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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69화
PAYLUA ORIGINAL · 제169화

169화. 인영은 열쇠가 아니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39자

오프라인 책장
왕실 인영 판독실은 온 세상의 도장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천장까지 솟은 선반에는 유리 상자가 놓여 있었고, 상자 안에는 오래된 밀랍 인영의 탁본이 수백 장씩 보관돼 있었다. 김태오는 선반을 보자마자 감탄했다. “여긴 드래곤이 금화 대신 도장을 모아 둔 동굴 같군요.” 판독실 관리관이 웃었다. “도장도 때로는 금화보다 중요한 분쟁의 증거가 됩니다. 다만 이곳에 있는 것은 주로 기준 인영과 제작번호입니다.” “실제 사용 권한을 증명하는 건 아니군요.” “정확합니다.” 이벨이 허가서를 제출하고, 세딘과 외부 감정인 디아나가 정해진 범위의 비교를 시작했다. 오늘은 원본 표식을 찾기보다, 일곱 해 전 감시부가 무슨 자료와 대조하려고 했는지 확인하는 날이었다. 대조 결과의 첫 부분은 예상과 달랐다. 신청서는 ‘표식의 현물 진위를 감정해 달라’는 요청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다. 대신 ‘기준 인영의 외형과 표식 번호 계열이 당시 등록된 판본과 같은지’를 문의하는 예비 절차였다. “그럼 실제 표식이 신청서에 첨부되었다는 말이 아닌 겁니까?” 태오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특정 현물을 제시했다는 표시가 없어요.” 디아나가 대답했다. “다만 당시 표식이 세상에 없었다는 뜻은 아니죠.” 디아나는 뒤쪽 서류를 펼쳤다. 접수 업무 책임 서기의 이름 칸에는 인장이 찍혀 있었지만 잉크가 일부 지워져 있었다. 서명 옆에는 ‘공익감시부 임시 인계반 대조 업무’라는 직책이 적혀 있었다. “개인 이름을 확인할 수 있습니까?” “일부는 읽을 수 있지만 확정하려면 인사기록과 공식 비교해야 합니다. 지금 공개된 허가 범위는 업무 발급 주체까지만입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할 재료를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 제4 보존대장에는 당시 사용하던 표식 관리 체계가 설명되어 있었다. 47-A는 보존 상태와 관련되고, 47-B는 조회 요청으로 연결되며, 47-C는 후속 집행 감시와 통지 확인에 사용되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여러 기록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다만 제4 보존대장에는 새로운 안전 장치가 있었다. [한 개의 표식 사용 기록만으로 개별 당사자에게 통지 완료가 성립하지 않는다.] 태오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이 규칙은 일곱 해 전에도 있었던 겁니까?” “해당 판본의 등록일은 당시보다 앞섭니다.” 관리관이 말했다. “다만 계정 47 개별 사건에 이 규칙이 어떻게 적용됐는지는 따로 대조해야 하죠.” “그래도 중요한 내용이네요.” “그렇습니다. 표식은 절차 관리 도구이지, 누군가의 의견을 대신 말하는 입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태오는 소피가 자신의 목소리로 진술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아무리 오래된 감시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가 사람 대신 대답할 수는 없었다. *** 낮에는 뜻밖의 방문객이 찾아왔다. 브라운 금고상회의 대표 브라운이었다. 그가 판독실에 들어왔을 때 태오는 경계심을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여기에는 무슨 일입니까?” “우리 회사가 인수한 옛 운송 설비의 서식 도안을 정식으로 대조하려고 왔습니다.” “그 도안이 47-C와 관련 있습니까?” “확인한 적 없습니다. 다른 고객의 설비 인수권 기록입니다.” 이벨은 양쪽의 열람 범위가 달라 서로의 자료를 보지 못하도록 안내했다. 브라운은 그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다. 둘은 복도에서 잠깐 마주쳤다. “당신은 아직 나를 의심합니까?” 브라운이 물었다. “그런 질문은 너무 넓습니다.” 태오가 답했다. “제가 알고 싶은 건 어떤 서식이 언제 어디로 갔는지예요. 회사의 자산을 인수했다고 과거 사람의 권리까지 인수한 것은 아닌지요.” “그 구분은 인정합니다.” “그럼 오늘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브라운은 잠시 그를 보다가 웃었다. “당신과 거래하면 서명하기까지 일주일은 걸리겠군.” “검증할 게 많으면 한 달도 걸릴 겁니다.” “장사하기 힘들겠소.” “그래도 망하지는 않으려고요.” 브라운이 돌아선 뒤 태오는 긴 숨을 쉬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싫어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계속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 한편 기록방에선 로벤이 새 의뢰를 맡겼다. 오래된 마차 수리비 영수증을 정리해 말 로지의 관리비 장부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태오는 서류의 날짜를 읽다가 마차가 몇 번이나 교체되었는지 알게 됐다. “로지는 나이가 꽤 많네요.” “그렇지. 나와 함께 많은 길을 달렸지.” “다렌 코르 씨도 기억하는 것 같던데요.” 로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맞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기억만으로 무슨 서류의 신원이 확정되는 건 아니네.” “네.” 로벤은 빙긋 웃었다. “자네 말을 너무 오래 들어서 나도 이제 그러는군.” 태오가 웃었다. 그는 로벤이 의뢰한 영수증만 정리하고 코르 관련 자료는 별도로 두었다. 자기 가게에 손님이 찾아왔다고 그 사람의 과거 전부를 들여다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 저녁에는 발카스가 판독실의 결과를 전해 들었다. 그는 표식의 기능을 확인하려는 요청이란 말을 듣고 조용히 생각했다. “그때 내가 가진 47-A 관련 서류도 그저 보존 상태를 말했을 뿐이지.” “네. 그 하나로 누군가의 돈을 지급했거나 권리를 넘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인간은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따로 기록하느냐?” “따로 있는 권리를 한데 묶지 않기 위해서죠.”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했다. “내가 예전에 금화를 쌓던 산을 떠올려 본다. 금화가 많으면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맡은 금화와 빌린 금화, 내가 번 금화는 달랐겠지.” “그래서 보증금도 늦게 돌려주셨고요.” 드래곤이 눈을 떴다. “그 말은 언제까지 할 것이냐?” “역사 기록으로 남길까 생각 중입니다.” 발카스는 웃음을 삼키지 못했다. *** 인영 판독실의 옆방에는 실제 표식과 비교하는 데 쓰는 빛 장치가 있었다. 수정등이 켜지면 아주 얇은 종이에 남은 눌림 자국도 벽에 크게 드러났다. 관리관은 허가된 시험용 탁본으로 원리를 설명했다. 태오는 벽에 펼쳐진 둥근 그림을 보고 감탄했다. “이렇게 하면 진짜와 가짜가 한 번에 구분됩니까?” “아니요. 같은 재료와 같은 모양을 가진 복제본이 있을 수도 있고, 오래 사용한 원본은 마모되어 다른 자국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비교할 수 있는 특징을 하나 더 찾는 장치입니다.” “그럼 제 손에 든 47-B도 이렇게 확인했어야 했나요?” “그 표식은 조회 요청 기능으로 별도 기록과 함께 확인됐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 감시·통지 계열의 다른 표식입니다.” 태오는 자기 비늘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누구의 물건이든 하나의 의미를 다른 기능까지 넓히면 안 됐다. 그는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무기를 쥐듯 그 비늘을 들고 다녔다. 지금은 필요한 문서를 요청할 때만 사용했다. 관리관은 과거 감시 표식이 손바닥만큼 크지 않았다는 설명도 했다. 실물에 붙은 줄과 인영이 별도로 관리돼야 했고, 장기간 보관할 때는 습도에 민감한 재료가 있었다. 태오는 그 자료가 보관소의 안전 계획과도 관련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관측소 같은 높은 곳에 보관했을 이유가 있을까요?” “가능성은 여러 가지입니다. 마법 간섭이 적은 위치였을 수도 있고, 단지 당시 기관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죠. 개별 표식이 실제 그곳에 있었다는 확인은 아직 없어요.” 그 말에 태오는 웃었다. 대체 어디를 가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있었을 수도 있다’와 ‘있었다’의 차이였다. *** 점심에는 왕실 인영 보관관들이 사용하는 작은 식당에 초대받았다. 식당은 자료실과 달리 소란스러웠다. 서기들은 수리비와 휴가 이야기로 바빴고, 젊은 견습생은 오래된 도장 하나를 잘못 다뤄 꾸중을 들었다며 울상이었다. “혼났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네. 잉크를 많이 발라서 시험용 탁본을 망쳤어요.” “원본은 안전합니까?” “네. 원본은 만지지도 않았어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왜 혼났는지 확인하고 다시 만들면 되겠군요.” 견습생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봤다. “망쳤으니까 혼난 거죠.”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시험을 하는 이유는 원본을 다루기 전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관리관이 옆에서 웃었다. “맞아요. 그래도 시험용 탁본에는 비싼 재료가 들어가거든요.” “그럼 재료비와 작업 실수를 분리해 적어 두시면 됩니다.” 태오의 대답에 식당 전체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어디서든 장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귀끝까지 붉어졌다. *** 그날 오후에는 다렌 코르의 옛 수령증에 대한 감정 진행 상황도 제한적으로 전달됐다. 디아나는 코르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옛 필기구와 현행 필기 비교자료를 살펴본 결과를 설명했다. 오래된 서명의 일부 획이 코르의 기억과 부합할 가능성은 있었지만, 부상으로 인한 필압 변화와 다른 사람이 대필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럼 아직 본인이 썼다고는 못하는군요.” 태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반드시 다른 사람이 썼다고도 말할 수 없어요.” 코르는 자신의 비교자료가 어떻게 사용됐는지 설명을 들었다. 그는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말에 잠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쯤 내 이름이 내 것이었는지 알 수 있겠소?” 아델이 옆에서 말했다. “그 문서의 진위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지금 여기 계신 분의 이름은 분명하잖아요.” 코르는 한참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기록을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 조사하겠소. 하지만 그때까지 지금 내 삶을 멈추지는 않겠소.” 태오는 그의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어느새 코르도 자기 이름의 과거와 현재를 따로 놓고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저녁에 리네아의 중개 사무실에는 집을 구하는 고객이 더러 찾아왔다. 태오는 차를 배달하러 갔다가 벽에 걸린 새 지도를 보았다. 가까운 주택가와 학교, 시장, 정류장이 표시되어 있었다. 마침 고객은 일터에서 가까운 곳을 원했고, 리네아는 숫자가 아닌 생활의 편의를 먼저 물었다. “아침에 얼마나 걸어야 하나요?” “십오 분 정도요. 아이가 있으니 큰길을 건너지 않는 곳이면 좋겠어요.” “그럼 임대료가 조금 낮은 집보다 통학길이 안전한 집을 먼저 보실 수도 있겠네요.” 태오는 옆에서 말을 보태지 않았다. 자기 기록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리네아가 결국 좋은 중개인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켜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과정에는 길드 경고와 지속적인 감독도 포함되어 있었다. 잘못했던 사실을 지우지 않고 더 나은 방식을 배우는 일이었다. 둘은 퇴근 뒤 천천히 걸었다. 리네아는 왕실 판독실이 어땠는지 물었고 태오는 천장까지 쌓인 도장 탁본을 설명했다. “그걸 다 보려면 평생 걸리겠네요.” “그래도 필요한 한 장만 보면 됩니다.” “그럼 우리 집을 찾을 때도 필요한 한 집만 보면 되겠어요.” 태오가 웃었다. “아닙니다. 비교는 최소 세 곳은 해 봐야죠.” “또 기록방 사장님이 나오셨네요.” 그녀는 그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태오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무리 깊은 미스터리가 남아 있어도 둘의 다음 집은 실제로 사람이 살아갈 곳이어야 했다. *** 늦은 밤 세딘의 마지막 대조 기록이 들어왔다. 일곱 해 전 신청에 관한 회신은 ‘조건부 대조 가능’과 ‘기준 인영 보존 위치 안내’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기준 인영 자체는 왕실 판독실에 남아 있었지만, 실제 47-C 표식의 당시 보관 위치는 그 결과문에서 확인되지 않았다. “그럼 원본은 못 찾았네요.” 리네아가 말했다. “네. 대신 찾는 방법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건 알았습니다.”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원본 대조 가능 여부 문의: 발급 부서 확인. 기준 인영 대조 허용. 실제 표식 현물 제출·소지인 미확인.] 그런데 마지막 장의 아주 작은 추가 항목에 눈이 갔다. [감시 원표식 현물 소재 문의의 별도 발송번호 존재. 발송 목적지: 검은 산맥 관리 관측소.] 태오는 펜을 내려놓았다. 검은 산맥. 그가 보증금 때문에 처음 올라갔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굴 문을 부수거나 금화를 달라고 소리칠 일이 아니었다. 그곳으로 무엇이 보내졌는지 확인하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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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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