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오는 서재가 있는 집의 창가에 서서 세 번째로 햇빛을 확인했다. 첫 번째는 아침 아홉 시, 두 번째는 오후 한 시, 지금은 해가 지기 전이었다. 리네아는 그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조금씩 달라지는 빛을 바라봤다.
“당신 정말 빛의 각도까지 다 보고 있어요?”
“겨울에 작업하다가 눈이 부시면 곤란하잖아요.”
“제가 볼 땐 당신보다 햇빛이 더 지쳤겠어요.”
“그건 무슨 뜻입니까?”
“세 번이나 검사를 받았으니까요.”
집주인은 웃었다. 토른이 지붕 수리를 마치고 점검서를 제출했고, 두 사람의 보증금 출자 비율과 계약 종료 시 반환 상대방을 개별적으로 명시한 수정 계약서도 준비되어 있었다. 리네아는 연인 당사자의 이해관계 신고를 끝낸 뒤 외부 독립 중개인의 검토를 받았다. 태오는 사업자금에서 쓸 돈과 개인 주거비를 분리해 마련했다.
이제 남은 건 서로가 정말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갈 마음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마지막 질문 하나만 하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리네아가 그를 바라봤다.
“저한테요?”
“네. 이 집으로 같이 오고 싶습니까?”
그녀는 잠깐 웃음을 거두었다. 한동안 검은 산맥 이야기가 두 사람의 대화 사이를 차지했다. 리네아는 태오가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그의 삶에 들어오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이 어떤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어떤 공간이 편한지 말하고 싶었다.
“네. 다만 제 중개 사무실은 그대로 운영할 거예요. 때로는 늦게 들어오고, 고객을 위해 따로 시간을 써야 할 거예요.”
“그럴 줄 압니다.”
“당신도 기록방을 계속 운영하겠죠?”
“네. 집으로 일이 넘어오면 서로 말해요.”
“좋아요. 그러면 여기서 살고 싶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요.”
리네아는 갑자기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같이 살아도 매일 이렇게 엄숙하게 질문할 거예요?”
“필요한 질문은 해야죠.”
“그럼 오늘 밤에 제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도 서명받으실 건가요?”
태오는 잠깐 대답을 고르다가 웃었다.
“그건 대답 대신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그녀가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창문 앞에서 잠시 입을 맞췄다. 집주인은 멀리 부엌에서 기침을 하는 척했다.
“이 집은 방음도 괜찮습니다.”
태오가 민망해서 고개를 숙이자 리네아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
***
계약은 그날 오후에 체결했다. 두 사람은 각각 계약서를 읽고 필요한 내용을 고쳤다. 보증금 출자와 반환 상대는 개인별로 기록됐고, 공동 관리비는 실제 사용 항목과 정산 시기를 분명히 했다. 입주일은 지붕 수리 후 최종 안전 확인이 완료된 날로 정했다.
집주인이 물었다.
“정말 이 정도로 자세히 적어야 합니까?”
태오가 웃었다.
“저는 전세금을 돌려받는 데 한 편의 모험을 겪었습니다.”
“그 정도였어요?”
“집주인이 드래곤이었거든요.”
집주인은 펜을 놓칠 뻔했다.
리네아가 태오의 등을 살짝 쳤다.
“처음 만나는 분을 놀라게 하면 어떻게 해요.”
“사실인데요.”
“사실을 언제 어떻게 말하는지도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방금은 타이밍이 좋지 않았네요.”
집주인은 한참 뒤에야 웃었다.
“제가 드래곤은 아닙니다만, 계약은 잘 지키겠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숙였다.
“저희도요.”
***
집 계약을 마치고 기록방에 돌아오니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달에 장부 정리를 맡긴 젊은 상인이었다. 그는 거래처의 물품 대금이 두 번 지급된 것처럼 보인다며 자료를 펼쳤다.
“여기 보세요. 같은 날짜에 '입고 완료'와 '정산 완료'가 적혀 있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로 쓰인 코드인지 먼저 확인합시다. 입고는 물건이 창고에 들어왔다는 뜻일 수 있고, 정산 완료는 청구서를 검토했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돈을 두 번 냈다는 증거는 아니군요.”
“아직은요. 거래처의 실제 입금영수증과 현금 장부를 대조해야겠죠.”
젊은 상인은 한숨을 쉬었다.
“사장님은 왜 어떤 질문을 해도 한 번에 답이 안 나옵니까?”
태오는 웃었다.
“제가 정답을 가질 수 있는 부분과 고객님이 확인해야 할 부분이 다른 경우가 많아서요.”
상인은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떠난 뒤 태오는 수수료를 사업 장부에 적었다. 보증금이 전액 돌아와도 기록방에 할 일은 많았다. 그리고 그 일은 더 이상 발카스와의 분쟁 하나에 기대지 않았다.
***
오후 늦게 마르셀에게서 소피의 재통지 접수에 관한 공식 확인이 왔다. 기록에는 오늘의 직접 교부가 정확한 날짜로 남았으며, 과거 교부 여부에 대한 이의는 계속 검토 대상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벤의 8금화, 헤스의 10금화, 소피의 12금화도 각각 별도 원금 일부 변제 기록으로 유지됐다.
태오는 자신의 사건기록 표를 정리하다 오래된 첫 장을 펼쳤다.
[원금 300금화. 집주인 발카스. 퇴거 후 7일 내 반환.]
그 한 문장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미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149화. 원금 300금화 전액 실수령 확인. 잔액 0.]
태오는 그 장을 덮었다. 자신이 이제 그 기록에서 빠져나와도 된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소피와 헤스, 로벤은 여전히 자기 몫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필요한 만큼 도울 수 있지만, 그들이 선택할 삶을 대신 살 수는 없었다.
***
저녁에는 발카스가 특별한 선물을 보냈다. 새 집에 둘 수 있는 작은 마법 등불이었다. 손잡이를 돌리면 은은한 빛이 켜지고, 지나치게 뜨거워지지 않게 만든 물건이었다.
“발카스 님이 보낸 게 맞아요?” 리네아가 물었다.
“그렇다고 합니다.”
“안에 계약서가 숨어 있진 않겠죠?”
태오는 상자를 살펴보다 작은 쪽지를 발견했다.
[이사 축하 선물. 채무 변제와 관계없음. 소유권은 수령인에게 이전.]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드래곤이 정말 달라졌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이제 선물에도 권리관계를 적으시니 무섭습니다.”
그녀는 등불을 켜 보았다. 작은 불빛이 새 집의 서재에 어울릴 것 같았다.
“이건 제 책상에 놓고 싶어요.”
“그렇게 하세요.”
“당신 책상은요?”
“햇빛이 잘 드는 쪽으로 할까 싶습니다.”
“세 번 확인한 그 자리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네아는 또 웃었다.
***
새 집 계약을 위한 마지막 준비는 생각보다 현실적이었다. 태오의 낡은 이삿짐은 기록방 창고에 쌓여 있었고, 리네아의 책과 옷은 중개 사무실의 뒷방에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두 사람은 토른이 만들어 준 커다란 나무 상자 네 개를 빌렸다.
“네 상자면 충분해요?” 태오가 물었다.
리네아는 태오가 기록방 서가를 가리키는 것을 보고 웃었다.
“당신은 종이만으로도 세 상자가 필요할걸요.”
“그건 기록방에 남길 자료입니다.”
“그럼 집에 옮길 종이는요?”
태오가 대답하지 못하자 그녀가 한쪽 눈썹을 올렸다.
“그렇죠. 당신은 종이와 함께 사는 사람이죠.”
둘은 개인 업무 자료와 집에서 보관할 사적인 물건을 나누기 시작했다. 태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기준을 적용하려 했다. 그러나 사진 한 장, 오래된 목도리 하나는 문서처럼 분류되지 않았다. 리네아가 여행에서 가져온 작은 조개껍데기를 집어 들었을 때도 그랬다.
“밀물항에서 주웠던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아직 가지고 계셨군요.”
“당신이 첫날 바닷물을 손으로 만져 보고 소금 농도를 궁금해하던 게 생각나서요.”
“그건 그냥 호기심이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귀여웠어요.”
태오는 웃었다. 어떤 물건은 소유권이나 장부상의 가격을 몰라도 소중했다. 조개껍데기는 그에게 아무 금전적인 가치가 없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여행한 날의 바람을 담고 있었다.
“이건 거실 선반에 놓읍시다.”
“좋아요.”
리네아가 조개를 상자에 넣었다. 너무 무겁지 않게 헝겊으로 감싸는 모습이 어쩐지 조심스러웠다.
***
짐을 정리하다 태오는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입었던 오래된 겉옷을 발견했다. 소매 한쪽은 찢어졌고 주머니 안쪽에는 작은 돌멩이가 들어 있었다. 검은 산맥으로 올라가다가 미끄러졌던 날 주머니에 들어간 돌이었다.
“이건 버릴 거예요?” 리네아가 물었다.
“그러려고 했는데 잠깐 고민되네요.”
“그때 이야기 해 줘요.”
태오는 겉옷을 무릎 위에 올렸다. 처음에 자신은 이 세계의 법도, 화폐 단위도, 용의 성격도 몰랐다. 살아남기 위해 숙소를 찾아야 했고 계약서에 서명했고, 어느 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이후 긴 시간 동안 발카스와 싸우고, 기록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기억만 있는 옷은 아닙니다.”
“그래도 당신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입었던 옷이네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찢어진 소매를 접어 상자 맨 아래 넣었다. 버리지 않더라도 매일 꺼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기억은 잘 보관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우리 집에 오래된 물건이 너무 많아지는 거 아닙니까?”
“그럼 새로운 추억도 많이 만들면 되죠.”
리네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당신과 함께한 첫 아침, 첫 다툼, 첫 화해, 첫 여행 같은 것들을요.”
“첫 다툼은 이미 했죠.”
“그럼 마지막 다툼은 언제일까요?”
태오는 잠깐 생각했다.
“그건 약속할 수 없지만, 다퉜을 때 말을 끊지 않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됐어요.”
***
이삿짐을 나르는 토른은 두 사람의 사정을 듣고 새 집의 문틀과 바닥 상태를 다시 확인해 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친구의 호의만으로 처리하지 않고 실제 점검 범위와 비용을 분명히 했다.
“너희 둘이 함께 살 거라면서 더 대충 해 줄 순 없지.”
“저희도 정확한 비용을 지급하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토른이 웃었다.
“너는 내가 공짜로 해 줄까 봐 무서워하는 사람 같다.”
“친구의 일이니까 더 존중하고 싶어서요.”
토른은 잠깐 말을 멈췄다가 그를 가볍게 쳤다.
“말은 좋게 하는군. 그럼 점검한 만큼만 받지.”
리네아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처음 발카스가 집주인이었던 시절에는 누구도 이렇게 서로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존중하지 못했다. 이제는 친구와 연인, 중개인과 기록방 사장, 장인과 의뢰인이 같은 식탁에 앉아도 서로의 경계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태오는 나무 상자에 마지막으로 작은 글씨를 적었다.
[서재. 함께 열어도 되는 물건.]
리네아가 그 글씨를 보더니 웃었다.
“그럼 절대 안 되는 상자도 있어요?”
“개인 물건은 서로 먼저 물어보기로 하죠.”
“좋아요. 당신의 오래된 연애편지가 나오면 꼭 먼저 물어볼게요.”
“그런 건 없습니다.”
“정말요?”
“당신에게 쓸 편지는 앞으로 많겠지만요.”
그녀는 고개를 숙여 웃음을 감췄다.
***
그날 밤 왕실 위탁실에서 새 열람 심사 결과가 도착했다. 야간 안전 중단 의견서의 별지는 이름과 주소 일부를 가리는 조건으로 공개 가능한 범위가 정해졌다. 원문 전체가 공개된 것은 아니었지만, 핵심 문장이 세 줄 들어 있었다.
[기능 표식 기준 대조 불일치 발생.]
[기계 수신 반응을 통지 완료로 대체 기재하지 말 것.]
[지상 연락창구 실물 인수 확인 전 일괄 색인 반영 보류 권고.]
태오는 손가락으로 그 줄을 따라 읽었다. 여기까지는 명백했다. 일곱 해 전에도 누군가가 잘못된 완료 처리를 경계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경고가 누구에게 전달됐고, 누가 후속 기록을 작성했는지는 여전히 미확정이었다.
그때 디아나가 보내온 사진 한 장이 더 도착했다. 별지 뒷면의 인계번호는 기존 마을 연락창구 번호와 달랐다. 그 번호는 발카스의 영지 관리실이 아니라 왕실의 다른 부서로 이어지는 것 같았다.
[긴급 보존 감찰실. 접수 대기.]
태오는 놀랐다. 연락창구에만 책임을 묻고 있던 추적 경로가 전혀 다른 쪽으로 뻗었다.
“뭔가 알았어요?” 리네아가 물었다.
“옛 경고가 산 아래에서 사라진 건 아닐 수도 있어요. 다른 부서로 옮겨졌을 수도 있죠.”
“오늘은 우리 집 계약한 날인데.”
태오는 곧바로 종이를 덮었다.
“맞아요. 내일 보겠습니다.”
리네아는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럼 새 집에서 살 때 우리가 지킬 첫 번째 규칙은?”
“긴급하지 않은 공문은 저녁에 덮는다.”
“아주 좋아요.”
그들은 작은 등불을 사이에 놓고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운 집은 아직 비어 있었지만, 둘은 이미 그곳에 놓일 웃음소리를 조금씩 만들고 있었다.
제17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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