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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7화
PAYLUA ORIGINAL · 제17화

17화. 드래곤의 개인 합의 제안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149자

오프라인 책장
발카스가 다시 파벨시에 나타난 날, 비가 내렸다. 김태오는 상단회관의 작은 창문을 열고 젖은 거리를 바라봤다. 사람들은 검은 우산을 쓰고 뛰어갔다. 그 가운데 우산 없이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 짙은 코트, 금빛 장갑. 발카스였다. 비는 그의 몸에 닿기 직전 아주 얇은 막에 부딪혀 흩어졌다. 태오는 그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저 기술로 빨래를 말리면 돈을 벌겠는데요.” 옆에 있던 토른이 물었다. “뭐?” “아닙니다. 중요한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발카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회의실에는 태오와 리네아, 토른, 등록관 마르셀, 그리고 발카스 측 대리인 바렌이 모여 있었다. “인간. 네가 나를 또 불렀군.” “제가 부른 건 조정 회의입니다. 집주인께서 나오셨죠.” “네가 내 주택을 훼손했다고 보고받았다.” “그 일 때문에 기술자들이 점검했고, 즉시 퇴거 위험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태오는 기록을 내밀었다. 발카스는 문서를 받아 들었다. 종이는 그의 손에 들어가자 유난히 작아 보였다. “인간은 늘 종이 뒤에 숨는군.” “용은 늘 재산 뒤에 숨잖습니까.” 회의실 공기가 차갑게 굳었다. 태오는 자신도 모르게 말이 먼저 나간 걸 깨달았다. 리네아가 팔꿈치를 살짝 건드렸다. “태오 씨.” “죄송합니다. 기록에서 빼도 될까요?” 마르셀은 이미 적고 있었다. “발언은 양측 동의 없이 임의 삭제할 수 없습니다.” 태오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이세계 공무원은 드래곤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기록에 도움이 되지 않는 농담까지 모두 남긴다는 문제가 있었다. 발카스가 자리에 앉기 전, 태오는 동굴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고개를 들어도 몸통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지금은 사람 크기였지만 방 안에 들어서기만 해도 모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드래곤의 위엄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태오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꼭 화염이나 발톱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사람이 화를 내면 장사를 접어야 할 수도 있고, 집을 잃을 수도 있고, 가족이 다치는 상황까지 상상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르셀은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참석자의 발언권을 확인했다. “오늘 의제는 원상복구 청구 검토와 계정 봉인의 자료 제출 요구입니다. 보증금 반환 책임의 존재는 이전 회의록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발카스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도 인간들은 자신들이 나를 불러냈다고 생각하는군.” 마르셀은 대답했다. “회의 참석은 자발적으로 확인됐습니다. 원하시면 중도 퇴장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퇴장 사실도 기록합니다.” 태오는 작게 숨을 삼켰다. 마르셀은 정말로 무서운 사람이었다. 드래곤 앞에서 퇴장을 허용하면서도 기록을 남기겠다고 말하다니. 발카스는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네 이름이 마르셀이라고?” “그렇습니다.” “인간 중에도 오래 기억할 이름이 있군.” “감사합니다. 직무 기록에는 사적인 평을 남기지 않겠습니다.” 태오는 웃음을 참다가 어깨를 떨었다. 리네아가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지금 웃으면 안 돼요.” “압니다.” “그런데 웃고 있잖아요.” “웃음도 기록되나요?” “제가 적어 드릴까요?” 리네아가 속삭였다. 태오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회의가 시작되자 바렌은 시설 손상 청구가 정당한 안전 조치와 관련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토른은 반대했다. 손상을 점검하는 것과 지하 봉인 구조를 조사하는 것은 다르며, 보증금을 공제하려면 손상 원인과 수리 범위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발카스는 처음에는 관심 없다는 듯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나 토른이 고대 시설 도면의 붉은 선을 보여 주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 선을 누가 그렸지?” 바렌이 답했다. “관리사무소 기술팀이 작성했습니다.” “누구의 명령으로?” “안전 점검 계획에 따라…….” “계획서를 누가 승인했느냐고 물었다.”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태오는 시선을 바렌에게 돌렸다. 대리인은 서류를 뒤적였지만 바로 이름을 말하지 못했다. “추후 서면으로 확인하겠습니다.” 마르셀은 그 대답을 적었다. 발카스는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태오는 그 짧은 질문을 기억했다. 드래곤이 모든 계획을 알고 있었다면 승인자가 누구냐고 물을 이유가 적었다. 반대로 정말 몰랐다면 그의 관리사무소 안에서도 누군가 자체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어느 쪽도 아직 사실로 확정할 수 없었다. 태오는 회의록 여백에 '붉은 구역 계획 승인자 별도 확인'이라고 적었다. 그날따라 기록해야 할 것은 드래곤의 말보다 대리인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태오는 순간적으로 불편한 생각을 했다. 발카스가 이번 일에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게 밝혀지더라도 세입자가 받은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대리인이 누구의 권한으로 움직였는지 확인하는 것과 집주인이 계약을 이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 두 문제를 섞지 않겠다고 다짐하자 태오는 오히려 조금 침착해졌다. “정리하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원상복구 비용은 증거로 확인하고, 금고는 임의로 개방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보증금 잔액과 지급 지연 사유에 대한 질문에는 답해 주십시오.” 발카스는 잠깐 태오를 보았다. “너는 분명 내게 화가 났는데도 매번 질문을 정리하는군.” “화를 낸다고 금화가 생기지는 않으니까요.” “용이 분노하면 산 하나쯤은 생긴다.” “그럼 산을 팔아서 보증금을 주시면 안 됩니까?” 토른이 크게 기침했다. 리네아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마르셀의 펜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발카스는 처음으로 어이없다는 듯 태오를 바라봤다. “네놈은 내가 산맥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는군.” “저도 제 보증금을 아낍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 태오는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상대하는 존재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겁줄 수 있는 드래곤이었다. 하지만 돈을 아낀다는 지점에서는 뜻밖에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발카스는 처음부터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묘할 만큼 침착했다. “내 대리인이 청구한 원상복구 비용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더군.” 바렌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발카스 님, 그건 아직 조사 중인…….” “조사하라. 잘못되었다면 고쳐라.” 태오는 발카스를 바라봤다. 드래곤이 이렇게 쉽게 자기편의 청구를 재검토하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그 말씀도 기록해 주세요.” “이미 적었습니다.” 마르셀의 펜이 움직였다. 발카스가 짙은 눈동자로 태오를 바라봤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하겠다. 지하 시설을 건드리지 마라. 그 문을 억지로 여는 순간 네 돈보다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 “제가 열겠다고 했습니까? 오히려 승인 절차를 찾고 있습니다.” “그런 절차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선량하지 않을 수도 있지.” “절차가 나쁘다면 바꾸거나 다퉈야죠. 몰래 열지는 않겠습니다.” 발카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묘한 인간이군.” “그 말씀은 세 번째 들었습니다.” “내가 세었다면 그보다 많을 것이다.” 태오는 그 말에 잠깐 웃었다. 드래곤도 장부를 쓰나 보다. *** 회의가 끝나갈 무렵 발카스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남은 이백칠십 닢을 지급하는 방법을 마련할 수 있다.” 태오가 숨을 멈췄다. “언제요?” “네가 47-B를 반납하고, 계정에 대한 조사 요구를 철회한다면.” 태오는 시선을 내렸다. 일전에 대리인이 제안했던 개인 합의와 비슷했다. 단지 이번에는 드래곤이 직접 말했다. “제 보증금은 계약에 따라 돌려주셔야 합니다. 증표 반납이 왜 조건인가요?” “그 증표는 내 금고를 위태롭게 한다.” “집주인께서 관리권이 없다고 주장하는 계정을요?” 발카스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에 참견하지 마라.” 태오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모르는 권리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제가 그 증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문서로 설명해 주시면 검토하겠습니다.” “조건을 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 “제 물건이니까요. 적어도 어떤 권리가 있는지 확인할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렌이 끼어들었다. “증표는 원래 발카스 님의 소유였을 수 있습니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 발급한 사람이 누구였죠?” 바렌은 입을 닫았다. 발카스가 낮게 웃었다. “인간. 네가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나와 싸우는 명예인가?” “아뇨. 저는 지금도 돈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왜 거절하지?” “제가 가진 게 보증금 청구권 하나뿐이라고 확신할 수 없어서요.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돈에 대한 권리를 제가 넘겨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발카스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한 번 두드렸다. 찻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겁이 없군.” “겁이 납니다. 그래서 적법하게 하자는 겁니다.” *** 휴정 시간에 리네아가 태오를 복도로 데려갔다. “말을 조금만 조심하시면 안 돼요?” “나름 많이 조심했는데요.” “드래곤한테 재산 뒤에 숨는다고 했잖아요.” “그건 실수였습니다.” “실수치고는 발음이 또렷했어요.” 리네아는 그의 옷깃을 바로잡았다. 태오는 그녀의 손끝이 가까워지는 걸 느끼고 자세를 고쳐 섰다. “왜 그렇게 굳으세요?” “발카스 님 때문에요.” “여긴 복도인데요.” “벽이 얇잖아요.” “그럼 제가 가까이 오면 더 위험하겠네요.” 그녀가 조금 더 가까이 몸을 숙였다. 태오는 눈을 깜빡였다. 리네아는 웃더니 옷깃에서 작은 실밥을 떼어 냈다. “이거 때문이었어요.” “압니다.” “모르셨으면서.” “계약서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까?” “이건 계약서에 쓰면 재미없죠.” 태오는 대답하지 않았다. 발카스 앞에서는 의외로 말이 잘 나왔는데 이 엘프 앞에서는 한 문장이 끝나기도 전에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후회하게 됐다. 리네아가 조금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발카스 님이 모든 걸 감춘 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편이라고 볼 수도 없어요.” “알고 있습니다.” “저는 태오 씨가 살아서 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저도요.” “그리고…….” 그녀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요?” “아니에요. 먼저 돈부터 받으세요.” 태오는 그 말을 수첩에 적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이건 기록한다고 이해될 문장이 아니었다. *** 회의실로 돌아오자 마르셀이 발카스에게 자료 제출 요청서를 내밀었다. “임대인은 미환급 사실을 인정했고, 계정이 봉인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확인 가능한 자료, 적어도 봉인 통지 수령 기록과 관리권 관련 문서의 존재 여부를 답해 주셔야 합니다.” 발카스는 종이를 내려다봤다. “왕국의 봉인까지 내가 해명해야 하느냐?” “임대인이 반환 지연 사유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의 눈이 잠깐 가늘어졌다. “그 문서를 달라는 자들이 먼저 침묵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마르셀은 펜을 들었다. “협박으로 기록할까요, 의견으로 기록할까요?” 발카스는 아주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태오는 숨을 참았다. 바렌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드래곤은 웃었다. “의견이다. 인간의 공무원들은 무례하군.” “그 점은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마르셀이 말했다. *** 회의가 끝나자 발카스가 태오를 불러 세웠다. “네가 이기는 방법은 내가 지는 방법과 다를 수 있다.” “무슨 뜻입니까?” “계정 47은 내 재산만 들어 있는 곳이 아니다.” 태오는 고개를 들었다. “다른 세입자 원금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것보다 오래된 약속들이 있다.” “어떤 약속인데요?” 발카스는 대답 대신 회색 하늘을 바라봤다. “왕국은 자신이 남긴 빚을 잊는 데 능숙하다.” 그 말을 남기고 드래곤은 회의실을 떠났다. 태오는 한동안 서 있었다. 발카스가 왕국의 잘못을 암시했다고 해서 그 말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게 돈을 주겠다고 하면서 47-B를 가져가려는 이유는 더욱 궁금해졌다. 그날 밤 태오는 장부에 적었다. [임대인 발카스, 잔금 270금화 지급 가능성 언급. 조건: 47-B 반납 및 계정 조사 철회. 미수락.] 그리고 아래에 한 줄을 덧붙였다. [드래곤이 '오래된 약속' 언급. 구체적 내용 미확인.] 비가 그쳤다. 창밖의 골목이 젖은 돌처럼 반짝였다. 태오는 다가올 왕실 문서 회신이 이 수수께끼의 작은 틈 하나쯤은 열어 주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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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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