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집의 열쇠는 손바닥에 들어올 만큼 작았다. 김태오는 그것을 한참 내려다봤다. 드래곤의 금고를 열지 못하는 47-B 표식보다 훨씬 평범했고, 왕실 제0호 관측소의 일반 출입열쇠보다 가벼웠다. 그런데 이 물건 하나가 주는 기쁨은 다른 어떤 열쇠보다 컸다.
“오늘은 정말 우리 집 열쇠예요.” 리네아가 말했다.
“네. 둘 다 계약 당사자 이름이 들어갔고요.”
“첫날부터 또 계약서 이야기예요?”
“오늘은 그만하겠습니다.”
태오는 열쇠를 제 주머니에 넣었다. 입주는 지붕 수리 뒤 최종 확인이 완료된 날로 예정되어 있었다. 아직 그 집에서 자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고른 서재와 부엌, 창가의 작은 의자가 기다리는 것 같았다.
리네아가 태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당신이 전세금을 다 돌려받고도 이 일을 계속할 줄은 몰랐어요.”
“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멈춰도 돼요.”
“알고 있어요.”
그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기록을 따라가며 자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제 태오에게도 기록방의 고객과 함께 살 사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만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의 사건은 각자가 결정해야 하니까.”
“그 말을 듣고 싶었어요.”
***
왕실 긴급 보존 감찰실에 대한 문의는 제0호 관측소 자료와 별도 경로로 이루어졌다. 세딘은 공개 가능한 접수대장을 먼저 확인하자고 했다. 누구의 잘못을 확인하기보다 먼저 문서의 실제 도착 여부를 보는 절차였다.
“이 번호가 정말 그 부서의 것인지부터 보시죠.”
“문서가 실제 도착했다면 기록이 있겠군요.” 태오가 말했다.
“있을 가능성이 높죠. 하지만 대장에 없다고 아무 문서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증명은 아닙니다. 별도 긴급 처리부가 있었을 수 있으니까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되지 않은 빈칸을 무리하게 메우는 습관은 이제 많이 줄어들었다.
마르셀과 디아나도 합류했다. 그날 책상 위에 놓인 것은 세 종류의 표였다. 산 위 수신석 반응 대장, 지상 연락창구 재전달 기록, 왕실 긴급 보존 감찰실의 접수 색인이다. 각각 다른 기관이 다른 목적을 위해 만든 서류였다.
“날짜를 일치시키기 전에 각 장부의 시각 기준부터 보겠습니다.” 디아나가 말했다.
토른이 수정 시계의 오차표를 꺼냈다.
“이때 바람 때문에 산 위 시계가 멈췄던 구간이 있어. 지금까지 나온 기술자료 기준으로는 일부 항목에 보정을 붙여야 해.”
“그럼 먼저 보정 전과 후를 둘 다 남깁시다.” 태오가 말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자료를 비교하자 이전에는 서로 다른 밤으로 보이던 두 기록이 실제로는 같은 야간 교대에 가까웠을 가능성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한 기록에는 장비가 경고 신호를 수신했다고 적혀 있었고, 다른 기록에는 긴급 보존 의견서의 접수 대기 번호가 있었다.
두 기록이 같은 통지라는 결론은 아직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서로 떨어진 서고에 보관되어 발견되지 않았던 연결고리가 보였다.
***
감찰실 접수 색인의 오래된 판본을 펼치자 표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0호 관측소 통지 기록 처리 방식에 대한 이의 및 재대조 요청.]
“이의라고요?” 태오가 물었다.
세딘이 대답했다.
“누군가 기록 처리 방식을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누구의 의견이고 어떤 증거가 붙어 있는지는 원문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럼 당시에도 기계 수신을 개인 수령으로 처리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렇죠.”
디아나가 표제 옆의 작은 표식을 가리켰다. 원본 색인에는 접수 확인을 뜻하는 둥근 도장과 보완을 뜻하는 반달 모양이 따로 있었다. 후대의 전자식 색인에는 둘이 합쳐져 단순히 '처리 완료'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또 완료군요.” 태오가 말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원판본이 남아 있습니다.” 디아나가 답했다.
태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래된 오류가 반드시 고의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기록의 뜻을 바꾸는 과정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
정오에 발카스가 조정실로 들어왔다. 예전처럼 동굴의 주인이라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는 바렌이 준비한 개인 자산 임대수익 목록과 다른 세입자들의 분할 지급 계획 검토표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더는 금고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라고만 말하지 않겠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 씨는 일부 12금화, 헤스 씨는 일부 10금화를 실제 받았습니다. 로벤 씨는 어제 8금화를 받았고요.”
“그렇다. 나머지는 각자 계약에 따라 지급 가능한 재원을 검토하고 있다.”
“오늘 지급된 돈은 없습니까?”
“없다. 그래서 오늘은 계획표라고 부른다.”
그 말에 태오는 웃었다.
“정확합니다.”
발카스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네게 전세금이 남아 있지 않으니 나를 더는 미워할 이유도 없겠지.”
태오는 잠깐 생각했다.
“미워해야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다만 다른 분들께도 책임을 다하시는 건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발카스는 놀랍게도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바렌이 작게 숨을 삼켰다.
***
오후에는 소피와 헤스, 로벤이 각자의 별도 면담을 진행했다. 태오는 한꺼번에 모여 의견을 내는 일이 편할 수도 있지만, 이번만큼은 계약마다 다른 생활과 반환 내역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소피는 재통지 문서를 직접 받은 뒤 어떤 자료를 더 요구할지 결정했고, 헤스는 빵집의 굴뚝 수리와 점포 계약 갱신을 먼저 이야기했다. 로벤은 손에 쥔 여덟 금화 가운데 일부로 로지의 새 마구를 샀다는 영수증을 자랑했다.
“그 마구는 계약 사건과 무슨 관계인가요?” 마르셀이 웃으며 물었다.
“내 돈이 실제로 돌아왔다는 증거지.” 로벤이 말했다.
사람들이 웃었다. 그 말이 그저 농담은 아니었다. 금화가 실제로 사람에게 돌아갔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가장 정확히 보여 주는 풍경이었다.
***
해가 저물 무렵 디아나가 연락했다. 감찰실 접수 색인과 관측소 별지의 인계번호가 일치할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보존 자료가 나왔다는 것이다. 다만 마지막 한 자리의 잉크가 훼손되어 직접 동일 번호라고 확정할 수는 없었다.
태오는 기록국으로 돌아갔다. 세딘이 새로 공개된 자료를 가리켰다. 관측소에서 긴급 보존 감찰실로 보내려던 봉투에는 두 종류의 첨부가 있었다.
[자동 수신 반응 대조표.]
[현장 담당자 의견서.]
둘 중 하나는 기술자료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의 판단이었다. 어느 것도 세입자 개인의 서명이나 실지급 영수증이 아니었다.
“의견서는 공개됩니까?” 태오가 물었다.
“직접 관련된 인적 정보가 있어서 아직 비식별 범위를 조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문서가 어느 부서에 남아 있는지는 찾았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모든 걸 열어 볼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세딘은 다음 문장을 읽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 아주 다른 항목이 있습니다.”
[후속 접수: 제0호 관측소 자료 검증 책임자의 이의. 자동 수신란 기재 취소 요청.]
“취소 요청?”
“수신석의 반응 자체를 지우라는 뜻인지, 그것을 개인 수령 완료로 전사한 부분을 취소하라는 뜻인지는 아직 불명확합니다.”
태오는 그 차이를 곱씹었다. 반응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과 잘못 해석된 완료 기재를 고치는 것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래전 의문의 한 부분이 달라 보였다. 어떤 이는 편지가 잘못 전달됐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잘못된 완료 처리에서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애썼을 수도 있었다.
***
밤에 리네아가 태오를 기록방에서 데리러 왔다. 그녀는 그가 들고 있던 서류를 먼저 보지 않았다. 대신 창가의 작은 등불을 껐다.
“오늘 새 집에 놓을 커튼을 골랐어요.”
“무슨 색인데요?”
“아직 안 보여 줄래요.”
“왜요?”
“당신이 좀 궁금해하라고요.”
태오는 웃었다.
“그건 효과가 있군요.”
“제가 사는 집이니까, 가끔은 저한테도 비밀을 둘 권리가 있죠.”
“물론입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늦은 시장 골목을 걸었다. 이제 그의 장부엔 잔액이 0이라고 적힌 개인 보증금과, 누구의 몫도 함부로 대신 적을 수 없는 다른 사람들의 기록이 나란히 있었다.
***
감찰실 자료 검토 전에 소피와 로벤, 헤스는 파벨 기록방에서 짧은 설명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공동 조사에 참여할 수 있는 범위를 알고 싶어 했지만 누구도 자신의 계약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는 않았다.
태오는 큰 칠판에 세 가지 표제를 적었다. 공개 가능한 공통 기록, 개인 계약 관련 자료, 실제 지급 내역. 첫 번째 자료는 해당 기관이 공개하기로 결정한 범위에서 함께 대조할 수 있었고, 두 번째는 각 당사자의 선택과 필요한 허가에 따라 달랐다. 마지막은 계약별로 돈이 실제로 들어온 경우에만 적는 장부였다.
“그럼 우리는 같은 문서를 볼 수 있지만 똑같은 결론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군요.” 소피가 말했다.
“맞습니다. 현재까지 보존된 자료가 서로의 사건에 참고가 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각자의 계약이나 통지 경위를 각각 살펴야 합니다.”
헤스는 팔짱을 꼈다.
“내 빵집 문제와 소피 씨 집 문제가 다른 건 나도 알아. 그래도 발카스가 오래 기다리게 한 건 우리 모두에게 같지 않나?”
“그렇죠.” 태오가 말했다.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실제 반환 내역을 정산하는 건 구분해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로벤이 손을 들었다.
“나는 이번에 여덟 금화를 받았소. 그건 분명하게 적고 싶네. 다만 아직 돌려받지 못한 금액을 오늘 모두 밝힐 생각은 없네.”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소피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지난 재통지 이후 옛 서류 가운데 어떤 부분이 자신의 계약에 영향을 주었는지 질문하고 싶었다. 헤스는 빵집 계약 갱신과 화재 안전비용을 섞지 않겠다고 했다.
태오는 그들이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공동 사건을 조사한다는 말이 하나의 사람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
설명회가 끝나자 리네아가 작은 종이컵에 차를 따라 왔다. 그녀는 태오가 자기 말만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질문을 끝까지 듣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을 대신 이끄는 것보다 말할 자리를 마련해 주는 쪽이 더 잘 어울려요.”
태오는 컵을 받아 들었다.
“제 돈 문제에선 그렇게 못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당신도 두려웠으니까요.”
“지금도 두려운 일은 있어요.”
“뭔데요?”
“우리가 살 집에서 물이 새면 어쩌나 하는 것.”
리네아는 눈을 크게 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수리 점검서까지 받았잖아요.”
“그래도 실제 입주 후엔 모르는 일이 생기겠죠.”
“그땐 같이 고치면 돼요.”
태오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말은 어떤 계약서의 안전 보증보다 그를 안심시켰다. 물론 계약서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둘이 함께 고칠 수 있는 문제까지 혼자 미리 해결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
자정 가까이 세딘이 마지막 봉함 자료 목록을 보냈다. 이미 확인한 당직자의 의견서 외에, 감찰실의 별도 인수증 사본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수신 기관과 접수 예정 날짜가 보였다. 담당자 이름은 보호 처리되어 있었지만 직책은 읽을 수 있었다.
[긴급 보존 감찰실 인수 확인 담당: 임시 감사관.]
그런데 다음 줄의 날짜가 이상했다.
제0호 관측소의 재전달 유보 권고가 기록된 바로 다음 날. 발카스가 금고 처분 보류를 요청하기 전에 해당했다.
태오는 화면을 확대해 보았다. 이 말은 발카스보다 먼저 누군가가 문제를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실제 문서를 인수했는지, 후대의 완료 색인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몰랐다.
마지막 문장은 더욱 이상했다.
[인수 예정보류 사유: 외부 제3자 대리 통지 기재 여부 재검증 필요.]
후대의 기록에서 수없이 발견했던 '제3 대리 통지'라는 표현이 여기에도 나타났다. 두 문서의 작성 시기가 정확히 일치하는지는 더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잃어버린 표식만 찾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태오는 수첩을 폈다.
[47-C 실제 표식·소지자 여전히 미확정.]
[관측소는 기계 수신과 사람의 교부를 구별하라는 권고를 남김.]
[그 권고와 이어질 수 있는 감찰실 접수 색인 발견. 실물 인수·후속 처리 미확정.]
그리고 가장 마지막에 적었다.
[181화. 누구에게 경고를 보냈느냐보다, 누가 그 경고의 의미를 바꾸어 적었느냐를 확인하자.]
리네아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오늘은 여기까지예요.”
태오는 순순히 수첩을 덮었다.
“네. 집에 갑시다.”
그가 처음 드래곤의 집을 떠났던 날에는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막막했다. 지금은 아직 입주하지 않은 새 집의 열쇠가 그의 주머니에 있었다. 그리고 함께 그 집으로 갈 사람이 곁에 있었다.
제18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