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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153화
PAYLUA ORIGINAL · 제153화

153화. 호수의 보트에는 돌려받을 돈이 없다

드래곤이 우리 집 전세금을 안 돌려준다 · 6,005자

오프라인 책장
둘째 날 아침, 김태오는 어제와 다른 방향으로 노를 젓겠다고 선언했다. 리네아는 창가에서 머리를 묶다 말고 웃었다. “이번엔 어딜 가려고요?” “제자리만 아니라면 어디든요.” “어제는 물속에서 세례라도 받으려는 줄 알았어요.” “예기치 못한 물 세례는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오늘도 필요하면 제가 구해 드릴게요.” “물에 빠지면 먼저 웃을 거면서요.” “당연하죠. 건져 드리는 건 그다음.” 두 사람은 웃으며 여관을 나섰다. 북부 호수의 아침은 파벨의 아침과 달랐다. 화물 마차가 덜컹이는 소리 대신 물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부두의 나무판자에서는 밤새 내린 이슬 냄새가 났다. 그들은 여관 주인이 추천한 북쪽 산책로를 걸었다. 돌길 끝에는 오래된 목교가 있었고, 다리 아래에서 젊은 어부가 보트 한 척을 붙잡고 있었다. 널빤지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수리 중인 모양이었다. “물이 새나요?” 태오가 물었다. “그것보다 더 답답한 일이에요.” 어부가 답했다. “나무는 고칠 수 있는데, 배를 누구 돈으로 고칠지가 문제거든요.” 태오는 순간 멈칫했다. 리네아도 그를 쳐다봤다. 평범한 여행지에서 ‘누구 돈’이라는 말이 들리자 그의 직업적 습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저 사람한테는 부탁하지 마세요.” 리네아가 어부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잠깐 사이에 서류 열 장을 만들거든요.” 어부는 눈을 크게 떴다. “서류를 봐 주는 분입니까?” 태오는 한숨을 쉬었다. 그가 누구와 어디를 여행하든 도망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일을 합니다만,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어부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태오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실망을 보고 어쩐지 마음이 쓰였다. 그러나 리네아의 손을 잡고 여행을 왔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문제가 급하면 마을 상담소가 어디인지 정도는 알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어부는 고개를 숙였다. “제 이름은 라그예요. 지난 봄, 선박조합에서 보트를 빌리면서 수리보증금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배가 낡았다는 이유로 전부 공제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원래 낡았던 부분인데도요.” 태오는 자신의 오래된 전셋집 계단을 떠올렸다. 발카스 측이 계단 수리비를 청구했을 때 느꼈던 억울함이 새삼 선명했다. 그렇다고 이 보트 계약도 부당하다고 즉시 말할 수는 없었다. “처음 상태를 적은 인계표는 있습니까?” “있는데 글씨가 너무 작아요. 마을 기록상담소에 가면 봐 준대요.” “그럼 거기부터 가 보세요. 원래 상태와 지금 생긴 손상을 구분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돈을 내거나 포기하는 서명은 충분히 읽은 뒤 결정하시고요.” “그런 말이 듣고 싶었어요.” 라그가 환하게 웃었다. 리네아는 태오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방금 공짜 상담했죠?” “주소만 알려 줬습니다.” “문장 세 개는 더 말했잖아요.” “정확히 네 개였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정말…” 그녀는 말끝을 흐리다가 미소 지었다. “그래도 오늘은 그만해요. 우리가 보러 온 게 있잖아요.” 태오는 그제야 산책로 끝에 작은 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 폭포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하지만 바위 사이로 쏟아지는 물이 햇빛에 무지개를 만들었다. 산책로는 젖어 미끄러웠고, 리네아는 태오의 손을 꼭 잡았다. “여기선 당신이 조심하세요.” “왜요?” “계약서는 미끄러운 돌을 잡아 주지 못하니까요.” 태오는 웃으며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폭포 옆에는 작은 나무 벤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물소리를 들으며 한참 쉬었다. 리네아는 어제 산 목걸이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렸다. “태오 씨.” “네.” “어제 여관 주인님이 한 질문,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조금 놀랐습니다. 하지만 부담스럽진 않았어요.” “왜요?” 태오는 말을 고르다 대답했다. “언젠가 이야기할 미래가 있다는 게 좋았거든요.” 리네아는 잠시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저도 그래요. 엘프는 인간보다 오래 살잖아요. 우리한테 시간이라는 건 조금 다르게 느껴져요.” 태오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들었다. 두 사람 사이의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가 나이 들어 갈 때 리네아는 여전히 젊어 보일지도 몰랐다. “그 차이가 무섭나요?” 태오가 물었다. “가끔요. 하지만 지금까지 행복한 시간을 피해서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입술 가까이 가져갔다. “그럼 우리가 같은 하루를 살아 보는 것부터 해요.” “오늘처럼요?” “네. 내일도, 모레도요.” 리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웃었을 때 태오는 파벨의 어떤 장부에도 없는 빛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 점심 무렵 산책로 입구로 돌아왔을 때 라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손에 작은 쪽지를 들고 있었다. 아까 알려 준 마을 기록상담소에서 받아 온 것이었다. “안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계약은 제가 직접 가져가서 검토받기로 했어요.” 태오는 안도했다. “잘됐군요.” “그런데 한 가지 더 여쭤봐도 됩니까? 저쪽엔 아무것도 없는 칸이 하나 있어요. 왜 비어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가 내민 인계표의 ‘수리 전 손상 사진’ 칸에는 빈 네모가 있었다. 태오는 그 칸을 한동안 보다가 종이를 돌려주었다. “비어 있다는 것만으로 사진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곳에 보관돼 있을 수도 있죠. 그 상담소에서 사진 등록번호를 확인하자고 하세요.” “그렇군요.” “그리고 상대 조합에도 서류를 요청할 수 있는지 물어보시고요.” 라그는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글을 잘 몰라서 이런 건 다 못 하는 줄 알았어요.” 태오는 잠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계약서를 찍고 검색하는 일이 익숙했다. 이곳에서는 종이 하나를 제대로 읽는 데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 알 필요는 없어요. 필요할 때 도와주는 곳을 찾으면 됩니다.” 라그는 웃으며 돌아갔다. 리네아가 태오를 바라봤다. “이번엔 정말 쉬는 날이었는데.” “그러게요.” “불편했어요?” “아뇨. 오히려 마음이 좀 편해졌습니다.” “왜요?” “제가 그 사람 문제를 다 해결해 주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어디서 도움받는지 알려 주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도 있네요.” 리네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좋아하는 당신 모습이에요.” “드디어 하나 얻어걸렸군요.” “많이 얻어걸렸어요.” *** *** 호숫가 시장에서 두 사람은 라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었다. 어부의 동생이 짐을 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형의 보트가 수리 때문에 멈추면 둘 모두 일거리가 줄어든다고 했다. 그는 배를 고치기 위해 나무판자 몇 장을 구해 놓았지만 보증금 문제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못 고치는 게 아니라, 나중에 누구 책임인지 싸움이 날까 봐요.” 라그가 말했다. 리네아가 말했다. “수리 전에 현재 상태를 양쪽이 확인하고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길 수 있는지 물어보세요. 다만 허락 없이 남의 물건을 뜯어내면 안 되고요.” “우리 마을에선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귀한데요.” 태오가 시장 쪽을 가리켰다. “아까 그 나무 장난감을 만드는 가게에도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이 있던데요.” 라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께 수리 전 상태를 그려 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네요.” 그는 잠시 태오를 바라보았다. “그럼 제가 뭘 먼저 해야 하는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배를 고쳐 주실 필요는 없어요.” 그 말이 태오를 웃게 했다. 마침내 상대가 자기 손으로 다음 일을 정하는 장면을 보는 것이 좋았다. 라그는 보트의 오래된 나무판자를 두드렸다. 그 소리를 듣던 리네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나무가 생각보다 단단하네요. 왜 전부 교체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셨죠?” “저도 모르겠어요. 조합이 오래된 배는 통째로 고쳐야 한다고만 했거든요.” “그렇다면 실제 손상 범위를 독립적으로 확인할 필요도 있겠어요.” 태오는 더 말을 보태지 않았다. 이미 조언할 만큼 했고, 쉬는 날을 여행으로 보내겠다는 약속도 있었다. 그는 라그에게 인사를 하고 리네아와 시장을 걸었다. *** 시장 안쪽에는 작은 조개 공방이 있었다. 주인은 다양한 색의 조개껍데기를 모아 바람종을 만들고 있었다. 태오는 공방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조개마다 소리가 달랐고, 바람이 세게 불면 서로 부딪혀 복잡한 화음을 만들었다. “저걸 하나 사서 기록방에 걸어 둘까요?” 리네아가 물었다.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럼 집에 걸어 두면 되죠.” 태오가 잠시 멈췄다. 리네아가 자연스럽게 ‘집’이라는 말을 했다. 그 말에 어느 한쪽의 집을 뜻한다는 설명은 없었다. 태오는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지만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왜 웃어요?” “그냥 좋습니다.” “뭐가요?” “당신이 집이라는 말을 편하게 해서요.” 리네아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귀 끝이 붉어졌다. “그런 말 한마디에도 그러면 제가 어떻게 농담을 해요?” “계속하세요. 저는 듣고 싶습니다.” 그녀는 바람종 하나를 골랐다. 푸른 조개 세 개와 작은 금속 잎사귀가 달린 것이었다. 태오는 값을 지불했다. 상인이 포장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은 창밖으로 호수가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봤다. 리네아가 낮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머물 집에도 이걸 걸고 싶어요.” 태오는 그녀를 돌아봤다. “좋습니다. 다만 집은 서두르지 말고 함께 고릅시다.” “왜요?” “당신은 좋은 중개인이고, 저는 계약서를 끝까지 읽는 사람이니까요.” 리네아는 한참 웃었다. “그 조합은 꽤 튼튼하겠네요.” 그녀는 그의 팔짱을 꼈다. 태오는 순간 앞으로의 시간을 모두 계획하고 싶어졌지만, 곧 손에 들린 바람종 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이 조용한 호숫가를 떠나기 전에 함께 더 걸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오후에는 호숫가 축제의 마지막 공연을 보았다. 어부들이 물 위로 작은 등불을 띄우는 행사였다. 태오는 한 등불에 무엇을 적을지 한참 고민했다. 리네아는 이미 문장을 다 쓰고 있었다. “뭐라고 적었어요?” “비밀.” “그럼 저도 비밀입니다.” 태오는 짧게 적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해 주세요.] 등불을 물에 띄우자 작은 불빛이 바람을 타고 멀어졌다. 리네아의 등불은 바로 옆에 떠 있었다. 태오는 그녀의 글씨를 엿보지 않으려 애썼다. 리네아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궁금하죠?” “네.” “안 볼 거예요?” “당신이 비밀이라고 했으니까요.” 그녀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엔 모든 빈칸을 확인하려고 했잖아요.” “이건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빈칸이에요.” 리네아가 그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등불은 나란히 흔들렸다.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끌어당기지 않아도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었다. *** 돌아오는 마차에서 태오는 잠이 들었다. 고개가 리네아의 어깨 위로 떨어졌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창밖 풍경이 어두워질 즈음 눈을 뜬 태오는 민망해했다. “죄송합니다.” “잘 잤어요?” “네. 오래 잔 것 같네요.”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는 당신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건 좀 억울한데요.” “어깨 사용료를 받을까요?” 태오가 곧장 손을 들었다.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비용은…” “농담이에요!” 리네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태오는 자기도 웃었다. 이제 그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줄 알았다. 모든 대화가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편안한 발견이었다. 파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기록방 문 앞에는 급하지 않은 공적 통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태오는 수령 시각만 확인하고 다음 날 읽기로 했다. 리네아는 그를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오늘은 정말 성공했네요.” “뭐가요?” “여행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헤어지기 전 길모퉁이에서 잠깐 포옹했다. 태오는 그녀의 목걸이가 달빛에 빛나는 것을 보았다. 북부 호수의 물결과 함께 그 빛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서류보다 먼저 내일 아침의 빵집 문 여는 시간을 생각했다. 오랜만에 아주 평범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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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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