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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61화
PAYLUA ORIGINAL · 제161화

161화. 표식의 이름과 상자의 이름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259자

오프라인 책장
파벨의 아침은 드래곤이 아니라 수리공의 망치 소리로 시작됐다. 왕실 제6서고의 낡은 지붕에서 떨어진 회반죽 때문에 출입문에는 줄이 쳐져 있었다. 김태오는 그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이 이 사건의 필수 참석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관함 C-47-예비를 옮기는 일에 필요한 사람은 보존 담당자, 운송 책임자, 봉인 확인자였다. 금화 삼백 닢을 전부 돌려받은 전직 세입자이자 현직 기록방 사장은 그 명단에 없었다. “이런 자리에 초대받지 못해서 섭섭합니까?” 이르마 솔이 그를 보며 물었다. “정반대입니다. 드디어 제가 오지 않아도 돌아가는 제도가 있군요.” “기록방 사장님이 대조표 양식을 정리해 주셨으니까요.” “양식 비용은 받았습니다. 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입니다.” 이르마가 웃었다. 태오는 오늘 기록방에 맡겨진 상인 셋의 장부를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다만 전날 세딘에게 공식으로 신청해 둔 사항은 있었다. 봉함자료의 내용이 아니라 ‘47-C 원본 표식 대조 신청이 언제 어느 기관을 거쳐 접수됐는가’라는 절차 정보였다. 타인의 주소나 소유권을 보지 않아도 확인 가능한 범위였다. 세딘은 수리 현장 옆 간이 책상에 세 장의 사본을 펼쳐 놓았다. 첫 장에는 일곱 해 전의 발송번호가, 둘째 장에는 보존실의 접수번호가, 셋째 장에는 뒤늦게 작성된 이관 작업 표지가 있었다. 세 장은 비슷한 기호를 공유했으나 같은 문서는 아니었다. “여기 보세요. C-47-예비는 보관함의 분류명입니다.” “47-C는 감시·통지 기능에 관한 표식이고요.” “맞습니다. 그리고 원본 대조 신청은 그 표식의 진위를 비교해 달라는 요청입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 연관될 가능성은 있지만, 이름이 비슷하다고 동일한 물건은 아닙니다.” 태오는 표에 각각 다른 색을 입혔다. “그럼 지금 확인된 건 신청 흔적뿐이네요.” “정확합니다. 신청서를 누가 보냈는지도 발급 부서 명칭만 일부 남아 있습니다. 신청을 받아들였다는 승인란과 대조 결과란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때 낡은 책장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토른이 빛이 없는 곳에서 몸을 일으키며 욕설을 삼켰다. “계단이 내려앉은 건 아니야. 내가 만든 시험 지지대를 옮기다 벽을 쳤지.” “시험 지지대도 보증기간이 있습니까?” 태오가 물었다. “넌 숨 쉴 때도 계약서를 쓰냐?” “산소 제공자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토른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곧 진지하게 진동 측정석의 눈금을 확인했다. 밀랍 봉인이 오래되면 작은 흔들림에도 균열이 생길 수 있었다. 이동 중 파손이 일어나면 그 날짜와 손상 범위를 남겨야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새 밀랍을 덧바르면 안 됐다. 보관함의 위치를 바꾸기 위한 결정은 오후까지 미뤄졌다. 이르마는 왕실 시설부에 먼저 계단 보강 승인을 요청했고, 발카스 측의 자발적 보전비 지원은 별도의 회계 창구로 보냈다. 발카스는 그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콧김을 뿜었다. “내가 직접 들고 날아가면 하루면 끝날 일을.” “하루면 기록도 사라질 수 있죠.” 태오가 말했다. “나는 떨어뜨리지 않는다.” “드래곤 님의 실력을 의심하는 게 아닙니다. 혹시 떨어뜨렸을 때 누가 어떤 상태로 인계했는지 확인할 기록이 필요한 겁니다.” 발카스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책상을 부술 때까지 항의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직원이 안내한 대기 의자에 앉았다. 그러나 의자가 인간용이라는 사실은 다른 문제였다. 등받이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자 바렌이 급히 더 큰 의자를 구하러 뛰어갔다. “드래곤 전용 의자를 나라 예산으로 구입해야겠군요.” 태오가 중얼거렸다. “그 비용을 네게 청구해도 되겠느냐?” “제 전세금은 모두 정산됐습니다.” “그 말을 언제까지 할 셈이냐?” “살아 있는 동안이요.” *** 기록방으로 돌아온 태오는 오래된 시장 상회의 장부를 정리했다. 채소를 배달한 날짜와 실제 대금 수령일이 뒤섞여 있었다. 청년 상인은 태오가 두 칸으로 나눠 쓰는 모습을 보고 말했다. “약속만 받았을 때와 돈을 받았을 때를 구분하면 장부가 두 배로 커지잖아요.” “그래도 누가 얼마를 안 줬는지는 절반 시간에 찾습니다.” “원래 그렇게 배웠습니까?” “아뇨. 세계에서 가장 큰 집주인 때문에 독학했습니다.” 상인은 웃었다. 태오는 자신이 또 발카스를 소재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는 드래곤에게 초상권 비용을 청구받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는 먼저 실제 사용 여부와 계약 조항을 확인할 생각이었다. 점심에 리네아가 나타났을 때 태오는 손님에게 줄 설명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리네아는 새 중개 사무실에서 갱신 상담을 마친 참이었다. “오늘은 서고에 안 계셨네요?” “오전에 잠깐 다녀왔습니다. 오후에는 제 일이요.” “놀랍네요. 서류 사건이 드디어 당신을 해방시켰군요.” “해방이라기보다는 근무시간 조정입니다.” 그녀는 창가에 놓인 호수의 작은 바람종을 건드렸다. 맑은 소리가 기록방에 퍼졌다. 며칠 전 여행지에서 함께 샀던 물건이었다. “우리 집에도 이런 걸 달아 놓을까요?” 태오가 펜을 멈췄다. “우리 집이요?” “아직 집을 정하진 않았지만요. 상상은 할 수 있잖아요.” 태오가 괜히 종이를 정리하는 척했다. “좋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집주인 종족부터 확인합시다.” “중개인이 엘프라서 더 엄격하겠네요.” “중개인이 제 마음까지 아는 엘프라서요.” 리네아가 잠시 그를 바라보다 웃었다. “요즘은 이런 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해요.” “유능한 교사 덕분입니다.” “수업료를 받지 않은 게 후회되네요.” 그녀는 그의 옷깃에 묻은 잉크를 털어 주었다. 태오는 손을 잡았지만 당기지는 않았다. 리네아가 먼저 한 걸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췄다. 그의 집중력은 그 순간부터 기록방 밖으로 나갔다. ***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확인해야 할 일이 딱 하나 더 있었다. 태오는 이르마에게 이관 상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외부 공개용 지도를 제안했다. 원본 서류가 있는 서가 번호가 아니라, 보존 절차의 현재 상태를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이동 전 검사, 이동 승인, 실제 운반, 새 장소 인수, 열람 심사. 각각 다른 색으로 표시하면 담당자뿐 아니라 자신과 같은 외부 의뢰인도 혼동을 줄일 수 있었다. 이르마는 잠시 도표를 살폈다. “그런데 누가 이 지도를 볼 수 있죠?” “위치가 노출되면 안 되는 서류의 상세 번호는 빼겠습니다. 공개 가능한 진행 상태만요.” “좋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가 끝났다고 자료의 내용이 확인됐다고 오해할 수 있어요.” 태오는 ‘보존 진행’이라는 큰 표제 옆에 ‘열람·효력 별도’라는 작은 상자를 그렸다. 이르마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예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동굴에서 받은 47-B 비늘을 손에 쥐고 금고가 열리는 모습을 상상하던 때였다. 지금은 비늘이 단지 조회 요청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록방 고객 중에도 비슷한 오해를 하는 이들이 있었다. 한 오후, 생선가게 주인은 주문서가 접수됐으니 물건도 배달된 것으로 적어 달라고 부탁했다. 태오는 거절하기보다 먼저 서로 다른 두 장부를 펼쳐 보여 줬다. 고객이 주문한 사실, 가게가 주문을 받은 사실, 배달꾼이 실제 물건을 인계한 사실은 서로 다른 칸에 있었다. 주인은 처음엔 복잡하다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지난달 배달되지 않은 생선 상자 하나의 행방을 찾자 금방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받지도 않은 물건을 받은 걸로 적으면 나만 손해라는 거죠?” “가끔은 반대쪽도 손해입니다. 서로의 기억을 놓고 싸우게 되니까요.” 상인은 말없이 장부를 다시 살폈다. 태오는 상대를 멋지게 논파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사람의 업무에서 작은 오해가 줄었다는 정도면 충분했다. 저녁 무렵 이르마는 기록방으로 직접 찾아왔다. 그녀는 왕실 보관기관에서 외부 의뢰인을 만나러 다니는 일이 드물다고 했다. 하지만 새 공개용 진행표를 시험하는 데 시민의 시선이 필요했다. “여기 써 놓은 ‘원본 점검 완료’는 위험한 표현 같아요.” 태오가 말했다. “왜죠?” “누군가는 원본 내용의 사실까지 확인했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외부 봉인 상태 확인’이라고 쓰면 어떨까요?” 이르마는 표시를 고쳤다. 점검표를 시험하던 젊은 직원은 옆에서 듣다가 말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이라 평범한 용어라고 생각했는데, 외부 사람은 다르게 읽을 수 있군요.” 태오는 웃었다. “제 돈을 받아 내는 데 백오십 화가 걸렸어요. 대부분은 비슷한 문장을 서로 다르게 읽는 바람에 걸린 시간이죠.” “정말 백오십 화나요?” “아, 저는 제 이야기를 장부처럼 장별로 세거든요.” 젊은 직원이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태오는 그날 밤 소피의 면담 준비 순서를 다시 확인했다. 그녀가 실제 받은 12금화 영수증은 지급 사실만 증명했다. 미도착 문서 여부를 밝히는 출처표에는 적을 필요가 없었다. 서로 다른 서류가 한 봉투에 들어 있어도 같은 결론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태오는 두 봉투를 각기 다른 날짜와 목적 아래 묶고, 소피가 요청한 범위 밖의 계약서는 꺼내지 않았다. 마르셀은 그 준비 과정을 보고 간단한 조언을 주었다. “면담에 동행하지 않는다면 제출 목록에 당신 이름을 지나치게 올리지 마세요. 당사자 본인의 진술과 기록정리자의 작업이 혼동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제 역할은 목차까지만입니다.” 태오는 책상 위의 다른 의뢰를 펼쳤다. 보관소에 얽힌 일은 중요했지만 이 작은 가게의 다음달 임대료도 그의 책임이었다. 수수료를 받는 일을 소홀히 하면서 사람들을 돕겠다고 선언하면 언젠가는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도 나쁜 약속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내일 첫 번째 예약이 오전 열 시라는 사실을 적고 일찍 퇴근하기로 했다. *** 그날 기록방을 방문했던 작은 구두 가게 주인은 자신의 영수증에도 접수번호와 배달 완료번호가 뒤섞여 있다며 상담을 청했다. 태오는 두 번호를 비교해 실제 구두를 인계한 날짜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인은 머리를 긁적였다. ‘저희 가게도 왕실만큼 복잡하네요.’ 태오는 웃었다. 왕실이 특별히 복잡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약속을 하고 지키는 과정에는 언제나 여러 단계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그는 손님의 양식에서 꼭 필요한 항목만 남겼다. 번호가 많을수록 정확한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사건을 같은 번호로 뭉치지 않아야 정확한 것이었다. 문을 닫을 무렵 소피가 직접 전화를 걸어 왔다. 내일 면담에 가져갈 것 중 아이의 학교 안내문은 빼도 되느냐는 질문이었다. 태오는 자신이 판단할 사항이 아니므로 이벨에게 확인하도록 권했다. 잠시 뒤 소피는 그 문서가 면담 목적과 무관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알려 왔다. 태오는 안심했다. 타인의 자료를 무조건 많이 제출하는 게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삶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 신중하게 보여 주는 것도 도움의 한 방식이었다. *** 오후 늦게 이르마가 공식 회신을 보내 왔다. 보존실 접수번호는 예전 공익감시부의 ‘표식 대조 가능 여부 문의’에 대응하는 번호였다. 신청 본문은 아직 허가되지 않았지만, 접수 표제에 한 가지 분명한 내용이 있었다. [원표식 현물 제출 여부: 미기재. 비교 자료 소재 확인 요청.] “현물을 들고 가서 진짜인지 검사해 달라는 신청은 아니었군요.” 태오가 말했다. 세딘의 답신이 이어졌다. [해당 표제만으로 실물이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단정할 수 없습니다. 기준 자료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단계일 수 있습니다.] 태오는 그 문장을 그대로 옮겼다. ‘어디 있는지 물었다’와 ‘실물을 보여 줬다’ 사이에는 거대한 산맥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그 산맥을 단숨에 건너뛰면 또 누군가의 권리를 대신 확정해 버릴 것이다. 저녁에는 소피에게서 작은 편지가 왔다. 내일 열리는 본인 계약 재검토 면담에 필요한 서류 순서를 물어보는 편지였다. 그녀는 이벨을 조력인으로 동행시키고, 태오에게는 열람 허가증과 실제 12금화 수령 영수증의 사본 목록만 부탁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증언 문구까지 대신 적어 주지 않았다. [소피 씨, 받은 금화와 받지 못한 통지는 서로 다른 항목입니다. 필요한 서류 순서만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내일 결정은 직접 하시면 됩니다.] 답장을 보내고 창문을 닫을 때 태오는 문득 깨달았다. 전에는 자신이 이 세계의 불합리한 제도와 싸우는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돌려주고 있었다. 밤이 되자 이르마가 보내온 마지막 전달문에 새로운 줄이 보였다. [표식 대조 가능 여부 문의 — 최초 발행 부서: 공익감시부 임시 인계반. 발행 담당 개인명은 별도 보관.] 태오는 종이를 곱게 접었다. 내일은 소피가 자신의 질문을 할 날이었다. 47-C를 가진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은 그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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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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