습니까?”
“처음 받을 때부터 없었습니다.”
마르셀이 확인했다.
“그렇다면 목록이 완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 문서 제출은 본인 확인과 별개로 감정·보존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남자는 손바닥을 비볐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지긋지긋하게 알죠.”
태오가 조금 웃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다렌은 태오를 바라봤다.
“당신은 왜 47-B를 팔지 않았습니까? 내가 들은 말로는 큰돈을 제시한 사람이 있다던데.”
“브라운이 제안했죠.”
“500금화라지요?”
“그 금액은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사적인 금액이었고 브라운과 태오 사이의 조건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시장에서 소문이 돌아서…….”
“소문만으로는 포괄 양도 조건까지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브라운의 사람을 만난 적 있습니다.”
태오가 펜을 멈췄다.
“언제요?”
“파벨로 돌아오기 전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봉투를 보자고 했어요.”
“보여 줬습니까?”
“겉면만.”
“그 사람 이름은?”
“모릅니다. 금고상회의 장부가라고만 했습니다.”
태오는 이벨을 바라봤다. 이벨도 같은 생각인 듯했다. 오늘 얻은 중요한 것은 47-C의 이름 없는 기록만이 아니었다. 다렌이라고 주장하는 남자와 브라운 측 인물이 사전에 접촉했다는 새 진술이었다.
***
브라운 금고상회에 대한 문의는 곧장 답변을 받지 못했다. 대신 브라운이 태오 앞으로 사적인 면담 요청을 보내 왔다. 장소는 파벨에서 가장 비싼 찻집이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왜 늘 차를 마시자고 할까요?” 태오가 물었다.
“차가 싸니까요.” 리네아가 말했다.
“그렇겠죠. 돈은 비싼데 얘기하는 비용은 싸네요.”
이벨이 권고했다.
“면담은 거절해도 됩니다. 하겠다면 거래 논의가 아니라 사실 확인에 한정하고, 단독으로 가지 마십시오.”
태오는 요청서를 찢지 않았다. 수첩에 끼워 넣고 답장했다.
[장소는 등록소 조정실로 요청. 47-B 매각 및 권리 양도 논의 의사 없음. 봉투 접촉 경위에 관한 질문만 할 예정.]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 줄의 빈틈도 없네요.”
“모르죠. 브라운 씨는 빈틈 찾는 게 직업일지도.”
그녀가 태오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럼 저는요?”
“무슨 말씀이세요?”
“당신 빈틈을 찾는 사람?”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리네아의 눈빛은 장난스러웠지만 어딘가 진지했다.
“그건 이미 성공하셨잖아요.”
“언제요?”
“어젯밤요.”
리네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가 한쪽 손으로 그의 팔을 잡았다.
“가끔은 정말 반칙이에요.”
“제가요?”
“네. 평소엔 숫자만 말하다가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태오는 대답 대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
브라운의 면담 제안을 검토하던 날 오후, 태오는 세딘에게서 열람 가능한 47-C 옛 운용 규정의 추가 쪽지를 받았다. 거기에는 흔한 오해를 경고하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집행 감시 표식은 사유를 기록하게 할 뿐, 기록이 없는 자에게 강제 집행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
태오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읽었다. 자신이 47-B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자나 원금을 자동으로 뽑아 올 수 없는 것과 같았다.
“이 기록대로면 47-C를 가진 누군가도 아무것도 마음대로 못 하겠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잘못된 지급을 막으려면 좋지만, 올바른 지급을 늦출 수도 있죠.”
“맞아요. 그래서 그 표식을 왜 사용했는지가 중요합니다.”
태오는 세딘에게 확인 질문을 남겼다. 기록관은 특정인을 밝히지 않은 채 구제 절차를 설명했다. 관리권 공백이 장기간 지속되면 수익권자는 직접 확인된 원금을 근거로 별도의 반환 절차를 요구할 수 있었고, 계정 집행 자체는 적법한 관리인 등재나 권한 있는 명령을 필요로 했다.
“그럼 금고만 계속 붙잡고 있을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다른 절차가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태오가 크게 웃었다.
“쉬운 절차를 찾을 생각은 이제 접었습니다.”
“그 대신 무엇을 찾습니까?”
“도착할 수 있는 절차요.”
세딘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얼굴을 부드럽게 했다.
“그렇다면 안내문을 드리지요.”
그는 실제로 별도 자산을 통한 임대 보증금 변제 협상 절차를 설명한 종이를 건넸다. 발카스가 금고 밖 재산으로 변제할 가능성을 열어 둘 때 쓸 수 있는 자료였다. 태오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거리에서 리네아가 그를 바라봤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여요.”
“금고 열쇠가 없어도 돈 받을 방법이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까요.”
“아직 돈이 들어온 건 아니잖아요.”
“가끔은 길을 알아낸 것도 기뻐해야 합니다.”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럼 축하할까요?”
태오는 그 손을 잡았다.
“어떻게요?”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 주세요.”
“이건 사적 비용입니까, 사건 비용입니까?”
“당연히 사적 비용이죠.”
“이상하게 기분 좋네요.”
과자 가게에서 리네아는 계피 향이 나는 작은 과자들을 골랐다. 태오는 가장 저렴한 걸 고르려다가 그만두고 그녀가 좋아하는 걸 샀다. 그녀가 그걸 눈치채고 웃었다.
“보증금 못 받은 사람이 그렇게 써도 돼요?”
“어차피 이번 달은 굶지 않을 만큼 남았습니다.”
“말로 계산하지 말고 맛으로 골라요.”
태오는 과자 한 입을 깨물었다. 달았다. 드래곤과 서류 사이에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맛이었다.
둘은 길가 벤치에 앉아 과자를 나눴다. 리네아가 태오의 입가에 묻은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떼었다. 그는 순간 멈췄다.
“뭐예요?”
“부스러기요. 설마 이것도 증거물이라고 할 거예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가만히 있어요.”
리네아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태오는 과자를 하나 더 집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서로가 먹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별다른 사건이 없는 오후의 짧은 시간이었다.
태오는 거리의 작은 분수대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과거 다렌이 정말 원금 소유자를 지키려 했다면 왜 관리인 신청까지 했을지 생각했다. 집행을 막기 위한 법적 지위를 얻으려 했을 수도 있었고, 아예 원금을 찾아 나누려 했을 수도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목적이었다.
“리네아 씨, 제가 저 사람이었다면 관리인 자격을 신청했을까요?”
“당신이라면 우선 신청서가 몇 장인지부터 물었겠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돈 받을 사람들 이름이 지워질 것 같다면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을 거예요.”
태오는 분수대를 바라봤다. 물방울은 돌 위에서 반짝이며 사라졌다. 돈은 분명한 숫자로 남아야 하지만, 사람은 숫자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 일곱 해 전에 시간을 잃은 이유가 거기에 있을지도 몰랐다.
수첩에는 계정 47 옆에 화살표가 세 개 그려졌다. 하나는 관리권, 하나는 수익권, 또 하나는 실제 반환 가능 재원이었다. 태오는 각 화살표가 서로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 선들을 억지로 하나로 모으는 대신 하나씩 따라가기로 했다. 리네아는 그의 수첩을 보고 말했다. “이제 당신 그림도 계약서처럼 생겼네요.” 태오는 웃었다.
***
다음 날 세딘에게서 추가 통지가 왔다. 계정 47의 47-C 조회 기록 가운데 마지막으로 기재된 사건번호가 사유부의 상충 처분 요구와 동일한 참조번호를 가졌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실제 표식이나 신청인의 본명은 여전히 공개되지 않았다.
태오는 번호를 대조했다. 다렌 명의 신청서는 옆줄에 있었고, 다른 하나는 채무 관련 자산양수인의 요구였다.
“같은 기록에 누군가 통지 확인을 신청했다는 거네요.”
“그렇죠.” 리네아가 말했다.
“그 신청인이 정말 발카스라면요?”
“그럼 왜 그랬는지 물을 수 있겠죠.”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은 단순해졌다. 일곱 해 전 돈을 멈추려는 사람은 누구였나. 그리고 멈춰 있는 동안 그 돈을 맡긴 사람들에게 누가 무엇을 설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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