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이 법정에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파벨시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를 떠올렸다.
첫째, 법원이 무사할까.
둘째, 판사가 무사할까.
김태오에게는 세 번째 걱정이 있었다.
“제 답변서도 내야 합니까?”
“예. 접수기한이 사흘 뒤입니다.”
등록관 마르셀은 담담하게 말했다.
“드래곤이 직접 소송을 건 겁니까?”
“정확히는 발카스 측 관리사무소가 고대 시설 접근 증표의 임시 보관을 신청했습니다. 아직 판단이 나온 건 아닙니다.”
태오는 안내문을 펼쳤다. 종이 상단에는 '임시 보전 신청'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목적: 계정 47-B 접근 증표의 분실·양도·훼손 예방.]
[요청: 심사 종료 시까지 중립 보관기관에 증표 맡김.]
[신청인: 발카스 자산관리사무소.]
“이거 제 보증금 문제와는 별도죠?”
“별개 절차입니다. 다만 같은 증표가 관련돼 있습니다.”
태오는 서류를 내려다봤다. 몇 달 전만 해도 드래곤이 나타나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제 드래곤이 나타나면 우편함부터 열어야 했다.
“불을 뿜는 것보다는 낫네요.”
마르셀이 눈썹을 들었다.
“그런 점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확신은 없습니다.”
***
리네아는 소장을 읽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 부분을 보세요. 증표가 사적인 이익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어요.”
“브라운이 오백 금화를 주겠다던 이야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 있지만, 추정에 불과해요.”
“저는 팔지도 않았는데요.”
“그 사실을 증명하면 되죠.”
태오는 브라운의 제안서를 꺼냈다. 그 뒤에는 자신이 답한 편지 사본이 있었다.
[권리 범위 불명확으로 매도·양도 수락하지 않음.]
“이걸 제출하면 됩니까?”
“충분할지 법률 담당자에게 물어야 해요.”
“돈을 받는 사람도 아닌데 왜 제가 증명 비용을 내야 합니까?”
“절차가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이유예요.”
그녀는 조용히 태오의 소매를 잡았다.
“혼자서 버티려고 하지 마세요.”
“저 혼자였으면 열한 명 공동 진정도 못 했죠.”
“그건 알아요. 그런데 당신은 도움을 받으면서도 늘 미안해하잖아요.”
태오는 대꾸하지 못했다. 리네아는 그런 틈을 잘 찾아냈다. 보증금 문제가 아닌데도 정확히 찔리는 기분이었다.
토른이 문을 벌컥 열었다.
“그 늙은 용이 또 무슨 짓을 했다고?”
“소송 비슷한 걸 걸었습니다.”
“내 공구를 가져가겠다는 거냐?”
“아니요. 비늘을 보관하겠답니다.”
토른이 코웃음을 쳤다.
“날개 달린 놈들은 왜 남의 주머니를 그렇게 좋아하나.”
“가져가겠다는 게 아니라 중립기관에 맡기라는 거예요.”
“그 중립기관이 누구 편인지는 확인했느냐?”
태오는 다시 서류를 보았다. 보관기관이 공란이었다.
세 사람은 동시에 조용해졌다.
***
마르셀의 소개로 찾아간 법률 자문관 이벨은 머리를 단정히 묶은 인간 여성이었다. 이벨은 태오가 들고 온 종이 뭉치를 보더니 의자를 한 개 더 가져왔다.
“의뢰인이 여럿입니까?”
“사람은 한 명인데 사건이 많습니다.”
“그런 분들은 대개 이 가방보다 더 큰 가방을 들고 옵니다.”
그녀는 증표 보전 신청을 읽고 물었다.
“47-B로 지금 금고를 열 수 있습니까?”
“아니요. 조회 요청에 쓰이는 표식이고 추가 인증이 필요하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미 양도했습니까?”
“아니요.”
“누군가 훔치려 한 증거는 있습니까?”
“아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신청인에게 위험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재판부가 임시 보관의 필요성을 인정할지 여부는 별개예요.”
태오는 끄덕였다.
“제가 보증금을 못 받은 사실도 쓰겠습니다.”
“관계를 설명하는 데는 필요하지만, 못 받은 돈이 있다고 증표를 마음대로 사용할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벨이 태오를 바라봤다.
“그렇게 대답하는 의뢰인은 드뭅니다.”
“금고가 몇 년째 안 열려서 배웠습니다.”
변호사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들은 답변서를 작성했다. 첫 문단에는 증표의 기능과 현 소지 경위를 적었다. 발카스가 직접 건넸다는 사실, 태오가 47-B를 손상 없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 브라운의 매입 제안을 거절한 경위가 이어졌다.
두 번째 문단에서는 중립 보관기관의 지정과 접근 이력 보존을 요구했다. 보관이 꼭 필요하다면 독립적인 등록소 보관실을 검토할 수 있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태오는 마지막 문장을 오래 바라봤다.
[어떠한 임시 보관 조치도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 의무 또는 임차인의 채권을 변경하지 않는다.]
“이건 꼭 넣어 주세요.”
“이미 넣었습니다.”
“한 번 더 쓰면 안 됩니까?”
“판사는 반복 횟수로 설득되지 않습니다.”
“저는 발카스 님에게 같은 말을 열다섯 번 해서 삼십 금화를 받았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기록을 한 번 더 잘 붙이세요.”
***
답변서 접수 당일, 상단회관 복도에서 바렌을 만났다. 발카스 측 법률대리인은 말끔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김태오 씨.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까?”
“소장은 저쪽에서 보냈는데요.”
“증표만 맡기면 간단해집니다.”
“누구에게요?”
“적절한 기관에.”
“그 기관을 특정해 주십시오.”
바렌은 잠깐 시선을 피했다.
“관계기관과 협의 중입니다.”
“그러면 협의가 끝난 뒤 다시 이야기하죠.”
“젊은 분이 너무 의심이 많군요.”
태오는 바렌의 손에 들린 서류철을 보았다.
“보증금은 못 받은 채로 이 증표를 되돌려 주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의심이라기보다 학습입니다.”
바렌의 표정이 굳었다.
“발카스 님이 직접 뜻을 설명하실 겁니다.”
“그분은 직접 설명하실 때도 핵심을 빼고 말씀하시더군요.”
“말을 조심하십시오.”
“기록에 남길 말만 하고 있습니다.”
리네아가 한 발 앞으로 나왔다.
“바렌 님, 저희가 제출한 서류 사본은 필요하시면 정식 절차로 받으세요.”
바렌은 더 말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태오는 그녀를 돌아봤다.
“방금 조금 멋있었습니다.”
“조금?”
“많이요.”
“고백도 그렇게 수정해 가면서 하세요?”
“그건 지금 고백이 아니었는데요.”
“아쉬워라.”
리네아가 성큼 앞서 걸었다.
태오는 서둘러 따라갔다. 드래곤에게 지는 것보다 엘프에게 지는 일이 훨씬 잦아지고 있었다.
***
***
다음 날 태오는 공동 분쟁에 참여한 세입자들과 짧은 설명회를 열었다. 증표를 맡기라는 신청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함께 조사하던 사람들에게 소식을 숨기는 것도 옳지 않았다.
소피는 아이의 손을 잡고 왔다. 로벤은 마차 일을 마친 뒤 먼지가 묻은 모자를 들고 들어왔다. 헤스는 갓 구운 빵을 놓으며 말했다.
“일단 먹고 이야기해. 배고픈 사람은 누구 말도 곱게 안 들으니까.”
태오는 서류를 펼쳤다.
“발카스 측은 제 47-B 증표를 임시 보관기관에 맡겨 달라고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이 증표로 돈을 꺼낼 수 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게 없어요.”
“그걸 빼앗기면 우리 조사가 끝나는 겁니까?”
소피가 물었다.
“아닙니다. 여러분의 계약과 채권은 별개예요. 자료 조사에 어려움이 생길 순 있어도 이미 접수된 공동 분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로벤이 모자를 내려놓았다.
“만약 그 비늘을 맡기는 게 정말 안전하다면 맡겨야 하지 않나?”
태오는 뜻밖의 의견을 듣고 잠시 멈췄다.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중립기관이 어디인지, 누가 접근할 수 있는지, 분실되면 누가 책임지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어요.”
“그렇지. 맡기면 누가 가져가는지 알아야지.”
로벤이 고개를 끄덕였다.
헤스는 빵칼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는 내 돌멩이도 그냥 내주기 싫다. 보증금 대신 받은 거라지만 돌려주면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서류로 받은 적이 없거든.”
“헤스 할머니의 31-A 표식은 제 47-B와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걸 같은 물건으로 묶으면 오히려 할머니 권리가 불분명해질 수 있어요.”
노파는 그 말을 듣고 한참 생각했다.
“맞아. 돌이라고 다 같은 돌은 아니지.”
설명회가 끝날 때쯤 소피가 작게 물었다.
“태오 씨는 왜 끝까지 이걸 하세요? 자기 돈 받는 게 먼저일 텐데.”
태오는 빵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모았다.
“제 돈이 먼저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받지 못한 270금화를 계속 요구할 겁니다.”
“그런데 우리도 도와주시잖아요.”
“제가 혼자였으면 이렇게까지 기록을 모으지 못했을 거예요. 여러분도 자신의 계약을 직접 확인하고 증거를 보내 주셨잖아요.”
로벤이 툴툴거렸다.
“그래도 넌 서류를 너무 좋아해.”
“저도 싫습니다.”
태오가 웃었다.
“보증금만 돌아오면 다시 짐 나르는 일부터 찾을 생각이에요.”
헤스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내 빵집 장부나 봐 줘. 숫자 맞추는 사람 하나 필요해.”
“할머니, 저는 빵을 사러 갔다가 언제나 일을 받습니다.”
“일을 해야 빵도 먹지.”
리네아는 그 말을 들으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
설명회 뒤 리네아와 태오는 빈 회의실에 남았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아까는 로벤 아저씨가 증표를 맡기는 게 낫다고 하셨을 때, 화낼 줄 알았어요.”
“왜요?”
“당신이 그동안 얼마나 애써 지킨 물건인지 아니까요.”
“그분도 자기 돈을 찾고 싶은 거죠. 생각이 다를 수 있어요.”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차분했을까요?”
태오는 잠깐 생각했다.
“아마 집주인이 드래곤인 걸 알고 처음 동굴에 갔을 때였다면, 저도 모르게 화냈겠죠.”
리네아가 조금 몸을 기울였다.
“그때 무섭지 않았어요?”
“무서웠습니다. 아직도 무서워요.”
“그런데 왜 자꾸 정면으로 맞서요?”
“맞서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제 돈을 돌려달라고 말할 곳이 거기밖에 없잖아요.”
그녀가 웃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태오 씨는 용감한 척하지 않을 때 더 용감해 보여요.”
태오가 얼굴을 붉혔다.
“그건 기록에 남기지 말아 주세요.”
“왜요?”
“매번 볼 때마다 민망할 것 같습니다.”
리네아가 그의 수첩을 장난스럽게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그럼 저 혼자 기억해 둘게요.”
“그건 더 위험한데요.”
그녀는 이번에도 자신이 이겼다는 듯 밝게 웃었다.
***
태오는 마지막으로 답변서의 첨부 순서를 확인했다. 첫째는 47-B를 발카스가 직접 건넨 경위, 둘째는 비늘의 조회 권한에 관한 공적 설명, 셋째는 매도 제안을 거절한 자료였다. 로벤과 소피의 계약서는 본인 동의가 없으면 무턱대고 첨부하지 않기로 했다. 리네아는 봉투마다 번호를 붙였다. ‘우리 자료가 많아 보인다고 좋은 건 아니에요. 필요한 증거가 어디 있는지 상대도 금방 찾을 수 있어야 하죠.’ 태오는 그 말을 듣고 목록 맨 앞에 한 장짜리 안내문을 붙였다. 더 많은 종이를 모으는 일보다 누가 봐도 읽히게 만드는 일이 어려웠다.
증표를 누가 보관하게 될지는 여전히 불투명했다. 태오는 무조건 거부하는 대신, 반납 조건과 접근권을 문장으로 확인받자고 생각했다. 그 작은 차이가 앞으로의 분쟁에서 누구의 잘못인지 가르는 기준이 될 수도 있었다.
***
이틀 뒤 임시 심사가 열렸다. 판사는 47-B의 소유권을 판정하지 않았고, 금고의 관리인도 정하지 않았다. 대신 증표가 분쟁 해결 이전에 무단으로 양도되거나 파손되지 않도록 양측이 보전 의무를 준수할 것을 확인했다.
발카스 측의 즉시 인도 요구는 그 자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추가 자료 제출 기한만 정해졌다.
태오는 회의실을 나오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긴 겁니까?”
이벨이 고개를 저었다.
“결정이 유예된 겁니다. 다만 오늘 증표를 넘길 필요는 없어졌어요.”
태오는 47-B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작은 검은 비늘이 고대 드래곤의 거대한 몸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상단회관의 전달원이 달려왔다.
“김태오 씨, 긴급 우편입니다!”
봉투에는 남문 나루터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일곱 해 전 여름 화물 수송 장부의 일부를 확인했습니다.]
다음 줄은 짧았다.
[다렌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문서함은 있었으나, 수령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태오가 입을 열었다.
“드디어 돈이 아닌 걸 찾았네요.”
리네아가 그를 보았다.
“돈보다 중요한 건가요?”
“아뇨.”
그는 봉투를 다시 접었다.
“돈을 찾는 데 필요한 사람의 흔적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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