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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56화
PAYLUA ORIGINAL · 제156화

156화. 기계는 편지를 받았지만 사람은 받지 못했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157자

오프라인 책장
왕실 공익감시부 지하실에는 오래된 황동 기계가 있었다. 김태오는 그 기계를 보는 순간 한국의 낡은 복사기를 떠올렸다. 겉모양은 달랐지만, 뭔가 종이를 먹고 표시를 뱉는 구조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커다란 톱니바퀴가 돌아가고, 작은 마력 수정이 세 개 반짝였다. 기계 위에 쓰인 이름은 ‘제2대 집계 판독기’였다. “이게 사람의 편지를 대신 받아 줬다고요?” 태오가 물었다. 담당 기술자 세라 오우드가 고개를 저었다. “편지를 대신 받은 게 아닙니다. 편지에 관한 업무표를 집계했어요.” “그런데 후대 색인에서는 ‘수신 완료’로 표시됐다고요?” “그렇습니다. 당시에는 기계가 업무 자료를 받아 처리했다는 뜻으로도 ‘수신’을 썼거든요.” 세라는 젊은 여성 마도기술자로, 검은 보호안경을 머리 위에 걸치고 있었다. 그녀는 기계의 마력 공급 장치를 끄고 내부를 보여 주었다. 톱니바퀴 사이에는 길쭉한 금속판들이 박혀 있었다. 판마다 업무 상태를 뜻하는 기호가 새겨져 있었다. “완료, 재검토, 이관, 반송, 대기. 이 기계는 사람의 이름을 판단하지 못합니다.” 태오는 무심코 웃었다. “현대 기계도 그러다가 사고를 치는데, 이 세계 것도 비슷하군요.” “현대 기계요?” “제 고향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라는 흥미를 보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기계에서 나온 기록이 곧 개인 수령의 증거가 아니라는 말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 세딘과 이르마 솔은 기계의 원본 금속판 목록을 들여다봤다. 제6기록실 6-H-22의 집계 수신 표시는 당시 감시부가 밤마다 여러 부서의 기록을 모아 재분류할 때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적어도 이 기계를 사용하던 기간과 표시의 작성 시기가 겹쳤다. “같은 기간에 있었다고 같은 기록을 만들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죠?” 태오가 말했다. “맞습니다.” 세라가 답했다. “당시 운용 대장과 원본 출력표를 맞춰 봐야 해요.” 실제 재현 시연을 위해 세라는 원본 문서를 넣지 않고 복제한 시험판을 사용했다. 버튼 대신 작은 레버를 당기자 기계가 낮게 울렸다. 낡은 종이 조각에 푸른 잉크가 찍혔다. [업무결과 수신. 후속 발송 미확인.] 태오는 결과를 읽고 눈썹을 올렸다. “이 기계는 두 가지를 구분해 적네요.” “그렇죠. 그런데 후대에 색인을 만들 때 앞의 한 문장만 옮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확인할 자료가 있나요?” 세라는 금속판에 새겨진 작은 두 줄의 기호를 가리켰다. 첫 줄은 행정 집계가 완료된 상태였고, 둘째 줄은 개인 통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경고였다. “옛 규정에는 두 줄을 같이 인쇄하게 되어 있어요. 어느 시점에 둘째 줄이 색인에서 누락됐는지 찾아야 합니다.” 태오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수신 완료’라는 네 글자를 누가 왜 만들었는지 의심했다. 어쩌면 그 문장의 원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기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누군가 일부러 글자를 지웠다고 당장 결론 내릴 수는 없었다. *** 소피도 비식별 시연 결과를 설명받았다. 그녀는 실제 원본이나 다른 사람 이름이 없는 요약판만 봤다. “그러니까 예전에 저희가 편지를 받았다는 기록이, 기계가 표를 받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럴 수 있습니다. 해당 항목과 연결이 확인되면요.” 세라가 대답했다. 소피는 한숨을 쉬었다. “기계는 잘못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기계는 지정한 기호를 찍습니다. 그 기호를 어떤 뜻으로 쓰고 읽는지는 사람이 정하죠.” “그럼 지금 기록을 바로 고쳐 주면 안 되나요?” 태오가 답하기 전에 이르마가 고개를 저었다. “원본을 고치는 것은 안 됩니다. 옛 문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기록입니다. 대신 잘못된 후대 설명을 정정하고, 관련자에게 다시 통지할 수 있는지 검토해야죠.” 소피가 물었다. “저는 다시 통지를 받아도 제 의사대로 답할 수 있나요?” “현재의 통지에 대해선 그렇습니다. 과거의 처리 효력이 어떻게 되는지는 별도 심사가 필요하고요.” “괜찮아요. 적어도 이번에는 제가 답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태오는 그녀를 바라봤다. 소피는 고분고분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필요한 문장을 읽고, 필요한 질문을 직접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오후에는 뜻밖의 소동이 벌어졌다. 오래된 기계를 조사하러 온 발카스가 지하실 문을 지나가다가 머리를 부딪친 것이다. 인간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도 그의 키는 여전히 매우 컸다. “누가 이런 낮은 문을 만들었느냐!” 세라가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평균 키를 기준으로 설계했습니다.” “평균이라니. 내가 평균보다 특별하다는 뜻이냐?” “네. 평균보다 크시죠.” 발카스가 할 말을 잃었다. 태오는 고개를 숙여 웃음을 숨겼다. 드래곤은 기계 앞에 서더니 마력 수정을 유심히 살폈다. “이런 작은 기계가 일곱 해 동안 사람들을 헷갈리게 했다고?” “기계만의 문제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세라가 답했다. “원래 규정과 실제 운용을 함께 보셔야 합니다.” “나도 내 금고를 열지 못해 일곱 해를 허비했지.” “그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래도 이 기계를 부수지는 마세요. 원래 판독 상태를 확인해야 합니다.” 발카스의 눈썹이 올라갔다. “내가 부수겠다고 했느냐?” 태오가 말했다. “예전 같으면 그랬을 것 같아서요.” “너까지!” 세라가 기계 위에 작은 경고표를 붙였다. [강한 마력 충격 금지.] 발카스는 그 표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도 참아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었다. *** 한편 소피의 새 통지 기한 문제가 실제 생활과 연결됐다. 그녀는 현재 이사를 준비할지 집을 갱신할지 결정해야 했고, 당장 다음 달까지의 지출 계획이 필요했다. 금화 열두 닢을 받았지만 남은 원금은 아직 정산되지 않았다. 태오는 그녀에게 돈의 사용처를 지시하지 않았다. 대신 기록방 고객용 수입·지출 표를 무료가 아닌 정식 소액 수임으로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수수료를 받으셔도 괜찮아요.” 소피가 말했다. “이제 당신 사업도 제대로 해야죠.” 태오가 약간 당황했다. “예전엔 같은 세입자 입장에서 계속 무료로 도와드렸는데요.” “공적인 정보 설명은 도와주셨고, 이건 제 개인 장부 일이잖아요. 일에는 값을 드려야죠.” 리네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야 모두 오래 도울 수 있어요.” 태오는 처음으로 ‘도움을 받는 사람’이 자신의 일값을 지켜 주는 경험을 했다. 그는 소피가 원한 범위만 기록한 작은 표를 만들었다. 아이의 이름이나 사적인 지출 항목은 적지 않았다. *** *** 세라는 태오를 오래된 기계 앞에 다시 세웠다. 그녀는 작은 청동판 세 개를 꺼내 나란히 놓았다. 하나에는 ‘수령’, 하나에는 ‘수신’, 마지막에는 ‘전달’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 기계는 처음 만들 때부터 단어를 헷갈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헷갈리게 된 거군요.” “네. 기계는 필요한 표시를 따로 찍었습니다. 사람이 후대에 색인을 만들면서 편한 쪽으로 줄였을 수도 있죠.” 태오는 판을 들어 보지 않고 눈으로 살폈다. 오래된 금속판에는 여러 차례 닳은 흔적이 있었다. 실제 사용 기간을 말해 줄 수 있는 건 금속의 상태만이 아니었다. 관리장부와 교체 기록도 필요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다시 이런 일이 안 생길까요?” 세라가 한동안 생각했다. “저라면 출력물에 ‘누구에게’라는 칸을 따로 만들겠어요. 사람이 받았으면 사람 이름과 수령 방법, 기관이 받았으면 기관 이름과 접수 경로를 적는 거죠.” “그건 좋은 방법이네요.” “하지만 당장 옛 기록을 전부 그렇게 고칠 수는 없어요. 원본은 그대로 두고 해석을 덧붙여야 합니다.”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작업장에도 배송 완료와 대금 수령을 구분하는 표가 있었다. 같은 원리가 왕실의 거대한 집계기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재미있었다. 그때 작은 소동이 났다. 세라가 시험용 종이를 넣으려다 레버를 잘못 건드렸고, 기계 안에서 새파란 연기가 솟아올랐다. “괜찮습니까?” “네. 시험용 마력이 오래 남아 있었네요.” 발카스가 문밖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불이 난 것이냐?” “불 아닙니다.” 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드래곤 님, 절대로 입김을 불지 마세요.” 발카스는 입을 다물었다. 태오는 참다 못해 웃음을 터뜨렸다. “왜 다들 나를 화재 원인으로 보는 것이냐!” “오늘은 아닙니다.” “오늘은?” “과거 다른 화재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죠.” 발카스는 기막혀하면서도 반박하지 않았다. 세라는 창문을 열고 시험용 연기를 빼냈다. *** 잠시 뒤 세라는 태오에게 기계 수리대장을 보여 주었다. 여러 해 전 출력 양식이 바뀐 날에는 기술 담당자가 한 줄의 경고를 남겨 두었다. [변경 적용 뒤 수신자별 교부 확인은 별도 인계표 대조 요망.] “정확히 써 있었군요.” 태오가 말했다. “그런데 후대 색인을 만들던 사람이 이 대장까지 읽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그 사람을 찾아 물어보는 게 다음 단계겠네요.” “그럴 수 있죠. 다만 사람을 찾기 전에 당시 색인 개정 지침부터 확인하는 게 좋겠습니다. 담당자 개인의 임의 판단이 아니라 부서의 규칙이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문제의 책임을 찾는 일과 현재 다시는 같은 실수를 만들지 않는 일은 서로 연결되지만 같지는 않았다. 그는 세라에게 물었다. “이런 기계를 만드는 분들은 사람들이 기록을 어떻게 쓰는지도 배우십니까?” “기술학교에서 조금은 배워요. 하지만 대부분은 작동하는지부터 봅니다.” “작동은 정확했는데 뜻이 틀리게 전달될 수도 있겠군요.” 세라가 미소 지었다. “그래서 기술자도 가끔 사무실에 나가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태오는 자기 기록방을 떠올렸다. 숫자를 잘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숫자 뒤에 누가 사는지 모르면 또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는 세라가 새겨 놓은 기계의 세 단어를 다시 바라보았다. 수령, 수신, 전달. 태오에게는 얼핏 비슷하게 들렸지만 그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누군가 편지를 보내려 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상대방의 손에 닿았다는 사실 사이에는 사람의 하루, 때로는 몇 해의 시간이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그 시간을 함부로 한 칸으로 줄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녁 무렵 세라가 오랫동안 잠긴 서랍에서 운용 시험표 하나를 찾아냈다. 그것은 원본 사건자료가 아니라 기계 자체의 기능 점검표였다. 여러 해 전 제2대 판독기의 출력형식이 바뀌었을 때 작성된 문서였다. [집계 수신 표시 출력 유지. 미교부 경고 문구는 별도 꼬리표로 이동.] 태오는 그 문장을 읽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원래 한 장에 같이 찍히던 두 문장이 분리됐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네. 당시에는 용지를 아끼고 각 부서 업무를 나누려고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뒤쪽 꼬리표가 분실되면 사람 수령으로 오해하기 쉬워졌겠네요.” 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가능성이 생겼습니다. 누구의 어떤 사건에 적용됐는지 확인해야 하지만요.” 이르마는 시연 결과와 시험표를 함께 보존하기로 했다. 후대 색인을 만드는 규칙도 임시로 검토할 예정이다. 아직 정정 확정은 아니었다. 태오는 기록방으로 돌아오면서 리네아에게 말했다. “오늘은 아주 작은 문장이 큰 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또 배웠어요.” “당신은 원래 그런 걸 알았잖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실제 피해를 줄이는 방법까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럼 좋은 진전이네요.” 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없던 돈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미 통지를 받았다는 잘못된 전제 때문에 다시 답할 기회를 잃었다면, 그 전제를 바로잡는 데는 실제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날 밤 마르셀에게서 연락이 왔다. [BG-17 관련 후대 ‘수신 완료’ 색인 정정심사 신청 접수. 당사자별 재통지 기회 회복 검토 예정.] 태오는 소피에게 결과를 전달하되 ‘기회가 회복됐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직 심사에 들어갔을 뿐이다. 그는 수첩에 기록했다. [황동 기계는 업무표를 받았다. 사람이 편지를 받았는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 불을 끄고 나왔다. 리네아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저녁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오늘도 늦을 뻔했네요.” “그래도 약속 시간 전입니다.” “이번엔 제가 점수를 줄게요.” “몇 점입니까?” “아직 계산 중.” 태오는 웃었다. 모든 계산이 끝나지 않아도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아주 좋은 규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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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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