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스의 빵집에는 그날 아침 세 가지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갓 구운 호밀빵, 오래된 화덕의 장작, 그리고 낯선 사람의 향수 냄새였다. 향수의 주인은 바렌이었다.
발카스의 대리인은 커다란 가죽 가방을 들고 좁은 가게에 앉아 있었다. 제빵용 밀가루가 묻지 않도록 가방을 무릎 위에 올린 모습이 마치 밀가루를 두려워하는 기사처럼 보였다.
“빵을 드시겠소?” 헤스가 물었다.
“감사하지만 오늘은 회계 확인이 먼저입니다.”
“이 빵도 회계로 먹고사는 사람이 만든 거요. 돈 받고 파는 거니까.”
헤스는 빵 하나를 접시에 올렸다. 바렌은 난처하게 웃으며 작은 은화를 건넸다. 태오가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그 광경을 보았다.
“바렌 씨, 드래곤 님의 회계대리인이 빵을 개인 비용으로 사시다니요.”
“공무와 식사는 구분해야 합니다.”
“훌륭합니다. 오늘 배울 건 다 배웠네요.”
바렌은 서류를 꺼냈다. 그의 얼굴은 늘 그렇듯 신중했다. 발카스가 소유권을 확인받은 남쪽 관개수로 인근 저장 창고의 지난달 사용료에서 유지비와 공동지분 정산분을 제외한 금액을 검증했다. 그중 10금화를 헤스의 옛 주거 보증금 원금 일부로 지급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체 원금에서 얼마가 남는지는 계약별 지급기록을 더 대조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십 금화만 일부 지급으로 처리합니다.”
헤스는 잠시 서류를 내려다봤다.
“조건은?”
“이 금액의 실제 수령을 확인하는 영수증을 작성합니다. 나머지 청구를 포기한다는 조항은 없습니다. 점포 갱신과도 별개입니다.”
“그러면 내가 돈을 받은 뒤에도 집주인에게 다른 돈을 달라고 할 수 있단 말이지?”
“확인된 원금 잔액과 계약상 권리가 있다면 그렇습니다.”
헤스는 태오를 바라봤다. 태오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대신 서명할 수는 없었다.
“그럼 내가 직접 세겠소.”
바렌은 동전을 내놓았다. 마르셀이 입회하고 헤스가 열 번 손가락을 접었다. 금화 한 닢을 거듭 세지 않도록 그는 동전을 밀가루 포대 위에 한 줄로 놓았다. 마지막 닢을 확인한 뒤 손으로 동전들을 쓸어 모았다.
“받았소. 빵 굽는 사람도 셈은 할 줄 알지.”
영수증에는 헤스의 계약 식별번호만 적혔다. 가게 매출이나 점포 임대 주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로써 헤스에게 실제 10금화가 지급되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11명의 전체 미환급액이나 계정47의 금고 잔액은 여전히 별도의 문제였다.
***
태오는 그 돈이 헤스에게 어떤 의미인지 나중에야 알았다. 노인은 새 화덕의 굴뚝 연결관을 바꿀 비용을 마련하고 싶어 했다. 빵집 점포의 임대차 갱신은 리네아가 독립적으로 검토 중이었고, 10금화를 받아 곧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이걸로 새 굴뚝을 살 수 있겠소?”
토른이 부품 견본을 보며 대답했다.
“기본 재료는 가능할 것 같지만, 건물 구조 변경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먼저 확인해야 해요. 허가가 필요한 일인지도요.”
“또 계약이오?” 헤스가 신음했다.
태오가 말했다.
“돈을 받았으니 쓸 곳도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래. 그게 기쁘긴 하지.”
헤스는 잠시 금화를 보다가 금속 상자에 넣었다. 상자를 닫는 손이 떨렸다. 태오는 노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 순간을 누가 대신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
오후에 발카스가 가게를 찾아왔다. 인간 모습으로 변해 있었지만 문턱을 넘자마자 굴뚝을 올려다보는 습관은 그대로였다.
“내가 불을 조금만 뿜으면 화덕이 더 잘 달아오르지 않겠느냐?”
“빵이 아니라 가게가 구워질 거요.” 헤스가 대답했다.
“내 불은 조절할 수 있다.”
“그럼 내 손으로 구운 빵을 맛보시오. 내 불을 믿는 게 낫지.”
발카스는 반박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헤스가 내민 작은 빵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고대 드래곤의 얼굴에서 놀랍게도 진지한 감탄이 떠올랐다.
“작은 불로도 이런 것을 만드는군.”
“작은 불을 오래 지켜야 되는 법이오.”
두 노인이 서로를 바라봤다. 한쪽은 수천 년 산 드래곤이고, 다른 쪽은 시장에서 평생 빵을 굽던 사람이었다. 태오는 그들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발카스 님, 지급 확인도 하셨죠?”
“바렌에게 들었다. 열 닢.”
“그리고 태오 씨 돈은요?” 헤스가 물었다.
“그 인간의 돈은 이미 전부 줬다.”
“잘했소.”
드래곤은 기묘한 얼굴로 헤스를 바라봤다. 칭찬을 받으러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
제6서고의 이관 준비는 그날도 계속됐다. 세딘은 태오에게 전날 발견된 인영도보 절차의 확인 결과를 알려 왔다. ‘원본 분실 시 비교 금지’라는 문구는 실제 분실 사실이 아니라 분실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 적용하는 일반 규정이었다. 47-C 원본이 분실되었다는 신고는 현재 확인된 목록에 없었다.
“그럼 잃어버린 건 아니군요?” 태오가 물었다.
“그렇게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분실 신고가 없다는 사실은 지금 찾은 자료의 범위에서만 말할 수 있어요.”
태오가 머리를 긁었다.
“제가 배워야 할 문장이 더 남아 있습니까?”
“얼마든지요.”
기록을 함부로 결론 내리지 않는 태도가 장점인 것은 알지만, 때로는 그 정확함이 얄밉기도 했다.
세딘은 대신 좋은 소식을 전했다. 왕실은 C-47-예비를 다른 봉함자료와 섞지 않고 독립 이동 목록으로 보존하기로 했다. 실물 보관함을 옮기는 승인과 그 안의 자료를 열람하는 승인은 명확히 분리되었다.
“이건 실제 결정이군요.” 태오가 말했다.
“네. 승인문도 나왔습니다.”
그는 비로소 수첩의 한 줄에 ‘완료’라고 적을 수 있었다. 봉함자료를 읽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전하게 옮길 권한과 책임자가 정해진 것은 분명했다.
***
저녁에 태오는 리네아와 빵집 앞 벤치에 앉았다. 헤스가 건넨 작은 호밀빵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었다. 리네아는 먼저 빵을 반으로 갈랐다.
“오늘은 좋은 날이네요.”
“돈을 직접 받으셨으니까요.”
“그리고 발카스 님이 화덕을 태우지 않았으니까요.”
“그건 정말 큰 성과입니다.”
리네아가 웃었다. 그녀는 빵 부스러기를 털고 태오의 팔에 기댔다.
“우리 나중에 집을 구하면 작은 오븐을 놓을까요?”
“태우지 않는 종류로요.”
“드래곤 님한테 요리 배우지 말자는 뜻이군요.”
“제 생각엔 헤스 씨가 훨씬 안전한 선생님입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을 가르쳐 줄 거예요?”
“장부 쓰는 법이요.”
“신혼집에서 장부 수업이라니.”
태오가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신혼집이라고 하셨습니까?”
리네아는 시치미를 뗐다.
“제가요? 그냥 집이라고 했는데요?”
태오의 귀가 붉어졌다. 리네아는 그 모습을 즐기다가 손을 꼭 잡았다.
***
헤스에게 금화를 지급하기 전날 바렌은 뜻밖의 곳에서 한 차례 더 검증을 받았다. 발카스의 남부 저장 창고 임대수익 중 일부가 세금 정산 전 금액으로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바렌은 지급 재원이 안전하다고 말하기 전에 공동지분자의 몫과 창고 유지비, 지난달 사용료의 실제 입금 여부를 각각 확인해야 했다.
“돈이 금고에 찍혀 있다고 현금이 있는 건 아니군요.” 태오가 말했다.
“네. 이번엔 발카스 님도 그 차이를 알고 계십니다.”
바렌은 은행 보관증과 실제 인출 가능 금액을 가리켰다. 지급 예정인 10금화는 계정47이 아닌 개인 수익에서 마련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지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받았다. 다만 해당 수익의 출처와 세금 공제를 검증한 문서가 완성돼야 실제로 지급할 수 있었다.
“그럼 헤스 씨에게 오늘 지급한다고 알리지는 않겠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바로 그 말입니다.” 바렌이 답했다.
한편 발카스는 재무실에서 자꾸 늦어지는 지급을 못마땅해했다.
“십 금화 정도는 내 동굴의 금화 더미에서 꺼내면 되지 않느냐?”
“그 금화 더미는 일부 보물의 소유권·질권 관계가 따로 확인되어야 합니다.” 바렌이 설명했다.
“고대 드래곤이 자기 보물을 마음대로 꺼내지도 못하는가?”
“소유권을 확인받은 금화는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금화가 그 대상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재산의 크기만 보고 약속하시면 안 됩니다.”
발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잠시 뒤 그는 창밖의 구름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이 나보다 오래 사는 것 같군. 기다리는 일에는 정말 능하니까.”
바렌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발카스 님께서는 일곱 해 동안 왕실 회신의 부속을 펼치지 않으셨습니다.”
그 순간 태오는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가장 용감한 회계 담당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발카스는 결국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이번에는 읽겠다.”
***
빵집의 오후는 지급 여부와 무관하게 바빴다. 굴뚝이 낡았다고 빵을 굽지 않을 수 없었다. 헤스는 밀가루를 쏟아 부으며 제자에게 반죽의 온도를 확인하라고 했다. 제자는 젊었고, 언젠가 자기 가게를 갖고 싶어 했다.
“선생님, 가게 계약이 안 되면 다른 곳으로 가야 합니까?”
“아직 모른다. 내일 답을 들어 보기 전까지는.”
“그럼 새 화덕을 사는 건 미루는 게 좋겠네요.”
헤스는 제자를 바라봤다. 청년의 말이 맞았다. 당장 장비를 바꾸는 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갈 자리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는 반죽을 내려놓고 한참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리네아가 찾아와 갱신계약 수정 요구를 설명했다. 점포를 내놓을 의사가 없는 임대인과 계속 영업하고 싶은 임차인 사이에는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건물 전체의 굴뚝 구조를 바꾸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명하는 것은 위험했다.
“그럼 그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먼저 전문가에게 확인해야겠군.” 헤스가 말했다.
“네. 토른 장인님의 견적과 건물주가 서면으로 인정한 책임 범위를 대조해 보세요.”
헤스는 오래된 점포를 둘러봤다. 빵 굽는 냄새가 스며든 천장과 긁힌 작업대가 보였다. 이곳은 그저 임대차 목적물이 아니었다. 젊은 날부터 세월을 보낸 자리였다.
“그렇다고 계약서를 감정으로만 쓸 수는 없지.”
리네아가 미소 지었다.
“그 감정을 지키려고 계약서를 제대로 쓰는 거예요.”
헤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몇 년 전이었다면 중개인이 그런 말을 하는 게 생소했을 것이다. 지금은 자신에게 필요한 도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
실제 10금화가 지급된 뒤 태오는 발카스의 보고서에 자신의 기록방 이름이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곧바로 바렌에게 물었다.
“제가 지급 과정에서 무슨 공식 역할을 했다고 적혀 있습니까?”
“당사자 설명 자료의 목차와 서류 정리를 맡았다는 뜻입니다.”
“그럼 '지급 확인인'이라는 단어는 빼 주세요. 저는 마르셀의 입회 업무를 대신하지 않았습니다.”
바렌은 즉시 문구를 고쳤다. 태오는 자신의 이름이 과거의 그릇된 신청서처럼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싶었다. 이름 하나가 사람의 권리를 대신 만들거나 없애지는 않지만, 잘못 놓이면 오해를 부를 수 있었다.
발카스는 서명을 고치라는 요구를 듣고 기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는 돈을 받기 전에도 장부를 고치더니 받은 뒤에도 고치는구나.”
“오류가 있으면 고쳐야죠.”
“그럼 너를 내 고문으로 삼으면?”
“정식 의뢰서를 주셔야 합니다.”
“아니, 그냥 친구로서 말한 건데.”
태오는 잠시 웃었다.
“친구로서라면 좋은 빵집을 추천해 드리죠.”
발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헤스의 빵이 좋더군.”
***
밤에 바렌은 지급 보고서를 공식 제출했다. 헤스에게 금화 10닢의 실제 수령 확인이 있었다는 문장과, 다른 세입자들에게는 아직 별도 지급 결정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나란히 적혔다. 태오의 완납 상태도 부속표에 분명히 표시됐다.
그날 세딘은 C-47-예비 이관 대장의 마지막 빈칸에 도착한 자료를 확인했다.
[기준 인영 대조 신청: 발급 기관 확인. 원본 대조 결과문은 이관 대상에서 제외.]
태오는 그 글을 읽었다. 원본 대조 결과문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제외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결과가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제외 목록을 찾으면 되겠군요.”
“목록부터요.” 세딘이 답했다.
태오는 웃었다. 세상에는 돈이 실제로 움직이는 날도 있고, 서류의 빈칸이 또 한 칸 늘어나는 날도 있었다. 오늘은 둘 다였다.
제16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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