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산맥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태오는 가방을 세 번 확인했다.
처음에는 보증금 계약서, 두 번째에는 왕실 참관 허가서, 세 번째에는 리네아가 싸 준 도시락이었다. 그동안 수십 번이나 산맥을 올랐지만 오늘은 처음과 다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돈을 내놓으라고 용에게 따지러 가는 날이 아니었다. 분쟁 중인 계정 47의 보관 상태를 독립적으로 확인하는 날이었다.
“첫 번째 날 기억나요?” 리네아가 물었다.
“집주인이 드래곤이라는 말을 너무 늦게 들었다는 사실부터 기억납니다.”
“그 이야기는 앞으로도 오래 하겠죠?”
“집을 다시 구할 때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린 지금 같이 살 집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적어도 당분간은 안 하겠습니다.”
리네아는 웃으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옛날 같았으면 마차가 산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긴장부터 했을 것이다. 이제는 그 길에서 어느 곳의 돌부리가 높고, 어느 나무 그늘이 점심 먹기에 좋은지 알았다.
계정 47의 모든 비밀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의 거대한 오해는 벗겨졌다. 발카스가 처분을 보류한 것은 오래된 수익권자 목록과 통지 명부가 뒤섞였기 때문이었고, 왕실이 답한 것은 그의 단독 처분을 승인할 수 없다는 제한이었다. 그 제한은 세입자들에게 빚진 돈이 없어졌다는 선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금고를 열 수 없다는 이유로 다른 재산에서 반환할 책임까지 멈추는 것은 발카스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오늘은 그런 판단에서 벗어나 보관물의 실체를 확인하는 마지막 중요한 절차였다.
***
동굴 앞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세딘과 독립 보관 전문가 두 명, 디아나, 마르셀, 이벨, 발카스의 대리인 바렌, 세입자 측에서 각자 허가한 제한 참관인만 있었다. 태오는 자기 이름이 특별한 권한으로 등록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그는 자신의 채권을 전액 반환받았으므로 더 이상 금고 속 돈에 대한 개인 미환급 채권자로 주장할 것이 없었다. 다만 과거 기록 정리 보조를 위해 참관할 수 있었다.
“너는 오늘 금고를 보러 온 것이냐?” 발카스가 물었다.
“네. 하지만 금화를 제 가방에 담으러 온 건 아닙니다.”
“그랬다면 가방이 너무 작았겠지.”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금화가 엄청 많을 것 같잖아요.”
발카스는 잠깐 웃었다.
“옛날의 나는 금고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엄청난 보물이라고 생각했지.”
“오늘은 정확히 세어 보죠.”
그때 라웰이 북부 보존구역에서 가져온 원본 인수서 사본을 펼쳤다. 그곳이 받은 것은 독립 대조 기준판이며 47-C 원표식은 아니었다는 점이 정식 대조 결과로 확인됐다. 제6기록실의 별도 봉함 인계 원부에서는 베라 퀸이 넘긴 임시 감시 확인표식과 그 후속 인수 경로가 연결됐다. 전문가들은 허가된 비접촉 감정으로 당시의 실물 확인표식과 북부 기준판의 인영을 비교했다.
“일부 서식 특징이 부합합니다.” 디아나가 말했다. “그리고 독립 인수기록의 봉인번호도 연속됩니다. 다만 이 물건은 당시 감시 당직 확인에 사용된 원형 표식으로 분류됩니다.”
“그러면 드디어 47-C를 찾은 겁니까?” 바렌이 물었다.
“47-C 계열의 감시 업무에 사용된 원표식과 인계 경로를 확인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금고 관리권이나 처분권을 가진 원표식이 따로 있었다고 가정할 근거는 없습니다. 이 표식 자체의 기능도 감시·통지 확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태오는 그 대답을 끝까지 들었다. 수백 년 된 용이 찾던 ‘마지막 열쇠’가 사실 누군가에게 편지가 갔는지 확인하는 업무 표식이었다니. 그것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정확했다. 사람의 권리를 지키는 물건이 반드시 금고를 여는 열쇠일 필요는 없었다.
***
계정 47의 보관 상태를 확인하는 일은 그 표식과 별도의 절차였다. 왕실은 한정된 목적의 독립 재물 목록 검증을 승인했다. 원본 장부의 보존과 분쟁 재산의 수량 확인이 목적이었지, 특정인에게 관리인 승계를 인정하거나 금화를 지급하라는 명령이 아니었다. 봉함을 일시 해제하는 동안 서로 다른 기관에서 지정한 세 명이 함께 입회했고, 봉함 재설치 및 수량 변경 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태오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신이 처음 금고 앞에 섰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분노와 두려움으로 심장이 뛰었다. 이제는 닫힌 문 자체보다 문을 여는 사람들의 권한이 정확한지가 중요했다.
토른이 허가된 구조 안전 구역에서 지지대를 확인했다. 오래된 제4 보전통로의 원판 보존갑은 이날 개봉 대상이 아니었다. 감정인이 보관 환경을 검사하고 나서야 계정 47의 외측 재물 보관실에 접근했다. 어떤 사람도 마음대로 손을 뻗지 않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습니까?” 태오가 토른에게 물었다.
“문은 언젠가 열리겠지. 문제는 열린 다음 누가 책임지느냐야.”
토른은 헬멧을 바로 썼다.
“집도 그래. 문을 잘 달아 놓는 것보다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안전해야 하는 법이지.”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
금고 외측 통로의 벽에는 오래된 안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태오는 그 글귀를 손가락으로 따라 읽었다.
[공동 보관물은 어느 한 사람이 단독으로 인수하거나 처분하지 않는다.]
“이 문구가 처음부터 있었습니까?”
토른은 돌 표면을 살폈다.
“문구를 새긴 시기는 오래됐지만, 정확한 연도는 석재 기록과 대조해야 한다. 그래도 나중에 급히 만든 경고문처럼 보이지는 않는군.”
발카스는 그 글귀를 보고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이 문 앞에 수없이 섰다.”
“보셨겠죠.” 태오가 말했다.
“하지만 읽은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구나.”
태오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웃었다.
“드래곤 님이 쓴 안내문은 아니죠?”
“이 보관실을 처음 만들 때 내가 계약에 동의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글자를 직접 새긴 사람은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작성자와 효력을 따로 확인해야겠네요.”
발카스가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은 잠깐 눈을 마주치더니 함께 웃었다.
마르셀은 이 문구를 오늘의 권한 근거로 삼지 말라고 했다. 공동 보관의 일반 원칙을 보여 줄 수는 있어도 구체적인 출입과 목록 검증 허가는 현재의 정식 절차에서 확인해야 했다. 태오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석벽의 문구가 사람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누가 어떤 금화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
목록 검증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 참관인이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확인하지 않는지 서로 다시 읽었다. 세입자 측 참관인은 현물의 존재와 수량 확인을 보는 사람이지 다른 열 명의 채권을 포기시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발카스도 자신이 과거 보관 계약의 관련인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원금에 대한 임의 처분권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식으로 서명하면 언제 일을 끝냅니까?” 토른이 중얼거렸다.
디아나가 웃었다.
“한 번 정확하게 끝내 놓으면 나중에 같은 일을 다시 할 필요가 줄어들겠죠.”
“그건 내가 건물 기초를 놓을 때 늘 하는 말이지.”
토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오늘 절차가 끝나도 계정 47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실제 현물 목록을 확인해도 과거 입출금과 개인별 수익권은 별도로 판단해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현물 수량 자체를 모르면서 서로 다른 숫자를 믿었다. 정확한 출발점을 확인하는 일만으로도 다음 사람들은 불필요한 추측을 조금 덜 하게 될 것이다.
그때 바렌이 태오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개인 미환급 채권자가 아닌데도 왜 참관하러 오셨습니까?”
“처음부터 기록을 정리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오늘도 허가된 범위에서 그 일이 제대로 마무리되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럼 금고 안에 보석이 가득하지 않으면 실망하겠군요.”
“조금은 할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요.”
바렌은 웃었다.
“그런 대답도 할 줄 아시는군요.”
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고 보석을 보면 눈이 돌아갈 때도 있었다. 다만 보석이 반짝인다는 이유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지는 않을 자신이 있었다.
***
리네아는 금고 입구에서 작은 돌 하나를 발견했다.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검은 돌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주워 태오에게 보여 주었다.
“기념품으로 가져가도 될까요?”
“보존구역 밖의 평범한 돌이라면 관리 규칙을 확인해야겠네요.”
리네아가 웃었다.
“농담이에요. 바다에서 주운 조약돌 하나면 충분해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조약돌은 우리 집에서 제일 좋은 자리에 있죠.”
“고장난 시계 옆이요?”
“네. 서로 다른 곳에서 온 두 물건이 같은 자리에 놓여 있잖아요.”
리네아는 그를 잠시 바라봤다. 금고 앞의 어둡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럼 오늘은 보물을 찾았네요.”
“어떤 보물이요?”
“우리가 같이 돌아갈 집이 있다는 거요.”
태오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조금 더 꽉 잡았다. 어쩌면 그 말이 금화의 실제 수량보다 오래 남을지도 몰랐다.
***
마침내 금속 문이 열렸다.
태오는 반짝이는 금화가 산처럼 쌓여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안쪽에는 봉인된 문서함 여러 개와 작은 공동 준비금 보관함이 있었다. 금화는 있었다. 다만 꿈처럼 끝없이 쌓여 있지는 않았다.
세 명의 독립 확인인은 현장에 있는 금화를 한 번씩 따로 세었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마법 계수석의 측정값과 대조했다. 각각의 수치가 일치할 때까지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최종 현물 목록에는 **96금화**가 적혔다. 보관실에는 별도로 봉함된 문서함들이 있었지만, 그 안의 계약별 원본과 권리 관계를 모두 열람한 것은 아니었다. 공동 준비금의 실제 현물 수량은 확인됐으나 누구에게 얼마를 지급할 수 있는지, 과거 어느 시점에 어떤 돈이 여기 들어왔는지는 추가 원부 검증이 필요했다.
“그럼 처음의 1,180금화는요?” 태오가 물었다.
세딘이 대답했다.
“그 숫자는 열한 세입자가 최초로 맡긴 계약 원금의 합계입니다. 지금 확인한 96금화는 이 보관실의 현물 수량이고요. 둘을 같은 숫자로 취급할 수 없습니다.”
“금고에 없는 나머지가 누군가에게 지급됐다는 뜻도 아니군요.”
“그렇습니다. 외부 결제 E-47/4는 실제 지급 증빙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항목의 재원과 사용 내역도 계약별로 조사해야 합니다.”
태오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금고를 열었다고 세상의 모든 숫자가 정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전설처럼 떠돌던 거대한 보물의 실물 수량 가운데 확인 가능한 부분이 생겼다. 한 번도 확인되지 않았던 것이 확인됐다는 의미는 컸다.
***
발카스는 96금화 앞에 서서 오래 말이 없었다. 이토록 적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오래된 금속의 빛이 자기를 비추는 게 싫었을까. 태오는 그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나는 저곳에 세입자들이 맡긴 돈이 전부 잠들어 있다고 믿고 싶었다.” 발카스가 말했다.
“왜요?”
“그러면 내가 갚지 못한 이유를 금고 하나에 돌릴 수 있으니까.”
태오는 드래곤을 바라봤다. 발카스는 처음으로 그 생각을 똑바로 말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금고는 제때 갚지 않은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안다. 네 돈도 결국 다른 재산으로 갚았지.”
“네. 그리고 아직 다른 분들 몫은 남아 있습니다.”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별도의 보전 자금도 마련했다. 지금 확인한 금화는 권리가 검증되기 전까지 누구의 몫이라고 선언하지 않겠다.”
그 말은 오늘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었다. 금고 안의 96금화가 드래곤의 것인지, 세입자들의 것인지, 공동 준비금으로 특정 용도에 묶인 것인지 아직 결론 내리지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개인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없었다.
세딘은 목록 작성과 재봉함이 끝났다고 발표했다. 문은 다시 닫혔다. 이번에는 무엇이 안에 들어 있는지의 일부가 공식 기록으로 남았다.
***
산길을 내려오며 태오는 리네아와 나란히 걸었다. 그들은 첫날의 동굴과 마지막 검증의 동굴이 같은 장소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허무하지 않아요?” 리네아가 물었다.
“조금은요. 금화가 산처럼 쌓여 있을 줄 알았던 적도 있으니까.”
“이제는 어떡할 거예요?”
“다른 사람들의 계약별 반환 문제는 전문기관과 본인들이 계속 처리하도록 자료를 넘겨야겠죠. 저는 기록방 일을 하고, 당신과 집으로 돌아가고요.”
“바로 그 대답을 기다렸어요.”
태오는 웃었다.
리네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럼 오늘은 어떤 소원을 빌어요?”
“드래곤이 앞으로는 새 계약서부터 읽는 거요.”
“그건 소원이 아니라 교육과정 같네요.”
“둘 다 필요할 겁니다.”
동굴 뒤에서 발카스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는 두 사람을 불러 세웠다.
“태오.”
“네?”
“처음 네게 준 47-B 비늘을 아직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습니다. 조회 요청 표식이죠.”
“그것도 이제 필요 없겠구나.”
태오는 잠시 생각했다.
“보존할 자료로 넘길 수는 있겠지만, 제 뜻 없이 누구에게 주지는 않겠습니다. 어떤 절차가 맞는지 확인하고요.”
발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네가 나보다 더 잘 아는구나.”
태오는 웃으며 리네아의 손을 잡았다. 금고의 마지막 문을 열었지만 그의 마지막 목적지는 동굴이 아니었다. 저녁 불빛이 켜지는 작은 집이었다.
제19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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