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집의 지붕에는 구멍이 두 개 있었다.
“한 개라더니 왜 두 개입니까?” 김태오가 물었다.
토른은 사다리 위에서 지붕 판을 두드렸다.
“첫 번째는 빗물 때문에 난 틈이고, 두 번째는 누가 첫 번째를 숨기려고 박은 못자국이지.”
“그건 더 나쁜 소식 아닌가요?”
“아직은 그렇지. 못자국이 얼마나 깊은지 확인해야 해.”
태오는 새 집주인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는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토른이 처음 계약 전에 발견한 결함이라는 설명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보수 비용의 부담 주체는 이미 계약에 적혀 있었다.
리네아가 웃으며 태오의 손등을 쳤다.
“당신 표정 좀 봐요. 이번에는 우리가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왜 이렇게 고집이 세요?”
“과거 경험에 따른 위험 관리입니다.”
토른이 사다리 위에서 소리쳤다.
“위험 관리면 사다리 밑에 서 있지 마! 물방울 떨어진다!”
태오는 황급히 물러났다. 정확히 그 순간 찬 물 한 방울이 코끝에 떨어졌다. 리네아가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
점검은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지붕의 보수 범위가 넓어져서였다. 집주인은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다시 확인했고, 토른은 수리 전후 사진과 점검 일정을 각각 적었다. 계약이 성립했다고 곧바로 안전한 입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오래된 집의 서재를 둘러보았다. 서쪽 창으로 오전 햇살이 들어왔다. 바닥에는 아직 짐을 놓을 수 없다는 작은 목판이 놓여 있었다. 그 위에 리네아가 손수 만든 푸른 커튼 견본을 걸어 놓자 방의 색이 달라졌다.
“이제야 집 같아요.” 그녀가 말했다.
“가구가 아무것도 없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채울 수 있잖아요.”
태오는 창가에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서는 토른의 망치 소리가 들렸고, 골목에서는 장사꾼이 사과를 파는 목소리가 울렸다. 아주 평범한 소음이었다. 오래전 발카스의 동굴을 떠나던 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평화였다.
“들어와 살게 되면 밤마다 서류를 가져오지 않기로 해요.” 리네아가 말했다.
“긴급한 업무도요?”
“긴급하면 서재에서만 하고, 침실에는 가져오지 않기.”
“좋은 제안입니다.”
“약속?”
“약속.”
태오는 그녀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을 걸었다. 계약서 없이도 지킬 수 있는 약속 하나가 늘었다.
***
오후 감찰실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이미 지붕에서 떨어진 먼지를 씻어 낸 뒤였다. 세딘은 그들의 늦은 이유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적인 일이 먼저일 때도 있습니다.”
“기록관님이 그런 말을 하시니 의외네요.” 태오가 말했다.
“저도 집에 갑니다. 가끔은요.”
디아나가 웃었다.
“그 가끔이 언제인지 알고 싶군요.”
왕실 임시 장부는 생각보다 얇았다. 제0호 관측소에서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는 자료의 원문과 자동 요약본을 대조하도록 별도로 만든 임시 관리표였다. 일반 공문과 달리 이 장부에는 문자 자체뿐 아니라 색인 생성 시각, 수정 시각, 보류 시각이 나뉘어 있었다.
“당시에도 시간을 이렇게 자세히 적었습니까?”
“왕실 문서 기계는 시각을 자동으로 찍습니다.” 세딘이 말했다. “하지만 산 위 기계가 붙인 시각과 평지에서 사람이 확인한 시각은 같은 기준이 아닐 수 있어요.”
태오는 관측소의 수정 시계 오류표를 꺼냈다. 어느 밤 특정 시간대에서 신호 기록이 지상보다 늦게 밀렸다는 추정치가 적혀 있었다. 추정치 자체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므로 그는 원본 시각과 보정 시각을 별도 열에 놓았다.
***
임시 장부의 세 번째 줄에서 디아나가 연필을 멈췄다.
[요약본 생성: 전송 확인.]
[원문 보류 사유: 최종 개인 교부 확인 미도착.]
[후대 열람 색인: 수신 완료.]
“세 단계가 모두 다른데 마지막 줄에서는 하나로 보이는군요.” 태오가 말했다.
“맞아요. 그러나 후대 색인을 작성한 사람이 어떤 원부를 실제로 봤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리네아는 세 문장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가 늘 업무용 계약서를 읽을 때 사용하는 또렷한 목소리였다.
“전송 확인. 교부 미도착. 수신 완료. 중간에 누군가 빨간 줄을 그었어야겠어요.”
태오는 웃었다.
“이제부터 계약서에도 빨간 줄을 많이 그으시겠군요.”
“당신은 제 첫 고객이었으면서 가장 시끄러운 고객이었어요.”
“첫 고객은 아니었습니다.”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네. 제가 지금 가장 좋아하는 고객이라는 건 사실이니까.”
태오는 얼굴을 붉혔다. 디아나가 고개를 돌렸다. 법률 문서 감정을 오래 했지만,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대화만큼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장면은 드물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
접수실 안쪽에서는 별도 보존청문이 열렸다. 한 담당자는 옛 색인을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담당자는 후대의 ‘수신 완료’라는 표현이 실제 사람의 수령처럼 읽혀 생긴 피해를 지적했다.
“색인은 길잡이여야 합니다.” 태오가 말했다. “판결문이 되면 안 되죠.”
한 사람이 물었다.
“그럼 불완전한 항목마다 경고문을 붙이자는 건가요?”
“항목마다 뜻을 명확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원문을 전부 보여 줄 수 없다면 어떤 단계에서 완료됐는지라도 알 수 있어야 하고요.”
마르셀은 태오의 발언이 참고 의견이라는 점을 회의록에 적었다. 민간 기록방 사장의 말이 왕실 지침을 즉시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그 제안을 실제 운용 가능한 방법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청문이 끝난 뒤 젊은 담당자가 따라 나왔다.
“처음에는 세입자들 때문에 번거로운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번거로운 일이 드러난 겁니다. 원래 있던 문제겠죠.”
“그렇군요.”
“그리고 모든 기록을 영원히 보관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지울 때 무엇을 지웠는지 알 수 있게 남기자는 거죠.”
직원은 자신의 수첩에 짧게 적었다.
***
기록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피와 마주쳤다. 그녀는 아이에게 새 신발을 신겨 주고 있었다. 구두끈은 자꾸 풀렸고 아이는 그때마다 몸을 비틀었다.
“다시 확인하러 가세요?” 소피가 물었다.
“오늘은 임시 장부를 봤습니다. 아직 누구의 과거 교부가 완료됐다고 결론 내리지 않았어요.”
“제 이야기도 거기 들어 있나요?”
“비식별 자료라 직접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소피 씨 계약과 연결되는지는 본인 자료로 별도 대조해야 합니다.”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 지난번에 편지를 직접 받고 나니까 오히려 질문이 많아졌어요.”
“그럴 수 있습니다.”
“과거에 편지를 못 받았다는 게 확정되면 그때는 제 계약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법률적으로는 이벨 씨와 검토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자료 미발견만으로 당장 어떤 지급 결정을 내릴 수는 없으니까요.”
소피는 미소 지었다.
“이제는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해 주는 게 더 좋네요.”
아이의 신발끈이 또 풀렸다. 태오는 무릎을 굽혀 묶어 주려고 했다가 소피에게 먼저 눈짓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심스럽게 매듭을 지었다.
“이건 오늘 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군요.”
아이가 웃었다.
***
저녁에는 발카스가 태오의 기록방을 방문했다. 드래곤은 예전처럼 보석 상자를 들고 오지 않았다. 대신 작은 묶음 하나를 책상에 놓았다. 옛 관측소와 연락하던 자산관리실의 공문 발송 목록이었다.
“내 부하들이 어떤 서류를 언제 보내려 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전달 여부까지 적혀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다. 발송 예정과 업무 담당자의 이름만 있다.”
“그럼 오늘은 그 범위를 확인하겠습니다.”
발카스가 투덜거렸다.
“내가 먼저 ‘예정’이라고 말했는데도 네가 또 말하는구나.”
“좋은 습관은 반복하면 더 좋아지니까요.”
“용을 훈육하는 인간은 네가 처음일 것이다.”
리네아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두 분 다 오늘 새집 지붕이 어떻게 됐는지는 안 물으시네요.”
발카스가 당황했다.
“무슨 지붕?”
“저희가 같이 살 집이요.”
“벌써 계약했느냐?”
“지난주에 했습니다.” 태오가 간신히 말을 바꿨다.
드래곤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 집주인은 누구냐?”
“사람입니다.”
“정말이냐?”
“등기와 출생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발카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네아는 웃다가 눈물이 맺혔다.
***
감찰실에서 나오기 전 세딘은 태오에게 원문 대조표의 작성 방식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오는 빈 서식 하나를 받아 들었다. ‘장비가 울린 시각’, ‘사람이 읽은 시각’, ‘상대방에게 넘긴 시각’이 모두 같은 칸에 들어가는 오래된 양식이었다.
“새로 만들 수 있다면 세 칸으로 나누겠습니다.”
“그만큼 작성자들의 일이 늘겠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오류를 되찾기 위해 쏟는 시간보다는 적을 수도 있어요. 물론 실제로 그런지는 업무량을 측정해야겠죠.”
세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새 서식의 시안에 임시 저장과 확정 저장을 구분하는 항목도 제안했다. 문서를 미리 검토한 직원과 최종 접수한 직원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개발자처럼 말하는군요.” 디아나가 웃었다.
태오는 잠깐 한국에서 일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복잡한 프로그램이든 왕실 장부든 입력값을 잘못 정의하면 뒤의 처리도 함께 틀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과 달리 사람의 삶에서는 저장을 다시 한다고 잃어버린 시간이 돌아오지 않았다.
“옛 기록의 뜻을 새 양식에 맞춰 바꾸는 건 피해야겠죠.”
“바로 그 점입니다.” 디아나가 말했다. “새 서식이 정확하더라도 과거 문서에 그 서식의 의미를 그대로 덮어쓸 수는 없어요.”
태오는 임시 시안의 윗부분에 굵게 적었다.
[현행 개선 제안 — 과거 문서의 법적 효력 판정 자료가 아님.]
직원들은 그 문구를 보고 조금 웃었다. 태오는 웃지 않았다. 문장 하나를 덜 써서 생긴 혼란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
밖으로 나오자 시장 골목에서 한 노파가 천막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바람이 세게 불어 천막 끝이 계속 들렸다. 토른에게 지붕을 배운 태오는 천막의 고정 부분이 어디인지 살펴보고, 노파에게 도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고정줄이 느슨해졌어요. 저쪽 매듭을 함께 묶어 볼까요?”
노파는 흔쾌히 허락했다. 태오는 줄을 당겼다가 손바닥이 조금 쓸렸다. 생각보다 거친 줄이었다. 리네아는 천막 안에 있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먼저 치웠다. 두 사람이 매듭을 묶고 나자 천막이 안정됐다.
“고맙네. 오늘 장사를 못 할 뻔했어.”
노파는 차 한 잔을 건넸다. 태오는 사양하다가 받아 들었다. 따뜻한 차에서는 약한 허브 향이 났다.
“젊은 부부인가?” 노파가 물었다.
태오와 리네아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아직은…” 태오가 입을 열자 리네아가 웃었다.
“같이 살 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럼 곧 부부가 되겠구먼.”
태오가 황급히 차를 마셨다. 뜨거운 차에 입천장이 놀랐다. 리네아는 그를 보고 더 크게 웃었다. 노파는 둘을 번갈아 보고는 이해했다는 듯 미소 지었다.
“같이 살면 꼭 큰일만 상의하는 줄 알지 마. 천막 줄 하나를 누가 묶을지도 상의해야 오래 간다네.”
태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집에서 설거지 이야기를 했던 날이 떠올랐다. 어려운 과거의 기록을 조사하는 일과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일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이 있어도 실제로 손을 뻗는 순간이 필요했다.
두 사람은 시장을 나와 한참 걸었다. 리네아가 조용히 말했다.
“아까 부부라는 말에 왜 그렇게 놀랐어요?”
“미리 정답을 준비하지 못해서요.”
“가끔은 준비하지 않은 답도 괜찮아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 말이 오늘 가장 어려운 문제의 정답처럼 들렸다.
***
그날 밤 마르셀에게서 소식이 왔다. 임시 장부의 제3행은 수신 완료 색인에 대한 이의가 실제로 등록됐음을 뒷받침하지만, 최종 정정 지시는 아직 찾지 못했다는 내용이었다.
태오는 날짜들을 다시 살폈다. 관측소 자동 기록이 뒤늦게 생성됐다는 사실과 감찰실의 이의 제기가 먼저 작성됐다는 가능성이 한 화면에 표시되어 있었다. 시계 보정치의 최소값과 최대값에 따라 순서가 달라졌다.
“누가 먼저 알았는지 아직 정하지 못하는군요.”
“그렇죠.” 리네아가 말했다. “그런데 몰랐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보다, 알면서 문제를 제기했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지도 몰라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정말 중개인 맞습니까? 가끔은 감찰실로 데려가야 할 것 같아요.”
“거절할게요. 저는 제 사무실이 좋아요.”
그녀는 장난스럽게 입을 맞췄다. 태오는 겨우 수첩을 덮었다.
마지막 장에는 내일 해야 할 일이 두 가지 적혀 있었다.
[임시 장부의 보류 뒤 실제 처리 지시 대조.]
[새집 지붕 수리 마감 확인.]
이번에는 두 번째 항목을 먼저 동그라미 쳤다.
제18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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