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퀸은 검은 산맥 아래쪽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은 놀랍도록 평범했다. 검은 담장도, 드래곤이 지키는 돌문도 없었다. 파란 지붕 아래에는 마른 허브 다발이 걸려 있었고 창턱에는 따뜻한 빵이 식고 있었다. 태오는 주소를 세 번 확인한 뒤 문을 두드렸다.
“왕실 기록을 찾으러 온 사람이라더니.”
문을 연 여인은 태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봤다. 단정한 옷차림의 노인이었다. 눈빛은 여전히 매서웠다.
“맞습니다. 다만 오늘은 허가된 면담만 요청드리러 왔습니다.”
“금고를 열어 달라는 말을 들으면 바로 돌려보낼 거요.”
“그 말씀은 오히려 안심이 됩니다.”
베라가 처음으로 웃었다.
면담에는 이벨과 세딘이 동석했고, 아델 마린은 읽기 보조 업무와 관련된 항목에 한해 참석했다. 태오는 참석자의 역할을 기록했다. 베라는 자기가 확인한 범위 외의 물건을 맡았다는 소문에 지쳤다고 했다. 여태껏 몇몇 사람은 그녀에게 47-C를 내놓으라며 찾아왔지만, 아무도 그 물건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고 했다.
“47-C라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많이 들었지. 누군가는 돈을 여는 열쇠라 했고, 누군가는 왕실의 전권이라고 했소. 하지만 내 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내가 가장 잘 알지.”
“당시 맡으셨던 업무는요?”
“도착하지 않은 통지의 목록을 남기고, 다음 근무자에게 넘기는 일. 사람이 편지를 못 받았으면 못 받았다고 적는 일이었소.”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베라의 일을 한 줄로 쓰면 그렇게 단순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가장 지키기 어려웠던 한 줄이기도 했다.
***
베라는 찬장 안에서 얇은 가죽 수첩 하나를 꺼냈다. 원본이라기보다 개인적으로 남긴 메모였다. 그녀는 허가된 부분만 열어 보였다. 날짜 옆에는 도착한 물품보다 미도착한 문서가 더 자세히 적혀 있었다.
“왜 도착하지 않은 것까지 기록하셨습니까?” 리네아가 물었다.
“도착한 건 어디에 놓였는지라도 찾을 수 있소. 도착하지 않은 것은 누가 기다렸는지조차 잊히기 쉽거든.”
그 말은 태오에게 오래 남았다. 일곱 해 전 소피는 자기 이름으로 보낸 통지를 실제로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 사실을 따지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다. 베라는 적어도 그 시절에 기계 수신과 사람 수령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수첩 뒤쪽에는 작은 도장 그림이 있었다. 타원형 안에 세 개의 작은 점이 있었다. 디아나가 북부 보존구역 기준판에서 본 일부 인영과 비슷했지만, 태오는 곧장 두 자료를 연결하지 않았다.
“그림의 뜻을 여쭤봐도 될까요?”
“근무자가 쓰던 확인 표시요. 실제 도장은 별도로 보관했고, 내 수첩은 개인 기억을 돕는 물건이지 공문이 아니오.”
“그 도장의 현재 소재는 아십니까?”
베라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내가 받은 것은 임시 당직자의 확인표식이었소. 일을 마칠 때 봉함해 다음 책임자에게 넘겼지. 그 뒤를 확인한 적은 없소.”
“47-C 원표식이었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소. 근무 중 쓰는 확인표식이라는 이름만 들었지. 왕실 기준물과 같은 것인지는 감정해야 할 일이오.”
베라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태오는 오히려 그 신중함을 믿고 싶었다. 베라가 스스로를 전설의 감시자로 만들려 했다면 훨씬 극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베라는 수첩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마을의 오래된 겨울 이야기를 꺼냈다. 일곱 해 전 산 아래 길에는 눈이 너무 많이 쌓여 우편 수레가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관측소의 신호는 정상적으로 내려왔지만, 사람을 태운 마차가 산길을 내려오지 못했다. 당시 일부 기록은 그 차이를 제대로 표시했고, 일부 요약은 다음 날에야 고쳐졌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근무대장에 모두 적지 않으셨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나도 내가 아는 것만 적었소. 모든 길을 직접 다닌 게 아니니까.”
베라는 웃었다. 자신이 모르던 일을 아는 체하지 않는 태도가 여전히 몸에 배어 있었다.
그녀가 당시 작성한 비공식 메모에는 하루 동안 대기했던 편지 세 묶음이 나왔다. 그 가운데 하나는 주소를 확인해야 했고, 하나는 운송인이 오지 않았으며, 나머지 하나는 봉인 손상 여부를 점검해야 했다. 베라는 각 묶음을 같은 ‘미도착’이라고 적지 않았다. 서류를 받을 예정이던 기관에 도착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당사자가 직접 받지 못했다는 사실도 따로 표시했다.
“이런 걸 다 적으려면 밤새 일이 많으셨겠습니다.” 리네아가 말했다.
“그랬지. 하지만 다음 근무자가 무엇을 이어받아야 할지 알 수 있었소.”
태오는 한동안 그 이야기를 들었다. 일곱 해 전 기록의 오류를 조사하는 동안 자신도 원본이 어디서 사라졌는지 추적했다. 그러나 ‘사라졌다’고 부른 것 가운데는 처음부터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없는 것이 있었을지 모른다. 기록이 없다는 사실도 여러 뜻을 가질 수 있었다.
“베라 씨는 그때 답답하지 않으셨어요?”
“많이. 내가 이름을 모르는 사람까지 대신 걱정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런데 왜 일을 계속하셨어요?”
베라가 태오를 바라봤다.
“언젠가 그 이름의 주인이 와서 왜 내 편지가 없느냐고 물을 때, 모른다고만 말하고 싶지 않았소.”
태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자신이 처음 드래곤에게 찾아갔던 날의 심정과 닮아 있었다. ‘왜 내 돈을 돌려주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아무런 근거 없이 기다리라는 대답만 들었으니까.
베라는 이어서 당시 감시 당직 인계 방식을 설명했다. 확인표식은 개인이 사적으로 가져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야간 당직을 마친 사람이 봉함 봉투에 넣고 상급 보관기관에 송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것이 왕실 기준판과 같은 계열인지 여부는 서식 검증이 필요하지만, 어느 쪽이든 그 확인표식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타인 금화를 처분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물건이면 왜 사람이 직접 들고 가지 않았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당직자는 다음 밤에도 일해야 했으니까. 업무와 물건의 보존 경로가 따로 있었소.”
태오는 그 말이 또 하나의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느꼈다. 표식을 맡았던 사람과 실제 보관한 기관이 다를 수 있었다. 지금까지 47-C를 소지한 사람만 찾으려 했던 일은 어쩌면 질문 자체가 좁았던 것이다.
베라는 갑자기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낡은 차 잎과 작은 은색 숟가락이 있었다.
“어렵게 찾아왔으니 차라도 마시고 가시오.”
리네아가 웃었다.
“조사가 길어지면 저희는 점심을 놓치기 쉽거든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자기 밥은 놓치면 안 되지.”
태오는 차를 받았다. 그는 베라가 세입자들의 일을 모두 해결해 줄 영웅이 아니란 사실이 오히려 좋았다. 그녀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겨울에는 추웠고, 어떤 서류는 끝내 손에 넣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차를 마시면서 베라는 오래전 상관이 했던 말을 기억해 냈다.
“종이에 도장을 찍는 사람은 그 종이가 목적지에 닿는지까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소.”
“누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정확한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 문장을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까지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과 원본을 분리하는 원칙은 이런 작은 대화에도 필요했다.
베라가 내준 허브차에는 쌉싸름한 향이 났다. 태오는 그 맛이 오래 남기를 바랐다. 무엇이 미도착인지 기록한 사람의 말에는 이상하게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났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를 잊지는 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마차를 타기 전 베라는 태오를 다시 불렀다. “이름을 잘못 적힌 사람들은 언젠가 화가 나서 찾아오지. 그때 설명할 수 있도록 자료를 남겨 두는 게 우리의 일일 거요.” 태오는 그녀에게 감사했다. 그 말은 어떤 인장보다 확실한 업무 규칙 같았다. 베라는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태오는 허브 향이 나는 골목을 지나며 자기 기록방에도 그런 설명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랐다.
***
면담 뒤 태오 일행은 마을의 작은 우체국으로 향했다. 옛 당직 인계서가 그곳의 후속 보존 상자와 연결된다는 공식 목록이 있었다. 건물은 두 칸짜리였고, 창구의 아주머니는 기록국 사람들이 몰려오자 놀란 얼굴로 종을 쳤다.
“오늘 편지를 보낼 분이 이렇게 많아요?”
“보내기보다는 오래전 전달한 기록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건 더 어려운 손님들이네요.”
창구 직원은 웃으며 상급 보관기관에 연락했다. 원본 인계서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 봉인번호와 이관일을 확인할 수 있는 조회 결과가 나왔다.
[임시 감시 당직 확인표식: 봉함 인계 요청.]
[후속 책임기관: 왕실 제6기록실 감시자료 접수함.]
[실물 인수 서명: 별도 원부 대조 대상.]
태오는 마지막 줄을 가리켰다.
“여기서도 인수 예정과 실제 인수를 나눠야 하는군요.”
이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베라 씨가 넘겼다는 기억과 후속 기관이 받았다는 공식 확인은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태오는 접수번호를 적고 봉투를 닫았다. 47-C 원표식의 최종 소재는 여전히 단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착하지 않은 문서들을 놓치지 않으려던 사람이 존재했고, 그녀가 넘긴 감시 업무의 흔적이 실제 보존 체계 안에 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
마을을 나서기 전 베라는 태오에게 작은 초대장을 내밀었다. 다음 주에 열리는 주민 문해 모임의 안내였다.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와서 사람들이 자기 이름으로 편지를 쓰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소. 늙은이들 중에도 문서를 무서워하는 이가 많거든.”
태오는 아델을 돌아봤다. 아델은 환하게 웃었다.
“제가 오래전부터 하고 싶던 일이에요.”
“저도 가능할 때 돕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면담은 서로 도움이 됐군. 내게는 누가 내 일을 제멋대로 설명하지 않는 일이 가장 중요하오.”
태오는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베라가 문을 닫은 뒤에도 허브 향이 골목에 오래 남았다.
***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발카스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오래전 ‘감시자의 봉인이 오지 않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찾았다고 했다. 당시 자산관리실의 주간 보고 요약이었다.
“원문을 읽어 보셨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이번에는 읽었다. 이렇게 쓰여 있더군. ‘미도착 통지 확인표가 감시 당직 교대 시점까지 도착하지 않음.’”
태오는 눈을 감았다.
“그걸 금고 처분권의 봉인이 도착하지 않았다고 이해하신 거군요.”
“그렇다.”
“처분권하고는 다른 업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겠지.”
발카스는 한숨을 쉬었다.
“내 재무관이 일부러 내게 틀리게 보고했을까?”
“그건 원문과 작성자의 설명을 더 살펴야 합니다. 요약 과정의 오류일 수도 있죠.”
드래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모든 사람의 실수를 음모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 책임이 적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태오는 대답을 천천히 골랐다.
“음모가 없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빈칸을 다른 사람의 악의로 채우면 발카스 님의 판단도 정확해지지 않을 겁니다.”
“알겠다.”
마법 통신이 끝났다. 태오는 곁에 있던 리네아에게 말했다.
“발카스 님이 오늘은 조금 더 늙어 보이네요.”
“아주 오래 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조금 더 사람 같기도 합니다.”
“그건 당신이 사람을 보는 눈을 바꾼 거예요.”
태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밤에는 새집에서 식탁을 정리했다. 리네아는 그날 독립 중개인으로 맡은 계약이 무사히 완료되었다고 말했다. 태오는 축하로 직접 국을 끓이겠다고 했지만 냄비 바닥을 조금 태웠다.
“드래곤한테서 배운 겁니까?” 리네아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불 조절은 아직 배워야겠습니다.”
“오늘 메뉴 이름은요?”
“북부 감시자의 검은 국입니다.”
“이름만으로 벌써 위험하네요.”
둘은 웃으며 다시 재료를 손질했다. 결국 훌륭하지는 않아도 따뜻한 저녁을 먹었다.
태오는 그날 베라의 말을 한 줄 적었다.
[도착하지 않은 것을 도착했다고 쓰지 않는 사람도 역사의 한가운데 있었다.]
그 문장은 47-C의 위치를 알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는 충분히 알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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