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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75화
PAYLUA ORIGINAL · 제175화

175화. 용이 가진 적 없는 열쇠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79자

오프라인 책장
발카스가 스스로 회의에 나오겠다고 말한 순간, 조정실에 모인 사람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수백 해를 살아온 드래곤이 문서에 서명하는 모습은 이제 파벨에서 그리 드문 구경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온 물건은 달랐다. “이것이 예전 관측소 협조 연락용 열쇠다.” 드래곤의 손바닥 위에 길쭉한 검은 금속 조각이 놓였다. 한쪽 끝은 고리 모양이었고, 다른 끝에는 네 줄의 홈이 나 있었다. 태오가 고개를 숙였다. “47-C입니까?” “아니다.” 방 안에 웃음이 터졌다. 발카스는 언짢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이름도 모르는 물건을 중요한 증거라며 내밀겠느냐?” “예전엔 그러실 수도 있었죠.” 태오가 말했다. 바렌이 조용히 헛기침을 했다. 발카스는 그를 흘겨보다가 열쇠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이것은 제0호 관측소 아래 마을 연락창구의 일반 출입표식이다. 내가 가진 게 아니라 관리실에서 보관했던 물건을 이제 기록관에 맡기려 한다.” 세딘은 손을 대지 않고 목록부터 확인했다. 물건의 길이, 홈의 수, 손상 상태, 이전 보관처와 현재 제출자를 기록했다. “이 열쇠를 실제로 관측소에서 썼는지는 대조가 필요합니다.” “해라.” 발카스가 말했다. “그리고 이걸 맡기신다고 47-C 원표식을 발카스 님이 보유했다는 말도 되지 않습니다.” “알고 있다.” 태오는 장부에 오늘의 신기록을 적을 뻔했다. 드래곤이 반박하지 않은 횟수는 어쩌면 보증금 반환액만큼 중요할지도 몰랐다. *** 왕실 위탁실에서 회수 결과 별첨의 목록대조본 두 번째 장을 보내 왔다. 그곳에는 관측소의 송신석과 수신석 사이에 쓰던 예비 장비 표기가 있었다. [47-C 계열 기준 인영: 공익감시 통지 감시 기능표식 원형 참조.] [현장 회수대상: 대조판, 외부 확인판, 연락창구 일반 출입표식.] “여기엔 원본 표식을 회수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디아나가 대답했다. “수거 대상 목록에 원본이 없다고 해서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명도 아니지만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카스가 꺼낸 열쇠는 일반 연락창구의 출입표식일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꾸만 물건 하나를 모든 수수께끼의 열쇠로 생각했다. “그럼 이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까?” 발카스가 물었다. “있습니다. 연락창구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됐는지 확인하는 데 쓸 수 있습니다.” “금고는 못 여는데.” “금고를 여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드래곤은 한참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옛날의 나는 이 말을 참 싫어했지.” “지금도 좋아하진 않으시잖아요.” “하지만 맞는 말이라는 것은 알겠다.” *** 오전 후반에는 소피가 기록방으로 찾아왔다. 직접 재통지 날짜가 정해졌고, 실제 내용을 열람할 범위도 확정됐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한 장씩 펴 보았다. “제가 받으면 그걸로 옛날에 받았던 걸로 되는 건가요?” 이벨이 단호하게 답했다. “아닙니다. 지금 직접 받았다는 사실과 일곱 해 전 실제 받았는지의 문제는 구별합니다. 이번 재통지는 현재 필요한 정보를 당사자에게 전달하기 위한 절차예요.” “그럼 제 돈은요?” “발카스 측과 별도 변제 협의를 계속합니다. 이미 수령한 12금화만 현금 반환으로 확인됐습니다.” 소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번엔 제가 직접 읽고 모르는 걸 물어볼게요.” “원하시면 아델 씨에게 낭독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결정과 서명은 소피 씨의 것입니다.” 소피는 미소 지었다. 한때 누군가 자신 대신 받았다는 서류 때문에 고통받았던 그녀에게 이 구분은 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 점심 뒤 태오는 기록방에 걸린 낡은 지도 앞에 섰다. 검은 산맥에서 파벨까지 내려오는 길, 제0호 관측소와 왕실 연락소, 임시 보관 우편함, 동문 환전소가 각각 다른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선을 그린 탓에 종이가 구겨질 지경이었다. 토른이 지도를 보며 말했다. “이건 지도라기보다 거미줄이군.” “같은 선에 여러 뜻을 올리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선 색을 바꾸면 되잖아.” “정확히 그러려고요.” 태오는 송달 경로를 푸른색, 실물 문서 이동을 회색, 금화의 실제 지급을 붉은색으로 구분했다. 계정47에서 외부 결제로 이어진 선은 아직 점선이었다. 제0호 관측소에서 마을 연락소로 내려오는 선 역시 확인된 기간에만 실선으로 바꿨다. 토른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제대로 길이 보이는군.” “그렇죠. 무엇이 이어지지 않았는지도 보입니다.” 그때 리네아가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사무실은 바로 옆 골목이었다. 태오는 손을 흔들어 답했다. “그녀 쪽은 무슨 선으로 그릴 건가?” 토른이 물었다. 태오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지도에는 안 그립니다.” “왜?” “업무와 별도로 소중한 거라서요.” 토른은 껄껄 웃었다. “말은 그럴듯하게 하는군.” *** 오후에 브라운이 기록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태오와 따로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태오는 이벨이 함께 있는 공개 가능한 상담실에서만 대화하겠다고 답했다. “여전히 저를 의심하는군요.” 브라운이 말했다. “오늘은 당신이 어떤 자료를 제공할 수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브라운은 작은 표본집을 꺼냈다. 과거 세 고리 문서조합이 사용하던 일반적인 인영 복제판 도안 목록이었다. 그는 설비 양수 계약으로 이것의 일부를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복제판이 오래 돌면 같은 무늬의 인장이 여러 시기에 쓰일 수 있습니다.” 디아나가 끼어들었다. “도안이 비슷하다는 사실만으로 실제 원표식이나 사용자까지 일치한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말을 하러 왔습니다.” 브라운이 대답했다. 태오는 그를 바라봤다. 전에 자신에게 채권을 할인해서 팔라고 하던 사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다. “왜 알려 주시는 겁니까?” “옛 표식 하나 때문에 우리 회사까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까요. 오해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그 의도를 사실로 믿을지는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습니다.” “그러시죠.” 그는 표본집 원본을 넘기지 않고 공증 가능한 사본 대조에 동의했다. 태오는 그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 밤에 리네아가 태오의 기록방으로 찾아왔다. 그는 벽에 새로 색칠한 경로도를 보여 주었다. “이제 돈이랑 편지가 다른 색이에요.” “보기 편하네요. 그런데 제 사무실은 어디 있어요?” “이 지도엔 없어요.” 그녀가 눈을 가늘게 떴다. “왜요?” “제 인생에서 너무 중요한 곳이라 별도 지도에 있습니다.” “어디에요?” 태오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리네아는 잠깐 말을 잃더니 새빨개졌다. “당신, 요즘 이런 말 정말 쉽게 하죠?” “제일 어려운 상대에게 연습해서요.” “그 상대가 누군데요?” “저를 매일 놀리는 엘프 중개인이요.” 그녀는 웃으며 다가와 그의 두 손을 잡았다. 가까이서 보니 긴 속눈썹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럼 다음엔 제가 이겨 볼게요.” “어떻게요?” “새 집의 첫 번째 저녁은 제가 준비할 거예요.” 태오는 잠시 그 말을 곱씹었다. '새 집의 첫 저녁'이라니. 아직 계약도 안 했는데 그 말은 무척 구체적이었다. *** 브라운이 돌아가고 나자 태오는 옛 인장 도안을 복사한 종이와 실제 표식 비교 신청서를 다시 나란히 놓았다. 처음에는 검은 테두리만 비슷하면 모두 같은 물건처럼 보였다. 그러나 디아나가 표시한 점을 따라가다 보니 문양의 선 끝과 숫자 사이 간격이 달랐다. “이런 차이도 중요합니까?” “종이에 찍힌 인영을 구분할 때는 도움이 돼요. 다만 잉크가 마르며 퍼지거나 종이가 젖어 변형될 수도 있어요. 하나의 차이가 곧 다른 도장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렇군요. 같은 도장이라도 다른 사람 손에 있었을 수도 있고.” “맞아요. 인영을 분석하는 일과 그걸 들고 있었던 사람을 확인하는 일은 구별해야죠.” 태오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는 과거에 발카스가 준 47-B 표식을 꺼냈다. 표면에 새겨진 문양은 그가 수없이 들여다본 것이었다. 그때는 금고 열쇠인 줄 알았고, 어느 순간에는 모든 기록의 비밀을 푸는 물건인 줄 알았다. 지금은 단지 조회를 요청할 근거로 소지하는 표식임을 안다. “그러면 47-C와 같은 인영의 물건이 시장에서 발견돼도 바로 진품이라고 볼 수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법적 사용권은 또 다른 자료로 증명해야 하고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브라운이 가져온 도안집을 단순히 수상하다고 불러 버렸다면 오히려 여러 인영이 실제로 쓰였을 가능성조차 놓쳤을 것이다. *** 오후 늦게 기록방에 찾아온 또 다른 손님은 마구간을 운영하는 중년 여성이었다. 마구간 계약서가 오래돼 수선 책임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상담을 청했다. 태오는 로벤의 마차 관련 일을 떠올렸지만 당사자가 다르니 자료를 섞지 않았다. “지붕에서 비가 샙니다. 임대인은 제가 고치라고 하고, 저는 건물이 오래돼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임대 시작 당시 지붕 상태와 수리 조항을 볼 수 있을까요?” 그녀가 오래된 계약서를 펼쳤다. '통상 사용으로 발생한 소규모 유지'라는 조항과 '구조상 보수'라는 조항이 서로 다른 문단에 있었다. 태오는 특정 비용을 누구에게 부담시키라고 판정할 자격은 없었다. 그는 항목을 정리하고, 필요하면 토른처럼 독립된 구조 전문가의 의견을 받은 뒤 계약 상대방과 협의하자고 권했다. “그럼 오늘 당장 누구 잘못인지 답이 안 나오겠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실을 확인하면 되는지는 정리할 수 있어요.” 그녀는 처음에는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태오가 천장 상태를 찍어 온 그림과 계약서 조항을 나란히 적자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아, 이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겠네요.” 그녀는 수수료를 내고 돌아갔다. 태오는 장부의 맨 아래에 '기록 정리 수수료'라고 적었다. 그 돈은 드래곤이 갚은 보증금과 달랐다. 자신의 일이 사람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된다는 작은 증거였다. *** 저녁에는 리네아와 강변 식당에 갔다. 그녀는 새 집 후보의 서재에 창문을 가리는 두꺼운 커튼을 달자고 했다. 태오는 처음에는 낮에 기록을 볼 때 어둡지 않을까 걱정했다. 리네아가 웃었다. “커튼은 열 수도 있어요.” “그렇죠.” “당신은 가끔 닫힌 문을 보면 절대로 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이제는 문이 열리는 집을 같이 찾고 있잖아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리네아는 늘 그를 서류 밖으로 꺼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자신도 서류를 덮을 때를 배워 가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두 사람이 언제든 조용히 혼자 있을 공간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말했다. “좋아요. 같은 집에 산다고 모든 시간을 붙어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런데 오늘 저녁은 붙어 있고 싶습니다.” 리네아는 웃다가 그의 손등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오늘은 허락할게요.” 태오가 손을 맞잡았다. 언젠가 거대한 검은 드래곤이 아니라, 함께 사는 엘프가 가장 어려운 상대가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잃어버린 돈 때문이 아니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에서 생긴 것이었다. 디아나는 표본집 사본의 수령 시각과 작성 범위를 따로 기록했다. 브라운이 협조했다고 해서 그의 회사가 모든 과거 장부의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그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도 제공된 자료가 유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사람에 대한 평가와 오늘 받은 증거의 쓸모는 별개였다. 브라운은 별다른 반박 없이 접수 확인서만 챙겨 돌아갔다. *** 그날 위탁실의 세 번째 회신이 도착했다. 발카스가 제출한 일반 출입표식의 홈 모양이 연락창구 장비 목록에 실린 도안과 부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사용 이력은 대조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회수 대상 목록의 마지막 줄이었다. [기준 인영 대조판: 회수 여부 미보고. 현장 상태 별첨 참조.] 태오는 읽던 손을 멈췄다. 금속 열쇠가 어디 있었느냐는 질문이 대조판의 행방이라는 질문으로 바뀌었다. 원표식 47-C를 가진 자는 여전히 아무도 특정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누군가가 무엇을 찾지 못했는지는 분명해졌다. “이제 대조판부터 확인하자.” 그가 중얼거리자 리네아가 웃었다. “새 집 보기 전에는 안 돼요.” “네. 그 약속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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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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