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고산자료 위탁실은 검은 산맥 정상에 있지 않았다. 산 아래 고갯마을에 남은 옛 세관 건물을 개조한 곳이었다. 태오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여행용 등산화를 다시 신발장에 넣는 것이었다.
“산을 안 오르게 됐는데 왜 아쉬워 보여요?” 리네아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 얼굴이 그렇다고 하는데.”
“신발을 괜히 손질한 게 조금 억울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신을 일이 있잖아요. 같이 산책할 때.”
그녀의 말에 태오는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산길이 필요하지 않은 조사라면 안전했고, 안전한 조사는 환영할 일이었다.
고갯마을에 도착하니 바람이 낮게 울었다. 왕실 위탁실의 담장은 높지 않았지만 대문 앞에는 커다란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보존 문서 열람은 신청 범위에 한함. 현장 원본의 외부 반출 금지.]
토른이 장난스럽게 중얼거렸다.
“여긴 드래곤이 와도 얌전히 들어오겠군.”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그날 발카스는 함께 오지 않았다. 자신의 옛 관리실 자료가 조사에 섞여 있다는 이유로 조사기관의 판단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바렌이 권했고, 발카스가 뜻밖에도 그 충고를 받아들였다. 대신 필요한 지형도와 당시 통행 안전기록의 공개 가능한 범위를 제출했다.
보관담당자는 젊은 여성이었다. 이름은 나엘이었다. 그녀는 방문자들이 서류를 내밀자 인원 수가 아니라 허가받은 역할부터 확인했다.
“김태오 씨는 민간 기록정리 참고인, 세딘 씨는 왕실 기록관, 디아나 씨는 감정인. 토른 씨는 필요할 경우 안전설비 자문으로 제한 참석이군요.”
“맞습니다.”
“리네아 씨는요?”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독립 중개 일정이 있어서요.”
나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이 없다고 함께 입장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태오는 자신이 대신 변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리네아는 오늘 새 고객의 임대 조건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일이 자신과의 관계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
열람실 벽에는 낡은 산맥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 가운데 붉은 점 하나에 제0호 관측소라고 적혀 있었다. 붉은 점은 산꼭대기가 아니라 바람이 모이는 협곡 위 작은 돌출부에 놓여 있었다.
나엘이 설명했다.
“왕실은 한때 이곳에서 신호를 중계했습니다. 일반 우편과는 다른 방식이었죠.”
태오가 물었다.
“마법으로 보내는 편지였습니까?”
“어떤 신호는 그러했고, 어떤 신호는 단순한 빛과 소리였습니다. 관측소가 무엇을 쓰던 시기인지에 따라 달라요.”
디아나가 옆에서 거들었다.
“그리고 발신 장비가 있었다고 실제로 특정 날 신호를 송출했다는 뜻도 아니죠.”
태오는 웃었다.
“제가 묻기도 전에 답을 하시는군요.”
“이제 당신 질문의 방향은 알겠어요.”
나엘은 목록대조본의 복사 화면을 보여 주었다. 여기에 제0호 관측소의 장비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망원경과 날씨 관측용 장비, 길을 안내하는 경고등, 왕실 공익감시부의 공문 송수신 기록석이었다.
“47-C는 어느 장비와 관련됐습니까?”
“원본을 확인해야 답할 수 있습니다. 목록상으로는 '공익감시 계열 통지 관련 기준 자료'가 있다는 것뿐이에요.”
“그럼 신호 수신도 당사자가 직접 받았다는 뜻은 아니군요.”
“그렇죠. 산이 받아서 사람에게 전달해 준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토른이 킥 웃었다.
“산이 편지를 받았다면 등기부에 산 이름도 적어야 하나?”
태오는 고개를 저었다.
“산은 제 이름으로 계약서도 쓰지 못합니다.”
“발카스라면 억지로 시킬지도.”
“그러니 지금 여기엔 안 데리고 온 겁니다.”
그들은 작게 웃었다.
***
열람 화면의 다음 장에서 태오가 멈췄다. 제0호 관측소의 왕실 공익감시 장비 옆에는 두 단어가 붙어 있었다.
[송신구 폐쇄. 수신석 기능 보존.]
“아까 목록에는 송신구 폐쇄라고만 했는데, 여기서는 수신석이 남아 있다고 나옵니다.”
“행정목록에 있던 상세 설명입니다.” 나엘이 말했다. “다만 이 표현도 시설 점검일의 상태일 뿐입니다. 지금도 작동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디아나는 오래된 날짜를 확인했다. 그 날짜는 관측소가 완전히 폐쇄되기 몇 달 전이었다. 일곱 해 전 47-C 문의와 시기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그럼 그때에도 송신구가 닫혀 있었는지 확인하려면?” 태오가 물었다.
“해당 시기의 정비기록과 당직 일지를 대조해야 합니다.”
“그 일지가 회수 결과 별첨에 있을까요?”
“목록대조본에는 당직표 일부가 언급됩니다. 봉함 원자료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승인 전엔 확인할 수 없고요.”
태오는 수첩을 폈다. 관측소가 편지를 직접 배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당연했다. 그런데 후대의 누군가가 송수신 장치의 자동 응답을 '통지 수령'으로 읽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소피 계약을 둘러싼 집계 오독과 닮아 있었다. 그렇다고 그 두 사건이 같은 원인이라는 말은 아직 할 수 없었다.
그는 선을 그어 두었다.
[자동 신호의 접수/수신석 반응/담당자 확인/개별 당사자 교부. 서로 다른 단계.]
***
점심에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고갯마을 특산이라는 훈제 감자와 따뜻한 육수를 주문했는데, 토른은 감자를 두 개나 더 먹었다.
“너는 이제 돈도 다 받았는데 왜 이런 험한 조사에 따라다니나?”
“약속한 기록 정리 일이 있습니다.”
“그럼 수수료라도 제대로 받아야지.”
“공익기관 자료 조회는 제가 마음대로 파는 서비스가 아니에요. 별도 의뢰를 받으면 실제 작업시간만 계산합니다.”
토른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네가 너무 착해지면 드래곤이 다시 못되게 굴지도 모른다.”
“그때는 더 정확한 계약서를 내밀면 됩니다.”
“하하. 그 녀석한텐 그게 제일 무섭겠지.”
디아나는 그 대화를 듣고 미소 지었다.
“이 사건에서 가장 무서운 건 도깨비나 마법이 아닌 것 같아요.”
“뭡니까?”
“증거 없이 끝났다고 믿는 마음이죠.”
태오는 감자 하나를 반으로 쪼갰다. 그 말이 묵직하게 들렸다.
***
오후에 왕실 위탁실은 첫 봉함 원자료의 외부 봉인만 촬영해 보여 주었다. 봉인 표면에는 관측소의 시설번호와 문서 인계기관의 다른 표식이 겹쳐 있었다. 하나가 먼저 찍히고 다른 하나가 뒤에 찍혔는지 디아나가 감정해야 했다. 열람 허가는 내부 문서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태오가 물었다.
“봉함 상태가 양호합니까?”
“겉으로 확인되는 큰 파손은 없습니다. 내부 구성품의 완전성을 확인했다는 뜻은 아니에요.”
세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목록대조본에서 찾을 수 있는 사실을 다 확인해 보겠습니다.”
나엘은 새 서류를 건넸다. 원자료에 제삼자의 인적 정보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어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거나 별도 보호 처리를 거쳐야 한다는 안내였다.
태오는 서명하기 전에 내용을 끝까지 읽었다. 토른은 그것을 보고 턱을 괴었다.
“너는 드래곤을 만나러 갈 때도 이런 식이었나?”
“그때 이랬다면 훨씬 덜 힘들었겠죠.”
“그러니 지금이라도 배운 걸 써야지.”
태오는 웃었다. 배운 것은 모두 늦게 도착했지만 쓸 때는 아직 남아 있었다.
***
파벨로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리네아의 쪽지가 도착했다.
[오늘 상담은 잘 끝났어요. 저녁 식사는 제가 고를게요. 당신이 산에서 드래곤이랑 싸운 건 아니겠죠?]
태오는 답했다.
[산에는 안 올랐습니다. 마을의 위탁실에 다녀왔어요. 저녁은 당신이 고르세요.]
[그럼 아무 서류도 없는 식당으로요.]
[음식 값 영수증도요?]
[당신 장부를 잠시 압수하겠습니다.]
태오는 웃었다. 옆의 디아나가 물었다.
“좋은 소식인가요?”
“예. 오늘 저녁엔 아무 사건도 없는 식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가장 좋은 결과겠네요.”
***
위탁실을 떠나기 전에 나엘은 마을 역사관의 작은 전시실을 소개했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옛 관측소 설비 모형이 있다고 했다. 태오는 개인 정보가 섞인 원문보다 그 모형이 먼저 보고 싶었다.
역사관 안내원은 나이가 많은 남자였다. 그는 제0호 관측소가 문을 닫기 전 수리 장비를 운반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만 공개 자료로 말할 수 있고, 특정 문서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른다고 선을 그었다.
“예전엔 꼭대기의 등불이 켜지면 아래 연락소의 수정판에도 무늬가 떠올랐소. 그때 다들 소식을 받은 줄 알았지.”
태오가 물었다.
“수정판에 무늬가 보이면 누군가 내용을 읽었다는 뜻인가요?”
“아니지. 등불이 켜져 있는 걸 본 거지. 바람이 세면 당직자가 자리를 비우기도 했고, 렌즈에 얼음이 끼면 희미하게 보이기도 했소.”
안내원은 손바닥만 한 장난감 기계를 꺼냈다. 작은 지렛대를 누르면 두 판 중 하나에 푸른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다른 판의 글씨는 누군가 직접 뚜껑을 열어야 볼 수 있었다.
“이게 기술적으로 정확한 복제품입니까?” 디아나가 물었다.
“어린아이용이오. 원리를 설명하는 모형이지 원래 관측소 장비의 크기나 사용법을 증명하지는 못하오.”
디아나가 만족한 듯 미소 지었다. 명백한 한계가 있는 도구가 오히려 좋은 교육 자료가 될 때가 있었다.
태오는 모형을 직접 눌러 보았다. 왼쪽이 빛났지만 오른쪽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왜 안 켜집니까?”
“연결 줄이 빠져 있어서.”
안내원이 줄을 꽂자 오른쪽 판도 빛났다. 다시 줄을 빼니 왼쪽이 밝아도 오른쪽은 어두웠다. 태오는 단순한 차이를 한참 바라봤다.
“장비가 신호를 보냈다는 기록과 아래에서 반응했다는 기록이 따로 있어야겠네요.”
“그렇지. 그리고 그것을 실제 사람이 보았는지는 또 다른 이야기이고.”
그때 초등학생 몇 명이 전시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태오가 기계를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아저씨도 시험 보는 거예요?”
“응. 아주 어려운 시험이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잖아요.”
“버튼을 누른 것과 친구가 말을 들은 건 다를 수 있거든.”
아이 하나가 친구를 향해 소리쳤다.
“야, 들었어?”
친구는 일부러 귀를 막았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태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수백 년 된 기술의 문제를 설명하는 데 이렇게 쉬운 예가 있을 줄은 몰랐다.
나엘은 전시실 출구에서 말했다.
“옛날에 이곳에 일하던 사람들도 장비가 어떤 한계를 가진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당직자가 수신 내용을 다시 적도록 했던 거죠.”
“그 제도가 있었다는 건 알겠네요. 특정 날에 지켜졌는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맞습니다.”
태오는 나엘에게 감사했다. 역사관의 모형은 특정 사건의 증거가 아니지만, 무엇을 오해하면 안 되는지 이해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돌아가는 길에 작은 그림을 그렸다. 빛나는 수정판 두 개와 그 사이의 끊어진 줄. 그 아래에 덧붙였다.
[빛이 켜진 사실과 말이 닿은 사실은 다르다.]
로벤의 말 로지가 먼 길을 알고 있다고 해서 봉투의 수신인을 아는 게 아니듯, 관측소가 신호를 받았다는 이유로 세입자가 자기 권리와 관련된 통지를 알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날 역사관에서는 낡은 관측소와 관련된 사진을 여러 장 전시하고 있었다. 사진의 날짜가 읽히지 않는 부분은 안내문에서 분명히 미상이라고 표시해 두었다. 태오는 그 솔직한 한 단어가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모를 때는 모른다고 적는 것이 사진을 쓸모없게 만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 원본이 발견될 때 다시 대조할 여지를 남겼다.
***
저녁 직전 나엘에게서 마지막 사본이 도착했다. 관측소 폐쇄 점검표 끝에 낯선 항목이 하나 더 있었다.
[통지 중계 회수대장. 송신석-수신석 대응표 누락분 별도 보존.]
태오는 시선을 멈췄다. 그동안 그가 찾던 것은 47-C 표식이 누구 손에 있었는지였다. 그런데 이 표에는 사람보다 앞선 단계, 즉 어느 신호가 어디서 어떤 응답을 받았는지 확인할 방법이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여기부터 확인해야겠어요.”
그는 리네아에게 도착 시간이 늦지 않을 거라고 답장을 보냈다.
산의 관측소는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적어도 편지처럼 사람이 읽고 사인을 받는 방식으로 보내지는 않았다. 수신석이 깜빡였다면 그것은 전송 장치가 반응했다는 뜻이지, 소피나 로벤이나 다른 세입자들이 실제로 내용을 들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송신석 반응을 인간의 수령으로 번역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 번역이 언제부터 쓰였는가.]
제17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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