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시 공익감시부 앞 게시판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모였다.
김태오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이유를 곧바로 알았다. 게시판 한가운데 새 결정문이 붙어 있었다. 반짝이는 왕실 문장이 위쪽에 찍혀 있었고, 글씨 아래에는 검토위원 세 명의 서명이 보였다.
[과거 BG-17 관련 후대 색인 중 ‘결과 수신 완료’를 ‘당사자 교부 완료’와 동일한 상태로 인용한 건에 대해 분류 정정 결정.]
태오는 문장을 한 번 더 읽었다. 정정의 범위는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과거의 모든 계약을 무효로 만들거나 보증금 반환을 명령하는 문서는 아니었다. 다만 잘못 연결된 행정 상태를 구분해 기록하라는 결정이었다.
“정말 바뀐 건가요?”
소피가 그의 옆에 섰다. 헤스와 로벤도 함께 왔다. 소피의 손에는 자신의 사건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가 있었다.
“후대 색인의 분류가 정정된 겁니다.” 태오가 설명했다. “이제 과거에 수신 완료라고 적혔다는 이유만으로 소피 씨가 실제로 통지서를 받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그럼 다시 물어볼 수 있나요?”
“그건 아래 항목을 봐야 합니다.”
마르셀이 사람들이 읽기 쉽도록 공개한 요약문에는 다음 절차가 적혀 있었다. 해당 분류 때문에 직접 의견 제출 기회를 잃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계약별로 재검토를 요청할 수 있고, 심사기관은 교부 증빙 및 개인별 청취 여부를 별도 확인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소피는 눈을 깜박였다.
“저도 신청할 수 있겠네요.”
“네. 다만 신청하면 자동으로 원금이 지급되는 건 아닙니다.”
“알아요.”
소피는 아주 천천히 웃었다.
“그래도 이번엔 누가 제 의견을 물어볼 수 있겠네요.”
***
설명회에는 여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참석했다. 일부는 잘못된 색인 때문에 오래된 거래가 끝난 것으로 처리됐다며 화가 났다. 다른 사람들은 정정 때문에 이미 진행한 일을 모두 다시 해야 하느냐고 걱정했다. 상업문서보관소 직원들은 수천 장의 색인을 다시 검토하는 데 시간이 많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오는 어느 한쪽도 가볍게 보지 않았다. 과거 자료를 고치는 데는 비용과 노동이 필요했다. 하지만 잘못된 상태 표시 때문에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말할 기회를 잃었다면, 그 사람에게 다시 설명할 방법도 필요했다.
“정정으로 현재의 모든 거래가 뒤집히는 겁니까?” 한 상인이 물었다.
마르셀이 답했다.
“아닙니다. 해당 표시를 수령 확인으로 사용한 건을 다시 검토하자는 뜻입니다. 계약별 원본과 현재 법적 관계는 별도 심사 대상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거짓말한 건 아니라는 말입니까?”
“그 역시 자료 없이 단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 결정은 분류와 효력의 구분입니다.”
태오는 그 말을 들으며 안도했다. 아무리 억울한 사람이 많아도 아직 확인하지 않은 사람을 범인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이 일은 당사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되찾는 과정이어야 했다.
***
설명회가 끝나자 소피는 직접 신청서 앞에 앉았다. 신청서에는 어떤 통지와 관련된 재검토를 원하는지, 현재 연락받을 주소가 어디인지, 공개해도 되는 정보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 묻는 칸이 있었다.
“현재 주소를 공개 게시판에 적어야 하나요?” 소피가 물었다.
“아니요.” 마르셀이 말했다. “연락처는 비공개 등록부에 별도로 넣을 수 있습니다.”
소피는 안도했다. 아이와 함께 사는 현재 집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필요한 정보를 적고 맨 아래 서명했다. 아델의 문해교실에서 연습한 덕분에 이름이 전보다 반듯했다.
“제가 직접 접수하겠습니다.”
태오가 신청서를 대신 내겠다고 나서기 전에 소피가 말했다. 그는 기꺼이 한 걸음 물러났다.
접수 담당자가 번호를 발급했다. 종이는 아주 작았지만 소피는 그것을 손수건에 넣고 몇 번이고 만져 보았다. 과거에 자신이 받았다고 적힌 편지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면, 이번에는 실제로 받은 접수증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
한편 발카스는 같은 날 별도의 자산 설명회를 열었다. 다른 세입자들에 대한 반환 계획을 검토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는 태오에게 참석을 부탁했지만, 태오는 조건을 하나 붙였다.
“제가 다른 세입자들의 대표인 것처럼 소개하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하겠다.”
“그리고 금액을 확정하기 전에는 기대만 높이는 발표는 삼가시고요.”
“그것도 알겠다.”
발카스는 잠시 태오를 내려다봤다.
“너는 이제 나에게 받을 돈이 없다. 그런데 여전히 나를 귀찮게 하는군.”
태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초대를 취소하셔도 됩니다.”
“아니다. 참석해라.”
“왜요?”
“네가 문장을 정확히 읽어 주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태오는 그 말에 웃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드래곤에게서 듣기 어려운 칭찬이었다.
***
리네아의 사무실에는 이날 새 고객 두 명이 왔다. 서로 다른 집에서 살았지만 두 사람 모두 ‘BG-17이 전액 보증해 준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왔다. 리네아는 한숨부터 쉬고 싶었지만 침착하게 자료를 설명했다.
“현재 확인된 것은 옛 통지 절차에 관한 분류 정정입니다. 어떤 분의 임대 보증금을 왕실이 전액 지급한다는 결정은 아닙니다.”
“그럼 광고가 틀린 건가요?”
“그렇게 단정하려면 광고 문구와 계약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이 문서만으로 전액 지급을 약속한다면 근거가 부족합니다.”
고객 중 한 명이 실망한 듯 말했다.
“그럼 집을 구하려면 결국 제 돈이 있어야 하네요.”
“예산에 맞춰 안전한 조건을 찾는 게 먼저입니다. 제가 같이 확인해 드릴게요.”
리네아는 고객이 계약할 의사를 보이더라도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은 채 서명부터 받지 않았다. 이전에 드래곤 소유주를 충분히 고지하지 못해 경고받았던 일을 잊지 않았다.
상담이 끝난 뒤 그녀는 태오에게 말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자꾸 빨리 결론을 내달라는 사람이 많아져요.”
“답답하니까요.”
“그래도 빨리 말하는 것과 정확하게 말하는 건 다르잖아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당신이 오늘 한 일이 더 많은 사람을 보호했을 겁니다.”
리네아가 웃었다.
“칭찬은 좋은데, 오늘 저녁은 꼭 당신이 사요.”
“알겠습니다.”
***
***
제6기록실 직원들도 정정 결정문을 받아 들고 긴 회의를 열었다. 태오는 외부 이해관계자로서 공개되는 설명 부분에만 참석할 수 있었다. 각 기록에 어떤 추가 표기를 붙일지, 이미 열람한 사람이 잘못된 의미를 계속 인용하지 않도록 어떻게 알릴지가 논의됐다.
“기존 색인에 그냥 빨간 줄을 긋고 새 단어를 적으면 안 됩니까?” 한 직원이 물었다.
노엘 카시가 고개를 저었다.
“어느 시점까지 그 낡은 표기를 사용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지우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직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할 일이 두 배로 늘겠군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서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실제로 통지를 받았다고 잘못 분류됐다면, 그걸 바로잡는 일도 업무입니다.”
태오는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일을 어떻게 나눌지 논의하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표 한 장을 수정하는 일은 쉬워 보였지만, 수년 동안 그 표를 근거로 작성된 다른 자료가 많았다. 그 모든 기록을 무작정 뒤집는 것은 또 다른 혼란을 만들 수 있었다.
이르마는 원본을 건드리지 않는 보충색인과 개인별 안내문을 따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면 과거 표시를 역사적 사실로 남기면서 지금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하는지도 안내할 수 있었다.
“저는 그 방식이 좋습니다.” 태오가 말했다.
“왜죠?”
“나중에 누군가 자기 기록이 왜 잘못됐는지 설명받을 수 있으니까요.”
이르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
설명회 뒤 로벤이 태오에게 다가왔다. 그는 작은 돋보기를 들고 결정문을 몇 줄씩 읽고 있었다.
“내 계약에도 이 문서가 적용되겠지?”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같은 후대 색인에 의존해 처리된 건인지 먼저 확인해야 해요.”
“그럼 오늘 당장 신청하지 않아도 되겠군.”
“네. 절차와 필요한 기한을 확인하신 뒤 결정하시면 됩니다.”
로벤은 종이를 접어 가방에 넣었다.
“나는 소피처럼 급하게 집을 옮길 필요는 없소. 대신 내 예전 계약서가 왜 지금까지 보관됐는지 궁금하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당 계약의 보존 경위를 중심으로 자료를 준비해 보죠.”
“잘 부탁하오. 물론 수고비도 낼 거요.”
“감사합니다.”
로벤이 웃었다.
“자네가 처음 우리 마을에 왔을 때는 돈을 못 받아 화가 난 청년이었는데, 지금은 남의 종이를 받아 정리하는 사장이 됐군.”
태오는 멋쩍게 웃었다.
“여전히 화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야 사람이라면 그렇지.”
로벤은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
기록방으로 돌아온 태오는 게시판에 정정 결정의 짧은 설명을 붙였다.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네 개로 나누었다.
[업무 수신과 당사자 교부는 다릅니다.]
[기존 색인 중 일부 분류가 정정됐습니다.]
[본인 사건의 재검토 가능성은 계약별로 확인합니다.]
[돈이 자동으로 지급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지나가던 상인들이 안내문을 읽고 질문했다. 어떤 사람은 다행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오래된 일을 다시 조사하는 데 세금이 얼마나 들겠느냐고 걱정했다. 태오는 각자의 걱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럼 지금 바뀐 건 뭡니까?” 한 청년이 물었다.
“누가 실제로 편지를 받았는지 확인할 때 잘못된 표식을 그대로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그게 돈이 되나요?”
“어떤 사람에겐 돈을 받을 청구 기회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체가 지급은 아니죠.”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얼마 전 이 손바닥에는 마지막 스물다섯 금화가 놓였었다. 오늘은 금화 대신 한 장의 결정문을 들고 있었다. 둘의 무게는 다르지만 누군가의 삶을 조금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마르셀은 외부 설명회를 마치면서 작은 부탁을 남겼다. 정정 결정을 듣고 흥분한 사람들이 상대방의 주소나 이름을 함부로 공개하지 않도록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태오는 공개 게시판에 필요한 절차만 요약하고 개인의 사연은 적지 않기로 했다. 진실을 밝히는 일이 누군가의 안전을 다시 흔드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됐다. 그는 소피가 아이의 주소를 꼭 가려 달라고 부탁했던 말을 기억했다.
오후 늦게 정정 결정의 부속 문서가 기록방에 도착했다. 세딘은 제6서고 6-H-22의 겉장과 집계 판독기 출력 형식 대조가 심사에 참고됐다고 알렸다. 그러나 옛 판독기 자체의 모든 과거 기록이 같은 오류를 가졌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큰 문제 하나가 해결됐군요.” 태오가 말했다.
“정확히는 분류 하나가 바로잡힌 겁니다.” 세딘이 답했다. “그걸 근거로 각자의 재검토 신청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저는 그게 큽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세딘은 잠시 웃었다.
“기록 담당자로서 잘못된 칸을 하나 고친다는 게 이런 의미를 가질 줄은 몰랐습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거대한 싸움에서 이긴 것처럼 느끼지 않았다. 대신 조금 좁았던 문이 한 뼘 열리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그 문으로 들어갈지는 각자가 결정할 것이다.
그날 마지막으로 소피가 기록방에 들렀다. 그녀는 새로 발급된 접수증을 보여 주었다.
“오늘은 돈도 아니고 보증서도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기뻐요.”
“왜요?”
“예전엔 내가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 때문에 내 말을 들어 줄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이제는 정말 받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잖아요.”
태오는 미소 지었다.
“맞습니다.”
소피는 접수증을 다시 넣었다.
“제가 다시 물어볼 거예요. 나한테 편지가 왔냐고. 그리고 왜 내 대답 없이 일을 끝냈냐고.”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태오에게는 그날 설명회에서 들은 어떤 연설보다 선명했다.
밤이 되어 태오는 수첩에 적었다.
[후대 색인 분류 정정 결정: 확정. 개별 재검토 신청: 소피 접수. 개인 권리의 최종 판단 및 지급: 별도.]
[김태오 원금: 300금화 전액 반환, 잔액 0. 소피 원금 일부: 12금화 수령, 잔여액 별도 확인.]
리네아가 다가와 그의 장부를 덮었다.
“오늘은 기뻐해도 되는 날이에요.”
태오가 웃으며 일어섰다.
“그럼 축하 식사부터 하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도시의 기록은 여전히 많았지만, 적어도 오늘은 누군가의 대답할 기회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제158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