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시에서 가장 불편한 집은 김태오의 집이었다.
계단은 수리했지만, 계단 아래에 고대 금고가 있는 것 같다는 사실 때문에 조금만 삐걱거려도 심장이 철렁했다. 현관에서는 출처가 불명확한 편지가 도착했고, 창밖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집을 쳐다보는 일이 늘었다.
그런데 집주인은 고대 드래곤이었다.
“이 집에 더 필요한 게 있을까요?”
태오가 물었다.
토른이 공구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정상적인 집주인.”
“그건 시장에서 구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러니 내가 안전 점검이라도 제대로 해야지.”
발카스 측은 계단 하부와 지하 기초부의 특별 점검을 예고했다. 태오는 출입 자체를 막는 대신 범위와 입회 조건을 문서로 요구했다. 이틀 뒤 답장이 왔다.
[임차인 및 등록 기술자의 공동 입회 허용. 봉인 시설의 직접 개방은 별도 절차에 따름.]
토른은 그 문장을 읽고 만족스럽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이렇게 써 놓으면 적어도 오늘은 벽을 마음대로 깨지는 못하겠군.”
“그렇겠죠?”
“약속을 지킨다면.”
태오는 별도의 기록석을 준비했다. 리네아도 증인으로 왔다. 발카스 측 관리사무소에서는 회색 제복을 입은 기술자 둘과 서기 한 명이 도착했다.
맨 앞의 기술자는 자기 이름을 '켈'이라고 밝혔다.
“기초부 안전 점검을 시작하겠습니다.”
태오는 미리 적어 둔 출입 명단에 그의 이름을 써 넣었다.
켈은 종이를 쳐다봤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집을 검사하시는데 누가 들어왔는지는 알아야죠.”
“우린 일을 하러 왔습니다.”
“저도 집에 살려고 계약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리네아가 헛기침으로 웃음을 감췄다.
태오는 점검이 시작되기 전에 긴 탁자 하나를 현관 앞에 놓았다. 그 위에는 점검 동의서, 주택 평면도, 출입 기록부를 차례로 펼쳤다. 리네아가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집에 놀러 오려면 앞으로 계약서를 써야 할 것 같아요.”
“손님이라면 차부터 드리죠.”
“제 경우에는요?”
태오는 대답을 하려다가 멈췄다. 그녀는 슬쩍 웃었다.
“태오 씨, 정말로 이 질문은 어렵나 봐요.”
“손님보다 훨씬 중요한 분이죠.”
리네아가 눈을 깜빡였다.
“어머.”
태오는 급히 말을 이었다.
“증인으로서요. 중개인 자격도 있고.”
“아, 그렇군요. 계속 그렇게 설명해 봐요.”
태오는 탁자 위의 서류를 더 곧게 폈다. 방금 자기 손으로 불필요한 조항을 붙인 기분이었다.
토른이 계단 밑에서 고함쳤다.
“둘이 무슨 계약을 그렇게 오래 하느냐? 점검자가 오겠다!”
“지금 정리 중입니다!”
리네아는 웃으면서 펜을 건넸다.
“정리 잘하세요. 중요한 계약이니까.”
태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금고 관리권은 언젠가 문서로 확인할 수 있다. 이 엘프의 말뜻은 언제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는 점검 계획서에 최종 확인 사항을 적었다. 서쪽 벽을 파거나 금속봉을 깊이 꽂는 행위는 허용하지 않는다. 비파괴 측정은 입회자의 확인 아래 진행한다.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즉시 중지하고 기록한다. 문제가 생길 경우 현장 상태를 임의 변경하지 않는다.
“너무 까다로운가요?”
태오가 토른에게 물었다.
“안전 점검이라면 오히려 기본에 가깝지. 내 공방에서도 설비를 검사할 때는 손대기 전에 누가 책임질지 정한다.”
“드래곤 측이 거절하면요?”
“그럼 점검 범위를 다시 협의해야겠지. 무작정 막으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이유를 적어야 하고.”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위험하니 집을 비워라'라는 공문을 받는 것보다, 어떤 위험이 있는지 서로 확인하는 절차가 훨씬 나았다.
그는 창문 밖을 바라봤다. 비가 오려는 듯 하늘이 흐렸다. 지하 금고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알려지지 않은 것을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도, 드래곤이 관련됐으니 위험하다고 단정하는 것도 잘못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은 확인할 수 있는 것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
점검자들이 도착하기 조금 전, 태오는 토른에게 옛 설계의 구조를 다시 물었다.
“관리자의 승인과 원금 소유자의 확인이 따로 있다고 하셨죠?”
“그래. 하지만 오늘 그것을 증명하려고 장치를 움직이지는 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어요. 집이 여러 채라면 한 사람이 모든 보증금을 관리하나요?”
“공동 보관소라는 말이 그런 의미일 수 있지만 실제 규칙은 더 복잡했을 거야. 돈을 맡긴 사람마다 계약이 다르고, 보관 관리자도 시기마다 달라질 수 있거든.”
“그럼 제가 47-B를 갖고 있다고 해서 열한 세입자 중 대표가 되는 건 아니군요.”
“그렇지. 네 계약의 확인 증표일 수도 있고, 옛 관리인이 임시 발급한 열람용 표식일 수도 있어. 정확한 기록 없이는 몰라.”
리네아가 물었다.
“그런데 발카스 님은 왜 태오 씨에게 그걸 주셨을까요?”
토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 늙은 용에게 물어야지.”
“물어봤는데 말을 안 해요.”
태오가 대답했다.
“그럼 다시 물어. 다만 이번에는 47-B를 어떤 권한으로 발급했는지 구체적으로.”
태오는 메모했다. '왜 주었나'는 감정적인 질문이 될 수 있었지만 '발급 권한의 근거'는 문서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드래곤이 보증금보다 증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씩 질문을 구체화할수록 적어도 다음 회의에서 무엇을 요구할지는 분명해졌다.
태오는 탁자 위에 펜을 내려놓았다.
“좋습니다. 이제 점검을 받죠.”
토른이 말했다.
“기왕이면 내 보강재가 튼튼하다는 소견도 받아라.”
“그럼 수리비를 또 청구하진 않겠죠?”
“그건 드래곤의 회계사가 결정할 일이겠지.”
태오는 이 세계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드래곤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드래곤이 고용한 회계사가 더 무서울 수 있었다.
***
점검은 생각보다 평범하게 시작됐다. 기술자들은 계단을 두드리고 벽의 균열을 기록했다. 토른은 옆에서 자신이 설치한 지지대를 설명했다.
“이 균열은 오래된 목재의 수축 때문에 생긴 거요. 지금은 철제 보강재가 하중을 받도록 했고.”
“고대 봉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의 영향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켈이 물었다.
“그럴 가능성을 말하려면 측정값부터 보여 주시오.”
켈이 마력 측정기를 꺼냈다. 바늘은 안정된 구간에서 움직였다.
“현재는 위험 수치가 아니군요.”
“그렇소.”
“하지만 과거에는…….”
“과거를 말하려면 과거 기록이 필요하지.”
태오는 속으로 토른에게 박수를 쳤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무서워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오래된 목재를 더 무서워하는 드워프는 흔치 않았다.
점검팀은 서쪽 벽으로 이동했다. 바로 발카스 측 청구서의 붉은 선이 끝나는 곳이었다.
켈이 얇은 금속봉을 꺼내 벽에 가져갔다.
봉의 끝이 희미하게 빛났다.
“여기네요.”
토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무엇을 찾았소?”
“내부 마력 흐름이 다른 구간입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그래서 벽을 뜯겠다는 거요?”
“봉인의 구조를 확인해야 안전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태오가 곧바로 말했다.
“계약한 점검 범위에는 봉인 개방이 없습니다.”
“벽을 조금만…….”
“조금이면 얼마입니까?”
켈은 대답하지 않았다.
“벽돌 한 장입니까, 두 장입니까? 그 과정에서 봉인에 손상이 생기면 누가 책임집니까?”
서기가 준비한 공문을 내려다보았다.
켈은 마지못해 금속봉을 거뒀다.
“비파괴 측정으로만 진행하겠습니다.”
태오는 기록석에 그 말을 다시 남겼다.
***
점검이 끝나갈 무렵 뜻밖의 일이 생겼다. 토른이 설계도에 표시된 보강재 위치를 설명하려고 기록용 접촉판을 꺼냈는데, 태오의 가방 속 비늘이 아주 약하게 진동했다.
“잠깐.”
태오가 가방을 붙잡았다.
“뭐예요?”
리네아가 물었다.
“47-B가 반응합니다.”
켈의 눈이 커졌다.
“그 증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태오는 즉시 가방을 닫았다.
“가지고 있다는 건 조정 회의 기록에도 있습니다.”
켈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의 동료 기술자는 금속봉을 천천히 내렸다.
토른이 조용히 말했다.
“열어 보지 마. 네가 무엇을 누르는지도 모르는 장치를 움직이는 건 위험해.”
“압니다.”
그들은 기록석으로 진동이 일어난 시간과 위치만 남겼다. 봉인이나 비늘을 직접 연결하지 않았다. 안전 점검이 끝나자 켈은 특별한 구조 위험을 즉시 확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작성했다.
“추가 자료 검토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그대로 적어 주십시오.”
태오가 말했다.
켈은 서류에 문장을 덧붙였다. 토른은 자신의 별도 기술 의견을 함께 첨부했다.
점검팀이 떠난 뒤 리네아가 바닥에 털썩 앉았다.
“전 아까 벽을 부술 줄 알았어요.”
“저도요.”
“정말요? 태오 씨는 무척 침착했는데.”
“속으로는 이사 갈 집을 세 번 찾았습니다.”
리네아가 웃었다.
태오는 가방 속 비늘을 꺼내지 않은 채 바라보았다. 47-B는 이제 잠잠했다.
“왜 반응한 걸까요?”
토른이 말했다.
“접촉판의 인식 신호가 증표와 맞닿았을 수 있어. 다만 그게 금고를 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야. 수십 년 지난 시설은 이상 신호 하나로 오작동할 수도 있으니까.”
“그럼 어떻게 확인하죠?”
“옛 설계 기록을 더 봐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 정식 관리인의 동의가 있어야지.”
“그 관리인이 누군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네 집이 불편한 거다.”
***
토른은 오후 내내 할아버지의 설계도 사본을 살폈다. 리네아는 길드에서 합법적으로 열람할 수 있는 공고 목록을 정리했고, 태오는 점검 현장에서 발생한 일을 시간순으로 적었다.
어느 순간 토른이 손가락으로 도면 한쪽을 가리켰다.
“여기다.”
도면에는 작은 네모 셋이 이어져 있었다.
[접근 증표 확인 → 관리자 승인 → 수익권 증명.]
태오는 그 문장을 읽고 숨을 들이켰다.
“두 단계 추가 인증이라는 게 이 뜻이군요.”
“옛 설계 기준으로는 그렇다. 다만 그 뒤 변경됐는지 확인해야 해.”
“47-B는 첫 번째 단계고요?”
“적어도 접근을 요청하는 자격을 증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높지.”
“그럼 관리자 승인을 누가 해야 합니까?”
토른은 도면의 빈 칸을 가리켰다.
[현행 관리자 등록은 별도 관리권 원장에 따름.]
태오는 한숨을 쉬었다.
“원장에 기록이 없는데 원장에 따르라고요?”
“바로 그게 문제야.”
리네아는 옆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발카스 님이 관리자가 아니라면, 주택을 가진 사람과 보증금 계정을 관리하는 사람이 다르다는 뜻이네요?”
“가능성이 커.”
“그럼 발카스 님이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는요?”
태오가 대답했다.
“그건 계약 상대가 발카스인 이상 별도 문제죠. 관리권이 없다는 이유로 받은 돈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토른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금고의 손잡이를 잡을 권리와 빚을 갚을 의무를 섞으면 안 돼.”
***
밤이 되자 발카스 측 점검 결과 사본이 전달됐다.
[즉시 퇴거가 필요한 구조적 위험은 확인되지 않음.]
[지하 봉인 시설 접근은 추가 승인 절차 필요.]
태오는 그 두 줄을 보고 긴 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이번 점검을 이유로 당장 집에서 쫓겨날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뒤쪽에 첨부된 작은 종이가 문제였다.
[현장 기술자 켈의 별도 의견: 47-B 증표 보유자와 서쪽 기초부의 반응이 확인됨. 해당 사실을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에 통보 권고.]
태오는 토른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어디로 가는 겁니까?”
토른은 이름을 읽고 얼굴을 굳혔다.
“고대 시설 자산관리부라…… 파벨시 부서가 아니야.”
“그럼요?”
“왕실이 오래된 보관시설을 정리할 때 쓰던 이름일 거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오는 창밖을 보았다.
누군가 자신이 47-B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가는 중이었다. 그것이 불법이거나 당장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 문제는 돈을 돌려받는 것만이 아니었다.
어떤 기관이, 어떤 권한으로, 누구의 돈을 보관하고 있는지 밝히는 일이었다.
태오는 가방 속 비늘을 들여다봤다.
“넌 열쇠인지 민원 접수증인지 하나만 해라.”
비늘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오는 그 침묵이 조금 익숙해지고 있었다.
문제는 침묵이 답을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는 다시 책상에 앉아 점검 결과를 날짜별로 분류했다. 오늘 하루 자신이 막은 것은 금고의 무단 개방 가능성이었지, 금고의 비밀 자체가 아니었다.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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