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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20화
PAYLUA ORIGINAL · 제20화

20화. 사라진 세입자의 이름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272자

오프라인 책장
부속대장 B-19를 처음 본 김태오의 소감은 의외로 단순했다. “크네요.” 기다란 나무 상자 안에 책이 한 권 들어 있었다. 표지는 두꺼운 가죽으로 덮여 있었고, 금속 고리가 세 군데 박혀 있었다. 태오의 허벅지만 한 크기였다. 토른이 낮게 중얼거렸다. “저런 건 혼자 들다가 허리를 다친다.” “드워프는 이런 걸 보면 금고보다 허리가 걱정됩니까?” “금고는 고칠 수 있지만 허리는 고치기 어렵거든.” 리네아는 웃음을 참으며 두 사람을 밀어냈다. “조용히 하세요. 여긴 왕실 위탁 열람실이에요.” 태오는 주변을 둘러봤다. 성문 안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는 창문이 적었다. 벽에는 기록 보존 마법이 흐르고 있었고, 입구마다 경비병이 서 있었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 정식 열람 절차를 밟았다. 신청서에는 각자의 이름과 열람 목적이 적혀 있었다. 부속대장은 분쟁 관련 내용 중 허용된 범위만 볼 수 있었고, 개인 신상이나 제삼자 계약 내역은 가림 처리됐다. “원본을 만지지 말아 주세요.” 열람 담당자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필사가 필요한 부분은 제게 말씀하시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 같아서는 책을 통째로 펼쳐 읽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배운 경험상 급한 마음으로 절차를 건너뛰는 순간 상대에게 공격할 빌미를 주기 쉬웠다. 태오는 열람 신청서를 쓰기 전 가방 속의 계약서를 꺼냈다. 금화 300닢을 맡기고 집을 빌릴 때 작성한 두툼한 종이였다. 본문에는 반환 조항이 있었고, 끝에는 은빛 마법 인장이 남아 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임대차 계약으로 보였다. 실제로 그랬다. 계약 당사자에게 집을 빌려주고, 계약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단순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 아래에 이런 고대 시설이 있다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집 월세가 너무 쌌던 건 아닐까요?” 태오가 물었다. 리네아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때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아주 싸지는 않았어요. 조건이 괜찮은 편이었죠.” “어떻게 그런 집에 들어가라고 권하셨어요?” “태오 씨가 일터에서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였고, 지붕 상태도 괜찮았어요.” “지하에 금고가 있을 줄은 몰랐죠?” “네. 그걸 알았다면 아예 계약 전에 구조 확인을 요청했을 거예요.” 태오는 계약서를 접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뭘 바꾸고 싶으세요?” “설명은 더 꼼꼼하게 하겠죠.” “그것뿐입니까?” 리네아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계약 끝나고 문제가 생기면 저를 먼저 찾아오라고 말할 거예요.” “지금도 결국 먼저 찾았잖아요.” “그러네요. 결과만 보면 잘된 일인가?” “제 돈이 안 돌아온 건 빼고요.” “그것까지 포함하면 조금 복잡하겠네요.” 그녀가 웃음을 거두며 물었다. “태오 씨, 오늘 정말로 모든 게 밝혀질 거라고 기대하세요?” “아뇨. 원본을 보더라도 정답이 한꺼번에 나올 가능성은 낮아요. 지금까지 늘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왜 그렇게 일찍 왔어요?” “늦어서 못 보는 건 싫으니까요.” 리네아는 태오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러다 그의 손목에 붙은 붉은 잉크를 손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요즘에는 잉크가 안 묻은 날이 없네요.” “서류를 너무 많이 써서요.” “나중에 이 일이 끝나면 태오 씨 손에서 잉크 냄새 대신 음식 냄새가 났으면 좋겠어요.” “요리를 잘하는 편은 아닙니다.” “누가 태오 씨에게 요리하라고 했어요?” 그녀가 한 걸음 가까이 와서 웃었다. “같이 밥 먹자는 뜻인데.” 태오는 가방을 꽉 붙잡았다. 세입자로서 할 수 있는 질문은 제법 많아졌지만, 이럴 때의 대답은 아직 잘 몰랐다. “그럼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그건 제가 원하던 대답의 절반이네요.” “나머지 절반은요?” “열람 끝나고 알려 드릴게요.” 리네아는 먼저 문으로 걸어갔다. 태오는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의 금고는 관리인 승인과 원금 소유자 확인이 있어야 열린다고 했다. 리네아의 대화는 자신만 모르는 세 번째 승인이 필요한 듯했다. 그는 그 생각을 수첩에 적으려다가 멈췄다. 기록되지 않는 것들도 세상에는 있었다. *** 첫 장에는 파벨 주택조합의 청산 날짜가 있었다. 그 아래 공동 보관 시설과 연결된 계정 목록이 이어졌다. [제47 공동 보관계정.] [설정 목적: 임차 보증 원금의 분리 보관 및 반환 절차 보조.] [개설 주체: 파벨 주택조합.] 태오는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분리 보관이군요.” “처음 설계 목적은 그랬다는 뜻입니다.” 마르셀이 대답했다. 태오는 조금 실망했다. '원래 보관해야 했다'는 사실을 찾았다고 해서 지금 돈이 그 안에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금고 접근과 관련된 절차가 있었다. [접근 증표는 보관계정의 조회 요청 권한을 표시하며 원금 소유권을 대신하지 않는다.] [실행 승인은 등재 관리인 및 수익권 확인 절차를 따른다.] 토른이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내 할아버지 설계도가 맞았군. 원래는 그 순서였어.” 태오는 47-B가 든 가방을 내려다봤다. “그럼 이걸 가진 제가 남의 보증금까지 가져갈 수는 없는 거군요.” “애초에 그러려고 만든 물건이 아니니까요.” 리네아가 말했다. “그런데 발카스 님은 왜 이렇게까지 증표를 돌려받으려 할까요?”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답을 찾으러 온 자리에서 먼저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 다음은 관리권 이전 기록이었다. 책의 가운데 부분에 금속 테두리가 둘러진 장이 있었다. 과거 주택조합의 관리인이 퇴임하면서 후임자에게 권한을 넘기는 절차가 적혀 있었다. [후임 관리인 등재 신청.] [승인 상태: 보류.] [보류 사유: 권리관계 확인 서류 일부 미제출.] 마르셀이 고개를 들었다. “현재 등기부에서 관리권 이전 기록을 찾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겠습니다.” “왜 보류됐습니까?” “지금 보이는 문구대로라면 확인 서류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구체적인 사유는 별도 첨부를 봐야 합니다.” 태오는 장부의 여백을 바라봤다. 묘하게 수십 년간 사람이 손대지 않은 자리처럼 보였다. “발카스 님이 주택을 인수한 날짜와는 차이가 있습니까?” 열람 담당자가 공개 범위에 해당하는 날짜만 대조했다. “건물 소유권 일괄 이전이 먼저이고, 이 관리인 등재 신청은 그보다 뒤입니다.” “그럼 집을 산 뒤에도 관리권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신청이 보류됐다는 사실까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뒤 별도 정정이 없었는지는 전체 기록을 대조해야 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주 듣던 경고를 이제 스스로 먼저 떠올릴 수 있었다. 옆에서 리네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발카스 님도 금고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없었겠네요.” “그렇다고 보증금을 안 돌려줄 이유가 모두 설명되지는 않죠.” “네. 집주인으로서 받은 돈은 여전히 갚아야 하니까요.” 두 사람은 같은 페이지를 보고 있었다. 리네아가 웃으며 태오의 팔에 어깨를 살짝 부딪혔다. “이제 같은 말도 동시에 하네요.” 태오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오래 같이 다니면 회계 방식도 닮나 봅니다.” “회계 말고 다른 것도 닮으면 좋겠는데.” “뭘요?” “글쎄요.” 태오는 또다시 정답을 찾지 못했다. 드래곤의 금고보다 이 엘프의 문장이 더 어려웠다. *** 열람실 문이 열리더니 검은 제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자신을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의 파견 기록관이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세딘이었다. “계정 47에 관한 공개 절차가 시작됐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마르셀이 물었다. “직접 열람을 제한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다만 일부 장에는 관리 권한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취급 주의 문구가 있습니다.” “그 문구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허용 범위에 포함된다면요.” 세딘은 담당자에게 인장을 보였다. 태오는 그 인장이 경고문에 찍힌 세 고리 문양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 문양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요.” 리네아가 조용히 태오의 팔을 잡았다. 태오는 손짓으로 괜찮다고 했다. 인장이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익명 경고문의 발신인을 특정할 수는 없었다. 지난번 토른의 공방 기록에서도 금형의 틈이 서로 달랐지 않은가. 하지만 세딘이 보인 문양에는 바깥 고리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명단에 서명한 뒤 태오를 바라봤다. “47-B를 가지고 계시다고요.” “그 사실은 공개된 조정 기록에 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발카스 님이 왜 그걸 당신에게 건넸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저도 계속 묻고 있습니다.” 세딘의 입꼬리가 잠깐 움직였다. “적어도 거짓으로 아는 척하는 분은 아니군요.” “제가 모르는데 아는 척하면 누가 돈을 줍니까?” “돈이라…….” 세딘은 한참 그 단어를 되뇌었다. *** 열람 후반부에는 계정 상태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제57-K호 지침에 따른 원장 보존 표식 확인.] [계정 47 지급 실행 제한 사유: 관리자 등재 미완료에 따른 승인 경로 미성립.] [별도 강제 지급정지 명령 존재 여부: 본 부속대장만으로 확인 불가.] 태오는 마음속으로 문장을 나눠 읽었다. 왕실 지침에 따른 기록 보존 표식은 있었다. 관리인 등재가 미완료되어 지급 실행이 어렵다는 기재도 있었다. 그러나 왕국이 직접 금고에 별도 지급정지 명령을 내렸는지는 이 책만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경고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도, 맞았다고도 할 수 없군요.” 마르셀이 말했다. “정확합니다.” 토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오래된 금고가 실은 서류 하나 때문에 못 열릴 수도 있다니.” 태오는 한숨을 쉬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똑같군요.” 그는 새 질문을 적었다. [등재 신청을 다시 진행할 수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 이 문제에 답하지 못하면 보증금 반환도 계속 미뤄질 수 있었다. ***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세딘이 말했다. “그 장은 아직 개인정보 가림 처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열람 담당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료 일부를 가린 뒤 사본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태오는 돌아서려다가 표지 아래로 미끄러져 나온 접수 번호 한 줄을 보았다. 이름이나 개인 정보는 아니었다. [관리권 등재 신청: 접수 218-47-다.] 태오는 멈췄다. 자신의 공동 분쟁 예비조사 번호 218-47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단순한 연계 번호일 수도 있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그 접수번호가 제 사건과 같은 체계인가요?” 세딘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과거 이관 기록에서 현재 민원 번호를 참조하도록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장 원문만 보고는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럼 합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범위를 신청하겠습니다.” “하시지요.” 세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람 담당자는 서류를 다시 봉인했고, 내일 오전까지 가림 처리 사본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태오는 성문 밖으로 나오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금화 270닢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수년 동안 사라진 줄 알았던 관리권 기록은 실재했고, 그 상태도 처음으로 일부 확인됐다. “오늘은 성과가 있었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돈은 못 받았지만요.” “그 말 안 하시면 안 돼요?” “그럼 오늘은 뭘 기념하죠?”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서류 없이 산책하기요. 오늘 저녁만큼은.” 태오는 잠시 고민하다 그녀의 손을 잡았다. “좋습니다. 다만 저녁은 제가 사죠.” “보증금도 못 받았으면서요?” “오늘은 조금 무리해 보겠습니다.” 둘은 성문 아래를 걸었다. 토른은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젊은 것들은 참 어렵군.” 그때 태오의 전달석이 울렸다. 마르셀의 메시지였다. [가림 처리 사본의 공개 가능 항목이 정리됐습니다. 관리권 등재 신청인의 이름은 분쟁 당사자 확인 절차에 따라 열람 가능합니다.] 태오는 리네아를 돌아봤다. “잠깐만요.” “뭐예요?” “한 줄만 확인하겠습니다.” 전달석에는 사본의 해당 항목이 떠 있었다. [계정 47 관리권 등재 신청인: 다렌.] 태오는 숨을 멈췄다. 전 세입자 다렌. 일곱 해 전 로벤에게 서류를 전달한 뒤 자취를 감춘 그 사람의 이름이 관리권 등재 신청서에 적혀 있었다. 신청은 승인되지 않았다. 다렌이 적법한 관리자였다는 뜻도 아니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하나가 새로 생겼다. 사라진 세입자는 단순히 자기 보증금만 요구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한때 계정 47의 관리권을 넘겨받으려는 신청을 했던 것이다. 리네아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제 누구를 찾아야 할까요?” 태오는 오래된 이름을 다시 읽었다. “다렌 씨요.” 그는 전달석을 꺼 버렸다. 오늘 밤만큼은 서류 없이 걷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잡은 손 사이로, 또 하나의 긴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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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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