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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26화
PAYLUA ORIGINAL · 제26화

26화. 세 개의 고리는 같은 문을 열지 않는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47자

오프라인 책장
토른이 가져온 도면에는 작은 점이 너무 많았다. 김태오는 도면을 보는 순간 자신의 머리가 집 지하의 오래된 계단처럼 삐걱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 여기서 바로 열쇠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렇게 편하면 내가 왜 밤새 해석했겠냐?” 토른은 굵은 손가락으로 삼각형을 그렸다. “제47 공동 보관계정에는 서로 다른 역할이 있었어. 그런데 세 역할을 전부 ‘열쇠’라고 부르니까 다들 헷갈리는 거지.” “47-A, 47-B, 47-C요?” “그 표기가 당시 모든 문서에서 같은 의미인지는 아직 몰라. 다만 내 할아버지 도면에서는 세 가지 감시 표식이 따로 기록돼 있어.” 그는 A 옆의 작은 도장을 가리켰다. “기록 보존 상태를 확인하는 자리.” B 옆에 동그라미가 있었다. “이해관계인의 조회 요청을 접수하는 자리. 네 비늘은 이쪽에 해당하는 듯하고.” C 옆에는 긴 가로선이 그어져 있었다. “절차 집행을 감시하는 별도 표식.” 태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셋을 한데 모으면 금고가 열리는 건가요?” “아니. 거기서 네가 또 건너뛰는 거야.” 토른이 도면을 톡 쳤다. “감시 표식은 감시 표식일 뿐. 실제 계정 인출에는 등재 관리인의 승인과 원금 수익권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잖아. 그게 없으면 표식 세 개를 모아도 그냥 값비싼 금속 장식이지.” “그럼 제가 가진 건 값비싼 장식품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브라운은 장식품에 오백 금화를 제안했네요.” “그래서 더 수상한 거야.” *** *** 토른은 오래된 설계판 하나를 더 꺼냈다. 판에는 조그만 홈이 세 개 있고, 그 아래에는 낡은 드워프 문자로 주의사항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실제 금고에서 떼어낸 부품입니까?” 태오가 물었다. “아니. 할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보여 주던 교육용 모형이야. 누구나 만져 볼 수 있도록 만든 거지.” 토른은 나무판의 첫 홈에 동전을 하나 올려놓았다. “여기에 보관 기록이 있었다고 치자. 첫 표식은 기록이 바뀌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야.” 두 번째 홈에는 작은 조약돌을 놓았다. “이건 누군가 내 돈이 들어 있다고 조회를 요청했을 때 남는 흔적.” 세 번째에는 작은 못 하나를 얹었다. “마지막은 실제 집행 과정에 누가 개입했는지 기록하는 흔적.” 태오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셋이 있으면 부정 인출을 막을 수 있겠네요.” “막으려고 만든 거지. 반드시 막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왜요?” “흔적을 남기는 장치를 만든 사람들이 곧바로 정직해지는 건 아니니까.” 토른은 판을 세게 두드렸다. “장치가 알려주는 건 누가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단서야. 그 행위가 적법했는지, 원래 돈이 있었는지, 누구에게 지급해야 하는지는 다른 사람이 확인해야 해.” 태오는 잠시 자신이 가진 검은 비늘을 바라봤다. “저는 이 비늘이 열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기술자도 처음에는 그랬을 거야. 하지만 넌 이걸 돌려달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부터 물었지.” “보증금 때문입니다.” “그건 네 목적이지. 저 사람들의 목적은 아직 모르잖아.” 태오는 모형 앞에 앉았다. 이세계에 온 뒤 드래곤이란 존재는 막강한 힘을 가진 생명체였고, 마법은 뭐든 해결할 수 있는 수단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법이 기록을 남긴다 해도 그 기록을 읽는 사람의 태도는 중요했다. “한국에도 비슷한 일이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어떤 계좌에 돈이 찍혀 있다고 해서 아무나 그 돈을 가져갈 수 있는 건 아니죠.” “네 세계에도 금고가 있었나?” “많았습니다. 이체 오류도 많았고요.” 토른이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너희 세계의 드워프도 고생했겠군.” “아마 비슷한 직업이 있었을 겁니다.” 리네아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 그날 오전 태오는 마르셀에게 옛 도면의 해석을 제출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이건 기술 검토를 위한 참고자료입니다.” 태오가 말했다. “47-A와 47-C가 누구 손에 있는지 찾으면 관리인 문제도 해결될까요?” 마르셀은 종이를 넘겼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습니다. 관리자 자격과 수익권 검증이 먼저여야 각 표식을 어떤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저희가 계속 원점에서 도는 건 아닙니까?” “원점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전 기록들이 왜 승인되지 않았는지 알면 다음 신청에 필요한 문서가 무엇인지 좁힐 수 있겠죠.” 태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임대인은 왜 원금 반환을 자꾸 그 절차에 묶으려는 겁니까?” “그 질문은 발카스 측에 해야 합니다. 제 답은 같아요. 건물 임대인이 지급해야 할 돈과 공동 보관계정의 집행 권한은 별도입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는 사람들이 가을 장터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장 골목에는 천막이 늘었고, 빵 냄새가 흘러왔다. 그는 문득 자신이 다시 평범하게 일하고 저녁을 먹는 하루가 언제 올지 궁금해졌다. 리네아가 그 마음을 알아챘는지 물었다. “오늘은 쉬고 싶어요?” “솔직히요? 네.” “그럼 잠깐 쉬어요. 헤스 할머니 빵집에 가서 차를 마시죠.” “또 빵값이 들겠네요.” “그럼 제가 사 드릴게요.” 태오가 놀라 그녀를 보았다. “이렇게 쉽게요?” “오늘은 제 마음이에요.” 태오는 한 박자 늦게 웃었다. “그럼 보증금 반환 뒤에 제가 두 배로 갚겠습니다.” “그런 조건은 싫어요.” 리네아가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당신이 돈을 받지 못해도 저는 오늘 함께 차 마실 거예요.” 태오는 더 이상 농담하지 못했다. 아주 작은 말이었는데 가슴 한쪽이 묘하게 따뜻해졌다. 그들은 잠깐의 휴식을 위해 헤스의 빵집으로 향했다. *** 오전에는 헤스의 빵집에 들렀다. 노파는 식빵을 오븐에서 꺼내며 물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냐?” “전에 받으셨다는 붉은 돌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그놈의 돌 말이지?” 헤스는 장부가 든 서랍을 열었다. 붉은 광택이 나는 조그만 표식이 천에 싸여 있었다. “이게 31-A라 했지. 보증금 대신 들고 있으랬어.” 토른은 장갑을 낀 손으로 표면의 문양만 확인했다. “네가 가진 47-B와 조각 방식이 비슷하지만 계정 번호가 다르다.” 태오가 물었다. “그럼 하나의 금고에 연결됐다는 뜻도 아닙니까?” “그렇지. 같은 기술로 만든 물건일 수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공통 계정을 말할 수 없어.” 헤스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내가 이걸 십 년 가까이 들고 있는 동안 아무도 그런 말을 안 해 줬다. 대체 보증금 대신 돌멩이를 준 인간은 누군데?” “발카스 관리사무소 직원이었다고 하셨죠?” “그렇지. 누군지는 기억 안 나. 그때는 살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태오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괜찮으시면 이 돌의 수령 경위도 별도 계약 기록으로 확인해 볼 수 있을까요?” 헤스가 쌀가루 묻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맘대로 하렴. 대신 오늘 빵은 돈 내고 사.” “왜 늘 제 빵값만 엄격하십니까?” “남의 돈 돌려받겠다는 사람이 자기 빵값을 빼먹으면 쓰나.” 맞는 말이라 태오는 대꾸할 수 없었다. *** 한편 리네아는 길드의 보관 기록을 조사하고 있었다. 새 중개 설명서 도입 시점이 다렌의 관리권 신청 시기와 비슷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음모라는 근거는 없었다. “서식 개정 제안은 길드 위원회가 아니라 ‘자산관리 표준화 합동회의’에서 왔어요.” 그녀가 보여 준 회의록에는 세 기관의 이름이 있었다. 파벨 중개 길드,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 옛 주택조합 청산 관리인단. “청산 관리인단이 아직도 있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지금은 해산됐어요. 당시 자료를 넘기면서 관리 책임에 대한 문구가 바뀐 모양이에요.” “다렌 신청과 무슨 상관인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그래요. 다만 그 당시 누가 회의에 참석했는지는 확인할 수 있겠어요.” 문서 끝에는 참석자 명단이 붙어 있었다. 개인 신상 일부는 가렸지만, 기관을 대표하는 직위는 읽을 수 있었다. 태오는 세딘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없었다. “세딘 기록관은 여기에 없네요.” “그분이 당시 어떤 직책이었는지도 모르잖아요.” 리네아의 말이 맞았다. 그녀가 태오의 팔꿈치를 툭 건드렸다. “오늘은 제가 먼저 알려줬으니까 저녁은 태오 씨가 사세요.” “아침에도 빵값을 냈는데요.” “그건 헤스 할머니에게 낸 거죠.” “도대체 중개 수수료와 식사비는 어디까지 별개인 겁니까?” “저녁은 비용이 아니라 약속이에요.” 태오는 더 이상 흥정하지 않았다. *** 그날 오후 다시 토른의 공방에 들른 태오는 도면을 자세히 보다가 원형 인장 바깥에 아주 작은 흠집 표시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토른에게 묻자 드워프는 오래된 교육용 모형마다 제작자를 구별하는 표식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세 고리 모양이 비슷하다고 전부 같은 인장이라고 하면 안 돼. 금형을 만든 공방도 다를 수 있지.’ 태오는 예전에 받은 익명 경고문과 세딘의 인장을 떠올렸다. 둘 다 고리 모양이었지만 모양이 닮았다는 것만으로 같은 손에서 나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제대로 비교하려면 누가 언제 어디서 만든 인장인지 알아야겠네요.’ 토른은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가르칠 말이 하나 줄었구나.’ 리네아는 그 둘을 번갈아 보았다. ‘다음에는 셋이 함께 도장 가게를 차려도 되겠어요.’ 태오가 말했다. ‘그런데 점주가 드래곤이면 저는 바로 그만둘 겁니다.’ 토른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은 장난을 주고받으면서도 낡은 문양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겠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누구의 돈인지 알기도 전에 계정을 조작하는 순간, 그들이 지키려던 원칙부터 무너질 테니까. 태오는 모형을 원래 자리에 놓고 손을 털었다. 태오는 새로운 문양을 발견할 때마다 비늘을 꺼내 대조하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그 행동 자체가 봉인 시설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경고가 떠올랐다. 그는 비늘을 그대로 가방에 넣고 도면 사본만 조심스럽게 챙겼다. *** 저녁 무렵, 토른은 파벨 공동 보관시설의 폐지된 점검대를 찾아갔다. 태오와 리네아도 동행했다. 건물은 현재 시립 물품관리소로 쓰이고 있었고, 지하 출입구만 봉인돼 있었다. “여기에도 접촉판이 있네요.” 태오가 물었다. 토른은 거리를 유지한 채 빛나는 홈을 가리켰다. “그렇다고 네 비늘을 대 보지는 마. 무단 접근으로 기록이 남을 수 있어.” “안 댑니다.” “지난번엔 내가 말리기도 전에 꺼냈잖아.” “그때는 구조점검 허가가 있었죠.” 리네아가 웃었다. “두 분은 참 잘 싸우세요.” “우린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거다.” 토른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관리소 직원은 허용된 지상층 점검 기록만 보여 주었다. 오래된 그림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 속 삼각형 가장자리에는 세 고리 문양이 있었다. [구분표식: 보존 확인, 청구 조회, 집행 감시.] “할아버지 도면과 비슷하네요.” 토른이 말했다. “그런데 같은 기록인지 확정할 수는 없죠?” 태오가 먼저 물었다. “넌 요즘 내 말을 너무 잘 외우는군.” “장인님 수업료가 비쌉니다.” 관리소 직원은 이 기록이 옛 조합에서 사용하던 일반 보관 체계의 설명도이며, 특정 계정 47의 현행 인출 권한을 증명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태오는 묵묵히 받아 적었다. 그 순간 바깥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창가로 몰렸다. 건물 옆 작은 기록 보관 창고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불이야!” 누군가 외쳤다. 태오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리네아가 팔을 잡았다. “잠깐! 안쪽으로 뛰어들면 안 돼요.” 그는 숨을 고르고 관리소 직원에게 물었다. “안에 사람이 있습니까?” “직원 둘이 있었는데…….” “대피 여부부터 확인합시다.” 토른은 즉시 경보종을 울렸다. 리네아는 통로를 열어 주며 근처 사람들을 밖으로 안내했다. 연기가 창틈에서 더 짙게 흘러나왔다. 태오의 첫 생각은 이상하게도 서류였다. 혹시 안에 다렌의 문서가 있다면? 그리고 바로 다음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먼저다. 그는 출입구로 달려가다가 멈췄다. 안에서 기침 소리가 들렸다. “여기 사람 있습니다!” 태오가 외쳤다. 그때 머리 위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거대한 날개가 도시의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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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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