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는 그날 아침 세 장의 종이를 들고 거울 앞에 섰다.
첫 번째는 자신의 임대차 계약서였다.
두 번째는 금화 30닢을 받은 확인서였다.
세 번째는 B-19/부속 6의 열람 신청서였다.
“둘 중 어느 게 제일 중요해 보입니까?”
리네아에게 물었다.
“전부요.”
“하나만 고르라면요?”
“당신이 무사히 돌아와서 저녁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요.”
태오는 거울 속의 그녀를 바라봤다.
“또 대답을 피하시는군요.”
“제가 누구에게 배웠겠어요?”
그녀는 그가 매고 있던 목도리를 바로잡아 주었다.
태오의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
“안 그래도 됩니다.”
“삐뚤어졌어요.”
“목도리가요?”
“아뇨. 자꾸 혼자 다 해결하려는 생각이요.”
그는 결국 목도리를 그대로 두었다.
***
이번 열람은 이전과 달리 공동 분쟁 조정실의 입회 아래 진행됐다. B-19에 붙은 부속 6에는 오래된 문서함의 보존 연장 신청과 관련 서류의 종류가 적혀 있었다.
엘레아 의장은 시작부터 선을 그었다.
“이 자리는 계정 47의 소유권이나 실제 잔고를 확정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자료의 존재와 보존 필요성을 확인하고, 각 당사자가 어떤 절차를 밟을 수 있는지 논의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렌이 반대편에서 입을 열었다.
“신청인의 47-B 소지는 관리인 자격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장한 적 없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지난번에 열람한 원문에도 적혀 있었습니다.”
바렌은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엘레아는 작은 웃음을 감추고 다음 문서를 열었다.
[부속 6: 공동 보관계정 관련 보존물품 이관 및 처리 제한 기록.]
[대상 물품: 다렌 명의 발송 의뢰 문서함으로 추정되는 항목.]
[보존 사유: 관리인 승계에 대한 이의 가능성 및 이해관계인 확인 절차 미완료.]
태오는 문장의 순서를 확인했다. 다렌의 이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서류함의 실제 소유자나 내용물 작성자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관리인 신청과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계정을 둘러싼 보존 요청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이의 가능성’이라는 말이 걸립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이의를 제기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열람 담당자는 고개를 저었다.
“부속 6에는 이의서의 제목만 나옵니다. 원본은 별도 봉인물 목록으로 이어집니다.”
“그 원본을 보려면요?”
태오가 물었다.
“당사자 자격과 공개 범위 심사가 다시 필요합니다.”
태오는 웃음을 참았다.
“사흘입니까?”
담당자가 놀랐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경험이 많아서요.”
***
이날 증인으로 나온 사람은 전 주택조합 청산 관리인단의 행정직원이었던 노인 여성이었다. 이름은 미라였다. 지금은 작은 구두 수선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 당시 관리인단이 왜 해산됐습니까?”
엘레아가 물었다.
“주택조합이 갖고 있던 건물들이 매각됐고, 청산 업무가 완료됐다고 보고됐기 때문입니다.”
“보관계정 관리권은요?”
“그게 문제였지요.”
미라는 손수건을 접었다.
“건물은 소유주가 바뀌어도 보증금은 임차인의 권리였습니다. 관리인단은 건물 매각과 보관계정의 승인 권한을 같은 것으로 다루면 안 된다고 여러 번 의견을 냈습니다.”
바렌이 물었다.
“그 의견이 발카스 님께 전달됐다는 증거가 있습니까?”
“제가 그분께 직접 전달했다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당시 위원회에 제출했다고 했죠.”
태오는 감탄했다. 미라는 고개를 들지 않고도 말의 경계를 지키고 있었다.
“그 뒤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위원회는 임시 관리인 제도를 검토했어요. 그런데 이해관계인 확인 자료가 부족해서 결론을 내지 못했죠.”
“다렌이라는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미라는 한참 생각했다.
“신청서를 낸 사람이 있었다는 건 기억합니다. 성함까지는 확신할 수 없어요. 당시 신청이 여럿 들어왔거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곱 해 전 일을 어제처럼 말해 주는 증인이 반드시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봉인된 문서함은 기억하십니까?”
“사람들이 열어 보자고 한 적은 있었어요. 하지만 권리 관계가 확인되기 전에는 마음대로 열면 안 된다고 기록했지요.”
“그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누구의 돈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서류를 가진 사람이 돈까지 가져갈까 봐요.”
태오는 손에 쥔 47-B를 떠올렸다. 지금까지 그가 쫓아온 문제와 똑같은 구분이었다.
***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소피가 물었다.
“그럼 우리 돈은 금고에 그대로 있는 건가요?”
태오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직 몰라요. 보관을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실제 잔고가 얼마인지 확인된 건 아닙니다.”
“그럼 오늘도 돈은 못 받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소피는 아이에게 빵을 뜯어 주었다.
“매번 서류만 늘어나네요.”
태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로벤이 말했다.
“서류도 필요하지만, 우리 각자가 받을 돈이 얼마인지부터 정리해야 해. 나는 열두 해 전에 맡긴 금화가 있고, 저 친구는 삼십 닢을 돌려받았잖아. 한꺼번에 묶으면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헷갈릴 수 있어.”
“맞습니다.”
태오가 고개를 들었다.
“현재 확인된 열한 명의 계약 원금 총합은 금화 1,180닢입니다. 그 안에 제 원금 300도 들어 있고요. 제가 받은 30닢과 다른 분들이 받으셨을 수도 있는 금액은 별도로 차감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럼 아직 못 받은 돈 총액이 1,180은 아닐 수도 있군요.”
“그렇죠. 다른 지급 내역을 전부 확인한 게 아니니까요.”
소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긴 해도 그게 맞겠네요.”
리네아가 태오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보다 미안함이 더 많았다.
“답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소피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돈을 맡아둔 사람도 아닌데 왜 미안해해요?”
“그렇지만…….”
“계속 찾아봐 줘요. 그거면 돼요.”
태오는 조용히 웃었다.
***
***
점심 뒤 태오는 이벨 자문관과 조용히 앉아 있었다. 창밖에서는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가고 있었고, 회의실에는 먹다 남은 빵 냄새가 남아 있었다.
“저희가 계속 금고 기록만 조사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일이 늦어지는 건 아닐까요?”
태오가 물었다.
“그럴 위험은 있습니다.”
이벨은 뜻밖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당신의 청구는 임대차 계약과 미지급 사실을 근거로 합니다. 금고의 실제 내용물을 확인해야만 청구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죠.”
“발카스 님은 금고 때문에 지급이 어렵다고 말씀하시는데요.”
“그 사유가 실제로 지급 능력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원금 반환 의무가 사라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태오는 고민했다.
“그럼 별도로 돈을 받을 방법을 알아봐야겠네요.”
“가능한 절차를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상대방 자산의 범위와 집행 가능성, 비용, 시간은 따로 판단해야 해요. 지금 조정실에서 곧바로 강제 지급을 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또 사흘쯤 기다려야 합니까?”
이벨이 웃었다.
“그보다 길 수도 있겠죠.”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엄청 피곤해졌습니다.”
“하지만 오늘 확인한 것들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에요. 상대가 반환 의무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는 기록은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 말은 다시 들을수록 좋군요.”
태오는 자신의 계약서에 손을 얹었다.
“처음부터 저는 제가 맡긴 돈을 돌려달라고 했을 뿐인데, 이제는 왕실 서고까지 다녀왔네요.”
“사건이 복잡하다고 해서 목적까지 복잡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작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향후 검토 과제: 독립적인 변제 재원 확인, 지급 일정 제안, 임시 합의 또는 별도 청구 절차의 비용 검토.]
“이런 걸 검토하는 동안에도 다렌 씨 기록을 조사해도 됩니까?”
“가능합니다. 다만 두 일을 같은 문제처럼 묶지 마세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주인의 금고에는 비밀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지탱하는 돈을 기다리는 세입자에게는 비밀보다 기한이 필요했다.
***
회의실로 돌아가기 전 태오는 혼자 발코니에 섰다. 발카스가 얼마 전 자신을 향해 '네 말이 옳다'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모든 일이 금방 풀릴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서류는 늘었고, 보증금 잔액은 그대로였다.
태오는 허탈하게 웃었다.
“집주인님, 인정만 하지 말고 돈도 좀 주세요.”
리네아가 뒤에서 나타났다.
“누구랑 이야기해요?”
“드래곤에게요.”
“여긴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 놓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태오 곁에 서서 바깥을 내려다봤다.
“당신은 언젠가 발카스 님이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할 거예요?”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사과는 사과대로 받고, 돈은 돈대로 받아야죠.”
“정말 변함없네요.”
“돈을 돌려주는 게 먼저인 건 아니에요. 둘 다 중요한데 서로 대신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리네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은 오래 기억하고 싶어요.”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태오는 망설이지 않고 잡았다.
“오늘은 제가 먼저 잡았네요.”
“잘하셨어요.”
태오가 웃었다.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군요.”
“그럼 한 번 더 해 드릴까요?”
“오늘은 충분합니다.”
“너무 빨리 만족하지 마세요.”
리네아의 눈에 다시 익숙한 장난기가 돌아왔다.
***
오후 심사에서는 발카스 측의 임시 보관 신청도 함께 논의됐다. 이벨 자문관은 증표의 훼손이나 불법 양도 위험에 대한 구체적 증명이 부족하므로 즉시 인도보다 현 상태 보존과 정기 확인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바렌은 반박했다.
“신청인 측은 계정의 안전을 책임져야 합니다.”
“관리권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 지금 분쟁의 핵심 아닙니까?”
이벨이 물었다.
“그렇다고 시설의 소유주가 위험을 방치할 수는 없지요.”
“그럼 시설 점검 범위와 증표 보관 문제를 분리해 심사하자는 겁니다.”
엘레아는 잠정 결정을 정리했다. 47-B는 태오가 지정된 보전 조건을 지키며 보관하도록 하고, 임의 양도나 훼손을 금지하는 합의 내용을 기록했다. 실제 관리권이나 원금 소유권 판정은 하지 않았다. 발카스 측은 위험 근거가 있으면 보완 제출할 수 있었다.
태오는 회의록을 읽고 서명했다.
“제가 이 증표를 팔면 안 된다는 건 원래 알고 있었습니다.”
바렌이 말했다.
“그러니 잘 보관하십시오.”
“그 대신 집주인님도 제 돈은 잘 기억해 주세요.”
마르셀이 펜을 떨어뜨렸다.
“이번에도 회의록에 써야 합니까?”
“가능하면요.”
***
태오는 마지막으로 세입자별 원금 표를 확인했다. 자신이 받은 30금화는 별도 지급란에만 표시했다. 다른 사람의 지급 내역은 확인되지 않은 부분을 빈칸으로 남겼다. 정확하지 않은 총액으로 누군가를 부추길 생각은 없었다. 로벤은 그 표를 보고 말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써 놨네.’ 태오는 웃으며 답했다. ‘그게 나중에 고치기 제일 편하거든요.’
***
회의가 끝나 갈 무렵 담당자가 추가 자료 한 장을 제출했다.
[부속 6 인장 대조 결과.]
태오는 문서를 읽었다.
다렌 명의 문서함의 보존 연장 신청서에는 옛 관리인단 도장이 있었고, 처리 보류 통지서에는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의 승인 검토 표시가 있었다. 그러나 두 문서 사이를 이어야 할 ‘수익권자 통지 완료’ 표시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게 어떤 의미입니까?”
“당시 절차가 완료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마르셀이 답했다.
“보존 요청이 있었다는 것과 당사자 모두에게 통지됐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럼 누군가는 통지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군요.”
“그 가능성을 조사할 사유는 있습니다.”
태오는 서류를 접었다.
분쟁은 점점 복잡해졌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금고를 지키는 사람과 돈을 돌려받을 사람은 같지 않았다. 누군가 그 둘을 뒤섞어 편리하게 처리한 것이 오래된 문제의 시작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날 밤, 마르셀에게서 새로운 전달문이 도착했다.
[관리권 관련 최신 열람 요청 1건 접수.]
[요청 대상: 계정 47 부속 6.]
[요청인 신원 확인 중. 과거 신청인과 동일 명의로 기재됨.]
태오는 문장을 두 번 읽었다.
과거 신청인과 동일 명의.
그 이름은 다렌일 수 있었다.
일곱 해 전 사라졌던 사람이 지금 같은 자료를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 이름을 다시 쓰기 시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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