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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21화
PAYLUA ORIGINAL · 제21화

21화. 사라진 사람은 신청서를 남겼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117자

오프라인 책장
다렌이라는 이름을 확인한 다음 날, 김태오는 아침 식탁에서 삶은 달걀을 세 번이나 굴렸다. 달걀은 식어 있었고, 식탁 맞은편에는 리네아가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는 어젯밤보다 조금 더 많은 침묵이 놓여 있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그녀가 먼저 물었다. “같이 걸어왔잖아요.” “집 안까지는 안 들어갔죠.” “문 앞에서 인사했으니까요.” “인사는 했는데, 제가 손을 놓기 전까지 계속 잡고 계시던데요.” 태오가 달걀을 떨어뜨렸다. “그건 길이 어두워서….” “파벨시 중앙로에는 가로등이 열일곱 개나 있어요.” “그걸 다 세셨어요?” “어제부터 셌죠.” 리네아가 웃었다. 태오는 일단 달걀 껍데기를 벗겼다. 계약서에 적힌 금액은 암기할 수 있었지만, 이런 대화의 정답은 아무리 계산해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다렌 씨 신청서부터 확인합시다.” “또 일로 도망가시네요.” “도망은 아닙니다. 정식 열람 예약이에요.” “아, 그러면 합법적인 도망이군요.” 그녀는 태오가 아침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태오는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조금 얄미웠다. *** 왕실 위탁 열람실에는 전날보다 사람이 많았다. B-19 부속대장을 확인하려는 행렬이 아니었다. 토지 세금 신고 기간이라 작은 상인들이 서류를 들고 몰려온 것이었다. “이 왕국 사람들도 세금 신고 앞에서는 똑같군요.” 태오가 중얼거리자 리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도 세금은 내요. 얼마나 내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보증금을 세금으로 낸 건 아니겠죠?” “가능성만으로 누굴 범인으로 만들면 안 된다면서요.” “농담입니다. 농담은 접수하지 마세요.” 그들은 마르셀과 합류했다. 접수 담당자는 전날 예고한 사본을 작은 가죽철에 넣어 가져왔다.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신청일, 처리 상태, 제출 서류의 종류, 그리고 신청인 본인이 분쟁 당사자였다는 사실까지입니다. 상세한 거주지와 제삼자 서명은 가렸습니다.” 태오는 사본의 윗부분을 읽었다. [계정 47 관리인 등재 신청] [신청인: 다렌] [접수일: 현행력 기준 7년 전 여름] [신청 자격 주장: 이전 임차인 및 공동 보관계정 이해관계인] [신청 결과: 보류] [보완 요구: 후임 관리권 승계 근거 및 원금 수익권 확인 자료] “이전 임차인도 관리인 신청을 할 수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신청서 제출 자체는 가능했을 수 있습니다.” 마르셀이 대답했다. “하지만 접수는 승인과 다릅니다. 다렌이 자격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사실만 확인됩니다.” 태오는 바로 수첩에 적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지루할 만큼 뻔한 구분이었다. 그러나 그가 겪은 문제의 절반은 누군가 그 구분을 마음대로 지운 데서 시작됐다. “보완 요구는 전달됐습니까?” “발송 기록이 있습니다. 수령 확인란은 공개 사본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다렌 씨가 보고 도망갔다고 말할 수도 없겠군요.” “그런 해석은 조심해야 합니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하고 싶은 건 도망갔는지 알아내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 어떤 문서가 갔는지 확인하는 겁니다.” 담당자는 조금 놀란 듯 그를 쳐다보았다. 대개 방문자는 사라진 이름 뒤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지 먼저 물었다. 태오는 우편번호를 먼저 찾았다. *** 제출 서류 목록에는 네 항목이 있었다. 임대계약 사본, 공동 보관 증명서 초안, 이해관계인 진술서, 그리고 봉인된 첨부 한 장. “마지막 것은 무엇입니까?” “제목이 남아 있습니다. ‘권리 승계에 대한 이의 기록’입니다.” 마르셀이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 “이의 기록이면 누군가 다렌 씨 신청에 반대했다는 뜻인가요?” “반대 의견이 첨부됐을 수도 있고, 신청인이 기존 승계에 이의를 제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목만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옆에서 토른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내 할아버지라면 저 제목을 보고도 부속도면 번호부터 물었겠군.” “왜요?” “아무리 말이 그럴듯해도 도면 번호가 다르면 다른 집 벽을 뜯을 수 있으니까.” 태오는 잠깐 웃었다. 자신이 서류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보증금은 분명 자신의 것인데, 남이 만든 이야기 속에서 자꾸 다른 사람의 돈처럼 취급되고 있었다. 그는 첨부 열람을 신청했다. 담당자는 별도 심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해관계인 자격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렌 씨 본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결과가 언제 나옵니까?” “사흘 안에 안내드리겠습니다.” 태오는 사흘이라는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이세계에 온 뒤 가장 많이 들은 시간 단위는 한 시간도, 하루도 아니었다. 바로 사흘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날짜를 세는 직업을 구했을 겁니다.” “무슨 직업인데요?” “행정 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 “그건 직업이 아니라 상태 아닌가요?” “요즘 제 주업입니다.” *** 열람실에서 나올 때 세딘이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검은 제복의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 기록관이었다. 손에는 세 고리 인장이 찍힌 서류철이 들려 있었다. “어제 확인한 이름 때문에 오셨군요.” 세딘이 먼저 말했다. “그 이름을 아십니까?” “기록상으로는 압니다.” “직접 만나셨습니까?” “그 질문에 답하려면 제 소관을 확인해야 합니다.” 태오는 한숨을 삼켰다. “제가 지금껏 만난 분들은 모두 소관을 확인하는 데 하루씩 쓰시는군요.” “소관을 틀리게 답하면 열 해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세딘의 대답은 차분했다. 리네아가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다렌이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해서 계정 47을 열거나 47-B를 반납해야 하는 새로운 의무가 생긴 건가요?” “그런 공지는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 답은 기록할 수 있겠네요.” 태오가 펜을 들자 세딘은 잠깐 웃었다. “두 분은 서로를 잘 견디시는군요.” “누가 누구를 견딘다는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저는 아직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세딘은 그 말을 남기고 계단을 내려갔다. 리네아가 팔짱을 꼈다. “저 사람이 은근히 얄밉네요.” “우리 편인지도 모르겠고요.” “우리가 편을 나눌 단계는 아닐지도 몰라요.” “그 말은 마음에 듭니다.” *** 오후에는 로벤을 찾아갔다. 노인 마부는 말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건초를 보며 태오는 어째서 중요한 정보는 늘 식당이나 마구간에서 발견되는지 생각했다. “다렌 씨가 관리인 신청서를 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로벤이 물통을 내려놓았다. “그 친구가 관리인이 되려고 했다고?” “신청은 했지만 승인되지 않았어요.” “그게 무슨 차이지?” 태오는 설명하려다가 웃었다. 자신도 일주일 전이라면 같은 질문을 했을 것이다. “마구간을 빌리겠다는 사람과 실제 마구간 열쇠를 받은 사람은 다르잖아요.” “그렇지.” “다렌 씨는 열쇠를 달라고 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로벤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은 뭔가를 계속 확인하고 다녔어. 언젠가 내게 이런 말을 했지. ‘문이 잠겨 있으면 열쇠 주인을 알아야 하고, 열쇠 주인이 없다면 누가 문을 잠갔는지 알아야 한다’고.” 태오가 물었다. “그날 어디로 갔습니까?” “마지막으로 본 날 말인가?” “예. 날짜를 최대한 정확히요.” 로벤은 마구간 안쪽에서 낡은 일기장을 가져왔다. 일곱 해 전 여름의 페이지 한쪽에 진한 잉크가 번져 있었다. [다렌. 남쪽 수로로 보낼 서류. 오후 두 시 배차 물음. 거스름돈 안 받아 감.] “남쪽 수로?” “기억이 희미해. 그때 수로 수리 때문에 배가 자주 멈췄어. 사람들은 남문 나루터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탔고.” 태오는 잠시 기록을 바라봤다. 행방불명과 도주와 사망은 서로 다른 단어였다. 일기장에는 어느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때 누가 다렌 씨를 따라왔습니까?” “모른다.” 로벤은 분명하게 답했다. “내가 본 건 그가 서류를 들고 길을 묻던 모습뿐이야.” “그럼 그 사실부터 확인하죠.” *** *** 그날 오후 태오는 옛 우편조합 접수소를 다시 찾았다. 다렌이 남긴 보완 요구서의 발송 경로를 확인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접수소에는 키가 작은 노인이 창문을 닦고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편지함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창구 위의 표어는 '우편은 약속입니다'였다. “여기는 약속을 아주 중요하게 여기시네요.” 태오가 말했다. 노인은 시큰둥했다. “중요하지. 약속한 곳에 편지가 가야 하니까.” “못 간 편지는요?” “그것도 기록하지.” 태오는 사본의 접수번호를 내밀었다. 노인은 목록을 조회한 뒤 종이를 한 장 출력했다. [보완 통지 발송.] [배달 결과: 전달 요청 완료.] [수령인 본인 확인: 별도 기록 없음.] “전달 요청 완료면 받았다는 뜻 아닙니까?” “아닙니다. 배달원이 배달을 시도할 곳을 확인했다는 뜻이지요. 요즘 체계와는 조금 달랐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장의 통지서가 오갔다는 것과 다렌이 그걸 직접 읽었다는 것 사이에도 틈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자세히 알아보는 겁니까?” 노인이 물었다. “그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어서요.” “도망간 세입자입니까?” “도망갔다고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노인은 웃었다. “그 말은 요즘 아주 드문 말이군.” 태오는 우편창구에 붙은 오래된 안내문을 읽었다. 수취인이 불분명한 경우 발송인은 주소 변경을 신청할 수 있고, 그 기록은 별도 장부에 남는다는 내용이었다. “주소 변경 기록도 있습니까?” “개인정보가 들어가므로 마음대로 보여 줄 수는 없지요.” “그럼 조회 가능 여부를 묻는 신청서는 있나요?” 노인은 종이를 꺼내 주었다. “있긴 합니다. 분쟁 관련 기관의 요청이나 본인 동의가 필요할 겁니다.” 태오는 접수서를 받아 들었다. 또 하나의 종이가 생겼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는 분명했다. 밖으로 나오자 토른이 빵을 먹고 있었다. “얼마나 걸렸나?” “신청서 하나 받는 데 한 시간요.” “그 정도면 빠르군.” “어째서요?” “우리 드워프 조합에선 신청서 하나에 석 달 걸리는 일이 있어.” “그건 조합이 아니라 산맥을 하나 깎는 기간 아닙니까?” 토른이 어깨를 으쓱했다. “돌은 재촉한다고 빨리 자라지 않거든.” 태오는 짧게 웃었다. 그러고는 로벤의 일기장에 적힌 남문 나루터의 도착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 보완 통지 발송일과 다렌이 문서함 운송을 문의한 날 사이에는 며칠 간격이 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을까.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는 대신 그는 두 날짜에 각각 동그라미를 쳤다. 하나는 종이가 출발한 날. 다른 하나는 사람이 길을 물은 날이었다. 그 사이를 잇는 선은 아직 없었다. *** 돌아가기 전에 태오는 우편조합 접수증도 따로 보관했다. 기록 속의 다렌은 아직 이름과 날짜로만 존재했다. 그는 그 이름을 실제 사람으로 만나기 전까지 함부로 선악을 정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로벤의 일기장도, 오래된 신청서도 사람의 일생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적어도 무엇부터 물어야 하는지는 조금 더 알 것 같았다. *** 해 질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리네아가 태오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오늘은 손 안 잡으세요?” “어제는 길이 어두워서 잡았는데요.” “오늘도 곧 어두워질 건데요.” 태오는 한참 생각하다가 손을 내밀었다.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리네아는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이것도 서류로 남길 거예요?” “안 남깁니다.” “왜요?” “제 마음대로 끝내기 싫어서요.”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오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러니까, 제 말은…….” “설명하지 마세요.” 리네아가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그 말은 제가 받아 둘게요.” 그날 밤, 태오는 다렌의 신청서 접수일과 로벤 일기장의 날짜를 나란히 놓았다. 두 날짜의 간격은 며칠뿐이었다. 하지만 순서만으로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다음 조사 항목을 적었다. [남문 나루터. 일곱 해 전 수로 수리 기록. 서류 운송 장부.] 그 아래에는 아주 작게 다른 문장을 썼다. [리네아 씨와 걸을 때는 날짜를 세지 말 것.] 펜끝이 잠시 멈췄다. 보증금 270금화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반드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조금 더 많아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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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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